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글 목록: 2016년 3월월

마트보다 늦은 우리동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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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치료차  다니는 병원에 가는 길은 하나로마트를 지나게 된다.   그래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마트를 꼭 들린다. 벌써부터 아채칸에 쑥과 유채, 냉이 등이 진열되어있다. 냉이를 한번 사다가 국을 끓여보고는  우리동네에서 외곽에 나가면 흔하지는 않지만 냉이를 캘 수있을텐데 마음뿐이다.

문득 쑥국이 생각나서 마트에서 살까하다가 아파트 단지 끝쪽 산자락 의 깨끗한 쑥을 뜯으러 가야겠다고 일어났다.   면장갑과 작은 가위, 비닐봉지를 손가방에 담고서 아파트 끝동쪽으로 갔다.

갈잎들이 떨어져 덮힌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쑥의 싹들이 이제 나오고 있었다.  마트에 것은 아마도 남쪽지방에서 올라온 건가보다. 그것들은 제법 자라서 크기가 크던데 여기는 아주 작았다.  그냥 돌아 올까하다가 맑은 공기가 상쾌해서 잔디위를 눈으로 더듬었다.

좀  자란 쑥을 골라 가위로 싹둑 잘랐다.  두세번 끓여 먹을 양이 되어 시계를 보니 한시간여 지났다.  고만 일어나려니 돌나물이 얼굴을 내민다.  요것도  한접시 양만 가위로 잘라 봉지에 담았다.  조금 있자니 할머니들이 한두분  나오셔서 산책삼아 걷다가  한분은 달래를 발견하시고는 꼬챙이로 파 셨는데 한줌이나 되었다.    달래장 한번은 충분하다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피우셨다.

 

유아부모의 필독서 ‘베이비맘&베스트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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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만 봐도 평소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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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에서 밝혔듯이 이책은 어린이집 원장이 쓴 글이다.  글은 현장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내가 유치원에서 겪고 본 그대로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부모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 그대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꾸라지 한 마리가 도랑물을 흐리듯 한 아동의 작은 문제 하나가 아동 자신과 주위의 아동에게 피해 또는 악영향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부모들은 서로의 자녀를 위해 부모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런점에서 이책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과정의 첫 걸음이며 좋은 부모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저자는  독자들이 알기 쉽게 교육현장의 실제 상황을 에피소드로 엮어 소개하고 있다.

태교에서 신생아를 위한 책이 있다면 이책은 유아가 막 사회에 발 들여 놓은 단계에서 읽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녀를 유아원에  보낼 시기를 앞둔  새내기 부모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침에는 화분과 놀고저녁에는 신선한 찬으로 하루를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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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에 범부채꽃 싹을 고마운 님께 받아서 화분에  심었는데 점점 자라는게 아니라 작아졌다. 그래서 죽어가는 줄 알았다. 그래도 살려 보려고 물에 담가 놓았었다. 그리고 어제 새로 심었다. 연탄재와 거름이 섞인 흙을 섞어 심었다. 쑥쑥 자라 주길 바라면서 흙을 다독이고 새로 사온 영양제를 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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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이끼를 깔아 놓았다. 범부채가 물을 좋아하나 싶어 얹어 놓았는데 모르겠다. 본래 뿌리에 묻혀있던 흙은 황토흙 같았다. 황토흙은 물이 잘 안빠지는 걸로 안다.  그래서 보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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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이다. 범부채보다는 자랐지만 이것도 올때보다 작아진 상태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다행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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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채를 처음에 심었다가 죽는 것 같아서 뽑아서 물에 담가 옮기고 남은 화분에서 이름 모름 싹이 돋아 나왔다. 사과나무싹과 잣나무가 아닐까한다. 알갱이를 뺀 잣열매와 사과를 깍고 난 찌꺼기들을 묻어 두었는지 싹이 트고 있었다. 사과나무를 잘 길러서 꽃을 본다면 좋을 것 같다. 잣나무도  예쁠 것 같다.

20160317_192916-1-1_resized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돌아 오는 길에 두부나 한모 사려고 마트에 들렀다. 시금치가 한단에 970원, 느타리도 970원 너무 싸서 나도 모르게 장을 봤다. 달걀도 특란이 3,050원인데 튼실했다. 부추한단도 가져와서 부추김치르 버무렸다. 돈육은 양배추피클 간장과 브랜딩위스키와 마늘을 넣고 조렸다.  오랫만에 신선한 반찬을 차렸다.

미술관에 갔어요.

저는 박물관이나  예술품 전시관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항상 부족합니다.  물론 심리적으로 그런거겠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하는게 맞을 겁니다.  그래서  별로 못가게 되었습니다.

남이 다녀 온 박물관 이야기는  그저 어디에서 하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 받아 들인다면 특이한 에고일까요?  아무튼 저는 저만의 느낌으로 즐겨야 제맛이지 않겠나 하게 됩니다.  음식맛이 남의 입맛에 맞다고 다  만족 할 수없는 것 처럼 말입니다.

어제 서울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모임에 참석한 친구들과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는데 그 마무리로 모임장소의 근처에 소재한 옥인동 남정 박노수 (1927.2.17~2013.2.25)미술관에 가게 되었습니다.  효자동 근처에는 박물관이나 전시장이 몇군데 있나본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종로구립이지만 작은 미술관을 찾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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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방문한 날의 전시작품들은 남정의 청년기에 그린 작품들이라 합니다.

  • 작가의 청년기 그림을 통해 연구와 고뇌를 거쳐 본인만의 화풍을 찾기위한 노력을 가늠해 볼 수있다. 특히 60년대 대표작, 두방,잡지표지화 등 당시 작품과 활동상을 통해 화풍을 파악하고, 사의적 표현으로써의    추상적인 표현과 색감, 여백 등을  사용하는 본격 남정화의 태동을…. ( 이상 미술관 리플랫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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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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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촬영은 금지사항이더군요.  이 작품을 찍는거 하나로 만족해야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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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뜰을 지나 뒤에로 돌아 가면 아래 사진의 정경을 볼 수있는 높은 언덕 위의 정자겸 전망대가 있습니다. 아 마 그곳은 더운 여름 나무 데크에 앉아 다정한 식구나 친구와 한담을 나누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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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의 생가이며,  작지만 운치있는 미술관이었습니다. 작품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느낌이 있을겁니다!

 

 

차창밖의 봄날

20160309_103611_resized춘천에서 무정차 버스를 타고 동서울로 가는 중이네요.    멀리 ?대교가 보입니다. (천호대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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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롯데타워도 보입니다.

동서울에서 이천행 무정차 버스로 옮겨 탑니다.

이천에서 볼일을 보고 여주로 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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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도자기동네로 택시를 타고 갔더니 어느 매장앞에 내려주었는데 제가 보고 싶은 도자기가 아니어서 천천히 걸어 다른곳이 있나 살폈답니다. 옹기점포에는 뭐가 있나 살피니 아예 유리로 된 매장문은 잠금상태더라고요. 그리고 여주에는 웬 날파리들이 도로에 가득했어요.  믿어지지않으시겠지만 날파리들이 허공에 수없이 날아다니고 여기저기 물체들에 까맣게 붙어 있더라고요. 동네 소독을 안하냐니까 그말에는 대답을 않고 날씨가 따뜻해지니 나타났대나요. 그러 하루이틀 그런게 아니나봅니다.  가끔 모기들도 있던데 물릴까봐 도망치듯 걸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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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서는 한점포만이 문이 열려 있었어요.

매장안에는 많은 도기들이 진열되어서 손님을 기둘리고 있어라고요. 안쪽에는 작업장도 있고 부러운 공간이었어요.  중년의  남자에게 취미에 맞는 예술 작업도 하고 판매도 하고 일하는 기분이 즐겁겠다고 했더니 장사가 너무 안되어서  탈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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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많아서 어떤 걸 골라야 할지 집었다 놓았다 많이 망설였지요. 우리동네 홈플러스에도 도자기 와 옹기 그릇이 많이 진열되어 있어서 혹시 먼데까지 와서 잘 못 샀다고 후회라도 하게 될까봐 그리고 그릇이 예쁜지 미운지 잘 모르겠는 거지요.

그래도 준장과 이야기도  나누고 우리 둘째가 사드릴께요. 사고 싶은 거 모두 사세요. 했던 터라  한두어개 사다가 식탁 느낌을 새롭게 해주는 것도 좋겠다 싶어 몇개를 샀네요.

집에 와서 깨끗이 씻어 하나를 이용해보니  마치 새신을 신고 팔짝 뛰어 보는 기분이랄까요? ㅎㅎ 그렇더군요.

얼마의 돈으로 이런 새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아깝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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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서 춘천으로 오는 버스는 없더군요. 하여 원주로 오는 중입니다. 창밖의 풍경은 봄날의 아늑함이 느껴지더라고요.  봄은 꽃샘바람이 얼마간 불다가버리면 파릇파릇 연녹색 빛깔을 산과 들에 뿌려 놓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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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꽃을 보며

오래 만나던 이웃형님에게 좋은 분이 생겼다.

또, 동창모임에  가는 도중에 동승한 차안에서  상처한 친구가  선을 본 이야기를 했다.

55세 이하만 선을 봤다는데 어느 여자는 주름이 많아서 피했다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 부쩍 카톡에는 부부가 여행지에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이  자주 올라온다.

형님은 원래도 단아했지만  혼기에  이르른 아가씨처럼 수줍은 자태를  보이며 젊어 지신 것 같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더니 정말 그렇다!

곁에서 보기에 전혀 추하거나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연로한 두분의 사귐이 아름다워 보였다.

  친구는  재혼하면 하던일에서 은퇴를 하고, 새부인과 여행만 다니고 싶다고 한다. 그럴만한 능력의 친구이다.

나는  부쩍  불안해졌다.  친구의 이야기 속에 든 55세 이하 규정에 쇼크를 받았나 보다.  55세가 넘었으니 아무런 가능성이 없나 싶어에  꽂힌 것 같다.

형님은 나보다 13살이나 많은데 좋은 분을 만났다.

그러니,  불안 할것도 없다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 했다.

혼자 지내도 좋다고 했던 마음이  한 이틀간 마구 흔들렸었다.

몹시 외로워서  친구들에게 전화질을 했다.

그러고 나서야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진정이 되었다.

진정은 되었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는  풀어야 할 숙제처럼 남아 있다.

애들한테 짐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날이 갈 수록 느끼기 때문이다.

나의 여생의 문제를 어찌 할 것인가?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또 있다고 나 자신과 자식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 싶다. 애들은 심신이 건강하니 점점 발전하는 삶을 살게 될것이다. 우리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대개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줄거라는 기대심리를 이용하여  또는 다는 아니지만 건강을 잃고나서 불가피하게 자식들에게 얹혀 살게 된다.

그들에게 빼앗는 시간과 에너지는 서로에게 불행의 경로가 아닐까.. 가능하면 가족 각자 건강한 삶을 유지하며  가족간의 유대와 정을 잃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부모가 되어 봐야 아는 부모의 입장을 그들에게 억지로 주지시키며 효도를 강요할 필요가 있는지 ..

 나는 그러고 싶지않다. 나는 나대로 가능한한 어느 누구에게나 짐이 되지 않고 싶다.  나의  싫고 좋음만을 주장할게 아니라

어미로써 아이들과 적당한 선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리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혼자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세상은 다 알것이다.

그러하니 남은 여생을 함께 할 진실한 동반자를 찾는 것이 현명하지 싶다.  돈은 내가 죽음의 선을 넘을때까지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내가알기로는 병석에 누운 순간 나를 떠날 것이다.

 절친한 친구나 진실한 동반자는  내가 죽음에 이를때 까지 함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동반자에게 꼭 필요한  지혜로운 존재일것이다.

 옛말에 자식보다 친구가 났다는 말이 있다. 이말은 진리일것이다.

애틋하기야 자식이 백번 천번 나을 것이다. 하지만  사태를 보는 눈과 이해 하고 수용하는데는 친구나 동반자가  보다 더 현실적이다.

같은 세대라는 것은 신체의 변화를 동시기에 겪고 처세법이 낯설지 않으며  친구나 동반자는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과 둘 관계 사이에 장애가 되는 이견인(異見人)이 없다는 것이 유리한 점이라 본다.

 반복되지만 한 시기에  살아 온 두사람의 관념은 차이가 적을 것이라는 것과 죽음은 나이대로가 아니라해도 삶을 마감할 수있는 시기도 비슷할 것이라는 짐작이  이유이다.

인연이란 하늘의 뜻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세상에 흔한 돌싱들이라도 인연 맺기는 쉽지 않다. 용기를 내 보자고 늘 결심하지만  이게 걸리고 저게 걸린다. 아마도 자존심이 나서지못하게 하거나  세상이 너무 험해져서 여자고 남자고 무섭다는 점일 것이다.  잘 살 것 같아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사람의 행태를 보면 그만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신중해 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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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꽃 봉오리가 꺾여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얼른 지지대를 만들어 버텨 주었는데 시들어 버릴까 걱정이다. 시간이 흐르니 지금은 반쯤 피었다.  때묻지 않은 청초한 노란빛깔이 너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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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시간 흐르니 이렇게 피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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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봐줘

냉장고 안에는 절임류가 담긴 용기가 가득하다.  재료를 구입하여 담글때는  맛나게 먹을 기대감으로 시간과 노력을 아낌이 없이 들인 것들이다.

해가 넘어가게 되면 웬지 먹기가 머뭇거리게 되고 버리지도 못하고 냉장고 문을 열기만 하면 “나 좀 처리 안하니?” 하며 얼굴을 서로 내민다.

그여히 올해 들어 ‘아~ 이젠 고만 할꺼야~ 아무것도 안담글꺼라구’ 했다.  하지만 마트근처를 지날때면 그냥 지나치려다 그래두 구경만 하겠다구 들어가서는  그냥 나오는 법이 없다.

오늘도 며칠전에 화제에 올랐던 대저토마토 한팩과 우둔살로 스테이크나 만들겠다고 두껍게 썬 고기 두개를 구입했다.  얼굴에 하루가 다르게 주름살이 늘어나고 입가의 주름은 그만 얼굴관리에 대해 포기하고 싶게 만든다.  그래도 내얼굴 누가 책임지랴~ 얼굴에 살좀 붙으라고  쇠고기를 매끼마다 충분히 먹기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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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살의 원인은 나이도 나이지만 교통사고와 골절사고 후 병원약을 과용하여  온몸이 종합병원이 되더니 체중이 확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 체중늘리기 작정을 하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려 하는 것.

서리태 묵은 콩도 병에 담겨  쳐다 보고있다.  부지런히 밥에 넣어 먹는데 압력밥솥에 짓는 콩밥은 그리 맛나지 않다.  콩시루떡이나 해서 먹을까 해서 쌀을 불리려고 물에 담가두었다. 그리고 방앗간에 가려니 귀찮았다.

방앗간에 가지 않고, 물기제거가 쉽지않지만 믹서에다 불린쌀을 갈고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던 단호박을 녹여 찜통에 쪘다. 갈은 쌀을 반나절 가라앉혀 물기를 제거했지만 여전히 축축한 쌀 가루에 냉장고에 서 굴러 다니는 것들중에서 마른 쑥가루와 미강 약간, 단호박 으깬것, 서리태 많이, 대추 넉넉히, 찹쌀가루를 쌀의 1/3 정도 와 모두 섞어 질지만 반죽을 만들었다.  다시 반죽을 비닐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꺼내니 반죽다듬기가 쉬워졌다.

찜통에 동그랗게 빚은  반죽을 앉혀서 쪄 냈다.   다 쪄진 떡을 들기름을  표면에 얇게 바른 다음 하나씩 먹는다.  부드럽고 연한 떡에 대추는 달콤하고 콩은 아주 고소한 맛을 내어서 손이 자주가는 떡이 되었다.

20160303_180026-1_resized  간편하게, 영양가 풍부하게 , 만들어 봤는데 떡 만들기가 별것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참 쉬웠쥬!!!

 

장절공 신숭겸 묘역

지난 27일 방동1리 정보화마을 된장 체험을 마치고  온 김에 근처에 있는 장절공 신숭겸장군의 묘역에 올라갔다.

묘역은  사계가 다 아름답다. 항상 오면 되 돌아 오기가  싫어진다. 마냥 머물고 싶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신숭겸장군 <요약>태봉 말기에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 기병대장으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918년에 고려를 개국하는 데 공을 세웠다.
<고려사>에 의하면 지금의 춘천인 광해주 출신이며, 체격이 장대하고 용맹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의 개국공신 1등에 봉해지고, 대장군이 되었다. 927년(태조 10)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과 공산 동수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대장군으로 군사를 이끌고 참여했다. 견훤의 군대가 태조를 포위하여 형세가 매우 위급해지자, 원보, 김락과 더불어 싸우다가 전사했으며 그 덕분에 태조는 간신히 피신했다. 태조는 지묘사를 창건하여 그의 명복을 빌게 했다. 994년(성종 13) 태사로 추증되어 개국장절공으로 태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1120년(예종 15) 그와 김락을 추도하여 예종이 <도이장가>라는 향가를 지었다. <출처/다음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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