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사진,글김영갑

내마음의풍경

들판에는내마음을사로잡는풍경이있습니다.

마음이불편할때마다찾아가세상을탓하고

나자신을탓합니다.어린아이처럼투정도부려봅니다.

하지만들판은한결같이반갑게맞아줄뿐입니다.

그리고새들을초대해노래부르게합니다.

풀벌레를초대해반주를하게합니다.

구름과안개를초대해강렬한빛을부드럽게만들어줍니다.

해와달을초대해스포트라이트를비춰줍니다.

눈과비를초대해춤판을벌이게합니다.

새로운희망을보여줍니다.

마음이평온할때면나는그들판의존재를까맣게잊고지냅니다.

마음이불편해져야그들판을생각합니다.

그래도들판은즐거운축제의무대를어김없이펼쳐줍니다.

들판이펼쳐놓는축제의무대를즐기다보면다시기운이납니다.

그런들판으로부터받기만할뿐,나는단한번도

되돌려주지않았습니다.들판은그런나를나무라지않습니다.

대신언제나나에게세상에서정말중요한것이무엇인지알려줍니다.

나의모습은들판으로나오기전까지와는많이달라져있습니다.

들판을만나고오는날에는잠자리가편안합니다.

풀들이자라고있습니다.나무들이자리고있습니다.

바람이지나가는길목,풀과나무들은온갖시련을홀로견디며

무성하게자랍니다.,,노루가주는시련은그래도괜찮습니다.

홍수가나면뿌리째뽑혀나갑니다.

가뭄이계속되면잎들이말라버립니다.

하지만풀과나무들은하늘을원망하지않습니다.

때가되면태풍이옵니다.

태풍은온몸을상처투성이로만들어놓고떠납니다.

이제는사람들도한몫을합니다.

하지만여전히풀과나무들은삶을포기하지않습니다.

뽑혀나간뿌리로땅을짚고새줄기와가지를키워올립니다.

부러진줄기와가지를추슬러새순이움트게합니다.

끊임없이비극과고통속에서도풀과나무들은

비명한번내지르지않고,불평한번없이,

절대로도망치는법도없이묵묵히새삶을준비합니다.

다가오는비극과고통이그들을오히려더강한존재로만들어줍니다.

나에게도비극과고통이닥쳐올때가있습니다.

나의의지와는상관없이오는것입니다.

이때들판은나에게가르쳐줍니다.

어떻게하면시련을성장의또다른기회로만들수있는지를

그래서나는들판의친구로삽니다.

들판을친구삼아나의비극과고통을넘어섭니다.

아픔은한동안머물다떠납니다.

행복과즐거움보다는불행과슬픔이나를더성숙하게만듭니다.

나의친구,들판은나로하여금새로운존재가되도록해줍니다.

아주조용한목소리로,아주고요한몸짓으로,

그렇지만온몸으로

지난제주여행에서김영갑갤러리두모악을들렀을때이책이있다는것을알았다.책을읽으면서작가가사진뿐만아니라글쓰는것도조예가깊다는느낌을받았다.책을읽어보면편하게쓰인것도있지만생각보다머리에들지않고겉도는것들도많은데이책은읽으면서도참편하다는생각이들었다.

책내용중에종교에대한이야기는없지만작가자신이진정한의미의종교인이아닌가싶다.

직업으로서의작업이아닌,인생전체를건사진작업.

모든사람이할수없을것같은일을하다가,희귀병인루게릭병으로세상을떠난작가의일상이적힌이책을읽으니마음이저려온다.

셔터를누리지않고는견딜수없는강렬한그순간을위해같은장소를헤아릴수없이찾아가고또기다렸다.누구나볼수있는그런풍경이아니라대자연이조화를부려내눈앞에삽시간에펼쳐지는풍경이완성될때까지기다림의연속이다.그한순간을위해보고느끼고,찾고깨닫고,기다리기를헤아릴수없이되풀이했다.”

이정도는아니더라도사진한장얻기위해몇시간을기다려본적은있어작가의심정이조금은이해가되는듯하다.어떤때는더있었으면하는생각이있지만집으로가는차편,집에서기다리는이를위해발을돌려야할때의아쉬운순간들도그때뿐,지나면일상으로돌아오곤하였다.그러나작가는자연을마주한채순간순간을한없이기다렸을것이다.그리고또무수히반복했을것을생각하면가슴이먹먹해진다.작가의책에는그런내용들이담겨져있다.내가가보지못한길을간작가의어렵고고단한삶의흔적을읽으면서김영갑갤러리두모악을다시떠올려본다.

책내용중에서

이젠끼니를걱정하지않는다.필름값을걱정하지않아도될만큼형편이좋아졌다.그런데카메라셔터를누를수없다.병이깊어지면서삼년째사진을찍지못하고있다.끼니걱정필름걱정에우울해하던그때를,지금은다만그리워할뿐이다.온종일들녘을헤매다니고,새벽까지필름을현상하고인화하던춥고배고팠던그때가간절히그립다.

그때는몰랐었다.파랑새를품안에끌어안고도나는파랑새를찾아세상을떠돌았다.등에업은아기를삼년이나찾아다녔다는노파의이야기와다를게없다.지금내가서있는이곳이낙원이요,내가숨쉬고있는현재가이어도이다.아직은두다리로걸을수있고,산소호흡기에의지하지않고도날숨과들숨이자유로운지금이행복이다.27쪽중에서

중산간광활한초원에는눈을흐리게하는색깔이없다.귀를멀게하는난잡한소리도없다.코를막히게하는역겨운냄새도없다.입맛을상하게하는잡다한맛도없다.마음을어지럽게하는그어떤것도없다.나는그런중산간초원과오름을사랑한다.

눈으로보아도보이지않고,귀로들어도들리지않고,잡으려해도잡을수없는것.형상도없는데사람을황홀하게하는그무엇이중산간광활한초원에존재한다.이세상에존재하는최고의것은,사람을황홀하게하는그무엇이다.그것을깨닫기위해나는중산간을떠나지못한다.

눈에보이지않으나분명히존재하는영원한것을이곳에서깨달으려한다.말할수없으나느낄수있고,보이지않으나느낄수있는,사람을황홀하게하는신비로움을찾으려한다.자연속에묻혀지내며마음을씻고닦아모두를사랑하려한다.눈에보이는것은영원할수없다.보이지않는그무엇을느끼고확인하고싶다.84쪽중에서

유년의기억부터어머니에대한생각을떠올렸다.그날밤나는밤을새워어머니의비문을생각했다.비문을써놓고도어머니생각이나면꺼내서또다듬기를되풀이했다.—중략

늘당신을기억하고있습니다.

당신이떠나야한다는선고를받은후

다짐을했지요.나의길을가리라.

나의미래에있어당신은큰장애물이었지요.

눈물로만류하던당신의모습이나를망설이게했지요.

자식도리한번못하고떠나보내는

이아픔어찌견디라고하십니까.

사람들속에서부대껴야한다며

도시에서살라고애원하던당신이

떠나신다면난어찌하리까.

순간순간다가오는외로움

참기힘든아픔이었지만

당신생각에잘도견딥니다.

보릿고개넘으며

일곱남매를기르시던당신이있었기에

잘도넘긴답니다.

살아생전당신의삶의향기가

나의몸을지탱해주고있습니다.

당신은영원한나의동반자요,

당신의육신을삭혀

삶의진실을가르쳐주셨지요.

살아생전깨달을수있었다면

나의무거운짐이조금은가벼우련만

부담감에늘쫓기고있습니다.

견디기힘든순간에는

언제든지다가오는당신의모습에

눈물을참지못해참회하지요.

당신배곯아가며키웠건만

당신의그아픔을헤아리지못한어리석음에

늘긴장속에서생활하지요.

나의일에몰두하게하는채찍이지요.

당신은떠나고없지만

당신의향기는언제나그대로남아

나를지탱해주는힘이지요.

살아있게하는기력이당신에게서나오니

당신은참으로위대하십니다.101-103쪽중에서

밑빠진독에물채우는나를보고사람들은정신나갔다고혀를찬다.그리도나는웃는다.불혹의나이가되도록밥벌이도못한다고핀잔을주어도웃는다.그나이에장가도못가고뭐했냐고다그쳐도웃는다.

사실십수년동안밥벌이도안되는일에몰두했지만딱히이거다하고드러내보일것이없다.뚜렷한결과는없지만부끄럽지않으려고나름대로는최선을다해왔다.온종일혼자지내며사진만을생각했다.일년내내중산간을떠나지않고사진에만몰입했다.찾아오는이가없으면흘려보내는시간도없으니사진에만빠져들수있다.신문도텔레비전도없이사진만찍고살았는데도보여줄것이없다.남들이굳이보여달라고보채면세상을보았고삶을보았다고말한다.그러면대개는어이없다는반응이다.사람들이확인하고싶은것은돈이나명예다.118쪽중에서

제주에서몇차례사진전을열때마다나는뭍의것들로분류됐다.간혹신문에실린전시회기사를보면나는섬에머무르며사진을하는사람으로소개가된다.언젠가는떠나야할사람으로그려진다.전시회팸플릿이나엽서,포스터,카드를선물하면토박이들은뭍에서왔느냐고묻는다.그렇게생각하는이류를물어보면대답은한결같다.흔히보아왔던섬사진들과는다르기때문이라는것이다.뭍에서왔기때문에사진이다르다고생각하는사람들에게구체적인이유를물었다.섬토박이들은늘보는풍경이기때문에눈에익숙해져무심히스쳐지나는것을뭍의것들은신선하게받아들이기때문이라고말한다.

우리는늘보며생활하기때문에무심히스쳐지납니다.그런데육지사람들은관심있게바라보지요.”

그렇지않아요.아무리익숙한풍경일지라도새롭게바라보려고노력을하기때문입니다.제사진이색다르게느껴지는것은제가뭍의것이기때문만은아닙니다.눈에익숙해진풍경들을대하는마음이다르기때문이죠.”

내사진이여느사진가들과다른점이있다면,그건사진을찍는동기가다르기때문일것이다.127-128쪽중에서

마라도를이해하려면섬에서태풍을직접경험해보아야한다.마라도사람들의삶에절대적인영향을미치는바람을경험해보지않고는마라도의삶을이해할수없다.바람중에으뜸인태풍을경험하지못하고는더이상마라도를느낄수없다.

살레덕포구에서마을사람들을떠나보내고언덕에서배를지켜보았다.가파도멀리하얀배가사라질때까지지켜보는동안나는소리없이눈물을흐렸다.잠시머물다가떠나는여행객들을보내는토박이들도그렇게눈물을흘렸을것이다.

민박집주인들이손님에게필요이상의정을붙이려하지않는이유를비로소알았다.나는늘떠나는사람이기에떠나보내는사람의심정을헤아리지못했다.여행객들을퉁명스럽게대하는토박이들의마음을이제는이해할수있었다.149쪽중에서

노인들을따라둘로나갔다.숨쉬기조차버거운바람속에서새벽부터저녁어스름까지일하는노인들곁에서온종일밭일을거들었다.두툼한외투를입어도한겨울찬바람을다막아주지는못했다.점심도찬밥한덩이가전부다.일년내내밭을기어다니며일해도궁색함을면하기힘든게그들의생활이었다.서울에선상상조차못했던삶이다.

그들을통해내가알고있는것들이얼마나형편없고가치없는지깨달았다.자신만만하게세상과삶에대해떠벌렸던나자신이부끄러웠다.그들의삶에가까이다가갈수록나는말수가적었다.

바닷가마을에는늙은해녀들을위해할망바다가할당되어있다.젊은해녀들은깊은바다에들어가고나이든해녀들은얕은바다에서물질을한다.위험부담이적은곳은할머니를위한할망바당인셈이다.틈만나면할망바당에서물질하는늙은해녀들을지켜보았다.팔순노인이거동조차불편한몸으로바다에들어갔다.그들의노동앞에나는부끄러웠다.나의게으름에반성하고작은시련에도움츠러들었던지난날을되돌아보았다.161쪽중에서

내가사진에붙잡아두려는것은우리눈에보이는있는그대로의풍경이아니다.시시각각변하는들판의빛과바람,구름,,안개이다.최고로황홀한순간은순간에사라지고만다.삽시간의황홀이다.

셔터를누리지않고는견딜수없는강렬한그순간을위해같은장소를헤아릴수없이찾아가고또기다렸다.누구나볼수있는그런풍경이아니라대자연이조화를부려내눈앞에삽시간에펼쳐지는풍경이완성될때까지기다림의연속이다.그한순간을위해보고느끼고,찾고깨닫고,기다리기를헤아릴수없이되풀이했다.180-181쪽중에서

한라산,내영혼의고향

날마다사진을찍는나는날마다사진만을생각합니다.

사진찍는일에몰입해홀로지내는동안,그리운사람들의기억속에서

잊혀갈지라도나의사진작업은계속될것입니다.

하늘의변화에따라내마음은변화하고마음의변화에따라

어느한곳을찾아갑니다.같은곳을수십번수백번반복해서

찾아가지만늘새로움으로다가옵니다.같은곳을삼백예순다섯날

하루도거르지않고찾아도날마다새롭기만합니다.

자연은늘사람을설레게하는신비로움과경이로움으로

충만해있습니다.나는늘긴장속에서자연속을맴돕니다.

자연에묻혀지내는동안만은아무리작은욕심이라도버려야합니다.

나에게한라산은온산이그대로명상센터입니다.나는어느한곳에

머물지않고이곳저곳떠돌아다니며사진을핑계삼아명상을합니다.

수행자처럼엄숙하게자연의소식을기다립니다.깊은생각에잠겨

내면의소리에몰입합니다.내마음은늘변화했고그변화를

필름에담습니다.그시간이하루중제일소중한시간이기에

홀로지내며그순간만을기다립니다.기다림은매일매일반복됩니다.

자연이전해주는메시지를통해나의내면도성장했습니다.

변화를거듭하는동안마음은중심을잡았고,

이제는흔들리지않는평화를얻었습니다.

명상을계속하는동안자연의소식은영원으로이어집니다.

사진에매달려세월을잊고살다보니나만의방식으로살아가는

지혜를얻었습니다.사진을계속할수있는한

나는행복할것입니다.살아있음에끝없이감사할것입니다.

나의사진속에는비틀거리며흘려보낸내젊음의흔적들이

비늘처럼붙어있습니다.기쁨과슬픔,좌절,방황,분노…….

내사진은내삶과영혼의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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