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쓸쓸함의 끝은 어디인가?(4)

며칠 뒤 나는 승주에게 아침부터 전화해 호수남자에 대한 얘기를 물어봤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제 호숫가는 나가지 않을 거라며 다시 절망스런 계곡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듣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 구태여 자초지종을 물을 이유가 없었다. 살다보니 가끔은 상대방의 자세한 설명을 굳이 듣지 않아도 알게 되는 여러 가지가 생긴다. 딱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내게 승주는 너는 결혼생활에 만족하느냐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묻는 질문이지만 은연중에 내게도 결혼에 대한 회의가 있었던지 바로 만족은 무슨..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정말이지 만족하며 사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처음엔 내가 아주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살아봐야 안다고 10년 갖고 만족이니 불만이니 말할 게 못 된다는 걸 서서히 실감하는 중이었다. 우유부단한 남편은 별로 꼬집어 잘못하는 건 없지만 결단력이나 용기나 리더적인 자질은 현저히 부족했던 것. 게다가 운전할 때 보면 아주 거칠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남자였다. 그러면서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는 비겁함과 어울리지 않게 화를 막무가내로 낸다거나, 끝없이 마시는 술과 부족한 야망에 뭐든 적당히 때우려는 어정정이 많이 보였다. 단호함이나 자기관리가 부족해 자주 게으름마저 느끼게 하는 전형적인 안일형의 남자였다. 그렇다고 부모에게 효자도 아니었으며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자상한 남편도 아니었고 도대체 정체성이 없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다지 불만은 없이 살았다. 나 또한 살림을 잘 한다고 하는 현모양처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 밖에 모르는 착실한 엄마도 아니었다. 남편은 내게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라고 내뱉듯 말했었다. 부인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싫지도 않았으니까.

강해질거야.jpg

승주는 결혼생활에 만족한다는 말이라도 하면 나를 바보로 취급하거나 혹은 부러워하거나 할 태세였다. 아무생각 없이 산다고 말해줬다. 그렇게라도 동질의 위로를 주고 싶었다. 항상 이런 나의 언어습관이 타인에게 나름대로는 베푸는 것이란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래서 말했다. 결혼생활이라는 것에 그다지 무게를 둔 적 없다고. 결혼생활-말하고 보니 참으로 이상한 단어이다. 곧 그 생활이 인생이고 삶의 전부이고 숨 쉬며 사는 매일인 걸. 구태여 결혼생활이라는 말 자체가 왜 필요한 걸까? 흔히 쓰는 말이다. 갑자기 말의 선택에 대한 혼선이 빚어지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아마 전화기 저 편에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을 게 뻔하다.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나 자신이 무력해져 보이기도 해서 일단은 전화를 서둘러 끊고 언제 보자고 말을 했지만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았다. 나 자신도 미궁으로 빠져드는 그런 기분이었기 때문이고 승주를 보고나면 머리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8 Comments

  1. 김진아

    2007년 12월 11일 at 11:08 오후

    요즈음은,
    색종이의 색이 앞,뒤 다른 색깔로 입혀져 있더군요..

    종이비행기를 접어 만든다고 할때,
    빨간색으로 접든, 분홍색으로 접든,
    그것은 나의 선택이니까요..

    다음편은 내일이지요?

    리사님 화이팅~~!!   

  2. Lisa♡

    2007년 12월 11일 at 11:10 오후

    허걱…

    나의 젤로 빠른 끄적거림의 팬인 진아님.
    어쩌나….바로 올렸는데.
    5편이랑 연이어 두 편을 올렸쪄요.
    괜찮지요?
    두 편 동시에 올려도~   

  3. Beacon

    2007년 12월 12일 at 11:57 오전

    한 댓편 쯤 동시에 올려줘요..   

  4. Lisa♡

    2007년 12월 12일 at 2:42 오후

    비컨님과 진아님 빼고 안 읽을 거

    같아서요…ㅋㅋ   

  5. 님프

    2007년 12월 13일 at 4:09 오전

    저도 열심히 보고 있어욧!! ㅎㅎ

    점심 드셨어요? 커피한잔 놓고 갑니다..^^   

  6. Lisa♡

    2007년 12월 13일 at 10:58 오후

    님프님.

    커피마시니 좋네요.
    김장도 끝나고 12월이라
    뭔가 마무리하는 느낌이지요.
    곧 애들도 방학할텐데.
    내 년은 딸의 학년상 바쁜 한 해겠네요.
    모쪼록 화이팅~~   

  7. 고운새깔(Gose)

    2010년 4월 19일 at 11:36 오후

    오늘은 요기까지 볼람니다
    book marker를 확실히 끼어놨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8. Lisa♡

    2010년 4월 20일 at 12:04 오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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