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색된 교지(校誌)를 보면서

[퇴색된교지(校誌)를보면서]

누구나학창시절이생각날때쯤이면어느정도세월을살았다는증거이리라.

"학창시절"…언제생각하여도푸른꿈이묻어날것만같은느낌이며,생각만하여도가슴이울렁거리던그시절로돌아가있는듯감개하는것이다.

내가그시절을지나여기에까지온그긴여정을숫자로세면어떻게될까?

秒단위로세일수도없고,時단위로셀수도없고,日단위로셀까?아니면年단위로셀까?

어느단위로셈을하던간에그시절은그시절로남아있는데숫자놀음으로건너뛸수는없는게아닌가?

우리는양지녘풀밭에누워바라보는하늘에서든가?

어쩌다찾은해변가에서가없이넓은바다를바라보던가?

산위에올라호쾌한마음으로심호흡을하면서발아래펼처진만물을볼때면

불현듯생각나는상념들중에그첫번째에차지하고있는상념이아마회상으로부터일것이며

뒤이어그캔바스안에그려진온갖것들을떠올린연후에야

현실로돌아오고..그리고미래로달려감을느낄수있으리라.

또한시간을돌이켜보는재미나맛을느낄때가있다면

오랫만에찾은고향에서그시절의어릴적의친구들과거나한취기를함께하며

그들의사랑방에서나누는이야기들…

그속에서나는비로소고향의포근함도.그리고나도그속에서태어나지나왔슴을깨닫고느끼는맛을가질수있다.

이러한분위기속에낡은사진첩속에있는나를발견하거나,나의때가묻은골동품,

이를테면내가보냈던편지나엽서나카드를보았을때그때의기쁨은감동그것이다.

이는몇해전나와절친했던학우의집에서도경험하였는데.

그때졸라서얻어온흑백사진몇장이지금도내학창시절의몇않되는시진중의그몇장이니

더욱고마울수밖에없었는데..

이번의나의고향방문에서는더욱소중한골동품을얻었으니감동을넘어서감격일수밖에없다.

얼마전에다녀온곳은강원도의오지에사는친척동생의집….

벌써50을훌쩍넘어머리가하이얀동생과함께막걸리를나누며이얘기저얘기로밤을새우던중,

학창시절의이야기로넘어갈즈음에내가그시절에관여하였던교지이야기를하게되었다.

이유는그시절교지의편집에관여돼었다는사실때문이기도하지만

그때학생들은문학이무엇인지도모르면서동시를지어보거나

이런게시가아니겟느나하고끄적이고는혼자흡족해하였던기억이새로웠기때문이었고.

그때가6,25사변이끝난지10년도되지않은터라전쟁전에발간되었던교지도속간을못하고

어렵게벌린일이라교지를만들기위해애를쓴경험이되살려지기도하고

원고를모집하기위해하급생들을괴롭힌일하며급기야는내가쓴글을친구의이름으로

계재하기도하였던일들이되살려젓기때문이었다.

그러면서한잔한잔을마시던중에동생이잠시기다리라면서전화기를들고는

시오리는떨어저있는후배(동생의친구)에게전화를걸더니함박웃음으로내게그때의그교지를찾았다는게아닌가?

놀랐다,나는정말놀라지않을수없었다.

내가그교지를찾아보기위하여모교도찾은적이있었고당시의동창들을마나생각이날때마다수소문을하였으나그어디에도없었고..그리도찾을수없었는데..

어쩌면이런산골에서농사를짓는학교후배의장농속에간직되어있었던가?

한결신기하기도하였다.더욱이나한달음에그교지를가지고달려온후배의열의에나는다시술잔을따르지않을수없었다.

때로우리는뜻하지않은곳에서,의외의일을당햇을때,

어떤경우에는황당하기도하고,어떤경우에는당황하기도하고,

어떤때는놀라기도하고,또어떤때는반갑고,기쁜감정을가지는데

이때의나의마음은이모든것을합처서밀려왔던것이다.

후배가가저온교지를보니물론활자는어림도없을때라프린트물로되었는데

오랜세월지나온만치낡고많이퇴색되어있는것은당연하였고

겉표지는날라가버리고속표지만남은고물스러움보잘것없는것이었지만.

나의눈에는퇴색된책갈피마다에그때의꿈이달려있었고.

넘길때마다그글속에담겨진글들로가슴뿌듯함도느끼고,

그속에잊혀저있던친구들의이름을발견하면서

그리운그시절을떠올리며일배일배부일배하면서밤을넘기고있었다.

그중에서책가운데에있는글들가운데에서도내가써서다른친구의이름으로발표된글들을볼때엔

아주묘한기분에휩싸일수밖에없어마치오래전에잃어버린분신을찾은듯떨림을맛볼줄이야..

더욱이나그중의하나인"밤의밀어"라는글(시라고할수는없고..)을발견하고는

그글을쓸때의정황도함께떠올리다보니

금새호롱불앞에서길쌈을하던친구의누나모습이아른거려함께반가웠다.

-밤의밀어-

보얀입김속에

등잔불이졸고

태고의전설이

감도는맥박에서려

갓삼을삼는아가씨

눈매에갓든풋사랑이

불꽃에나풀거리는데

되뇌어보는대화가

아롱아롱매어달려

은은한밤은갚어간다

살며시치켜뜬눈매에

살포시그리움피고

사념은허공을타고

지겟문에수를놀는다.

갓삼삼는아가씨는

티없는눈짓,손짓으로

살며시머리를가다듬고

등잔불의삼지를돋우어놓는다

이렇게옮겨놓으니참무어가무엇인지도모를이야기가되고말지만

다시읽어보면서그때의그살림살이는짐작할수가있어반갑다.

그렇다.그때에는강릉의사내복판에만제한송전을하고있었고그

것도전등하나로두방을함께써야했으며.그외에는모든집이석유등잔불이었다.

등잔불하나를가운데두고할머니나엄마,언니들은길쌈을하여야하였고

그사이를비집고사과상자의양모서리에앉아형제들이공부하였던시절…

[사진:아마사진(g.chosun.com/pcs9434)의수홍박찬석님의사진]

사람이살면서때로는외롭거나,슬프거나,고단할때어떻게할까?

그럴때우리는회상의맛을느끼는것이아닐까?

회상이란희로애락이함께하지만회상을통하여

오늘을다시보고내일을다시설계할수있지않을까?

나이가든사람은더욱멋있는내일을,

나이가적은사람은더욱밝은내일을바라보았으면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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