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모두 손글씨로 써 봤더니…

전세계에서 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 채팅 앱, SNS의 글 게재 및 댓글 등을 통해서 쏟아지는 단어 수는 하루에 3조6000억개라고 한다. 대략 3억6000만권의 책에 해당하는 단어를 하루에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쏟아내는 것이다.(물론 이 중 대부분은 책으로서의 가치는 없는 신변잡기 문자이겠지만…)

이런 문자의 쓰나미 속에서, 미국 시카고와 시애틀에서 개인들이 한 실험이 최근 소개됐다.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손글씨 서체(calligraphy) 디자이너인 크리스타나 밴코(Christina Vanko)는 1주일 동안 모든 문자 메시지를 손글씨로 써서 촬영한 파일을 보내보았다.  그리고 이 1주일간의 실험에서 자신이 얻은 결론을 어틀랜틱.com에 지난 6월 26일 게재했다.

미국에서 18~24세의 젊은이가 한달에 주고 받는 메시지는 약 4000건.  여기엔 1주일에 평균 500건 넘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도 포함돼 있다. 밴코는 이 1주일 동안 스마트폰의 키보드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온갖 종류의 종이에 직접 답을 손으로 썼고 이를 찍어서 답신을 했다. 왜 자신이 이런 짓을 하는지는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밴코가 1주일간 실험한 손글씨 문자메시지 예
밴코가 1주일간 실험한 손글씨 문자메시지 예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1. 손글씨를 받는 이들은 스스로를 특별하게 느끼게 된다.

2. 손글씨를 씀으로써, 글자에 강조점을 둘 수 있어 자기 표현에 보다 정확해질 수 있다. 

3. 이모티콘, 이모지(emojis)조차 쓰지 않았더니, 평소 얼마나 이러한 특수 형태의 기호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4. 일일이 글씨를 쓰다보니 시간이 더 들어서 그 만큼 메시지에 보다 정확하게 생각을 담게 됐다.

5. 문법과 철자에 보다 신경을 쓰게 됐다…

며칠 뒤, 그의 실험을 시애틀타임스의 기자 모니카 거즈먼(Guzman)이 따라했다. 그는 단지 문자 메시지뿐 아니라, 이메일까지 포함해서 이틀간 손글씨에만 의존했다. 사적인 글이든 업무상의 글이든, 길든지 짧든지 모든 형태의 글(이메일, 트윗, 문자 메시지 등등)을 손으로만 썼고 130건의 문서를 작성했다. 왜 이런 실험을 한 것일까. 그는 “디지털상으로 모호하게 정리한 생각들을 너무 쉽게 써서 보내는 과정을 좀 천천히 해서, 그 과정(digital mutterings)을 살펴보고 싶었다”고 시애틀 타임스 블로그에 썼다.

그리고 이렇게 육필 메모를 보내면서 별도의 URL을 링크해서 왜 자신이 이런 육필 메모 실험을 하는지 밝혔고, 뜻을 공유하게 된 된 상대방의 생각까지 함께 정리해서 발표했다.

응답자(70명)의 75%는 10년전에 비해, 더 많이 글을 쓴다고 답했고, 이 들 중 거의 3분의1은 글쓰기가 3배 이상 뛰었다고 했다. 10년전만 해도, 자기 머릿속에나 간직했을 법한 생각들을 이제 친구들에게 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는 양이 늘었다고, 글의 퀄리티가 좋아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또 더 행복하지도 않다. 그저 남들도 쓰니까, 나도 쓸 따름이라는 대답도 많았다.

더 심각한 대답은 “글쓰기가 이렇게 매우 쉬워졌지만, 좀 더 창의적이고 생각을 쏟아 의미있는 글을 쓰기란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왜일까. 쏟아지는 이메일에 답해야 하고, 그때그때 ‘죽고 살일도 아닌’ 시덥잖은 문자 메시지 답글과 채팅으로 머리를 쉽게 굴리다보니 생각하고 집중해서 깊이 있는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불평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먼저 전화를 걸기보다, 통화 가능한지 여부를 먼저 문자로 묻는 것이 ‘예의’처럼 된 세상이다. 자신의 ‘문자 의존도’를 어디까지로 할지 명확한 선을 긋는 것은 디지털 세상에서 각자가 책임있게 결정해야 할 이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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