이완용 평전

이완용평전

김윤희지음

얼마전에직원식당에서밥을먹는데건너편에앉아있던선배가이완용평전을읽어보았는데읽어볼만하다는이야기를한다.

이완용하면떠오르는매국노’,‘을사5’,그다음은?우리나라국민중에이완용을모르는사람이없을것같지만정작두단어외에는더떠오르는것이없다.혹시나해서우리과전공의에게몇명에게물어보았더니땅부자하나를보탰지만그외는모르겠단다.알려진것에비하면너무모르고있다는생각이들었다.

이책은한겨레역사인물평전기획물중한편이다.부제는극단의시대,합리성에포획된근대적인간이다.책에서이야기하고자하는바를짧고간결하게대변하고있다.머리말배제된타자의봉인을열다에서저자는다음과같이적고있다.이책의요약이라할수있다.한편저자의생각을정해놓고그렇게이야기를끌고간다는느낌도들었다.이책을읽는나로서는위에서적은몇개의단어외에는잘모르는터라이책이기술하는방식에대해비평을할만한위치에있지않다는생각이든다.이책에서이야기하는것외에도다른관점이있을터인데이완용에대해이책이이야기하는것외에는모르니말이다.이런의미에서[알라딘]에서제공하는내용을소개한다.

[알라딘제공]

부산대학교점필재연구소와한겨레출판이공동기획한한겨레역사인물평전‘.’한겨레역사인물평전은현재우리의삶이과거와유리되어있지않다는전제하에우리과거사인물들을현재의시각으로조명해보려는야심찬시리즈이다.이책은그첫걸음으로,그간매국노로낙인찍혀거의실체를조명받지못했던이완용의평전이다.

잘알려지지않았지만이완용은어린시절명문반가의양자로들어가고전을익혔으며과거급제후육영공원에서영어를배우고주미대사관참찬관으로파견되었던,동양의전통과서양의지식에두루열려있는인물이었다.또한각종교육개혁을이끌고독립협회회장을지내며정동파의수장으로자리매김하는등복잡다단했던구한말정계에서주목받는기민한정치인이었다.

하지만이완용은을사조약체결과함께국망의원인제공자이자인간적으로도타락한존재로낙인찍혔다.물론그의매국행위는비판받아야하겠지만,대한제국의정치구조속에배태되어있던문제들이이완용개인의문제로환원됨으로써이완용을제외한모든이들은국가혹은민족의이름아래일종의탈출구를얻었던것은아닐까.

이러한의문을품고추적해본이완용은기존의평가처럼탐욕스러운인물도,근대적인주권개념을받아들이지못한전통적인관료도아니었다.’매국노이완용은오히려합리적인근대인이었다.근대적합리성이극단의시대와마주했을때어떻게발현되는지이완용의행적을따라가보자.경원대학교아시아문화연구소김윤희교수가집필을맡았다.

[책내용중에서]

막스베버(MaxWeber)는규정된법적절차를정확히수행하는관료의자세에서도구적합리성을발견했고,그것이자본주의합리성의기본전제라고보았다.도구적합리성은한정된재화의효율적분배라는자본주의경제원리아래근대를살아가는개인의정신속에자리잡았다.근대의합리적인개인은주어진현실에서최대의결과를얻기위해,효율성과실용성을최대의가치로삼아자신의활동과역할을스스로규정해야한다.그리고결정된절차를수행할때는효율성과실용성을증명할수없는어떠한가치에도흔들려서는안된다.이런측면에서보자면이완용은기존에평가해왔던바,탐욕스러운인물도아니었고근대적인주권개념이없는전통적인관료도아니었다.

오히려그는합리적인근대인이었다.‘충군애국이라는이데올로기적가치를위해용기를내거나또는제국주의의폭력에분노하기보다는자신을포함한다수가문명화의혜택을누리기위해절대로분노하지않는이성적인간이었다.왕과국가,개인과민족사이에심각한균열이빚어질때,이완용이선택한것은어느한쪽도아니었다.균열을직시하고그것을파열시켜새로운질서를만들려고용기를내기보다는,국가와민족의가치를미래로밀어내고왕과개인이살아갈현실을끌어안으려했다.근대적합리성이극단의시대와마주했을때어떻게발현될수있는지를그는자신의삶으로보여주었다.

박은식은비록근대의합리성에대해분명하게인식하지는못했지만,1910년초[황성신문]에쓴글을통해그위험성을지적한바있다.그는관서의용감성(勇敢性),관북의뚝심과참을성[堅忍性],영남의순박함[質樸性],기호의기민성[機敏性]을국민성[民性]으로꼽았다.그러면서기호의기민성은나라가위태로울때는나라의화이자민족의우환이된다고했다.변화하는시대에냉철하게대처해야하는집권층에게요구되었던민첩성은조선후기사회를주도해왔던기호지역사람들의특성이었다.그것이국가와민족이란가치를지키는것과상반될수있다는지적은,최대의성과를내기위해서는변화하는현실에발맞추어자신의역할과자신이수행해야하는절차를조정해야한다는합리적사고의맹점을비판한것이기도하다.이러한측면에서이완용은출세를위해우리가갖추고자하는덕목을일찍부터체득한인물이었다.12-14쪽중에서

주미공사관시절을함께보냈던알렌이이완용에게좋은인상을갖고있었음은분명하다.그러나젊은시절의이완용을능력있는인물정도로보았다면,이후의그에대해서는강직하고일관성있는인물로평가하고있다.이러한평가는정치적격변을겪으면서그가소신을굽히지않는강직함을보여주었기때문일것이다.

일반적으로을미사변전후에반일적입장을표명한데반해아관파천이후반러로바꾸었다는점때문에우리는그가변신의귀재이고,그래서을사조약체결과정에서친일파로변신한것은너무나당연한일이라고간주해왔다.그러나고종의통치권을회복하여조선을개혁해야한다는소신을갖고있던이완용에게그것은변신이아니었다.더구나고종의신임을통해자신의정치적입지를강화할수밖에없는권력구조속에서이완용은일관되게군주를보필해야한다는자신의소신을밀고나갔다.그과정에서그는경륜있는정치가가되었고,조선인민을자기소신에따라움직이게하는방법도체득할수있었다.144-145쪽중에서

서울에서양부이호준의묘소가있는아산을왕래하면서지내던이완용이대한제국사회의이러한변화를모르지는않았을것이다.민심이여전히황제를원한다는사실을확인한이상그는망명자박영효나유길준과같은방법으로내각을장악할수없다고판단했을것이다.그래서이완용은정계의동향을주시하면서도자신의정치적입지를확보하기위해적극적이고극단적인행동에나서지는않았다.그는여전히황제의부름을통해정계에나서는것이양반의체통에부합하는것이라고여겼다.

그렇다면미국생활을통해공화제를알고있던이완용은왜박영효나유길준처럼고종의권력을부정하지못했을까?단지왕을원하는민심이문제였다면,고종이아닌다른누군가를왕으로옹립하는계획을세울수도있었을것이다.그러나이완용은그런계획에동참한적이없다.또한윤치호처럼왕의권한을견제할수있는의회를설립하기위해적극적으로나서지도않았다.

1894년과1895년에이완용이보여준고종에대한충성심과여전히고종의부름을통해정치적입지를찾으려는그의행동은기존의권력구조속에서자신의역할을위치지우려는것이었다.갑오개혁시기에그가추진한행정제도와교육제도의개혁은기존체제안에서가능한것이었다.또한전라북도관찰사로서보여준관료적합리성역시기존지방행정체제안에서허용가능한것이었다.이완용은갑오·을미개혁을거치면서,그리고독립협회를이끌면서정치인으로자리매김했지만,기존의권력가운데서자신의입지와역할을규정하는관료로서의태도를벗어버린적은없었다.그는개량적개혁을추진하는정치관료였던것이었다.그리고다른관료에비해신중한성품의인물로,유교적합리성을교육받았고근대적합리성을체득한이였다.그는체제에편입된양반관료로서자신의지위를정확하게알고있었고,정세의흐름과상황에맞춰행동반경을결정할줄아는인물이었다.

100년전이아닌오늘날에도우리가발견할수있는,도구적합리성으로무장한,그래서성공하지않을수없는인간형인이완용은왕의통치체제를부정하고새로운구조를형성하기위해목숨을걸었던망명정치인이될수없었다.그리하여1902년유길준쿠데타사건과관련해자신의이름이거론될때도정치력을동원해권력자의오해를풀었고,다시찾아올기회를엿보기위해대한제국의수도를떠나지않았다.171-172쪽중에서

일본공사하야시는권중현의말을묵살하고고종을압박하기위해직접그를찾아갔다.대신들은하야시의입궐을막으려고했지만소용없어지자,하야시보다앞서고종을만나대책회의를열었다.이날회의내용은을사조약체결이후이완용등소위을사5이올린상소문에기록되어있다.이를살펴보면그날의상황이비교적상세히드러난다.

대신들은하야시공사와의대화내용을고종에게보고했다.고종은몹시괴로워하면서여러차례대신들에게대책을물었다.이완용을비롯한대신들은모두이조약을허락할수없다고답했다.뾰족한대책이없는가운데고종은일단결정을미루자고했다.이때이완용이고종에게매우절박하게질문했다.그는고종에게품고있는생각이있으면모두말해야한다고하면서대신8명이이일을막아내는것은쉽지않다고했다.이완용의말에는고종에대한불신이담겨있었다.그리고만약폐하의마음이단호하여흔들리지않는다면나랏일을위해진실로천만다행한일이지만,만일너그러운도량으로하는수없이허락하게된다면어떻게합니까?”라는돌발적인질문을했다.고종과다른대신들은순간아무말도하지못했다.조약을거절할수없는상황이라는생각과고종이끝까지이조약을거부하지못할것이라는생각이교차하는순간이었다.

외부대신을지냈던이완용은러시아와일본의외교적마찰이있을때마다최고결정권자로서짊어져야할책임을회피하기위해결정을미루면서도,자신의의사를관철시키기위해다른대신들을부추겨왔던고종의태도를익히알고있었다.그래서그는고종이조약을끝까지반대할의지가있는지를확인하려했다.이토역시이전의대화에서쉽지않은책임을전하스스로지게되는것을두려워하시기때문인민을선동하여일본의제안에반항을시도하려는생각이있다면이는화를불러올것이라고협박하고있었다.이완용과이토는결정권자인고종을불신하고있었던것이다.

이완용은고종이조약체결을허락하는사태에대비해대책을강구해야한다고했다.이에대해고종과대신들모두잠시아무말이없었다.이완용은다시신이미리강고하자고한것은다른것이아닙니다.만약하는수없이허락하게된다면해당조약의내용중에서보태거나빼서고치고바로잡을매우중대한사항이있을것이니무엇보다미리상의해두어야할것이고,절대로조약을맺는자리에서구차스럽게해서는안된다는것입니다라고첨언한다.192-194쪽중에서

1905년이후계몽운동지식인들은독일의국가연합론을차용하여보호국과식민지가다르다는점을설명해왔다.국가연합론에서는스웨덴노르웨이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독일연방국,미국연방국을국가연합의형태로분류하고있었기때문에대한제국지식인대부분은보호국을이러한국가연합형태에서가장낮은단계로이해하고있었다.그래서보호국이주권의전면적상실이아니라는논리를전개했고,실력을양성하면명실상부한독립국이될수있다고주장해왔다.이용구와이완용의합병안은이러한국가연합론중에서헝가리의자치권이확보된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모델로하여외교권과군사권을일본에게이양하는대신황제를그대로두고통치는독자적으로하겠다는것이었다.그러나이들의합방안은일본제국주의의팽창과정에서실현불가능한것이었다.241쪽중에서

그는오랫동안고종과친밀한관계를형성해온터라을사조약체결때고종의고민을꿰뚫어볼수있었다.또한1907년고종에게닥친위기가황실최악의파국으로치닫지않도록하는결단을내렸다.그리고한일병합조약에서도고종과순종이요구했던왕의지위를얻어내는데에한몫을했다.비록고종과순종이요구한그대로는아니었지만,왕의호칭과그에맞는대우를얻어낸것은이완용의고종에대한의리에서비롯된것이었다.

다른한편이완용이매국행위의정점에자리하게된배후에는철저한현실주의와실용주의적인인생철학이있었다.그는유교교육을통례의리와명분의중요성을알고있었지만,현실과개인의관례에있어서는매우실용적인생각을갖고있었다.처음관료가되어고종과의경연에서조괄을등용한조나라왕의선택에대해어쩔수없는것이었음을피력했던점,그리고을사조약과한일합병조약체결때대세를어찌할수없다는발언을했던점등을미루어볼때그는역시철저한현실주의자였다.그러면서그는그현실가운데서모든것을포기하기보다는최대한또는최소한얻을수있는것을생각하는실용주의적면모를갖고있었다.을사조약을맺을것이라면수정할수있는것을요구해야하고,한일병합조약을체결할것이라면얻을수있는것을얻어내야한다는것이그의생각이었다.

그는한일병합조약에조인하면서데라우치에게세가지조건을내걸었다.첫째로민심이불복하지않도록인민의생활방도에힘쓸것,둘째로황실에대한대우가민심을움직이는변수가되므로이들을후하게대우할것,셋째로조선인이일본인에비해열등한지위에떨어지지않도록교육에관한행정기관을설치하려일본인과동일한교육을실시할것등이었다.병합조건으로내건세가지는평소그가나라의발전을위해필요하다고생각했던교육과경제문제였다.그는주권이없더라도황실과대한제국민이편안하다면그것이더나은선택이라고보았다.명분,대의,정의보다는실리를추구하는근대실용주의적사고를갖고있었다.258-259쪽중에서

살아서의위세못지않게장례역시그에걸맞게성대하게치러졌지만,이완용의죽음은조선언론에서는심한조롱거리였다.그가죽은이틀후<동아일보>[무슨낯으로이길을떠나가나]라는논설을실었다.

그도갔다.그도필경붙들려갔다.겹겹이있는순사의파수와돈과폐물벽의견고한보호막도저승사자의들이닥침을어찌하지못하였다.드러난칼과보이지않는몽둥이가우박같이쏟아져도이내꼼짝하지아니하였거든(……)그런것이나마천사만사누릴줄알았지만,이제와서모두다허사임을깨닫고굳어가는혀를깨물그때가왔다.(……)누가팔지못할것을팔아서능히누리지못할것을누린자냐?살아서누린것이얼마나대단하였는지이제부터받을일,이것이진실로기막히지아니하랴.(……)앙탈하더니책벌을이제부터는영원히받아야지.296쪽중에서

이책을읽고나서새삼한일합방이누구의책임인가?’라는질문이떠오른다.어느시대부터이책임에대해이야기해야하는지궁금해진다.

이책부제에서이야기하는것이무엇인지약간은알것같은비슷한경험을한적이있고,요즘뉴스에서도이와약간은비슷한일을보면서과연어떤선택을하는것이옳은것인지궁금해진다.책을읽고나면시원할것같았는데책을덮으면서마음이더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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