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쓸쓸함의 끝은 어디인가?(3)


그리고는 내 살기에 바빠서인지 오래도록 그녀를 잊고 있었다. 나의 삶이란 언제나 그렇듯 별 쓸모없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방황하는 주부로서 생산적인 일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이 빈둥거리며 식당이나 카페의 헌팅으로 소일을 하며 남편 욕과 아이들 학원얘기로 목마를 정도로 수다를 떨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나도 싫었다. 그런 나를 그녀도 언제나 단순하다며 싫어했었다는 기억이 났다.

단순함.

난 자주 단순함이 마음에 든다.

가장 행복함은 단순함에서 나온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지극히 단순하게 실천적인 삶을 사는 내가 우쭐하다. 단순하지 못해서 언제나 우울함과 비극적이랄 만치 쓸쓸하게 자신을 여기는 그녀에게서 겨울의 축복이라는 눈이 환상처럼 내리는 날 전화가 왔다.

일산의 호숫가를 걷고 있다는 그녀는 추워서 공원에서 시를 읽기엔 어렵다며 눈이 와서 마음이 심란하다고 했다. 공원에서 시를 읽는 여성, 그럴듯하긴 하지만 직접해보면 쉬운 일이 아니다. 햇살 좋은 날도 아니고 나만의 공간도 아닌 곳에서 책이라도 보려면 어지간한 강단이 없고서야 힘들텐데. 나는 할 말이 없었지만 예의상 춥다며 빨리 들어가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러면서 호수는 경치가 좋으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매일 호숫가를 산책한다며 가끔 거기서 정해진 시간마다 마주치는 남자도 있다면서 실실 웃었다.

단순하지 못한데서 기인되는 얽기고 설키는 뇌의 구조적인 문제가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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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함.

누가 누구에게 불쌍하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모르나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가 초라하고 불쌍하게 여겨지면서 자꾸 가지런한 이빨을 내보이며 슬프게 웃는 그녀, 승주의 모습이 날 괴롭혔다. 나도 모르게 승주에게 그 남자 이야기를 물어봐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그래? 그 남자는 몇 살쯤 됐어?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

“몰라, 가끔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남자가 개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어”

“말은 해봤어?”

“아니, 한 번은 날보고 웃더라구”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남자가 자기를 보고 순간적으로 빙긋 웃어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가 자기에게 관심이라도 있는 줄 아는 여자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은 설명이 어지럽다. 떨어뜨린 손수건이라도 주워줬다가는 아예 손잡았다고 할 여자는 아닐런지. 위로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오지랖이 슬며시 생겼다.

“그럼 너도 웃어주고 말이라도 걸어봐, 개가 암컷이예요? 수컷이예요? 이렇게 말이야”

“그럴까?”

“그래~~그래야 뭔가 이루어지지, 가만있는데 어떻게 진행이 되겠어? 잘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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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억지로 밀어주는 척 그런 말을 해버렸다. 그녀가 말을 걸면 그 남자는 어떤 표정일까? 걱정된다. 사실은 정말 그녀가 말이라도 걸까봐 내심 여간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이왕 내뱉은 말이니 어쩌겠냐 싶었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승주의 목소리는 다소 들뜬 기세가 역력했다. 나이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직업도 알 수없는 변태이거나 사이코 패스 일지도 모르는 남자를 무턱대고 대화의 상대로 쳐다본다는 거, 참으로 난감한 게 인간사이이다. 이상하게 승주가 쓸쓸함이 깃든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할수록 나의 행복감은 견고하게 자리잡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여태껏 승주에게 밀리는 인생을 살아오는 것 같던 내 인생이었다. S대를 나온 그녀는 항상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놓친 적인 없었다. 보란 듯이 서울로 올라와서 바로 사투리를 듣기 좋은 서울말로 완벽하게 바꿔버리는 그녀는 한 번씩 시골로 내려올 때마다 눈을 내려 깔며 얇고 지적으로 충만한 목소리에 교양을 잔뜩 집어넣어 말을 하곤 했다. 어느 날 결혼한다며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얄밉도록 부럽기만 했다.

같은 대학 출신에 훤칠한 키에 냉철하고 지적인 모습인 승주의 남자는 유명한 제약회사 오너 아들이었던 것이다. 속으로 얼마나 부러웠던지 잠을 뒤척이기도 했다.

승주는 내가 자기를 부러워한다는 것도 알고 자기가 얼마나 똑똑한지도 잘 알았다.

그런 그녀가 한껏 내려간 내 자존심을 올려놓기라도 할 것처럼 힘들어 하는 꼴이 한편으로는 고소하고 우쭐하기도 했던 걸까. 나는 이참에 확실하게 그녀의 편이 되어줄 것과 그녀를 위해주며 나의 가치를 높일 심리도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16 Comments

  1. 김진아

    2007년 12월 11일 at 1:38 오전

    글을 빨리 읽어내리는 제가 참 밉네요..오늘은,
    ^^

    한쪽이 올라가면,그 반대편 쪽은 내려가 있어야 하는 시이소의 균형을
    이루기가 참 힘들지요..
    마음처럼요..   

  2. Lisa♡

    2007년 12월 11일 at 2:10 오전

    진아님.

    빨리도 읽으셨군요.
    다음 편은 내일…..
    그럼요..균형을 맞춘다는 건
    상당히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 합니다.   

  3. 천왕

    2007년 12월 11일 at 3:29 오전

    승주 친구의 승주에 대한 인간적인 심리적인 ….접근이 기대 됩니다…

    어떻게 진행될까?   

  4. 래퍼

    2007년 12월 11일 at 6:00 오전

    짧아서 아쉽지만..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시는 리사님의 센스 꿋~^^

       

  5. 엘리시아

    2007년 12월 11일 at 6:38 오전

    긍정적이고 열정적이신 모습이 늘 부럽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6. 雨淵

    2007년 12월 11일 at 8:42 오전

    일단 축하합니다.
    조선일보에 떴네요. ㅉㅉㅉ!
       

  7. ariel

    2007년 12월 11일 at 8:58 오전

    나 그렇게 산책해도 웃어주는 남자 하나 없어요..
    외국서 스마일하고 살던 버릇이 있어서
    어느날도 여전히 그러고 산책했지. 그런데
    나를 향해 오는 할아버지가 자꾸 뒤를 돌아보더라구..
    그리고 나를 유심히 쳐다보며 지나가구.. 이 바부가
    스마일해서 그런거였어.. 그러니까 내가 그 할아버지 뒤에
    오는 사람에게 스마일 하는지 알으셨나봐.ㅋㅋ
    그 후 부터는 산책 할 때 스마일 없어요..
    한국서 적응 하는 이야기..

    그리고 개 대리고 나오는 위에 아저씨도 외국서
    오셨는지 모르네요..^^

    그런데 떳는데 나는 모르네..
    어디 떴어요. 나두 보구 시퍼요,,   

  8. 이은우

    2007년 12월 11일 at 8:59 오전

    이 정도 글빨이면 거 뭐시냐 문학… 그 쪽으로 등단해 보세요.

    사귐성, 붙임성,포용력, 이해력 좋은

    리사님의 인간미가 소설을 통해 엿보입니다.   

  9. Lisa♡

    2007년 12월 11일 at 10:49 오후

    천왕님.

    진행요?
    후후후….그저 그렇게 진행됩니다.
    인간적이지만 받아들이는 그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의문입니다, 저도.   

  10. Lisa♡

    2007년 12월 11일 at 10:49 오후

    래퍼님.

    클났네요~~

    팬이 생겼네요.
    잘 지내시지요?   

  11. Lisa♡

    2007년 12월 11일 at 10:50 오후

    엘리시아님.

    쌀가루 사셨나요?
    긍정적인 힘!!!
    저도 자주 가라앉게 됩니다.   

  12. Lisa♡

    2007년 12월 11일 at 10:50 오후

    우연님.

    워데 떴나요?
    조선닷컴요?
    후후후….떨어지는 일만 남았군요.   

  13. Lisa♡

    2007년 12월 11일 at 10:51 오후

    아리엘님.

    한국의 정서가 그래요.
    그러니 웃는 것도 적당히 웃는
    한국만의 스마일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너무 안좋게만 생각하지 말고
    사회정화 차원에서 무조건 스마일~   

  14. Lisa♡

    2007년 12월 11일 at 10:53 오후

    은우님.

    정말입니까?
    사귐성, 붙임성, 포용력, 이해력이 좋게 보입니까?
    근데 제가 생각해봐도 다 제 이야기 맞네요.
    시력 좋으신 거 맞죠?   

  15. 고운새깔(Gose)

    2010년 4월 19일 at 11:30 오후

    끄적끄적 방이름부터 바꾸셔야될것 같네요
    점점 속으로 빠지지고 있습니다   

  16. Lisa♡

    2010년 4월 20일 at 12:03 오전

    그럴까요?

    휘리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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