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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잘 지내길 바랍니다 - 심장 위를 걷다
잘 지내길 바랍니다

TakeCareofYourself-ChildrensWriterMarieDesplechin.jpg

Sophie Calle, ‘Take care of yourself-Childrens Writer MarieDesplechin’

결별을 선언하는 연인으로부터 "잘 지내"라는 말을 듣고화내 본 사람,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잘 지내"라 말하고선 분노에 찬 답신을 받아본 사람들은,

아마도 소피 칼(Calle)의 이 작품에 깊이 감정이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별할 때의 "잘 지내"는 진심 어린 기원이자, 한 편으론 비겁한 변명이니까요.

네가 이별을 통보해서, 나는 잘 지낼 수가 없는데, "잘 지내"라는 역설.

내가 결별을 선언해서, 너는 잘 지낼 수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내"라고 기원하고 싶은 마음의 모순.

소피 칼은 2004년 남자친구로부터 "다른 여자가 생겨서 더 이상 네게 집중할 수 없으니 헤어지자"는

이메일을 받습니다.

구구절절한 변명과 함께, 편지의 마지막줄엔 이런 문장이 써 있었죠.

‘Prenez soin de vous’.

Take care of yourself,

‘잘 지내기 바랍니다’라는 뜻이라는군요.

(프랑스에서 공부한 제 친구에 따르면,

영어의 Take care of yourself에서 온 말로, 정말 친한 사이에서 격의없이 쓰는 말이라고 해요.)

아마도 그 마지막 문장이 작가를 아프게 했겠지요.

화 내고, 슬퍼하고, 아파하다가,

작가는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문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작가는 107명의 여성(정확히는 105명의 여성과 1개의 인형, 한 마리의 앵무새)에게

이 편지를 주고,

마지막 문장에 대한 해석을 부탁합니다.

수많은 답들이 쏟아져 왔죠.

맨 위 사진의 주인공인 동화작가는 소피의 이별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린이책을 썼고,

UN 여성인권운동가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긴 글을 썼는데,

그글의 마지막 문장이 ‘Phew’였으며,(아래 사진 참고)

TakeCareofYourself-UNExpertinWomensRights.jpg

비밀요원은 소피가 받은 편지를 암호로 다시 써 버렸어요.

TakeCareofYourselfFrenchIntelligenceOfficerLouise.jpg

(비밀 요원이라 얼굴을 공개할 수 없어서 이렇게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군요.)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때 프랑스 대표 작가로 참여한 소피는,

편지를 읽고 있는 여자들의 사진과 반응을 ‘잘 지내길 바라요’란 개인전에 몽땅 내놓았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비엔날레 기간 동안 자그마치 350만명 관객이 몰렸다고 하는군요.

사생활을 작품에 이용하는 작가는 많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주 소재로 삼았던 루이즈 부르주아,

학대 받았던 어린 날의 기억을 치유받기 위해 분투하는 트레이시 에민..

그러나 소피 칼의 ‘잘 지내기 바라요’가 큰 반향을 얻었던 것은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시를 보러 온 여자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107명의 여자들 중에서

자기 직업과 같은 직업의 여자를 찾아보겠지요.

그리고 ‘나라면 어떤 답을 했을까’도 고민했겠지요.

과연 여자들만 그랬을까요?

남자들 역시

‘나라면 어떻게..’를 생각해보았을 겁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작품이 굉장히 예쁩니다.

개념미술의 결과물이 아름다운 경우는 참 드문데,

이 작가는 감각적으로 사진을 찍어 ‘예쁘게’ 디스플레이해요.

간담회 때 "작품을 만들 때의 기준이 뭐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소피는 "전시장 벽이다. 전시장에 걸렸을 때 예쁘냐, 예쁘지 않냐가 내 기준"이라고 말했다는군요.

개념을 문자화함과 동시에 시각화해서 아름답게 보여주는 게

아마도 그녀의 인기 비결인 듯 합니다.

인터뷰를 한지 며칠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소피 칼은 이별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킴으로써

바람나 헤어지자고 한 전 남자친구에게 최고의 복수를 한 것 같아요.

이별 편지를 만방에 공개해 그가 천하의 나쁜 놈임을 알리고,

게다가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기.

차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 꾸는 통쾌한 복수 아닌가요?

(저만 그런가요? ^^;)

전 사실 ‘소피 칼’이라는 작가에 대해 프랑스 유명 작가란 거 외엔 전혀 몰랐습니다.

‘소피 칼’이 아니라, ‘소피칼’이 이름인 줄 알았을 정도니까요.

다만 개인전 보도자료에 있던

동화 작가 사진의뒷모습이 맑고고, 산뜻하고, 투명하게 아름다워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다가

의외로 국내에도 마니아층이 두터운 작가란 걸 알게 되었죠.

작가가 폴 오스터와 친분이 깊어서,

폴 오스터가 소설 ‘거대한 괴물'(1992)에

소피칼을 모델로 한 예술가 ‘마리아’를 등장시키기도 했고,

둘이서 공저를 내기도 했더군요.

5394589.jpg

그래서 결심했지요.

‘아, 만나봐야겠다.’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흥미로운 작업을 많이 했더군요.

사람들에게 자기 침대에 와서 자 보라고 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거나,

호텔 직원으로 위장취업해 호텔 손님들이 남기고 간 메모와 물건을 주워 연구하거나.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해 1970년대부터 활동했고,

2010년엔 사진가 최고 영예인 하셀블라드상을 받기도 했어요.

인터뷰는 의외로 간단치 않았어요.

"작품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했더니

"난 그렇게 일반적인 질문에 대해선 답 안 한다. 특별한 질문을 해 달라" 이런 식?

‘아, 이번 인터뷰 망쳤어’ 절망했었는데,

"한국에 당신 마니아층이 많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어. 정말이야? 누가 나 좋아한대?" 이렇게 물어보길래

"제 친구들이 다 좋아해요" 했더니만

분위기 급 반전.

아주 친절해지셔선 나중엔 직접 작품 하나 하나 설명도 다 해주시고…

못하는 영어로 더듬더듬, 그러나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던 게,

결국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입니다.

전 진심으로 작품이 아주 좋았거든요.

게다가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젊디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존경스러웠습니다.

Ballerina.jpg

‘잘 지내길 바랍니다’ 중 한 점. 이번 한국 전시엔 오지 않았지만, 파리 발레단의 스타 발레리나가 편지를 읽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인기가 있는지 인터넷에 이미지가 많더군요.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드가 그림도 연상시키고요.

‘잘 지내기 바랍니다’ 시리즈 못지 않게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연작도 인상깊었습니다.

폴 오스터에게 "당신이 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 주면 그에 따라 살아보겠다"고 제안했다

거절당한 소피는,

‘누가 그럼 내 인생을 대신 써 줄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점쟁이에게 "당신 점괘대로 여행을 하겠다"고 제안하죠.

첫번째 점괘에 따라서는 프랑스 북부 해안가인 베르크로 여행하고,

두번째 점괘에 따라서는 남부의 성지(聖地) 루르드를 여행하죠.

루르드는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병을 고쳐줬다는 전설로 유명한 곳으로,

그 곳 동굴 속 ‘치유의 샘물’이 각종 질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루르드’가 아주 인상깊었어요.

작가는 무신론자이지만,

루르드를 여행하면서 유방암 투병중인 어머니를 떠올리거든요.

그리고 어떤 ‘계시’처럼 어머니와 관련된 것들이 계속 눈에 들어옵니다.

어머니의 이름 ‘모니크’와 같은 ‘상트 모니크’라는 호텔,

자기 이름과 똑같은 아이들 선물가게…

소피는 간절해져 루르드를 찾았지만,

그 곳 어느 성당에 적혀있는 그 기적의 샘물로 치유받은 질병의 명단에..

안타깝게도 유방암은 없었답니다.

어머니는 결국 2006년 숨졌죠.

소피는 대리석에 푸른 글씨로 기적의 효과로 치유됐다는 병명을 새기고,

맨 마지막엔 흰 글씨로 치유되지 않은 병, ‘유방암’을 새겨 작품을 만듭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로 분장해 울고 있는 자신을 찍은 ‘자화상’을 남기죠.

Ou-et-quand Lourdes.jpg

보통 성모 마리아는 흰 베일, 아니면 푸른 베일을 쓰는데 소피는 진홍색 베일을 썼고,

피눈물을 흘리는 대신에 마스카라 눈물을 흘리고 있죠.

성모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며 비통해합니다만,

소피는 반대로 어머니의 죽음에 비통해 합니다.

점괘를 따라 여행하면서 소피는 뭘 깨달았을까요?

제법 종교적인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이 되기보다는 "나는 우연의 일치를 더 믿게 됐다"고 하더군요.

누구나 인생에서 그런 순간을 겪지 않습니까?

너무나 우연이 많이 겹쳐서 이를 ‘운명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순간,

우연이 계시처럼 주어지는 순간,

그래서 종교적인 마음이 들었다가도,

그 기원이 배반당할 때,

결국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고 깨닫게 되는 순간.

힘들 때면 역술인을 자주 찾곤 하는 제겐,

크게 공감이 가는 전시였습니다.

오늘 낮에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간 김에,

친구와 다시 이 전시를 봤어요.

‘잘 지내길 바랍니다’를 감상하면서는

‘사진 속 여자 직업 맞히기’ 놀이를 했죠.

친구는 "나라면 ~게 했을 거야" 하더니만,

전시장에 비치된 도록에서 자기와 같은 직업군의 여자를 찾아내곤,

‘역시 내 생각이 맞다’며 깔깔 웃었어요.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몇 번이나

두 작품 모두에 크게 공감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거듭거듭 말하는 걸 보니 저도 기분이 좋더군요.

사실 취재를 하러 가게 되면 작품보다는 작가에게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많은데,

친구와 함께 전시를 보면서 저 역시나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기뻤답니다.

전시회는 서울 도산대로 ‘313 아트프로젝트’에서 4월 20일까지 열립니다.

입장료는 없어요.

‘잘 지내길 바랍니다’ 연작을 보면서 계속 떠올랐던 그림이 있습니다.

woman_in_blue.jpg

베르메르,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1663~1664.

아래 링크는지면이 모자라 더 길게 쓰고 싶었는데도, 더 쓰지 못한 제기사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13/2013031302734.html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ophiaram로 이사합니다.

9 Comments

  1. 기치

    2013년 3월 17일 at 10:24 오전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 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하고 싶은 말 하려 했던말 이대로 다 남겨 두고서
    혹시나 기대도 포기하려하오. 그대 부디 잘 지내시오.
    기나긴 그대 침묵을 이별로 받아 두겠소.
    행여 이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오오 사랑한 사람이여 더 이상 못 보아도
    사실 그대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음에 감사하오.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진정 행복하길 바라겠소. 이 맘만 가져 가오.

    -편지-
    김광진 곡, 김광진연적 사   

  2. 참나무.

    2013년 3월 17일 at 5:12 오후

    소피 칼 저는 몰랐는데
    기자 님 해설로 흥미 유발입니다
    주욱 읽고내려오다
    저는 우애령 작가의 ‘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란 단편집이 생각났는데
    기자 님은 베르메르 그림을…^^

    메모합니다 구경가겠습니다.

    좀 전에 러브 엑춰리…잘 보고 왔거든요, 친절히 소개해주셔서…^^
       

  3. 곽아람

    2013년 3월 17일 at 9:13 오후

    기치님> 덕분에 아침에 김광진의 ‘편지’를 들었답니다. ‘편지’라는 소재는 정말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 같아요. 누구나 한 번쯤 써 본 적이 있고, 받아본 적도 있고… ‘이메일’만 해도 편지의 영역에 남으니까요..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이 말은 과연 진심일까요?
       

  4. 곽아람

    2013년 3월 17일 at 9:21 오후

    참나무님> 전 우애령의 ‘나는 잘 지내고 있어’란 작품은 잘 모르겠고,
    이성복의 ‘편지 3’이 생각나네요.
    이런 시입니다.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당신은 물었지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다고 나는 말했지요
    전설 속에서처럼 꽃이 피고 바람 불고
    십리 안팎에서 바다는 늘 투정을 하고
    우리는 오래 떠돌아 다녔지요 우리를 닮은
    것들이 싫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나
    가까워 졌지요 영락없이 우리에게 버려진 것들은
    우리가 몹시 허할 때 찾아와 몸을 풀었지요
    그곳에 다들 잘 있느냐고 당신은 물었지요
    염려 마세요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답니다
       

  5. 참나무.

    2013년 3월 17일 at 11:48 오후

    두 분 편지랑 단편도 같은 맥락입니다

    약속 때문에 원치않은 결혼을 했고 여행지에서 또 병원에서
    전혀 잘 지내지않는데도 다른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 말미에 항상 쓰는 말

    ‘골목길 접어들 때에’ 수록된…

    출판기념회에 갔는데 이 노래를 동문들이 합창을 했지요
    김현식 노래제목과 같은…
    편곡도 멋지게 해서 ‘골목길!’ 하고 순식간에 끝내어 박수 많이 받은…ㅎㅎ

       

  6. shlee

    2013년 3월 18일 at 11:00 오후

    잘지내라는 말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들리다니..
    잘지낼 수 없는 상황을 만든 장 본인이
    잘 지내길 바란다니..
    누구를 위해 잘 지내라는 것인지..?
    그런 편지 보낸사람
    잘못 지내길 바랍니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잘 있답니다?
    어쩔 수 없다는 그말이 있기에
    잘못지낸다고 말하고 있는 편지 같아요.

    이별편지는
    안쓰고
    안받기를…   

  7. 곽아람

    2013년 3월 19일 at 12:14 오전

    shlee님> 네. 참 무책임한 말이죠. 자기 마음 편하려 던지는 말. 그러나 그 말 이면에는, 정말 잘 지내기를 바라는 ‘진심’도 있답니다….
    이별편지를 써 보기도, 받기도 해 본 저로서는.. ㅎㅎ 120% 이해가 가요.. ^^;   

  8. equus

    2013년 3월 19일 at 8:20 오후

    그래도,
    진심을 담아, 잘지내길 바래 – 라고 하는 말외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9. 곽아람

    2013년 3월 20일 at 1:29 오전

    equus님> 네.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로, 진심을 담아, ‘잘 지내길 바래’, 그리고 ‘미안해’.
    그 이상은 말할 수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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