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쓸쓸함의 끝은 어디인가?

"남편 휴가 받으면 애 맡기고 샌프란시스코로 가려해, 가서 차인표 생각만 하다 올거야"

하는 말마다 파격적인 BJ는 다섯자매가 포진한 딸 부잣집의 셋째이다. 다섯 자매가 다 명문대를 나와서 어지간한 대학 명함은 내밀지도 못할 만큼 재원들이다.그녀는 Y대 화학과를 졸업한 그 해 고교 화학교사로 사회에 입문한 뒤 고리타분하다며 일년도 못되어 그만두고 , 다시 S대 약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와서 약국을 경영하였다. 젊음의 피를 수혈해야 한다나, 20대만이 자기의 산소라나 하면서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약국은 지겨워. 그래서 다시 치대를 도전해볼까 해" 라며 치의대 공부를 하는 듯 싶었다."젊음이 그리워서 안 되겠어. 대학에 이력서 냈거든." 하면서이내 강사 자리 하나없나 알아보고 있다며 기다려봐야 겠다 하곤 여지껏 기다리는 중인지 거기에 대해선 별반 말이 없다.

만나는 장소도 명동이나 대학로, 또는 인사동을 즐기는 통에 거리가 먼 나로서는 한 번 만나려면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늦게 도착하기 일쑤였다. 어김없이 먼저도착해 기다리는 조용한 모습의 그녀. 마르고 왜소한 체격은 굳이 둘러 볼 필요도 없이 그림자만 봐도 그녀였다. 어울리지 않는 20대 여성의 옷 차림에 얼굴은 까맣게 기미가 앉아 마주보고 있으면, 동정심마저 슬그머니 생기는 것이 민망하기조차 했다.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 증세가 심해 어깨는 에곤 실러(오스트리아의 화가)의 그림에 나오는 깡마른 소녀를 연상시키고 ,굵지도 않은 허벅지인데 지방 제거 수술까지 받아 움푹 들어 가게 만들어 놓지를 않나,먹지 않아서생긴 숱한 주름에다 머리까지 노랗게 염색을 해서 텍사스 촌에서 갓 나온 여자처럼 하고는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곤 했다.

"넌 어쩜 10년이 넘게 남편을 사랑할 수 있니? 난 신혼여행가서 남편이 비전 없다는 걸 알았어" 라며 애정관을 피력하던 그녀.

어느 날 지고 온 배낭에서 커다란 앨범을 꺼내면서

"요즘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겨서 너무 행복해"

하며 펼치는데 그 두꺼운 사진첩이 죄다 조성모라는 가수의각기 다른 사진들이었다. 잠깐 정신 상태가 의심이 되었지만 불쌍하기도하고, 별 도리가 없어관심있는 체하며 "어머 잘 생겼다"를 연발하며 보았다.소근거리는 목소리로자긴 팬 클럽에도 가입하고 그 가수의 콘서트라면 지방에도 쫒아간다고 했다.

" 나 이 남자라면 아이도 가질 수 있고 이혼도 하겠어"

이어지는 대화가 점입가경으로 무슨 말을 어찌 해야 할지, 표정관리가 힘들어 웃음으로 대꾸하고 말았다. 첨엔 차인표더니 그 다음은 송승헌의 브로마이드를 문방구를 헤집고 다니며 사들여 온 벽에 도배를 해서 영화에나 나오는 살인범죄자들의 특징을 떠 올리게 하더니 이젠 더 어린 가수에게 집착하는거였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가 온 것은 그로부터 일 이년이 지나선가보다.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한 남자를 봤는데오후 1시쯤이면 그 남자가 나타나 버스를탔거든, 근데요즘 안보인다. 어쩌지?"

"어떤 남잔데? 조성모는 어찌 되었니?"

BJ의뉴 페이스는 20대 초반의 생머리를 뒤로 젖히며 다니는 외모가 멋진 20대 초반의 젊은 새 오빠.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며 까만 작은 가방을 달랑 들고 갓 감은 머릴하고는 샴푸 냄새를 풍기며 차에 오르곤 한다는 거다. "말은 해 봤니?" "아니 한 번은 옆에 모른 척하고 앉아 봤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하는 것 같은데?" " 어어, 웨이터인 것 같애. 전화하는 소릴 들으니 그런 것 같애"

그 후로도 짝사랑이긴 할지언정 남성 편력(?)은 계속되는데유명 연예인에서 일반인으로 옮겨서는 근처 수퍼 마켓의 오이파는 청년을 보러 하루에 10번 이상들락거리면서 잔뜩 산 오이를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고는 했다. 그러다 유창한 영어 실력탓인지 관심이 외국인에게로 옮겨 가기도 했다. 언젠가는스파게티 전문점의 아르바이트 학생을 보러 매일 가더니 그 학생 집이 인천으로 이사를 가서 인천 지점에 근무한다니까 자기도 그리로 가야겠다질 않나, 그 애가 자길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는 둥, 남편과 일부러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서는 스릴을 즐겼는데 남편에게 은근히 고소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는 둥…

찰리 채플린이나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등 자신과 나이차가 많이 나는 이성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이 상대와 동일한 세대라 생각한단다. 또 소설 제목에서 따온 ‘롤리타 신드롬’도 있는데 중년 남성들의 소녀취향의 성적 집착을 이르는 말이다. B도 그런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일반적인 40대 아줌마와는 딴 판인 사고와 판이한 관심 분야를 갖고 있는그녀. 몽상가도 아닌 것이 바람둥이도 아니며, 얘깃거리 남길 만 한 연애사도 하나 이루질 못하면서 저러니 영 유쾌하질 못했다. 처음엔상대에 대한관심만으로 만족하더니 갈 수록 하는 폼이 상대도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투사(投射)까지하기에 이르렀다. 유명인이나 특정인에 대한 애정을 과하게 표현하는 경우를 망상장애라고 한다. 일종의 정신장애로 과하면 우울증도 된다.마음이 아팠다. 도대체 삶에서 지치지 않고 피어 오르는 이 근원 모를 쓸쓸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눈이 돌아갈 만큼 빠르게 변하며, 바삐 뛰어야 하는 이 속도의 시대에 충분히 배우고 충분히 가진 한 중년 여자의 삶은 왜 이리도 쓸쓸한 것인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은 존재 자체에 외로움이 있다. 누구에게나 기대거나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공허함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 부는 ‘욘사마’ 열풍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그네들도 거의가 중년 여성들 아닌가. 무엇이 그녀들을 ‘욘사마’에게 쏠리게 하는걸까?

"그냥네가 행복하면 되니 그대로 그 자체를 즐겨" 라고 했지만 씁쓸했다. 더 힘든 것은 그녀의 애정에 목말라 애타하는 빛이 역력한 눈동자가 슬펐다.

그녀의 종이공작 같은 남성 편력을 어찌 할거나. 곧 마음이 아려 오면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순간, 잠시만이라도 그녀가 실제적으로 숨쉬며,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진짜 사랑을 조각했으면 싶었다. 어찌 아는가, 혹시 피그말리온효과라도 볼지.

BJ가 진정 손으로 만질 수있는 어떤 대상을 만난다면 이리 절절하게 사랑할 수있을까?

그녀에게 오랫만에전화를 했다

"너의대남관계는 이상없니? 여전한거야?"

"요새 나 그림 그리러 다녀. 미술 선생님이 멋있어. 나한테는 관심이 없고 새로 들어 온 젊은 여우한테만 잘 보이려해. 근데 퇴직한 은행 지점장이 자꾸 느끼한 미소를 보내야. 짜증나. 그 늙은이는 싫은데 말이야. 미술 선생님 한테 말 한 번 붙여 볼까?"

전화를 끊고 기미가 덮인 얼굴의 그녀를 생각했다. 마음이 아려 오면서우울하게도 내가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16 Comments

  1. Dreamer

    2006년 2월 2일 at 8:01 오전

    BJ님 속도 많이 쓸쓸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말은 그리하셔도..

    SH   

  2. Lisa♡

    2006년 2월 2일 at 8:04 오전

    그렇죠? 맞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아닙니까?   

  3. 요또또

    2006년 2월 2일 at 12:09 오후

    좀 특이한 친구분이긴 하지만 저도 일일연속극의 석현이를 좋아하는데요~~   

  4. Lisa♡

    2006년 2월 2일 at 12:18 오후

    석현이라하시면 제가 모르고 본명을..ㅎㅎ
    얼마든지 그럴 수 잇죠.
    저도 장동건팬인데요…뭐.
    반갑습니다.   

  5. 백의민족

    2006년 2월 2일 at 2:45 오후

    Lisa♡님 !
    재미있는 친구분들 두셨습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친구분은 깔끔파였는데
    BJ란 친구분은 뭐라할까 음~~영계파 ?
    여하간 자유분망하고 지성과 감성이 풍부한 여성으로 보여집니다..

    아참 그리고 님께서 창사랑에 가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소는 http://www.changsarang.com 입니다.
    님과 같이 필력이 뛰어나신 분들이 이회창님에 대한 글을 써주신다면
    창사랑회원들의 사랑을 흠뻑 받으실 것입니다.
    기대하겠습니다.   

  6. Lisa♡

    2006년 2월 2일 at 2:53 오후

    그럴까요? 내일 제 스토커랑 상의후에 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과찬의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7. 처복

    2006년 2월 3일 at 12:31 오전

    리사님, 이지적인 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번에 진단을 하시는군요. ‘망상장애’
    우리나라 국민 4800만 중, 심각한 정신질환자가 100만 명이랍니다.
    노이로제, 우울증까지 하면 근 10%의 국민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더군요.

    선진국에서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건강문제를 ‘정신건강 지키기’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분이 글의 내용 정도라면 나름대로 행복하실 것으로 보이는군요. 다만 현실과 괴리가 있어서 그렇지요…리사님, 건강하게 삽시다!   

  8. Lisa♡

    2006년 2월 3일 at 3:49 오전

    어제도 뭐하냐 전화했더니 일산 호수공원을 혼자 산책한다고 하더군요.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삽시다.   

  9. 김의순

    2006년 2월 3일 at 6:08 오전

    리사님,
    난 첨엔 웃었는데, 후반전은 영 그게 아니네요.
    한가지 분명한 건 리사님이 참 총명하다는 겁니다.
    이거 여… 아닙니다. 아주 좋은 글입니다.
       

  10. Lisa♡

    2006년 2월 3일 at 8:43 오전

    의순님..진짜로 감사합니다.
    이 글 어찌보면 참 슬픈 글이랍니다.
    읽고 나면 쓸쓸해 지는 글이지요.
       

  11. ariel

    2006년 2월 3일 at 1:52 오후

    나도 장동건 좋아요.
    그리고field of dreams 의 kevin costner
    pretty woman 의 richard gear..^^
    그런데 가서 아이 낳아주고 싶은 남자는 아직..
    이것은 다 농담이고..

    친구분 불쌍하네요. 여자로 태어나 사랑 받는게
    제일 행복한 것 인데.. 친구분이 좋은 사람 만나
    많은 사랑 받으면 좋겠네요~~   

  12. Lisa♡

    2006년 2월 3일 at 2:31 오후

    장동건..첨엔 관심도 없다가 어느 날부터 그의 팬이 되어 버렸어요.
    우리나라 대표 스타라는 느낌이 팍팍 옵니다.
    나도 pretty woman의 리차드 기어는 좋아요.
    제 친구요? 불쌍하고 언제나 뭔가를 갈망하는
    그런 눈빛을 가졌어요. 제 생각도 좋은 사람만나
    사랑받았으면 좋겠어요.   

  13. 무우꽃

    2006년 2월 3일 at 11:34 오후

    하하, 열정이 있어 좋네요.
    치여도 버려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좋은 거죠.
    근 11번(?)쯤이나 남자를 갈아치운 리즈 테일러…..가 아름답다 하는 이유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멎지고 제일 사랑한다고 깊이깊이 말한데서 있답니다.

    말하자면 그 순간, 그 한사람만을 전부를 바쳐 사랑한 용기를 칭찬한거죠.   

  14. Lisa♡

    2006년 2월 4일 at 1:34 오전

    무우꽃님의 그 긍정적인 사고를 높이 십니다.
    저는 무우꽃님처럼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편하더라구요.
    맞습니다. 그 순간의 열정이 그 순간은 최고인거죠.
    방문과 댓글 감사드립니다.   

  15. 히말라야

    2006년 2월 5일 at 11:11 오전

    독일의 대문호 괘테는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18세의 동네 소녀를 진실로 사랑할 수있는 열정과 삶에 대한 끝없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파우스트라는 대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감정 자체는 결코….
    다만 그욕심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지요…….
    그 자체가 전부가 된다면 우린 보헤미안으로 …… 되지않을까요. 사랑에 대한 욕심 만큼
    처절하고 순수한것은 없지 않을까요….   

  16. Lisa♡

    2006년 2월 5일 at 11:21 오전

    와우~ 맞아요…파우스트…맞다, 맞어.
    그럼요, 사랑은 순수 그 자체로 다가오죠.
    언제나 처음처럼…
    저도 사랑에 대해선 노하우가 좀…
    그런데 요즘은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