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사랑한다 세트
김이령 지음 / 파란미디어 / 2011년 8월
책을 선택하고 다시 읽어보기는 오래 간만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여러 사람의 손의 때가 묻다 못해 너덜 해진 상태의 책을 손에 넣고 보니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요즘은 동네 도서관에 희망 도서를 신청할 때에 이런 로맨스 소설들은 희망 도서 대상에서 제외된 지 오래지만 2011년 당시만 해도 신청하면 바로 첫 순서로 읽을 수 있었다.
그때에 바로 신청해서 읽었던 책을 다시 재 신청해서 받으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기있는 도서라면 장르에 구분없이 희망 도서로도 받아 들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게 한다.
벌써 이 책의 신간 소식을 접하고 읽은 지도 6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타의 로맨스 소설에서 주는 ‘사랑’에 대한 생각 외에도 역사라는 실제 공간에서 살다 간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야기를 다룬 만큼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을 다시 읽은 목적은 올 상반기 방송국에서 드라마화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부터였다.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로 만나다면 인기를 끌 수도 있을 것이란 기억, 더군다나 세 인물들의 각기 다른 개성이 워낙에 돋보였던 작품이었던지라 과연 누가 이 인물에 적합한 사람으로 탄생이 될까를 상상했었던, 나름대로 내가 드라마 제작자라면 어떻게 만들까라는 꿈도 가지고 있었던 책-
여전히 다시 읽어도 새롭다는 느낌이 든다.
역사라는 실제의 시대를 관통하는 사실들 곁에 약간의 살을 붙이되, 어디까지나 허구임을 알면서 읽어도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실존 인물처럼 느껴지던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게 한다.
고려의 역사를 그린 작품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신라, 백제도 그렇지만 고려에 대한 인식의 범위가 조선만큼 넓고도 많이 알려진 것이 없다는 현실 속에 이 책은 고려의 최초의 혼혈 왕이었던 세자 원, 즉 충렬왕과 안평 공주(후에 원성 공주, 제국 대장 공주)사이에 태어난, 후에 충선왕으로 불린 실존 인물의 인생 일대기와 맞물려 그려나간 역사 로맨스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절친인 종실 수사공(종친에게 주는 정 일품의 명예직) 왕연의 삼남인 왕린과 막역한 사이였던 원은 밀행식으로 거리에 나서던 어느 날,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미소년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고 구해주던 중,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다.
물론 당시에는 그 감정이 뭔지도 모른 채, 자신과 린이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 금과정에 초대를 하게 되고, 이후 그 셋은 찰떡궁합처럼 모이며 우정을 나누게 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 미소년의 실체는 여자, 왕족 영인 백의 외동딸로서 공녀로 차출될 것을 염려한 거부 상답게 딸을 보호하고자 얼굴에 사고가 난 것처럼 소문을 퍼뜨려 별채에 감금을 당하고 지내던 상태다.
그렇지만 활달한 그녀의 성격은 여자로서 보다는 남자에 가까운 활기 넘치는 행동에 힘입어 자신의 단짝인 시녀 비연으로 하여금 자신으로 대신하게 하고 밖으로 나간 결과, 결국 세자 원의 눈에 들게 된 것-
책은 총 3권으로 장장 십 대 초반의 세 사람의 인생이 역사의 기류와 흔들림 속에 ‘사랑’이란 감정을 두고 왕과 린, 그리고 산이란 이름의 여인의 기구하고도 각박한, 그러면서도 린과 산의 사랑을 이루어나가는 역경이 당시 몽골제국의 대도, 타클라마 사막과 토번까지 이어지는 긴 흐름을 보여준다.
왕이란 존재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이용해서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모든 일들을 이루는 권력자는 아님을, 이 책은 더군다나 ‘사랑’이란 이름 앞에서 왕이란 존재를 허물고 오로지 산이란 여인에 대한 깊은 감정에 몰입한 나머지 린과의 사랑을 허락지 못했던 원이란 남자의 집요하고도 광기어린 행동을 따라가면서 그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내 곁에 가장 믿을 만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린이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한 ‘산’을 사랑한다는 사실, 아니 그 둘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자신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단 그 배신감에 젖어 린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갔던 광기는 곁에 믿을 수 있는 부하란 존재를 떠나서 차후 왕에 오를 위치와 세자란 위치에 갇혀서 지낸 원이란 남자의 극도로 변해버린 분노로 인한 행동을 표출해 낸 사건으로 그린다.
여기에 더해 또 다른 인물, 당시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고려의 실정에 맞물려 아버지와 아들 간의 치열한 선위 경쟁의 다툼 속에 이를 이용하고 자신의 독보적인 권세를 누리고자 했던 송인이란 인물의 고도의 이간질 전략은 사뭇 다른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독자들을 쥐락펴락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세 사람의 주된 감정 외에도 주변 인물들의 또 다른 ‘사랑’이란 방식에 눈길을 끌지 않을 수가 없다.
공녀로 차출될 뻔한 자신을 구해주고 정비로 삼은 원에 대한 사랑을 평생 간직하지만 실제 사랑을 받지 못했던 ‘단’의 슬픈 인생 항로, ‘산’의 시녀 비연과 무석의 안타까운 사랑, 목적을 위해 아내를 둔 몸으로 비연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비연을 대하는 감정 속에 사랑이 움트는 과정과 고뇌, 무석의 아내인 송화가 그리는 해바라기 사랑과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필도의 해바라기 사랑, 송인의 무차별적인 계획 속에 하나의 소모품인 줄 알면서도 그의 사랑을 포기하지 못해 그가 원하는 대로 왕의 곁으로 간 옥부용이란 여인, 결국엔 송인도 그런 무비의 죽음 때문에 철저히 자신을 파괴해가면서 변해가는 복수의 화신으로 바뀌는 모습, 변함없는 린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자신이 사랑을 쟁취할 것이란 확신 아래 8년 동안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베키란 여인의 사랑은 세 권의 책 속에 들어있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사랑법을 모두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세월이 흘러 옛 일을 회상하는 원의 현재의 모습과 그런 원을 뒤로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린과 산의 모습들이 그래서 더욱 안쓰럽고 안타깝고 서럽게 느껴진다.
특히 모든 권력투쟁 속에 고려란 나라의 위치와 간당간당 위태로웠던 날들을 견디며 살아왔던 원이 결국 눈을 돌려 보니 자신의 주위에 남은 자라곤 호위무사 진관뿐이란 사실~
헤어질 당시의 모습만을 기억하길 바라는 원의 회상 속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 린의 자식을 우연히 상봉하는 장면은 더욱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은 아련함을 전해준다.
고국인 고려에서조차도 진정한 고려인으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반은 고려인, 반은 몽골인으로서 고국의 미래를 위해 애를 썼던 충선왕, 실제 그의 일대기를 살펴보니 책 속에서의 인생을 표현하면서도 주변 인물들의 실존과 허구를 적절히 그려낸 작가의 설정은 그렇게 우리들 곁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들고 있다.
‘사랑’이란 이름 앞에 10년 이상을 떨어져 다시 만나게 된 린과 산의 운명 같은 해후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왕이 내뱉은 말 한마디로 인해 다시 번복될 수 없는 상태로 돌아간 그들이 정착하려고 한 세계가 어쩌면 최후의 보루였음을, 다시 만나고 싶지만 볼 수 없고, 봐서도 안 되는 현실 속에 갇힌 세 사람의 운명이 그렇게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장면 하나하나가 참으로 잊을 수가 없게 한다.
임시완과 윤아가 주인공으로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임시완의 모습이 책에서 그려지는 원의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든다.
다만 여자 역의 ‘산’이란 역할은 책에서 묘사한 생김만을 보자면 임시완만큼은 아니라서 다소 실망스럽긴 하지만 드라마가 책에서 그려지는 대로 나오지는 않는 법이라, 차후 방영될 예정인 여주인공의 활약이 기대된다.
총 세 권에 이르는 책을 읽는 동안 다시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고 설렘을 전해 준 책, 이 책의 드라마를 보면서 책과 비교해 보는 시간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