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에 다녀 온 산소(山所)

작년까지는형님도귀국하시여한식에는사초도하고추석엔성묘도하였건만

미국으로돌아가신후다시혼자이니외로움도더한듯걸음걸이가무거웠다.

아침8시,고속터미널에서출발하여강릉으로가는길은때마침강릉의"벗꽃

축제"가있어서인지초봄의행락객들로붐벼예정시간보다1시간이더걸렸다.

뻐스에서내려걸어가려하였더니느닷없이봄비가내려택시로산소의입구

까지가서내렸는데….아차낫이나괭이를빌릴수없다.내심으로는이곳의

동네서농사지으며살고있는박선생이나후배에게빌려쓸요량이었는데두집

모두출타하였다니난감이다.설상가상으로두집의지킴이개들이얼마나요란

스럽게짓어대는지떨어저있어도겁이난다.할수없이동창생명부를들추어

한명에게부탁을하였더니오토바이를타고총알같이찾아와빌려주고간다.

그제야문득동해쪽의하늘을보니제법개인날씨가청량감을준다

-산소(山所)들머리-

야트막한능선을오르는길은아직은많이피지않았지만몇그루는진달래꽃을

피우고,생강나무도듬성듬성꽃을피우면서도조심하는눈치가얼마전에엄청

내렸던눈에넋을잃고깨어나지않은모습이다.아름드리소나무도몇그루넘어

젔는지몇군데가비어있고아랫집에서치웠는지톱질의흔적도남아있다.

그러나다행인것은무덤가에버티고서있는연리근(連理根)소나무는으젓한모습으로서있어

반가워팔벌려아름으로껴안았다.그간에도많이튼실하여아름이모자란다.

<산등성이의봄>

-아버님무덤가에서-

마른잎헝클어진

"안땔"의산등성이

새봄을기다리며인고로지샌나날

엄동의

북풍한설도

다독거려잠재웠다

마지막꽃샘추위

무덤덤보낸후에

진달래생강나무,어루만저다듬고

내심에

쌓아두었던

한뉘의정,건넨다

빌린장구로한참정리하여자리를폈다카메라가방에넣어온제수(祭需)들을꺼내어

조촐하게차려놓았다.이들은모두아내가준비하여가방에넣어준것인데사과와배,

그리고한라봉,이렇게삼색과일을펴고.오징어와황태포그리고찹쌀떡과소주로제상을

차리고예를올렸다.

산소(山所)에와서절을올린후면,언제나쓸쓸하고착잡해진다.특히오늘같이혼자

성묘하는날은더욱그렇다.그러면서돌아가신아버님을떠올릴때마다질곡속에서살

아오면서겪은생의그림자들이나를숙연하게한다.

군대생활을오래한나의삶속에는한가지징크스(?)가있었다.그것은누구에게나중요한

고비인진급철이되면기디려지는한가지가떠올랐다.그것은기대와희망속에날을보내는

그즈음에는꼭꿈을꾸게되는데그것이바로아버님이현몽하는것이었다.어떤때는잠시

지나처가시기도하고또어떤때에는바라보기만하시던것으로도기억된다.그런일이있을

때면혼자그해에성묘를못한일이새삼떠오르고급한업무처리후다녀오리

라다짐하곤하였다.(내심은한계급더오르면좋을텐데하는기대도하면서~~)

성묘를마치고음복을하니머리도아르르하고혼자다시산소(山所)를한바퀴돌고

남은술잔을비우면서걸어온길을내려다본다.이곳을처음올때는논뚝밭뚝길을

따라오르곤하였는데이곳까지포장된모습을보면많이변하였다.

다시돌아가야할시간에꾸벅인사를더드리고발길을돌린다.내려오는길에폭설에

부러진소나무의잔해가아직남아있어다시손질하였다.작은가지들이라해도한

켠에모아두면산아랫집에서화목으로쓰리라~~

한참을내려와다시뒤를돌아보았다.학교후배가사는집텃밭에는벗나무묘목이

심어저있고제철을만난듯화사한벗꽃이피었다.

문득머리를들어멀리바라보았다.태백산맥의지류인먼산엔아직눈이쌓여있었다

그러고보니그먼산이있는쪽은어단리인데..그곳에친구가있는데~~~하는회상의끝에

떠오르는잊었던기억이나를깨운다.

그것은"6.25피난"생각이다.

"6.25전쟁이터진이틀후우리는저산을넘어서왕산리-삽당령-

고단리를거처정선군임계면낙천리의외갓집으로갈때넘은길..

8살배기어린애가검정고무신신고타달대며걸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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