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
카린 랑베르 저/류재화 역
레드스톤 | 2016년 08월
사랑이란 두 글자-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연들은 아마도 이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영원한 보편적 가치의 말이 아닐까?
여기 이런 ‘사랑’에 대한 금기를 ,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자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집이 있다.
책의 겉표지에 드러난 집의 형태 안에 다양한 사연들을 가지고 모여 살게 된 여인 천국이다.
3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지닌 사연들 속의 공통분모엔 ‘사랑’이란 것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오직 수컷이라고 불리는 것은 고양이 한 마리뿐인 이 집에 줄리엣이란 여성이 잠시나마 입주를 하게 된다.
당연히 입주 조건은 남자를 집에 들여놔서는 안된다는 철칙-
“새로 오신 분, 카를라가 내부 규칙 알려줬어요?”
“대강은요.”
“여기선 엄격해요!
남편도 안 되고, 애인도 안 되고, 배관공도 안 되고, 전기공도 안 돼요.”
“피자 배달부도.”
“남자는 안 돼!”
“남, 남자는 안 돼요?” 줄리엣은 더듬거렸다.
_본문 중에서
줄리엣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는 선 입주자들에 대한 각기 다른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왜 굳이 새롭게 다가올 사랑에 대해서 멀리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정말 자신마저도 이런 사람들과 살게 된다면 같은 동조 감을 느끼지 않을까 불안해 떨기도 한다.
어찌 보면 줄리엣이 정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속속들이 각기 사연들을 들여다보면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배신과 아픔, 상실들이 ‘사랑’이란 것을 통해 느끼게 되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앞으로 남은 인생에 대한 또 다른 실패를 겪지 않으려고 이런 방어막을 친 것은 아닌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남자의 말은 곧 법이란 가정에서 자란 주세피나, 남편의 바람으로 상처받은 여인, 아르헨티나 남자와의 사이에 아들을 두었으나 이 또한 젊은 여자와 바람난 현장을 보게 된 후 프랑스로 돌아온 시몬, 댄스를 추었으나 댄스 선생과의 사랑도 자신이 기대했던 진실된 앞날의 보장이 없음을 통감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여인, 아이들을 원했으나 원치 않은 남편이 떠나버리는 바람에 마음의 깊은 곳에 상처를 입은 로잘리, 정신적인 사랑의 결핍을 겪으며 자란 줄리엣, 집주인이자 여왕인 소위, 천명의 남자. 천명의 섬광과 함께 화려하게 살아왔던 발레리나 여왕까지..
모두가 사랑이 주는 감정에 경험을 해보았지만 아픔을 동반한 상처를 또 다른 사랑이 대처해 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이렇게만은 살아가진 않겠지 하는 기대감을 품은 채 살아가는 그녀들의 사랑에 대한 생각은 카사 셀레스티나라고 불리는 집을 배경으로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사는 여인들의 삶을 통해 ‘사랑’이 때로는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사랑’이 주는 또 다른 행복함이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룰 수 있는 원천지로서의 ‘사랑’의 의미보다는 현실적인 ‘사랑’이 주는 공감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기에 여왕의 메시지가 들려주는 말, ‘인생은 하나의 줄이다. 우리는 그 줄 위의 곡예사다.’ 란 구절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우리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해야하고 사랑 받으며, 줄 수 있다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게 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