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타라 납치사건

모르타라모르타라 납치사건
데이비드 I. 커처 지음, 허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나비효과란 말이 있다.

시작은 작은 것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결과를 발휘한다는 의미로 많이 등장하는 말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이 말이 연상 떠올랐다.

 

개인이 가지는 신앙은 자유다.

그 자유란 말에는 개인적인 신앙심을 중심으로 보통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범주의 의미를 포함한다.

 

하지만 어떤 거대한 권력에 의해 자신의 종교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면?

더군다나 자의가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에 의해 취했던 어떤 행동 하나로 인해 그것이 빌미가 되어 한 나라의 역사를 바꿨다면?

 

처음 이 책을 대했을 때의 논픽션이란 말,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화 확정했다는 말에 궁금했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깃든 논픽션이길래 스티븐 감독이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더군다나 유대인인 스티븐 감독에 의해 그려지는 이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 또한 유대인이기에 같은 유대인이 그리는 영화는 차지하고라도 전통적인 서유럽의 역사에 대한 획을  그었다는 사건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

 

저자는 미국인이지만 이탈리아 역사, 정치, 문화에 관한 한 권위자라고 한다.

 

그가 이 실제 벌어진 사건에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당시의 흐름을 역추적해 그린 논픽션은 종교와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뿔뿔이 흩어져 있던 공국을 하나의 나라로 통일을 시켰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1858년 6월 볼로냐. 유대인 상인 모몰로 모르타라의 집에 교황청 헌병대가 들이닥쳐 그 집안의 6살 아들인 에드가르도를 연행하는 것으로 서막을 알린다.

 

아무것도 모른 채 교황청의 명에 의해 끌려간 자신의 아들을 되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부모들, 알고 보니 부모들조차 모른 채 아이가 아픈 것을 본 하녀가 자신이 믿는 가톨릭으로 세례를 주었던 것인데 교회법에 근거해  기독교인은 유대인 가정에서 자랄 수 없으므로 데려간다는 취지였다.

 

이 일은 한 가정의 부모가 자신의 아들을 되찾는 이야기로 비칠 수 있었으나 당시의 정세는 그렇게 호락하지 않았다.

 

위정자들이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작은 것 하나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 시대의 분위기는 이른바 자유주의와 계몽주의를 내세운 혁명가들이 입헌 통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 질서를 추구하던 19세기 중반이었다.

 

과거 중세시대처럼 막강한 권력을 지닌 교황을 대표로 하는 구세계에 대한 반발, 특히 볼로냐가 강했던 지역이었기에 이 사건을 가만두고 보지 않았다.

 

교황의 정치 권위 세력의 저지, 근대 국가로의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피에몬테에 있는 그의 수상 카보우르 백작부터 런던에 망명 중인 혁명적 민족주의자 주세페 마치니까지 오늘날의 이탈리아란 국가 태동의 시발점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읽으면서 그저 순수한 뜻으로 행했던 행동이 이렇듯 종교란 이름 아래 개인의 생활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던 사건,  진정한 종교와 권력의 관계는 무엇인가? 개인의 삶조차 이렇듯 감시와 허용과 불허용의 사이를 긴박하게 넘나들듯 해야만 했던 당시의 흐름들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한다.

 

 

부모의 간절한 호소와 바람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으면서 이 기회를 이용해 통일 이탈리아로 가기 위해 나섰던 방향들은 논픽션이라고는 하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저자의 세세한 당시 기록 자료조사와 함께 전공한 학문을 십분 발휘한 덕에 푹 빠져 역사와 종교, 개인의 인생과 통일 국가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모두 알 수 있었던 책, 영화로 만난다면 원작에서 그려진 긴박함의 극치를 어떻게 표현해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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