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단공원
예로부터경치가좋기로유명했던이계곡에는조선영조중엽이래도성남쪽을수비하던
어영청의분소인남소영(南小營)이있었고,근처에는남소문(南小門)이있었다.1895년을
미사변으로명성황후민씨가살해된후5년뒤인1900년9월
과부속건물2채를건립하고장충단을꾸며,을미사변으로순사(殉死)한궁내부대신이경직
과연대장홍계훈을비롯한호위장졸들의영혼을위하여매년봄·가을에제사를드렸다.
그러나1910년8월일제에의해장충단은폐사되고,1920년대후반부터는민족정신을말살
하려는그들의의도에따라장충단공원이라하여,벚꽃수천그루를심고놀이터·연못·산책
로·광장·교량등의시설을설치하는한편,상하이사변때전사한일본군의동상을비롯해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의보제사(菩提寺)인박문사등을건립했다.박문사의건물은경
복궁의예원전및부속건물을이축한것이고입구의문은옛경희궁의흥화문을옮겨세운
것이었다.
8·15해방직후이것들은즉시철거되었고,여러가지공원시설물들이들어서게되었다.
6·25전쟁으로장충단사전과부속건물은완전히소실되고,장충단비(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호)가남아있을뿐이다.현재그자리에는신라호텔의일부와한때국빈전용의숙소였
던영빈관이있다.비의전면에새겨진’奬忠壇’이라는글자는순종이황태자일때쓴글씨
이고,뒷면에는민영환이쓴143자의문장이새겨져있다.1959년청계천복개공사로이전한
수표교가근15년간공원의초입에있었으나,지금은세종대왕기념관에보존되어있다.
장충단공원내에는1960년대이후자유센터,서울타워호텔,중앙공무원교육원(1993년현
재경기과천시소재),재향군인회,신라호텔,장충체육관,국립극장,국립국악원,국립국악
고등학교등을비롯해어린이야구장·테니스장·수영장등의각종시설물이건립되어,처음
42만㎡넓이의공원이계속축소되고주변환경이훼손되었다.장충단공원을독립된근린공
원으로존속시킬경우과다한시설물의건립을막을방법이없고,남산공원과함께보존하는
것이보다합리적이라고판단한정부는공원전역을자연공원인남산공원의일부로흡수하기
에이르렀다.신라호텔,장충체육관등의고급문화·위락시설이있는장충단공원은시내중
심부에위치할뿐만아니라지하철3호선동대입구역에서바로공원으로진입할수있다.
최근서울시는1996년까지6개년계획으로,급격한도시화에의해훼손되어가는남산을회복
시켜보호하고자’남산제모습찾기’사업을실시하고있다.이에따라장충단공원부지
3만3,060㎡에남산계곡에서끌어들인물로소폭포와돌다리등을만들어하천경관을조성
하고,경로당및노인위락시설이마련된노인모임터와어린이놀이터를조성할예정이다.
국립국악고등학교자리1만3,224㎡는민속공연장으로꾸미고,서울공연예술회관을건립,
각종공연활동의연습장및연구장소로활용할예정이다.또한장충단공원을비롯해동서남
북각지역에서남산으로들어가는진입로를너비12~20m로확장해산속산책로와연결시
켜시민들이자유롭게드나들수있도록대폭정비해나가고있다.남산전체를덮고있는아
까시나무·은사시나무등의볼품없는외래수종을점차로없애고남산고유수종인소나무와
신갈나무로바꾸어나가며,일제강점기에심하게훼손된주변의역사유적을복원·재현해나
가고있다.
[자료출처:다움검색"브리태니커"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