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을 생각하면,
계속해서 마음 속에 남는 풍경이 있습니다.
그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짬이 나지 않아 미뤄두다가 겨우 늦은 밤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지난달 초 미국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마이애미비치에서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 취재를 했고,
이윽고 뉴욕으로 넘어갔습니다.
뉴욕을 떠나던 날, 오후엔 밤 비행기라 짬을 내어
클로이스터스(The cloisters)에 갔어요.
맨해튼 근교의 클로이스터스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분관으로,
중세 미술품 전시관입니다.
이 곳에 무척 가보고 싶었는데,
올해 뉴욕 출장을세 번 갔지만,
앞의 두 번엔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세번째였던 이번엔,
기필코 가 보리라 생각하였는데,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이 곳에 가 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유명한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로베르 캉팽, 메로드 제단화, 1427~1432
‘플레말르의 거장(Master of Flemalle)’이라고 불리는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 1375–1444)의 작품입니다.
‘메로드(Merode)’란 이 그림을 가장 마지막으로 소장했던 부부의 성(姓)입니다.
앞서의 포스팅에서 벨기에 왕립미술관 이야기를 하면서
캉팽의 ‘수태고지’와 함께 이 그림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 그림과 마찬가지로 이 그림 역시 ‘수태고지’를 도해하고 있는데,
세 폭의 패널 제단화 형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잘 닦은 놋쇠 주전자가 정갈하게 반짝이는 방 안에서
성모 마리아가 고요히 앉아 책을 읽고 있죠.
갑자기 촛불이 꺼지더니
천사가 들어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였음을 알립니다.
오른쪽 패널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목공 일을 하고 있고,
왼쪽 패널엔 이 그림의 봉헌자 부부가 그려졌어요.
성스러운 장면을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 풍경에 녹여넣었던 것이
당시 플랑드르 회화의 특징.
매끄러운 표면과 정밀한 집안 묘사 때문에 유명하였고,
같은 이유로 좋아하였으며,
꼭 보고 싶었던 그림입니다.
이와 함께 유니콘 사냥장면을 묘사한 태피스트리 등이
이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입니다.
저는 랭부르 형제가 그린 ‘베리 공의 호화로운 기도서’ 등
화려한 중세 작품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저와 동행한 뉴욕의 갤러리스트 니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내가 "클로이스터에 갈래?"라고 했을 때부터
"재닛 카디프 전시가 끝났을까? 내가 알기론 오늘이 마지막인데. 그걸 꼭 봐야겠어"라고 했으니까요.
직업상 현대미술 현장에서 일하지만,
원래 취향은 역사 쪽인 저는 사실 그닥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가 워낙 흥분을 하길래
"대체 어떤 작품인데?"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응. 수십 개의 스피커를 방에 세워놓고,
그 스피커가 성가대처럼 합창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순간
2008년 옛 서울역사에서 열렸던 ‘플랫폼 서울’전의 한 장면이 지나쳐갔습니다.
"그거 키 큰 스피커 여러 개 세워놓으면 노래 나오는 거지?"
"응."
"나, 그 작가 작품 본 적 있어."
과 선배 언니와 함께 갔던 그 전시에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었죠.
꼭 사람같은 스피커 여러 개가 방 하나를 채우고
끊임없이 노래를 들려주던.
서울역사의 고풍스러운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어요.
(인터넷에서 찾은 당시 전시 때 사진입니다.)
인상적이었던 그 작가의 작품이라니,
흥미를 가지고 작품을 찾게 되었습니다.
"대체 어디서 한다는 거야?"
안내원에게 물어, 물어 그 12세기 예배당을 찾았을 때,
거기에 있었던 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였어요.
허공에 십자가가 매달려 있었고,
그 뒷편에 지친 표정의 늙은 성모가 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엔 스피커 수십 개.
튜더 시대의 성가가 천사의 합창처럼 울려퍼졌습니다.
예배당은 순식간에 ‘진짜’ 예배당으로 변했지요.
성탄 무렵이었어요.
사람들은 눈을 감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휘를 했습니다.
제앞의 커플은 끌어안고 열렬히 키스했어요.
지상의 모든 것들을 천상의 것으로 고양시키는 노래.
그리고 곧 크리스마스.
14분의 합창이 끝나자,
경비원이 사람들을 내보냈습니다.
니콜이 말했습니다.
"난, 울었어. 이런 건 처음이야. 사람들 반응 봤어?"
우리는 알 수 없는 감동에 차 있다가,
결국 다시 한 번 그 방에서 합창을 들었어요.
이번엔 사진도 찍지 않았고, 그저 눈을 감고 들었지요.
니콜이 말했어요.
"신기해. 눈을 감으니까 소리가 더 잘 들려.
눈을 떴을 때엔 사람들의 표정을 보게 되는데,
눈을 감으니까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하게 돼."
캐나다 작가 재닛 카디프(Cardiff)는 이 작품 ’40 Part Moet’에서
영국 튜더 시대 작곡가 토마스 탤리스(Tallis)의 성가
‹Spem in Alium Nunquam Habui›(1573)를 40개의 목소리로 녹음해 들려줍니다.
‘Spem in Alium Nunquam Habui’는 영어로’In No Other is My Hope’라는 뜻이라고 해요.
예술이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일이라고 할 때,
이 예술가는 소리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거지요.
소리가 시공을 넘나드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서치해본 결과,
제가 플랫폼 서울 전에서 보았던 작품과 같은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도 인상이 강렬했지만,
중세의 예배당에서 이 곡을 들었을 때의 체험만은 못했지요.
체험에서 공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이 작품을 통해 알았습니다.
재닛 카디프는 클로이스터에서 전시를 가진 최초의 현대미술 작가입니다.
클로이스터스는 75주년을 맞이해이런 시도를 했지요.
이는 미술사를 전공하면서 현대미술 현장에서 일하는 제가,
항상 가졌던 물음,
‘전통과 현대는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와 맞닿아 있기도 하였습니다.
미술관은 곧 문을 닫았고,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중세에서 현대로 타임슬립하듯 맨해튼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그날 밤 비행기로 저는 뉴욕에서 서울로 돌아왔지요.
그렇게 한 달 가까이시간이 흘러,
어느덧 2014년.
그러나 그 순간, 중세의 예배당에 울려퍼진 천상의 합창.
그 순간 넋을 잃고 소리에 몸을 맡긴 낯 모르는 관람객들,
크리스마스 즈음의 뉴욕,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에게 바쳤던 기도,
그 모든 것들이 아직도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2014년도 어느새 사흘 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한해 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들 덕에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생활에 치이고
나이가 들수록 조심스러운 것도 많아져
예전보다 포스팅이 뜸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블로그를 닫지 못하는 것은,
지난달 클로이스터에서 느꼈던 그런 감정의 고양, 같은 것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잘 부탁드립니다.
푸나무
2014년 1월 3일 at 1:27 오전
음악회가 아니라 미술관람이었다구요.
음
소리로 듣는…
음악도 아닌 미술도 아닌 그 사이…
라
예술이란 단어를 쓴건가……
JeeJeon
2014년 1월 3일 at 7:15 오전
소리가 시공을 넘나들었기에..
전통과 현대의 만남.. 완전 공감합니다
완곡한 어휘의 호소력은 그냥 지나칠 수 없네요
글의 힘입니다.
곽아람
2014년 1월 3일 at 5:06 오후
푸나무님> 네. 음악회가 아니라 미술 전시 관람이었어요. 말씀하신대로 그래서 ‘예술’이란 단어를 썼답니다.
곽아람
2014년 1월 3일 at 5:07 오후
JeeJeon님>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곽아람
2014년 1월 4일 at 1:34 오전
동영상을 올리고 싶은데 안 되네요.. URL이 있어야 하나.. 그냥 동영상 파일은 올릴 수가 없나봐요.. ㅠㅜ
나의정원
2014년 1월 4일 at 5:40 오후
아~
감동적인 현장에서 그런 좋은 경험을 하셨다니, 부럽고, 직접 보진 못했지만 약간의 느낌을 알 수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
2014년 1월 5일 at 9:06 오후
중세 예배당에서 튜더시대의 성가라.. 저도 그 자리에 있었음 전율이 흘렀을지도..
요즘 영드 ‘the white queen’을 보면서 튜더왕조, 장미전쟁관련 글을 읽고 있거든요. 그래서 더 궁금해요.
결국 삶에 위안과 풍요를 주는 건 그 ‘예술’인가봐요(‘어릴 적 그 책’의 『집 나간 아이』
내용처럼요 ㅎ)
곽아람
2014년 1월 6일 at 12:56 오전
나의 정원님>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아요.
연님>영드 ‘The White Queen’이라니 재밌겠어요. 어쩐지 그 시대는 신비롭게 느껴지잖아요. 오, 책 읽고 계시는군요. 그 ‘집 나간 아이’는 비룡소 출판사에서 ‘클로디아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답니다. 저는 옛날 번역이 더 좋긴 하지만, 아쉬운대로 읽을 수 있으실 거예요 ^^
파이
2014년 1월 7일 at 8:25 오전
아람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 ‘진짜’ 예배당으로서의 감동을 같이 느낄 수 있었어요.
현장 보단 덜 하겠지만
글과 저의 상상력이 합쳐지면서
뭉클해졌어요. ^^
아람님의 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올해도 부탁드립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__) (–)
곽아람
2014년 1월 7일 at 9:22 오후
파이님> 네. 이런 댓글이 제겐 큰 힘이 됩니다. 역시나,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강영옥
2015년 6월 25일 at 2:21 오후
제가 음악은 올렸어요…. 엉터리 숙제하면서…^^
이 포스팅을 저는 왜 못봤을까요?
서울역사 에서의 이야기는 기억이 있는데…
아참 ~~미술출장 정말 잘 읽었어요
다음 출장도 기다릴게요~~
고맙습니다
aram1214
2015년 6월 25일 at 3:15 오후
음악 찾아볼게요 ^^; 제가 워낙 포스팅을 드문드문해서 그래요. 다시 성실한 블로거로 귀환해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