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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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하나면 매일 병원 갈 일 없어요’

늘상 그렇게 말하는 남편인 루디가 의사말로는 죽어간단다.

환경관련 공무원으로 쓰레기 처리와 재활용 문제만이 전부이던 그가 병원 의사말로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단다.

부인 투루디는 아픔을 숨기면서 조용히 여행을 준비한다.

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들과 딸을 보러 간 그들은 어느 새 자기생활들이

바빠 부모조차 거추장스러워하는 그들을 보며 씁쓸해한다.

출구라는 게 없어진 노년..그들은 연애할 때 가보던 발틱해변으로 간다.

남편을 바라보는 트루디의 눈엔 눈물이 고여 썬글라스로 가려 보기도 한다.

해변의 저녁에 바닷가가 보이는 호텔방에서 얼굴에 하얗게 분화장을(부토댄스화장) 한 그녀는

의아해하는 남편을 기꺼이 끌어들여 마지막 춤을 춘다.

잠 들기 전 거울 속에선 하얀 얼굴을 한 또 하나의 자기인 부토댄서가 오라는 손짓을 마구한다.

결혼 전의 꿈이었던 댄스의 아스라한 바램이랄까.

다음 날 아침 루디는 잠들듯이 죽어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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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남은 그는 부인이 가장 사랑하던아들인 칼이 있는 일본 동경으로 떠난다.

여행가방 속에는 부인의옷을 가득 담은 채 그녀의 영혼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추고 싶어했던 부토댄스와 그렇게 가고파하던 보고파하던 후지산이 있는 곳.

그곳에서도 그는 아들에게서 소외감을 느낀다.

어느 날 부토댄스를 추는 소녀를 공원에서 만난다.

전화기를 들고 춤을 추는 소녀는 전화기를 통해서 죽은 엄마를 만나서 기쁘다고 말한다.

코트 속에 아내의 옷을 입고아내가 좋아하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단추를 열어 트루디에게

많은 걸 보여주며 같이 느끼고 싶어하는 그.

결심을 하고 공원의 소녀인 유와 함께 그는 후지산으로 떠난다.

수줍은 후지산은 좀체로 그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새벽 몹시 고통에 시달리던 그 시간에 그는 후지와 만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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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이 영화를 보고 남편과 다시 봐야겠다고 말했다.

꼭 부부를 떠나 영혼이 통하는 상대가 있다면 같이 보길권하고 싶다.

남겨진다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떠나고 없지만이 시간에 너와 함께 느끼고 싶다는 것.

동시에 다들 살아있으면서 다들 죽어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소녀 유가 말한다.

할머니 어디에 계시나요? 느껴봐요.

바람을

꽃을

꽃들을 품안에 안고 앉아요.

수많은 그림자를 보아요.

그림자를 붙잡고 그림자를 느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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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토댄스는 쉐도우댄스라고 그녀는 설명한다.

내가 추는 게 아니라 그림자가 춤을 춰요.

내 안에 있는 영혼과 어딘가에 맞닿을 영혼이 함께 추는 춤이다.

일본의 유명 부토댄서가 독일서 하는 공연을 보는 장면이 영화속에 나온다.

트루디는 부토댄스에 심취해 늘 부토댄스를 그리워하고 즐겼다.

이 영화에서 하나의 주제로 등장하는 부토댄스는 상당히 철학적이지만 영화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핵심이자 감동이다.

마지막에 루디가 추는 춤은 진한 감동을 안겨 준다.

영화 중간중간에 여러 번 짙은 감동을 느끼게 하는 영화로 인생과 예술이 결합된

스토리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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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대해서 동반자에 대해서 그리고

언젠가 남겨질 사람에 대해서…

남겨진 자가 감당해야 할 추억에 관해서.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헤어짐에도

죽어서도 헤어지고 사회적으로도 헤어지고

그 수많은 이별과 서러움을 감당해야함에 대해서

우리는 여전히 사고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이야기이자

너의 이야기이고

우리 부모의 이야기이자

내 자식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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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본 독일 영화들은 거의 시시하지 않았다.

결혼을 한 큰 아들과 며느리는 각각의 일로 서로 바쁘다.

갑자기 찾아 온 부모가 거추장스럽다.

레즈비언인 딸은 애인과의 시간이 더 중요하고 부모는 귀찮다.

사랑하지만, 뒷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는 부모이지만 어쨌든..

일본서 숫자로 먹고사는 둘째 아들 칼은 엄마의 영혼을 안고 찾아 온

아버지가 불편하기만 하다.

돌볼 여력도 시간도 없다보니 그저 빨리 가야하는데 싶다.

버려진 시간들.

사랑했던 기억들만이 그를 지탱해준다.

루디는 혼잣말로 묻는다.

내가 죽으면 내게 남아있는 그녀의 기억은 어디로 가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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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좋은 영화다.

현재 선재아트센터 지하에 생긴 극장에서 상영중이다.

8 Comments

  1. 도토리

    2009년 3월 23일 at 4:29 오전

    남푠이랑은 이걸 볼껄…^^*   

  2. Lisa♡

    2009년 3월 23일 at 7:19 오전

    그럴 껄—

    제가 전번만 알았어도…
    한 발 늦었네요.
    엘레지는 심도있게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영화라서…ㅎㅎ
    페네로페랑 벤 킹슬리의 매력을 모르면
    별로 효과없는 영화지요.
    도토리님 남편은 트랜스포머나 베트맨 류를
    좋아할런지도~~ㅎㅎ
    이 영화는 부부사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같이 보면 좋은
    특히 부부사이가 더 강추입니다.   

  3. 박산

    2009년 3월 23일 at 11:23 오후

    영화를 보는 각도가

    평소 리사님 글과 많이 다를 때
    작은 놀람이 있습니다

    (에이쿠! 그럼 평소 내가 어떻다구요?
    하실 것이 보입니다)   

  4. Lisa♡

    2009년 3월 23일 at 11:47 오후

    아니예요.

    서로 다른 각도때문에 남의 영화평을 즐깁니다.
    아주 다를 수도 있더라구요.

    이해못할 부분들만 빼구요.
    남녀차이도 있겠구요.

    ….ㅎㅎ..인간성 차이도 있겠구요.

    거 참 이상하네.
    방금 쓴 글에 영화보는 각도랑 나이들수록
    부지런해진다는 말 쓴 거 같은데 혹시 복화술이라도~~   

  5. manbal

    2009년 3월 24일 at 4:07 오전

    영화가 끝나고도
    앉아있는 관객이 들이
    많이 있었던 영화.

    부부가 같이 보면
    좋은 영화 맞지요.^^   

  6. Lisa♡

    2009년 3월 28일 at 4:20 오후

    맨발님.

    보셨군요.
    마지막의 부토댄스 끝내주죠?   

  7. 도토리

    2009년 4월 8일 at 3:01 오전

    어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봤어요.
    현실을 깨닫게 하더군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이 자식으로서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는 거,
    누구를 탓하고 나무핼 수 없는 현실이라는거..
    그리고 자식은 결코 부모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 기대하지 말아야하는 거….
    …… 공부 많이 했습니다…   

  8. Lisa♡

    2009년 4월 17일 at 9:38 오전

    도토리님.

    자식도 이해해줘야겠지요?
    나 자신도 그랬을 겁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잖아요.
    그리고 외국아이들이 좀 더 냉소적이고
    이기적이니까요.
    도토리님의 아이들은 괜찮을 겁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을 믿어요.
    어느 정도는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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