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의 대중적인 가곡들….




켄터키옛집

얼마전미국을다녀온후

미적거리며게으름을피우다가
이제야그때에찍은사진이나생각들을
정리하노라니자연스레흥얼대는것이
포스터의노래들입니다.

잊어버린지오래인줄알았는데.
그래서.
해묵은책갈피뒤지듯이
여기저기를기웃대다가
모아온노래들입니다^^


‘포스터’StephenCollinsFoster(1826.7.4~1864.1.13)

미국의작곡가.펜실베이니아주의로렌스빌출생.소년시절부터음악에재능을보이고14세때처녀작《티오가왈츠》를작곡하였다.
1841년대학에입학하였으나1주일만에중퇴하고음악교사H.쿠퍼의지도아래베토벤음악을연구,그때부터가곡을작곡하기시작하였다.
44년《창문을열어다오,사랑하는이여》를출판하였으며,그무렵에는친구들과함께합창단을조직하여많은가곡을제공하였다.
48년《오,수재너》가100달러로팔린것에자신을얻어가곡작가의길을택하게되었으며그후《시골경마(競馬)》《고향사람들》《벤조를뜯어라》(1851)《주인은차디찬흙속에》(52)《켄터키옛집》《금발의제니》《올드블랙조》등의작품이E.P.크리스티악단및민스트렐쇼(뮤지컬쇼의일종)등에서불리어유행함으로써그의이름은미국전체에널리알려지게되었다.
그후남북전쟁(1861∼65)의영향으로그의작품에대한인기가떨어지고가정생활의파탄도있어혼자서뉴욕으로떠나거기서37세라는젊은나이로,빈곤과괴로움속에죽었다.


그는마지막4년을뉴욕에서홀로보냈다.37세아까운나이에허름한하숙집에서외롭게숨을거두었다.유해는피츠버그알레게니공동묘지양친곁에묻혔다.포스터의마지막작품’KissMeMotherEreIDie’가연상되어마음이아프다.38센트만을남기고떠난그는이제50센트동전에서만날수있으니역사의아이러니가아니겠는가?아마도포스터가지금살아있다면백만장자가되었을것이다.그당시엔저작권도없었으니수입원이라고는출판사에서받는5~10%의인세밖에없었다.녹음기는그의사후13년후에,라디오는66년후에발명되었다.

공동묘지중앙의영묘靈廟에서는해마다1월이면그의기일1월13일을추도하기위해포스터기념음악회가열린다.뿐만아니라포스터라는이름은미국도처에서발견된다.공원,고속도로,선박,다리,심지어장미와난초에도그의이름을딴품종이있다.호사가들은포스터를일러미국의슈베르트라고한다.가곡의왕슈베르트(FranzSchubert,1797~1828)와미국의슈베르트인포스터는닮은점이많다는것이다.두사람은모두노래를위해평생을바쳤다는것,그들의노래가더할나위없이풍부한선율로이어진다는것,빈곤속에살다30대에요절했다는것,그리고너무나착한사람들이었던것까지닮은꼴이라고지적한다.1850년결혼한JaneMcDowell은여러번포스터곁을떠났다.그래도착한그는계속그녀를위해아름다운노래를바쳤다.그중에하나가’금발의제니’이다.포스터가작곡한작품은284곡(AnneBurch의자료에의하면)이고슈베르트는600여곡을썼다.그러나슈베르트가포스터와달리유럽이라는비옥한문화의토양에음악적천재의씨를뿌렸다는것을감안해야할것이다.슈베르트가1828년운명하고포스터는1826년에탄생했으니가곡으로이어진인연의끈이느껴진다.미국에도포스터이전에작곡가들은있었다.그러나FrancisHopkinson은영국풍의노래를,LowellMason은독일의곡조를,LouisMoreauGottschalk는프랑스의우아함을들어냈다.

포스터의노래는미국인의감정을미국적인작중인물을통해표출한가장미국적인노래이다.그의즐거운노래에는미국인의공통분모와도같은개척정신,고향에대한향수,조건없는사랑이배어있다.상업화된Jazz보다훨씬미국적이라고말할수있을것이다.


‘꿈길에서'(BeatifulDream)


올드블랙조


시골경마

금발의제니


오수재너(Oh,Susanna)


스와니강<하모니카연주>

스와니강<로저바그너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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