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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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황석영

출판사 문학동네

다른 세상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내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작가의 글에서 이맘때의 내 문학은 치열한

전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쓸어버린 뒤의

폐허에남아있는 연민 같은 것이 되리라고 했다.

그런 연민스러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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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쓰레기를 분류하고 버릴 때 도대체 이 많은 쓰레기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했고,쓰레기 하치장으로 간 다음은

어떻게 소각되고 없어지는지걱정 반, 신기함 반이었다.

며칠 전 밤늦게 동네 골목길을 걷다가 큰 차가 들어가지않는

길에서 두 남자가 부지런히 쌓아둔 쓰레기 봉지들을 들어서

한 명이 끄는 리어카에던지는 모습을 봤다. 아마도 그들이

입은 바지에 야광선이 없었다면 의아했을 것인데 그들의 바지에

몇 줄의 야광선이 있었고 이내 차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선

이렇게 리어카에 담아서 차에 다시 실어가는구나 했다.

그리고 깨어진 유리컵이나 접시 종류들을 버릴 땐 누군가가

손이라도 다칠까봐 매우 조심스레 신문지에 꽁꽁 싸서 버리게

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앞으로는 더욱 더 쓰레기 버리는 일이

조심스러워지고 신경쓰이게 생겼다. 쓰레기가 모이는 곳에서

각가 맡은 구역의 쓰레기 분류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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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부리는 14살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16살이라고 속인다.

학교는 초등학교 5학년이 전부이고 아버지는 삼청교육대

같은 곳에 끌려가서는 소식도 없고 엄마는 시장의 난전에서

채소나 생선을 팔며 살아갔다. 그러다 어느 날 아수라백작

처럼 생긴 아버지 친구가 찾아오고 그를 따라 나선 엄마와

함께 쓰레기 하치장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장편이라지만

분량이 짧고 내용은 서글프지만 그리 신파적이지도 않다.

금방 읽게되는 마력이황석영의 솜씨가 아닌가 한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싶은

마음으로 조심스레 읽게된다.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그들 세상

만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주로 땜통, 딱부리, 아수라, 두더쥐..

이름을 굳이 내세우지도 않고, 말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글을 읽다보면 그들의 세상에선 사람조차 소모성이 짙게 풍긴다.

물론 인간이 태어나면 죽는다지만 쓰레기더미에 빠진 어쩔 수없이

그 속에서 살아야하는 인간군상이 따로 있는 것인가 하는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다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다른 세상에 서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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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 속에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데 그들은 간혹 땜통이나 딱부리, 그리고

뻬뻬엄마 앞에 파란 불빛으로 나타난다.

그들 세상에도 질서는 있고 여전히 낯익은 예전의 세상에서 농사도 짓고 산다.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혼을 달래는 일이다.

메밀묵을 쑤고, 막걸리를 준비해서 그들을 부른 딱부리 일행은 그들만의 세상 구경을 한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그런 일들이 다반사로 느껴지는 건 뭔지.

이젠메밀묵을 보면 그 파란 불빛을 연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파란 불빛이 사는 세상에서 땜통과 딱부리는 왠지 편안함을 느낀다.

낯익은 세상에서 낯설지 않음은 우리가 늘 오래 전의 기억들을 그리워한다는 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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