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어머니를생각하는것은바로이런모진기억때문이리라.
우리가아버님을여윈것이1951년이니벌써50년이훌쩍지나가벼렸으니세월이무상하기만하지만
아버님이야그어린나이에돌아가신모습을얼추기억을하고매년무덤에가서그때의그모습을애써서
찾아내고는있다해도점점흐릿해지는기억을어쩔수없다.
그러나어머님의경우는그이후우리4남매를도맡아기르시고가르첫으니생생하다못해아직도곁에
계신것만같아야되는데..이역에서돌아가셔서그곳에묻혀있으니,나도세파에밀려가다보면잊을때가
너무많아짐을탓할뿐이다.
내가어머님에대한죄의식이어디한,두가지랴마는,도리켜생각하면그중에서도해드리지못한것중에
아직도후회스러운것이있는데그것은내가그리궁해서도아니요,그리고내가일부러그런것도아닌데
차일피일미루다가해드리지못한안타까움이새로을뿐이다.
그때나는중견장교로영천에있는제3사관학교에재직하고있을때였다.
내가아들중에는막내라서인지어머님은유달리내게와서는걱정이태산같다는말..그리고너는막내여서
인지내가소홀했다는..그리고이제나이가들어그무엇하나해줄수없다는그러한걱정들을쏟아내고는
하였었는데그럴때마다나는걱정하시지말라는말로응대하곤하였는데..지금와서생각하니그것도퉁
명스럽게한게아닌가후회스럽기만하다.
그날도모처럼이제갓돐을넘긴손자녀석보고싶다는핑계로큰형의승락을얻어우리가사는곳으로오셨
는데,하룻밤을새시고는잇빨이아푸시다고돌아가신댄다.
나는잇빨을아파본일이없었기에뭐그리대단하랴싶었지만,어머님을붙잡고치료는부대에가서하면되
니며칠계실것을구하였으나,네가돈이들텐데..하시면서굳이가시겠다는것이었다.
아침에일어나나는무조건어머님을모시고부대의무실을찾았다,그때에는군에서군가족들도잔병은치료
할수있는시절이었고그리고부대에는칫과군의관도있어그래도형편이낳은것이었는데..
막상군의관의치료를받으니있빨을뽐으라는것이다,어머님은잇빨은함부로뽐는곳이아니라고하시면서
머뭇대시지고계시었는데,내가군의관의진료가틀림없다고우겨,할수없이의자에누으셔서잇빨을두개나
뽐으셧다.
그때나는어머님에게굳게약속한말이,얼마후제가책임지고금잇빨로해드리겟다는다짐이었다.
그후어머님은며칠을묵으시다가상경하셧는데..그때만해도어리기도한나는점점어머님과한약속을잊고
있었다,어머님은큰집에계시고나는8도를전전하면서군대생활을해야하니어찌맘먹고어머님내려오시
라는말도드리지못하고수삼년을흘렀다
어머님은그후80년초반에둘째아들이있는미국으로가시었는데,그때까지도어머님잇빨을못해드린나는
어쩔수없노라는자위로대신할수밖어없었다.그렇다고형님에게잇빨해드리라는말도건네지않고..
언제돌아오시면해드려야지하면서세월을보내고있었다.
세월은그렇게그렇게지나만가고있었는데90년대중반에야나는미국을방문할기회를맞게되었다.
해외출장겸해서간길이라어머님과는이틀밤을새고헤어젔지만…그짧은귀한기회에도결국나는예의그
어머님의잇빨에대하여는묵묵하고말았으니지금에서야통탄한들무슨소용이랴…
어머님은그이듬해그곳에서돌아가셧다.
그때나는비로소그잇빨사건을원망하기시작하였고지금도원망만하면서지나는나를책하고있는데..
더욱이잇빨은고사하고무덤에가서성묘도못하는신세를같이원망해본들어쩌랴..
부모에게무슨선물을할까의생각으로시작한나의푸념은여기서끝을이루겟지만…
내가다시모실수도없는고인이되신어머님,그리고무덤까지잇빨두개없이가신어머님에게지금내무슨
변명을할까?내자신도나의아이들에게서무엇을바랄자격이있겟는가?
부모에게드릴수있는선물…그것은나와같은무관심무소치가아닌지극한관심밖에없을텐데그것도알지
못하고이제껏살아온나를책망할뿐이다.
어머님..그곳에계시더라도음식은꼭꼭씹어잡수세요…지금저도잇빨하나를들어내고있는데어머님에게
해드리지못한죄를받기위해서라도그냥두려고합니다.대신질긴고기는질근질근,아삭한상추도한번더
아삭아삭씹으렵니다..어머님올여름에나가을에는저반드시며느리구해서손잡고뵈올려합니다.
어머님…그때무덤가에서울어본들소용이없겟지만그래도위로는받으셔야지요..
어머님…그때무덤가에꽃한송이가무슨소용이있게습니까마는그래도못보신며느리는보셔야지요..
어머님….이글을아무리길게쓴들어머님에게못해드린잇빨을대신할수는없을지라도이렇게밖에할수
없는나는아직도어머님앞에서는어린애일수밖에없잖아요?
아~~지금어머님이게시면잇빨두개를해드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