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이쁜 그녀

남편에게는 누나와 사촌 누나, 그리고 사촌 형 한 명이 남매의 전부다. 부산서 사는 누나와도 잘 지내지만 떨어져 있는 거리는 어쩔 수 없는지 아무래도 가까운 사촌 누나랑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나랑은 시누이와 올케 사이인데도 거의 아삼륙이다.

이 사촌 누나는 런던서 팔년 뉴욕서 칠년을 살다가 올해 이월 주재원 생활을 접고 서울에 정착하게 되었다.

덕분에 런던에 갔을 때 편하게 긴 시간 동안 여행할 수 있었으며 시간만 나면 뉴욕에 가고는 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우리는 눈만 마주쳐도 웃었다. 그냥 한마디만 해도 왜 그리 웃기는지맨날 깔깔대느라 즐거워했다. 서로가 즐기는 농담의 정도를 알아본다고나 할까.

남편이 누나라고 부르니 나도 따라 “누나”라고 부르기시작한 게 호칭이 되어 버렸다.나이도 두세살 터울 밖에 안지니 친구처럼 흉허물 없이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그녀는 웃으며 내게 말한다.

"너의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구나, 왜 누나야? 너 혹시 성전환 수술한 건 아니지?" 라고.

매 해 바람난 시골 처녀 도회로 나가듯 어김없이 그 해도 뉴욕의 가을을 보러 그녀에게로 갔다. ‘뉴욕의 가을’ 이라는 영화를 본지 얼마 뒤라 나름대로 센트럴 파크도 즐길 겸 제법 그럴듯한 계획을 갖고 갔다.

달랑 조그만 가방에 짐도 없이 가볍게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가자니 아니나 다를까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의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방문 선물은 일거수 일투족을 담은 앨범이라나 뭐라나. 매 번 거나한 선물을 손에 들려주는 터라 듣기에 좀 섭섭했다. 그러더니 어딜가나 내 모습을 사진기에 담기 바빴다. 사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영 내키지 않는 일중에 하나가 사진찍기인데 말이다.

하루는사는 곳은 뉴저지인데 대학생 두 딸이 맨하탄의 아파트에 사는지라 아침 일찍 우리는 뉴욕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게다가 내 친정 조카 녀석이 그곳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중이라 그 녀석을 불러내어 식사라도 할까 해서였다.

그녀가 꽤 오래 살았기에 교통망 정도는 걱정도 안하였으나 그건 나의 착오였다. 일방통행이거나 복잡한 맨하탄의 시내를 거침없이 차로 다니기란 걸어 다니는 것보다 힘들었다. 약간 알아보기 힘든 신호등이 나타났다. 내 보기에 좌회전이 아닌데 누나가 차를 좌로 돌리는 거였다. 아닌데 싶었다.

“누나, 가도 되는 거야?”

“응 걱정마”

"어머, 어떡해"

팔차선이 넘는 시내 한복판의 도로를 일방통행과 반대로 가버린 것이다. 그 순간의 몇초는 정말 길었다. 신호가 바뀌니까 건너편에서 몰려오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번쩍거리며 난리가 난 것이다. 일방통행 길에 거꾸로 접어든 것이다. 한국서도 당황을 할 게 뻔한 상황에 말도 안 통하는 이국땅에서 이꼴이라니. 동양 여자 두 명이 백주 대낮에 뉴욕의 한복판에서 수 십대의 차들과 대치하는 상황이란 영화 속 아니면 볼 수도 없는 진풍경이었다.

놀랜 가운데서 “어째”를 연발하면서 주위를 보니 자그마한 골목길이 보였다.

“누나. 빨리 저 옆으로 가. 골목길, 골목길 말이야!” 다급하게 외쳤다.

한순간 모든 세상이 정지된 듯했다. 겨우 피한 것이다. 그런 뒤에 골목길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너무 재미있었나 보다.

그 와중에 사진촬영을 못한 게 아쉽다고 투덜거리는 그녀였다.

주차를 시킨 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소호의 거리를 활보했다.최첨단으로 설치해놓은 매장들의 쇼 윈도우 구경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개성 만점 옷차림에 한 눈 팔기도 했다. 머릿수건을 질끈 매고 나온 내 조카 녀석의 변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누나는 자기랑은친척 사이도 아닌 나의 조카 녀석에게 맛있는 점심과 용돈을 듬뿍 쥐어 주는 거였다. 항상 그랬다. 그녀는 남에게 베푸는 일에는 어느 누구보다 선행이었다.

무너진 쌍둥이 빌딩의 바로 옆인 아파트에서 딸들이 어질러 놓은 옷가지들을 정리하자 곧 어두컴컴해 왔다. 여기저기 마천루들 사이에 서로 대결하듯 불들이 휘황하게 켜지기 시작했다.뉴저지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났다.

차를 몰고 워싱턴 다리를 건너기 위해 헛슨강변의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그때 딩동! 하고 경고음이 울리더니 차가 이상했다. 아까부터 깜박이던 경고등이 멈추면서 고속도로 위에서 그만 차가 서버린 것이었다. 기름이 바닥난 거였다.

겨우 차를 길옆에 댄 후, 비상등을 켜놓았다. 같이 있으니 망정이지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했다. 지나가던 차들이 서로 질세라 경적을 울렸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처하다니 끔찍했다. 누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큰딸에게 전화를 했다. 영어를 수월히 해도 보험회사에 전화할 정도는 좀 그랬나 보았다. 애들이야 내이티브 스피커이니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몇십 분이 영원과 같았다.

금방 경찰이 왔다. 사정을 듣더니 차를 더 길 옆으로 옮기자 했다. 자기도 우리 차 뒤에 경찰차의 비상등을 켜고 같이 있어 주었다. 위험하니까. 어떤 미친 사람이 가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도로도 상당히 위험했다. 미국 경찰은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오는지 항상 빨리 나타난다.

견인차가 먼저 도착하더니 회사의 지시를 기다린다며 앞에 서있었다. 그 와중에 누나가 기념이라며 날더러 빨리 그 차 옆에 가서 서라 했다. 기념 촬영을 하자는 거다. 나는 쭈뼛거리면서 나가서 고속도로 한 켠에서 빨갛고 노란 불이 빙글빙글 도는 차를 잡고 포즈를 취했다. 이 사진은 고스란히 기념 앨범속에 담겨 나의 손에 넘어왔다.

한참 후에 전화가 오는가 싶더니 견인차가 우리더러 자기 차로 갈아타라는 거였다. 미국이라는 데가 워낙 안심할 곳이 못되다 보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모르는 차를 타고 간다는 건 하나의 모험이었다. 딸과 몇 번이나 차번호랑 이것저것을 주고받은 후에 경찰의 호송 아래 가까운 주유소까지 갔다. 경찰은 자기는 소속된 거리를 벗어날 수 없다면서 뉴욕의 언저리까지 밖에 못 간다 했다.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긴장을 하다가 주유소에 도착해서야 안심을 했다. 거기서 서류에 사인을 한 후 기름을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혼이 났는지. 그래도 우리는 곧 웃음보따리가 터진 듯 웃어 젖혔다.

두고두고 이 일로 화제를 삼았다. 재미는 지났으니까 있지 당시는 정말 무시무시했다. 누나는 자기 때문에 즐겁지 않았느냐며 잘난 체를 했다. 하루에 두 가지의 사건을 접한 신기한 날이었다. 그렇지만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나의 누나는 공주과다. 얄미운 짓은 전혀 하지 않는 미워할 수 없는 공주다. 마음 자체에 꾸밈이 없다. 그래서 이런 실수를 해도 밉거나 싫지 않다.

TV를 보거나 영화속에서 뉴욕의 거리가 나오면 나는 아찔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혼자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살면서 그런 날이 또 언제 있을까 싶다.

6 Comments

  1. ariel

    2006년 2월 12일 at 9:39 오전

    요새도 가끔 길에서 누가 대화를 하는게 들리면 깜짝놀라요. 그리고 "어머~
    왠 한국 사람.." 그러며 속으로 말해요. 그런데 물론 한국에 있으니깐 한국
    사람들이 있죠. 저는 아직도 외국에서 산다고 착각을 하는데 이글을 읽으니
    미국에 살던 시절이 많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멋쟁이’누나’ 계시네요. 바로 누나 같으신 분 이 진짜 멋쟁이 이지요..^^

    저는 내일 출장 갔다 일주일 후 에 돌아와요. 출장 나가면 피곤하지만 그래도
    가끔 우물안에서 나가봐야죠..^^ see you later~
       

  2. Lisa♡

    2006년 2월 12일 at 1:33 오후

    출장 잘 다녀오세요.
    덕분에 저의 댓글이 좀 적어지겠군요.
    애리얼님 댓글보는 재미도 쏠쏠한대..가서도…
    나의 누나는 정말 멋쟁이 맞습니다.
    천사표에다 기분파에다..어린 나한테도 늘 져 주는 거 같아요.
    제가 본래 인복이 쬐께 있거든요.   

  3. 백의민족

    2006년 2월 12일 at 2:51 오후

    마치 뉴욕에서 일어난 일을 보는 듯 실감났습니다.
    회사일로 뉴욕을 갔다와 본지도 어언 10년이 다돼갑니다.
    소호거리도 생각나고 맨하탄 거리 그리고 어둡고 무섭기까지한 지하철도 생각납니다.
    원래 시누이와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은 법인데 사촌시누이 인데도 마치 친자매같이
    지내시는군요. 행복해 보이십니다…   

  4. Lisa♡

    2006년 2월 12일 at 2:58 오후

    전생에 우리가 쌍둥이였나..그런답니다.
    진짜 시누이도 한 명 부산에 있는데
    그 누나랑도 퍽 터놓고 지내니 남이 보면
    다 부러워 하기도 하죠.
    제가 워낙 성격이 좋아서(?) 그런가?
       

  5. Marine boy

    2006년 2월 15일 at 12:32 오후

    【Lisa♡님】
    이럴 땐 재미있다고 해야 하는지
    큰일 날 뻔했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역주행과 급정지, 당한피해가 없다면 그만한 스릴도 없을 것 같습니다.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는 남편에게
    사랑하는 아내로부터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자기!
    라디오에서 그러는데
    자기 가는 고속도로에 역주행하는 차가 있대!
    그러니까 운전 조심해!

    알았어!
    그런데 마주 달려오는 차가 엄청 많아!
    …….이후는 저도 모릅니다.
    노랑, 빨강의 로터리램프만이 사실을 알뿐입니다.   

  6. Lisa♡

    2006년 2월 15일 at 2:26 오후

    마린 보이님 방문 감사합니다.
    발렌타인 데이에는 쵸콜릿 많이
    받으셨는지요?
    뉴욕에서의 일은 지나고 나니
    참 재미난 추억이었어요.
    황당함이 가져다 주는 그런 어이없음에
    친숙한 사람끼리의 편안함에서 실수라도
    즐겁고 해피한 거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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