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 가운데 있는 아늑한 장충단공원

도심속에서잠시라도아늑한곳에앉아쉬고싶다면장충단공원이제격이다.

장충단공원은우리민족의아픔을함께해온역사적인공간임은널리알려진

사실이지만오늘날의장충단공원은사뭇다른감상을주기에족하다.

장충단공원의역사는따로자료를준비해서아래에첨부하겠지만,현세대를

살고있는우리의기억에는1950년대후반부터서울에서주요시국강연이있

을때면어김없이이곳이었다.

기억을더듬어찾아보니1957년당시자유당의독재를성토하기위한야당의

시국강연들도주로이곳에서이루어진이후주요선거가있을때마다이곳이단

골유세장이었던기억이생생하다.그집회중에서도유명한것이위에든야

당의"국민주권옹호투쟁위원회"가시국강연회을할때에일어난폭력사건인데

50여명의폭력배가몰려들어연단에돌팔매질을하고,그중10여명이몽둥이

를들고단상에올라와연단을뒤집어엎었던"장충단집회방해"사건이있었고.

1970년대의들어와서는대통령선거등주요이슈가있을만한집회들도이

공원에서많이개최되어있었는데대표적인집회가1971년대통령선거시에

당시박정희후보와김대중후보가번갈아서유세를펼첬는데그청중동원의

많고적음이또한많은초미의관심을불러일으켰던사실도있었다.

장충단공원은1900년에고종황제가이자리에장충단을꾸미고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시해되었을때순사(殉死)한궁내부대신이경직(李耕稙)과연대장

홍계훈(洪啓薰)을비롯한장졸들의영혼을배향하여봄·가을에제사를지내게

한것이효시였고당시의규모또한대단히넓어현재의동국대학교,자유센터

와타워호텔·중앙공무원교육원(그뒤동국대학교로양도)·재향군인회등이들

어섰으며그때마다공원면적은크게축소되어현재는남산공원의일부에속

하며,광장·놀이터·분수대등의공원시설과석호정(石虎亭).장충단비석.이준

열사동상사명대사동상등이있는현재와같은규모가되었다.

서울에살면서도굳이이곳에내릴일이없는지라매양지나치기만하였는데

이날또한서울성곽길을돌자고해서떠났으나함께한친구들이장충단공원을

추천하여찾게된것은오히려다행한일이었다.

사실우리들의기억속에는위의사건들에연상되응운동장으로만생각하였는

데공원을한바퀴돌면서느낌은삭막함보다는아늑한정원을거니는느낌..

졸졸흐르는물이있고,조그만폭포도있고,제철마다피는꽃들이생글거리

며추파를보내는폼이예사롭지않다.그곳은공원이라기보다

정원이라함이더친근하리라.

장충단공원[奬忠壇公園]

남산동쪽종남산기슭아래조성된공원으로,민족의아픔을함께해온역사적인공간이다.

현재는남산공원의일부에속하며,광장·놀이터·분수대등의공원시설과석호정(石虎亭)·

장충단비석·이준열사동상·사명대사동상등이있다.

예로부터경치가좋기로유명했던이계곡에는조선영조중엽이래도성남쪽을수비하던

어영청의분소인남소영(南小營)이있었고,근처에는남소문(南小門)이있었다.1895년을

미사변으로명성황후민씨가살해된후5년뒤인1900년9월고종은이곳에사전(祠殿)1동

과부속건물2채를건립하고장충단을꾸며,을미사변으로순사(殉死)한궁내부대신이경직

과연대장홍계훈을비롯한호위장졸들의영혼을위하여매년봄·가을에제사를드렸다.

그러나1910년8월일제에의해장충단은폐사되고,1920년대후반부터는민족정신을말살

하려는그들의의도에따라장충단공원이라하여,벚꽃수천그루를심고놀이터·연못·산책

로·광장·교량등의시설을설치하는한편,상하이사변때전사한일본군의동상을비롯해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의보제사(菩提寺)인박문사등을건립했다.박문사의건물은경

복궁의예원전및부속건물을이축한것이고입구의문은옛경희궁의흥화문을옮겨세운

것이었다.

8·15해방직후이것들은즉시철거되었고,여러가지공원시설물들이들어서게되었다.

6·25전쟁으로장충단사전과부속건물은완전히소실되고,장충단비(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호)가남아있을뿐이다.현재그자리에는신라호텔의일부와한때국빈전용의숙소였

던영빈관이있다.비의전면에새겨진’奬忠壇’이라는글자는순종이황태자일때쓴글씨

이고,뒷면에는민영환이쓴143자의문장이새겨져있다.1959년청계천복개공사로이전한

수표교가근15년간공원의초입에있었으나,지금은세종대왕기념관에보존되어있다.

장충단공원내에는1960년대이후자유센터,서울타워호텔,중앙공무원교육원(1993년현

재경기과천시소재),재향군인회,신라호텔,장충체육관,국립극장,국립국악원,국립국악

고등학교등을비롯해어린이야구장·테니스장·수영장등의각종시설물이건립되어,처음

42만㎡넓이의공원이계속축소되고주변환경이훼손되었다.장충단공원을독립된근린공

원으로존속시킬경우과다한시설물의건립을막을방법이없고,남산공원과함께보존하는

것이보다합리적이라고판단한정부는공원전역을자연공원인남산공원의일부로흡수하기

에이르렀다.신라호텔,장충체육관등의고급문화·위락시설이있는장충단공원은시내중

심부에위치할뿐만아니라지하철3호선동대입구역에서바로공원으로진입할수있다.

최근서울시는1996년까지6개년계획으로,급격한도시화에의해훼손되어가는남산을회복

시켜보호하고자’남산제모습찾기’사업을실시하고있다.이에따라장충단공원부지

3만3,060㎡에남산계곡에서끌어들인물로소폭포와돌다리등을만들어하천경관을조성

하고,경로당및노인위락시설이마련된노인모임터와어린이놀이터를조성할예정이다.

국립국악고등학교자리1만3,224㎡는민속공연장으로꾸미고,서울공연예술회관을건립,

각종공연활동의연습장및연구장소로활용할예정이다.또한장충단공원을비롯해동서남

북각지역에서남산으로들어가는진입로를너비12~20m로확장해산속산책로와연결시

켜시민들이자유롭게드나들수있도록대폭정비해나가고있다.남산전체를덮고있는아

까시나무·은사시나무등의볼품없는외래수종을점차로없애고남산고유수종인소나무와

신갈나무로바꾸어나가며,일제강점기에심하게훼손된주변의역사유적을복원·재현해나

가고있다.

[자료출처:다움검색"브리태니커"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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