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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영화가 암시하는 21세기 문명은?

지식경영·무소유·환경… 미래 경쟁력의 核
진성호기자 shjin@chosun.com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입력 : 2003.01.23 17:15 13′



▲ 곤도르 왕국의 요새도시인 미나스 티리스 근처의 펠렌노르 벌판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투.벌판 외곽의 방어벽을 무너뜨리고 침공한 모르굴의 군대를 로히림 기병대가 몰아붙여 결국 악의 무리를 격퇴시킨다.‘반지의 제왕 ’2부에는 이같은 대형 전투 장면들이 관객 눈길을 잡는다./그림제공=해나무 刊‘톨킨백과사전 ’

영화 속에는 톱스타가 출연하지 않는다. 원작은 49년 전에 쓰여졌다가

이제서야 영화화됐다. 제작사도 할리우드 메이저사가 아닌 ‘뉴라인

시네마’가 만들었다. 그렇다고 첨단 SF영화도 아니고, 진한 남녀간 애정

신이나 잔혹한 폭력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에는 이 정도 영화 기법을 동원한 작품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 영화가

세계를 강타했다.

‘반지의 제왕’. 국내에서만 470여만명이 ‘반지의 제왕’ 2부 ‘두

개의 탑’편을 봤으며,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례적으로 한 편의

영화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기도 했다. 영국 작가 J R R 톨킨이 신화가

없는 영국인들을 달래려고 창작했다는 팬터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미래의 후손들로부터 ‘21세기 위대한 신화(神話)’로 평가받을

지도 모른다. 왜 새 세기를 여는 시점에서 지구촌 사람들은 이 팬터지

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단순한 영화적 재미만으론 답하기가 어렵다. 21세기를 예언한

문명비판서에 등장했던 다양한 뉴 트렌드가 이 영화 속에는 녹아 있다.

그런 점에서 ‘반지의 제왕’을 문명사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 같다. 무엇보다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한국에서까지

‘반지의 제왕’이 이처럼 폭발적 흥행을 기록한 것은 인간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는 인류의 공통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21세기형 리더십에 대해 이 영화는 발언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선과 악, 두 진영을 이끄는 지도자는 마법사다. 마법이 팬터지

세계에서의 ‘핵심지식’임을 감안하면 지식이 권력에 이르는 길이란

결론이다. 미국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설파한 그대로다. 드러커는 조직 변화의 변인(變因)을 ‘지식 경영’에

두고, 주권국가의 통제력은 약화되고 전문지식을 갖춘 지식경영자 중심의

글로벌 사회가 도래할 것을 예견했다. 지식은 사회나 경제를 결정짓는

지배적 자원이 될 것이며, 자본·토지·노동은 절대적 생산요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환경보호의 메시지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나무인 거인족

‘엔트’들이 악의 지도자 사우론에 의해 숲이 황폐화되는데 분노해 악의

소굴 아이센가드로 몰려가 공격하는 모습은 강력한 ‘자연의 경고’로 볼

수 있다. 환경론자들의 저서와 그 정신이 통한다. 물론 숲과 물이라는

대상은 다르지만, 반다나 시바의 ‘물전쟁’은 그런 경고를 했다. 이

책은 세계 곳곳의 갈등과 분쟁이 인종전쟁·종교전쟁으로 위장돼 있지만

실상은 자연자원을 둘러싼 충돌이며, 생태계 파괴와 인류 공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원의 지배’(마이클 클레어) 역시 앞으로의

전쟁이 이데올로기가 아닌 세계 각국의 자원 경쟁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지의 제왕’ 주인공 프로도. 그는 근육질도 미남형도 아니다. 가장

약한 종족인 호빗족이다. 영화는 프로도가 우연히 손에 넣은 ‘반지’를

버리러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일반 영화라면 반지나 칼, 왕좌를

차지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화는 거꾸로다. 최근 세계적 주목을 받는

틱낫한 스님의 ‘무소유’ 철학과 맥이 닿는다.

프로도는 반지원정대와 떠나는 과정서 다양한 종족들과 도움을 주고

받는다. 이는 ‘열린 사회’란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 소르망은

‘열린 세계와 문명창조’란 저서를 통해, 각국의 국경을 기행하며

‘세계화(미국화)’와 ‘부족주의’라는 가치의 충돌을 포착,

‘맥몽드(McMonde·매킨토시와 맥도날드의 두음에 ‘세계’를 뜻하는

프랑스어의 합성어)’로 함축되는 세계화는 각 부족의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연약하고 섬세한 프로도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미래 사회가 힘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면서도

깨끗한 성품의 소유자, 곧 여성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는 것도

암시한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종족들 간의 갈등과 연합이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문명간 충돌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유용한

해석 틀로 재평가받는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냉전(이데올로기) 이후 오늘의 세계를

크리스트교·중국·아프리카·아랍권 등 ‘문명’이라는 새 패러다임으로

나눠 조명했다. 전쟁은 국익·안보 때문에 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

간의 단층선에서 일어난다는 시각을 제시했다. 영화 역시 선과 악으로

상징되는 이질화된 문명 간의 충돌을 긴장의 축으로 삼고 있다.

헌팅턴에 대한 비판서인 ‘문명의 공존’(하랄트 뮐러)이 세계가 하나의

거대 문화권으로 편입되는 현실에서 문명 간 공존·상생(相生)의

가능성을 부각시킨 점은 영화 속 난장이족, 요정족 등의 협력과 흐름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영화 한 편으로 너무 논리비약적 해석을 내리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지적도 일리가 있지만, ‘반지의 제왕’을 영화 내적인 면으로만

해석하려 할 때 우리는 보다 중요한 것을 놓칠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언제 우리도 21세기형 문명과 철학이 녹아 있는

이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반지의 제왕’ 현상은 단순히 한 편의 영화로 평가할 수 만은 없을 것

같다. 소설로 쓰고, 영화로 제작된 21세기의 세계의 신화로 남을 것

같다.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2 Comments

  1. 신준형 miguel

    2005년 1월 15일 at 1:26 오후

    꽉끼자 (실례), 정말 오랫만에 새 블로그 글이 나와서 반가왔는데, 유감스럽게도 (또 실례) 곽 기자의 글이 아니라 조금 실망했어요. 바쁜 모양이군요. 하긴 신문계통에 있는 친구들 말에 의하면 조선일보는 무한 경쟁체제라던데. 얼마전 윤혜원이라는 후배를 통해서 곽기자가 ‘학점의 여왕’ 혹은 우리 세대 식으로 말하면 ‘A폭격기"였다는 화려한 경력을 들었어요. 거기서도 잘 하고 있을거라고 믿어요. 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아요.   

  2. 김정철

    2005년 3월 20일 at 11:25 오후

    프로도는 꽤 미남형이라고 생각했는걸요?? -.ㅡa
    여하튼 인간이 쓴 소설이니, J R R 톨킨의 시대상이 유감없이 관여된 작품이겠죠…
    개인적으로 영화란 매체를 좋아하니, 더 좋은(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영화가 나오길 바랍니다… 단, 영화는 영화에서 끝냈으면 하는 바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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