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와 아내
BY 모가비 ON 2. 23, 2012
언제부터눈이내리기시작하였는지모르지만,아침에자리에서일어나창밖을내다보니눈이
제법많이쌓였다.가끔멈칫대기도하지만지금도계속눈이내리고있다.나는눈내리는날
에는어김없이벽난로(Firelace)에불을피우고창문을통해보이는앞산과그뒤로펼처진풍경을
보면서사색에잠겨드는것을좋아한다.
습관대로오늘도지난밤에간수해놓은불씨를찾아불을당겨서나무를태운다.벽난로에불이
적당히타기시작하고방안에온기가가득할때쯤에서,아무런생각없이등받이의자에앉아타
는불꽃을바라보면때로는살며시조으름이오기마련이다,그런때면나는간밤에읽다가접어둔
책을가저와서읽으며내나름대로의회상에잠기기도하며책속에있는내용에살을붙여나름
대로의지식을보태어보면서생각을정리해가는것이나의습관이된지도오래이다.이런시간
을즐기려면커피(Coffee)한잔을보태는것이제격이다.특히저녁이면창밖으로어둠이깔리고
멧새들의소리도차츰잠든후면사색의농도도커피의색만큼짙어감을느낄수있어겨을나기가
더욱즐거운기분이된다.
올해는다른어느해보다도땔감이풍부해서좋다.초겨울부터시간이있을때마다숲속의여기
저기쓰러진나무를짜르고모아서곳곳에쌓아둔것이아주요긴하게쓰인다.더욱이내가만든
지게로나무들을운반해놓고장작을패서준비해놓았으니어느해보다도마음이뿌듯한감이다,
타는장작에서피어나는향기를마시면절로사는보람을느낀다.방안에나무타는향내가번질때
쯤이면으레아내와함께차를마시며지나간이야기를나눈다.이야기라해야거개가같은범주에
있어살아온이야기가중심이될수밖에없다,
우리가어떻게만나서이제까지살아올수있었는가하는운명같은이먀기들하며,연애하던시절
의즐거웠던이야기들이다그중에빼놓을수없는이야기는오늘처럼눈오는날경춘선의철로길
따라손을잡고걸으며알지못할장래이지만서로이루어낼가치를더듬으며취한듯꿈에젖어있
던때들의이야기들이다,순서나주제도없이그저이런저런일들을생각나는대로떠올려대화
나누다보면사랑을다시느끼게되는것같아서서로웃으며즐기기도한다.
어느때는"당신은나같이가진것도없었고,자랑할만한집안도아닌데다홀어머니밑에서고생
하는내게시집을와주어서참으로고맙소""여보나같은사람을만나서그동안고생많았오"하며
등을두드리며위로해주기도한다.그럴때면아내는늘"여보그래도우리둘이만났으니당신
이좋아하는전공분야의공부도하고자식들도잘키우지않았어요?사람사는데행복이라는것이
바로이런것이아니겠어요?"라고대답한다.나는이런아내의말을들을때마다가슴이뭉클함을
느끼게된다.이제나이도칠십이넘었으니,앞으로는살아갈일보다도살아온뒷얘기가점점더
많아지고.그래서기억의뒷편에있는이야기도점점더많이늘어놓게된다.
벽난로의불길이성해질때생각나는옛일이또있다.그것은돌아가신할머니가들려주신불씨
의이야기다.어렸을적의우리는저녁때가되면으레큰집에가서헛간에채곡채곡쌓여있는조
와벼의짚을작두에썰어너댓삼태기정도차면삼태기에담아다가가마솥에쏟아붙고소에게
줄여물을끓여야했었다.여물가마는할머니가주무시는건너방의부엌에있었는데장작에불
을지펴서때거나,또는근처의제재소에서모아온톱밥을가저와서풍구질을하며끓여야했다.
소여물에는철마다콩이나다른곡식도가끔섞어서여물을끓인다.다끓은여물은나무함지에
담아서소마구깐여물통(구유)에쏟아부어준다.김이술술나는여물을뒤처서(섞어서)주면배
고팟던황소가꾸역꾸역여물을씹어먹는다.할머니는그시간이되면반드시부엌에나오셔서
타다남은장작을아궁이속의잿더미에심(묻)으며하시던말씀이다."불씨가죽어서옆집이나
이웃에불씨를얻으러다닌다는것은아주좋지못한일이다"라고하시면서,"불씨를제때에잘
묻어서간직하는집안이잘되는집안이다"라고늘말씀하셨다.그리면서손자들에게"너희들도
장가를갈때에는불씨를잘묻어두는집안의딸들에장가를들라"고하시던말씀이다.
하기야그럴것이다,불씨를잘묻어둔다라는말자체가다음에쓸것을생각하고내일을준비
한다는말이라할수있을터이니,달리생각하면장차의일을설계하고사는집안이라야잘된
다는이야기일것이고이러한집안에서자라난처녀라면내일을보고준비하면서사는태도를
배웠을것이니신부감으로는제격이리라생각된다.이렇게심어둔불씨는새벽여물을끓일때
덮어놓은재를헤치고아직살아있는숯불을골라,소갈비("소나무의낙엽이마른것"을이르
는강릉지방의사투리)를한줌들어불붙은숯을싸서입을오무려서"후후~~"하고불면송진먹
은갈비라불이더욱잘붙는다.마침내가마솥에서여물이잘끓으면함지에담아소외양간에
으로가서소구유에쏟아부어여물을먹이고학교로가기도했다.
지난밤에나도참나무장작을때다가,할머니를기억하면서불씨를묻어서내일아침에불을피
워야겟다고생각하며타고남은장작불은난로속(Fireplace)의재를한군데로뫃아덮어서불씨
를심어놓았다.그리고는오늘아침여섯시에되자바로일어나.아랫층의가족방(familyroom)
으로내려가서벽난로를열고불씨를찾았다.참나무숯불은아직도불이잘붙어있었다.나는
큰보물을얻은것처럼환희를느꼇다.그러면서우리할머니가몸소보여주셧던불씨심는방법
이아직도나에게이식되어살아있구나하는생각을하게된다.
나는뒤돌아보면서아내에게말했다.“여보,당신은불씨를잘키우는집안에서온것같소.그
러니우리할머니말씀처럼내가운이좋은사람인가보오”“거기에다당신은셋째딸이니,옛
말에셋째딸은선도보지않고데려간다던데,내가참행운이있는사람인가보우”“그런데당신
은눈이어떻게잘못되었던지나같은시골사람을만나서좋다고서로들사귀게되었소?”아내가
말했다.“여보뭐니뭐니해도연애시절에서로들속삭이던꿈들이있었고그꿈이같았고그러
기때문에지금까지견디며모두이루지않았어요”“그러니이제는우리모두건강하게잘사는
것밖에없지않소,남부러워할것하나도없어요.”“그저모든것을감사하면서살아갑시다.”
나는아내의말에고개를끄덕이면서"역시당신은우리집에서도불씨였오"하면서함께웃으면서
가볍게포옹하면서고마움을보였다.
벽난로에서는여전히장작이시원하게타고,타는장작에서뿜어나오는열이온방안을따뜻하게
데워놓는다.타는장작의향기가아내와함께마시는커피의향기와버무러저더욱감칠맛이다.
지금도밖에는여전히눈이내리고있다.
그리운내고향강원도산천의
하얀설경이눈에잡힐듯떠오른다
[K.SH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