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글 목록: 2016년 6월 26일

디마프

자식들은 모두 이기적이다…..

요즘 종편에서 방영하고 있는 디어 마이 프렌드(일명 디마프)를 보고 있다.

드라마를 별로 즐겨하는 편은 아닌지라 tv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몇 편, 그것도 주위에서나 인터넷을 통해서 접하고 볼까 말까 하는 정도에 머무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에 방영 중인 디마프는 자발적으로 요일을 챙겨가며 시청중이다.
노희경,…

이름 석자만 대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드라마 작가로서 이름을 당당히 올린지도 꽤 됐고 그가 출간한 책과 대본집도 접해본 터라 그의 글 솜씨는 두말없이 내가 꼽을 수 있는 작가의 이름에 올린다.
이 작가가 나를 웃기게도 하고 울리게도 한다.

그것도 매주, 본방을 사수하면서까지, 이렇게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디마프는  그동안 그가 써온  타 드라마와 같은 계열의 인간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넘어선 어떤 희. 노 .애 . 락을 제대로 드러내 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 일어날 때 머리가 무척 아팠다.

마치 두통이 일어난 듯한 그 느낌은 어제저녁의 드라마가 발단이다.

김혜자란 탤런트의 연기가 좋은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가슴을 통렬히 긁을 줄은 몰랐다.

물론 그 원천적인 뒷 배후엔 노희경이란 작가가 쓴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고, 박완(고현정 분)이 자신의 뺨을 무참히, 가감 없이 때릴 때의 그 심정과 내래이션 고백은 정말 눈물바다를 이루게 했다.
노희경 작가가 쓴 글을 더듬어 보니 언젠가 읽은 대목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마지막에 용서했다는 글 구절이 생각났다.

가장으로서 가정에 무관심했던 아버지, 엄마가 고생한 것을 보면서 컸던 자식의 입장에서 바라 본 아버지란 존재, 결코 용서를 할 수 없었던 아버지였지만 막상 돌아가시는 시점에서 아버지를 보니 눈물이 그렇게 나더란다.

어머니 때도 마찬가지였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작가가 바라 본 디마프에 나오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면 한없이 편안하고 무난한 삶을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저마다의 모두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하루하루 지탱해가며 그렇게 하루를 살아갔고, 때로는 죽일 듯이  미워하면서도 신체가 불편해지니 마나 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장난희 아버지, 그런 남편을 젊은 평생 맞아가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원수처럼 보여도 남편이기에 보살펴 줘야 하는 오 쌍분 여사의 삶, 장애가 된 아들의 앞 날을 걱정하는 노년의 인생은 그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어제의 압권은 김혜자의 한 맺힌 울분과 암이란 소식을 받게 된 장난희, 두 여성의 이야기였다.

새벽 2시쯤에 저절로 집을 나간 희자(김혜자),  성당 안에서  잘못을 빌었다는 그 말은 무엇일까? 치매에 걸려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발길이 머문 곳은 바로 첫 아이의 생사 갈림길에 섰던 신혼집, 바로 남편의 고향이었고, 그녀는 정희에게 쏟아붓는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자식을 잃기는 두 여인의 처지가 같지만 다른다.

희자는 아픈 아들로 인해 정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당시 정희에게도 삶의 고난은 있었기에 친구의 도움을 들어줄 수 없었고, 그렇게 희자의 아들은 세상을 저버리게 된 사연이 있지만 정희에게도 유산이란 아픔이 있다.

버럭 화만 내는 남편, 아프다는 말 한마디만 제대로 들어줬더라면 아이는 살릴 수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했던 무심했던 남편에 대한 원망을 저버리고 그렇게 남편과 부대끼며 살아온 처지는 자식을 잃었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여인에 대한 행동들이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어머니는 위대했다고 했던가?

장난희는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도 가게 일과 통장 정리로 바쁘다.

완이에게 했던 말처럼 자신보다는 남겨진 가족 걱정 때문에 한 시간이라도 쪼개써야했던 고난했던 시간들과 세월, 이제 좀 살만했더니 병에 덜컥 걸려버리고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완이의 입장에선 엄마가 답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엄마와 딸이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작가는 대사 한마디마다 힘을 싣는다.
엄마가 아프단 말을 들었을 당시에 희자의 아들은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치매 가족을 둔 시청자들이 봤다면 엄청 공감했을 부분들을 작가는 놓치지 않았다.)
누워있는 엄마의 얼굴, 손, 발에 입을 맞추고, 다시 엄마 옆에서 누워있는 장면, 자신도 한 가정의 가장이자 불편한 장모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엄마의 치매 소식은 하늘이 무너질 듯한 심정이었음을, 완이가 엄마의 병 소식을 들었을 때 고백하듯이 엄마보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했다는 말 앞에선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 옛 말의 근거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들은 강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엄마인 적은 없었고, 자라면서 꿈 많은 소녀의 시절을 살았을 그녀들, 살아오면서 자연히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낳게 되면서 부여받는 이름표, 엄마란 이름 두 자,…

그런 이름 두 자는 평생을 가족, 남편,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자신의 인생을 찾아보지 못했고 모두의 사연들을 통해 보이는 이러한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세대들의 삶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오게 만든다.

먼저 떠나버리게 만들었단 죄책감에 싸인 엄마로서의 희자,  수술에 앞서 남은 가족들 걱정에 싸인 엄마 난희, 그렇다면 자식들은 과연 엄마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까?

마지막 대사에 자식들은 이기적이다란 말이 정말 통렬하게 다가왔다.

죽을 때까지 자식들은 부모의 걱정덩어리의 존재다.

밥 한 끼 잘 먹고 다니고는 있는지…. 100세가 넘어도 80세의 자식은 아직도 어리게 보인다는 말이 있듯 여전히 부모란 존재는 죽을 때까지 자식 걱정으로 인해 당신의 안위는 강 건너 물이다.

디마프를 보면서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었어도 여전히 그들의 삶 자체는 젊음이요, 시간의 성숙함이 지닌 삶의 지혜와 혜안 속에 젊은 청춘들은 이들의 삶에 대한 그릇된 생각은 접어야 함을 알려주는 드라마란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도 분명 젊었던 시절엔 지금의 청춘들이 겪었을 사랑도 있었을 것이고 노년에 다시 온 첫사랑과의 재회도 잔잔한 강물의 흐름처럼 다가오지만 그것이 보기 흉하다거나 주책 맞다는 생각은 들지 않기에 그들이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실린 힘들이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 이 드마도 종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한다.

특별하지도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 겪어 온 인생의 이야기를 통해서 노년에 나도 저런 베프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러움과 많은 생각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소통과 그에 따르는 행동들, 젊은이로서 노년을 바라보는 생각과 시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한 이 드라마를 통해 반성을 하면서 보게 됐다.

이제 50에 접어든 작가 노희경이 바라 본 디마프의 세계는 언젠가 모두에게 닥칠 시간들임을, 젊다고 결코 함부로 생각과 행동을 내세우지 말 것임을, 함께 살아가고 느껴가야 할 시간들이 점점  짧아짐을 느낄 때는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해 줬다.

노희경, 그대는 정말 멋진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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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차일드

블러그차일드

 

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보통 SF계열의 소설가들을 꼽으라면 대표적인 작가들이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인 , 로버트 하인라인, 스티븐 킹이 생각나는데, 이 작가의 이름은 처음이었고 따라서 작품도 처음 접해본다.

 

알고 보니 일부 이 작가에 대한 작품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유명한 것이었고 절판되다시피 했던 작품들과 더불어서 처음으로  작가의 단편집과 저자의 에세이 두 편을 포함한 것으로 책이 출판이 되었다.

 

저자는 흑인이다.  흑인이면서 여성, 더군다나 SF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남성 위주인 것으로 생각하고 또 대부분 그런 작품들을 대해왔기에 이 작품은 어떤 다른 점이 도드라져 보이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한마디로 정말 독특한 시선, 생각과 사고력, 그에 따르는 작가의 흑인이면서 여성이란 범주에 머물지 않는, 소개면을 보지 않았다면 여성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처음부터 빨리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기존의 판에 박혀있는 듯한 설정과도 약간 다르고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들을 다시 들춰보게 만드는, 여기에 덧붙여 작가의 해설 부분들을 접할 때와 그렇지 않고 읽을 때 받아들이는 느낌들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이 책에 대한 소장가치를 더해준다.

 

여러 내용들 중 책의 제목인 블러드 차일드가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각종 상을 휩쓴 작품인 만큼 인류에 대한 가치와 그에 따른  먼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읽어도 무방할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배경은 인간이 숙주의 몸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설정인데, 여성이 아닌 남자 주인공의 몸에 자신의 종족을 심어 퍼트리는 트가토이란 외계 생명체와 그들이 보호하고 보살펴주는 대가로 자신의 몸을 빌려주는 일을 하는 지구인들의 삶을 그린 이야기다.

 

여성이 아닌 남성의 몸에 기생하고 여성처럼 임신한 몸으로 변해가는 남성들의 변화, 어떤 반기를 들 생각조차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지구인들의 삶을 그린 이 책은 비록 가상의 소설이긴 하지만 인간의 오만에 가득 찬 세상을 비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슈왈제네거가 출현한 영화가 문득 생각난다.

그 영화는 코미디에 가까운 영화였지만 역시 남자가 임신한 상태를 그린 영화였던 기억이 남는데,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갖가지 임신 증상과 점점 불러오는 임산부들의 상태를 여러 상황에 맞춰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엔 웃으면서 봤지만 이 책 속에서 그려지는 인간 남성 숙주들의 삶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게 그려진다.

 

흑인이면서 여성이기에 그런진 몰라도 책 중간에 나오는 대사들을 보면 자신의 조상들의 삶을 투영하는 듯한 대사들을 통해 외계 종족이 지구 인간들을 다루는 부분들은 형식만 SF를 빌려 왔을 뿐 작가가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들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밖에도 DGD특정 인자를  가진 화자가 등장하는 저녁과 아침과 밤, 가족이란 단어를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가까운 친척. 버스 안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넘어감, 이 외에도 다른 내용들을 다룬 것들도 마찬가지로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세계를 조명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미래는 디스토피아로 가는 것이 아닌 오로지 인간들이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는지에 따라 미래의 모습은 달라질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휴고상과 네블러상을 동시에 수상한 저자다운 이력을 느끼게 해 준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자전적인 에세이  두 편, 또한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기에 단편이지만 중,장편 같은 느낌들을 받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