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

<겨울산>

산은사계절어느때오르더라도기분이좋다.

산이라고해서한라산,설악산,지리산과같이전국의명산을머리에떠올릴필요는없다.
앞동산,뒷동산도좋고그것도아니면산너머외갓집가는길의고갯마루이어도좋다.그위에올라서멀리산아래마을과,성냥갑만한초가집굴뚝에서피어나는연기만볼수있어도,삶에그을린나그네의지친마음은금새풍족한마음으로돌아갈수있다.

나의산에대한기억은어릴적의땔감구하던일에서부터시작한다,
그때그시절이야어디어렵게살지않은사람이있었을까마는어머님과여동생을뺀우리삼형제는일요일이면어김없이보리밥도시락을리어커에부뜰어매고산으로내달렸다.

동트기전부터신작로길을달려서대관령,삽당령에도착하면한달음에산속으로들어가6.25전투에타다남은소나무,참나무를베어지계로날라리어커에싣고돌아오면어김없이캄캄한밤중이었다.

그때의산은우리에겐삶의현장,바로그곳이어서땔감외에도고사리,삽추,드릎,도라지,더덕들을쉽게채취할수있었고,다래랑,머루도금새한바구니그득담아오곤했었다.
그시절의우리의행색은낫과톱을지계에꼿고,바지가랭이는목양말속으로넣고,가는새끼로고무신을곽붙들어매은것이몇해전전국을순회한"아빠,엄마어렸을적"하는인형,그것이었다.

그렇게시작한산오름은그후군대생활로이어저,전국의웬만한산은안가본데가없으니,산은내살아온길목,어디에고늘붙어있었다.

산은사계절어느때오르더라도기분이좋다.
봄에는새싹의기지개속에서약동하는젊음을읽을수있어좋고,
여름에는녹음방초속에산새들의지저귐,가을에는울긋불긋채색된
현란한아름다움이있어그또한좋다.또한겨울산은푹푹쌓여있는
눈과더불어또다른멧세지가있어더욱좋다.

나에게겨울산이어떠냐고묻는다면
"겨울산은조용하고,푸근하고,넉넉하며여유가있다"고대답한다.

겨울산은조용하다.
겨울의산은조용하다못해고즈넉하다는표현이더욱잘어울린다.
봄,여름,가을,그렇게도조잘대던산새,멧새들의지저귐도눈속에뭍혀간곳이없고,어쩌다만나는궝이나산비둘기의퍼득임과잡목사이로분주히오가는참새들의날개짓소리,그리고무릎까지차는눈길을걷는나의발자국소리만들릴뿐고즈넉한산은말이없다.

겨울산은푸근하다.
한여름내내푸르름을자랑하던잎사귀들,가을내내호화롭게치장하고나섰던단풍잎도,모두떨쿠어낸나뭇가지에,수북이쌓인눈송이들은또다른정으로닥아오는데,…
흰눈덮인산길을오르면,매서운바람도코끝에서녹아사라지고,뺨을때리는눈송이는또얼마나시원한가?
게다가초가지붕에쌓여있는눈은그무게만큼이나높게쌓였어도오히려포근하고,푸근하게느껴짐은비록나만이아닐게다.

겨울산은넉넉하다.
온세상이하얀옷으로갈아잎은후에,산을오르면서갈증나는목구멍을적셔주는눈의맛은얼마나상쾌한가?
수북이쌓인눈이휘영청밝은달빛아래펼처보이는산과들은어디고할것없이넉넉함을보여주는데,밝은달이까치밥하나남은감나무가지에걸릴때면이웃집순이네초가집안방에서는새봄에시집보낼순이의이부자리를마련하는모녀간의도란거림은겨울밤을한층정겨움과넉넉함,그리고사랑으로닥아오게한다.

겨울산은여유롭다
겨울에산을오르려면두툼한옷차림은물론,마음도너그러워야된다.
푹푹빠지는눈길은급하다고해서빠른걸음을재촉하지않는다.항상여유롭게,그리고정성스런산오름을말없이가르친다,그러면서도겨울산은항상새봄을준비한다.산골짜기에아무리눈이많이쌓였다하여도그눈밑에는항시샘물이흐르고,산과들어디고할것없이꽁꽁얼어붙어있다해도,그밑의대지는항시물기를머금어새봄을준비한다.

겨울의산행은새봄을맞이하려는힘찬도약이다.
인생살이가어차피머무는것이아니라,끊임없이앞으로나아가는것이라면우리도겨울산을오르면서다시새봄을준비해야하리라.겨울이가면새봄이옴을믿으면서..

산은사계절어느때오르더라도기분이좋다.

나에게겨울산이어떠하더냐고묻는다면…
"겨울산은조용하고,푸근하고,넉넉하며,여유가있고,그러면서
항상새봄을준비하더라"고대답하리라…

SigmundGroven-LondonderryAir(DannyBoy)

[※사진은어제눈오는날올라간우리동네의뒷산입니다.처음부터끝까지혼자였죠^^]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