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쓸쓸함의 끝은 어디인가?(6)

낭만적인 우연이라도 기대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반드시 운명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승주는 낭만적인 운명의 사람보다는 자기가 보고 맘에 드는 상대를 선택해 거기에 매진하고 집착하는 형인가. 선택한다고 상대는 그녀를 알아주거나 사랑이나 할까? 그럼, 나는 단순한 만남조차 우연으로 치부해서 거기서 여러 형태의 사랑이라는 단어를 조합해서 결국은 낭만적으로 합리화시키고 마는 건 아닌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결혼하고 아이가 딸리고 책임감이 생기면서는 함부로 인연을 맺는다는 건 잘하면 비밀이요, 자칫하면 창피를 떠나 인생 전체를 마이너스로 몰고 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밀이 주는 묘한 스릴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쁘다고만 하기엔 장점이 많아서 퍽 유혹적이기도 하다. 승주는 자기의 기대감에 미치는 상대를 현재는 J로 찾은 것이다.

보고 즐기는 관계에서 완전 몰입해 같이 호흡하고 꿈을 꾸고 그와의 사랑을 상상하고 심지어는 그의 아이까지 낳고 싶다는 그녀를 어떻게 설명하나. 승주는 과연 무심한 엘리트였나?

곧 그런 것조차 시들해져 갈 거라는 나의 확신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실체 없는 헛물켜기는 끝나고 이제는 수퍼마켓의 오이 파는 청년에게로 승주의 짝사랑은 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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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파트 창에서 내다보면 그 수퍼의 뒷문으로 나오는 일종의 창고 같은 직원들의 숙소가 보인다고 했다. 그 청년은 가끔 숙소의 창으로 상의를 벗은 채 옷을 털거나 내다보며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짜릿해지기도 한다며 전화기 너머로 누가 들을세라 소곤거리며 말하는 승주가 차라리 우스웠다. 그렇다고 한바탕 웃다가는 그녀의 감정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터이고 해서 참으며 들어야만 했다. 아니 듣고 싶었다. 세 식구가 먹기에 오이는 하루에 한 두 개면 충분하다. 이천 원에 10개하는 오이를 두 번씩이나 가서 사며 은근히 그 청년을 훔쳐보며 관음증 아닌 관음증을 즐기는 그녀. 한 번은 손이 살짝 부딪치기도 했단다. 매일 오이만을 씹고 있는 그녀를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워낙 체중에 대한 강박증이 심하기 때문에 오이라도 먹는 편이 나을 거 같다. 수퍼의 아르바이트생들은 이리저리 일자리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자주 바뀌기도 한다. 그 이름 모를 청년이 바뀌자 승주의 실망은 대단해 전화기 저 편에서 울음 섞인 소리까지 들어야했다. 알게 모르게 남에게 기쁨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도 알게 모르게 남에게 기쁨조가 되고 싶다. 별로 나쁠 거 같지 않다. 많은 남자들은 얼마나 많은 포르노를 보며 자위를 하거나 달콤한 상상을 하겠는가. TV의 많은 연예인들이 방에서 쳐 박혀 방송으로 소일하는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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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김진아

    2007년 12월 13일 at 12:03 오전

    그럴수도 있겠군요…

    연예인이 왜 필요한지…는…음,   

  2. Lisa♡

    2007년 12월 13일 at 1:32 오전

    진아님.

    각자 개인적으로 본인에게
    기쁨조가 있잖아요.
    진아님에게는 아이들.
    내게도 아이들.
    나는 친구들에게 기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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