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산행

가끔고향을내려갈일이있거나,겨울철에가족과같이스키장을가거나,아니면미사리부근의카페에들리고싶을때면지나치던곳에서.한번씩힐끗처다보던곳이바로검단산이었다,

산행을하기전검단산을소개하는글을읽은바에의하면,검단산은특히그주위에예봉산,용마산,운길산등을이웃으로하여있고조망이좋은곳이라고하는데오늘은잔뜩찌부린날씨에눈,비마저염려해야하니조망의멋은포기해야될성싶엇다.

검단산은통상하산곡동을들머리(입구)로하여오른다는데우리는그반대의안창모루를들머리로하여오른다.오늘의대장인친구에의하면하산곡동으로하면정상밑의깔딱고개가조금속을썩이니이쪽으로하면비교적완만하고쉽게정상으로오를수가있다한다.더욱이나검단산과용마산을종주할려면이곳이들머리로는적지라고한다.

우리가들머리에들어서면서처음만난것이월남전참전기념비였는데나의호기심은다른산우와조금다른데가있어비문을보니국가나지방자치단체에서세운것이아니라하님시의"월남전참전전우회"가조금씩돈을모아세웠다고히는데..지금은거의잊혀저가는우리역사상최초의파병지였고,아직도월남전의상흔을간직한사람들이무수한데어디에도그때의애국하는길을기억하지않는현실들을보면서안타까운마음이다.

(산오르기를시작하는초입에있는월남전참전기념비…)

우리는이곳을기점으로해서산을오리기시작하였는데추천하여준산우의말그대로입구에서부터늘어서있는소나무는길게도열하여반기고소나무특유의솔향이몸을감싸안고있어상쾌하기만한데..우리는산행시마다그러하듯이에외없는농담을섞어가며산행을즐기는웃음소리가낭낭하다.

(산을오르기시작…)

(돌담길을끼고자길길도마다않고…)

산오르기를시작한지10분이채안되어만난곳이조선말기의선각자이신"유길준(兪吉濬)선생의무덤이었는데후손들이잘보살피고있는듯깨끗이정돈되어있었는데특이로운것은무덤뒤에큰바위가있는데마치거북의형상을하고있음을보았다.누군가가옮겨놓지는않은것으로보이는데흥미롭게보인다

(거북이한마리가지키고있는고유길준선생님의무덤)

(거북이를조금자세히보았더니..)

유길준(兪吉濬/1856-1914)

조선말기의정치가,개화운동가.
1881년(고종18년)일본에건너가서게이오의숙에입학했다가
곧귀국,주미전권대사민영익을따라미국으로가보스턴대
학을다녔고1885년유럽각국을시찰하고귀국한뒤개화당으로
몰려구금되어있는동안<서유견문>을쓰기시작하여1895년
탈고함.
1894년갑오개혁때에는외무참여등을지내고1896년에
김홍집내각의내무대신이되었으나아관파천으로내각이무너
지자일본으로망명.
순종황제의특사로귀국,흥사단에참여국민경제회를설립하
는한편,교육계를만들어계산학교를세웠다.
저서에<보로사국후례대익대왕7년사><구당시초>
<세계대세편><이탈리아독립전사>등이있다.

유길준선생의묘소를뒤로하고얼마간오르니조그마한봉우리에도달한다.여ㅣ까지오는데는조금경사진곳을만나기는하였으나숨이가뿐것은아니었고그저보통의걸름에도힘들이지않고접근할수있었는데,설치되어있는벤치에서잠시휴식을취하면간식을챙기고다시출발할수있었다

이제본격적으로산을오르기시작한다,우리는여기서부터두패로나누어오르는데오늘의대장이안내하는팀은비교적오름새가조금은완만한곳으로,그리고또한팀은남여6명이이곳을잘아는지천님의안내로바위가곁드린능선을택하기로하였는데,나는바위쪽으로가기로하고따라나선다.

(아직도남은잔설위에다시눈은나리고..그겨울의마지막눈을밟는즐거움..)

(막상험준한곳은지금부터였는데..)

눈발은점점거세어지고

(산중턱에서만남노송들은한폭의동양화..

(발아래는내리는눈으로검너편의예봉산은눈안개에가리고)

(잠시의휴식후우리는다시정상을향해발걸음을옮기고..)

(걸음을재촉하는우리앞에눈은계속내리고있었다)

(정상을눈앞에둔우리앞에서마중하는참나무군락지)

(드디어다다른정상에서바라보는팔당호와두물머리….)

(멀리팔당호와주변의산들은언제든지찾아오라는듯…)

(잠시휴식을취하면서산새들과대화도나누면서..)

(내려오는길옆에는으레소원을비는돌탐이자리하여있고..)

(내려오는길은호젓하고홀가분한데…어느틈에눈발은걷혀있었다.)

(거의다내려온길옆의조그만개울에는겨울의끄트머리가남아있고..)

(개울가바위에는세월의무게가깊게드리워저있었고)

(첩첩바위얼굴에는주름이깊어바위도나이를먹고있음을보여주고있는데..)

하산의마지막에서우리를배웅하는것은하님시의충혼탑이었는데

오늘의산행은"월남전참전비"로부터시작하여"충혼비"에서마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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