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삶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독특한 서사로 이야기를 이끄는 실비 제르맹의 신작이다.
발표 연도가 2008년이라고 하는 이 작품이 이제야 국내에서 출간된 시점이 늦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저자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다채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을 것 같다.
68 혁명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대에 우르푀빌이란 곳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삶을 조명한다.
17살에 결혼해 네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배랭스 가문의 며느리 사빈은 남편 조르주의 교통사고로 인해 미망인이 된 여인이다.
크리스마스 날 시댁에서 모임을 갖는 연례행사를 앞두고 백화점에서 산타클로스로 분장해 일하고 있는 피에르와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그를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직원으로 채용하게 된다.
언뜻 보면 평범한 가문의 여타 다른 집안사람들처럼 보인 분위기지만 각 개인들이 가진 말 못 할 비밀들은 한두 가지씩 있는법이다.
남편 조르주가 자신이 직접 운전해 몰던 차 사고에는 복권 당첨으로 인한 부부간의 싸움이 발단이 있었고 막내딸 마리가 탄 줄도 모른 채 운전하던 그 자동차 안에서의 마리의 비밀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진 바가 없는 사실이 있다.
그 사고 이후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마리의 입장, 피에르가 점차 그들 가정에 사적이든 공적이든 간에 연관되어지면서 배랭스 가문은 피에르와 관계를 끊으래야 끊을 수가 없는 사이가 된다.
전통적인 시대가 요구했던 절도와 절제, 몸에 밴 삶의 철학을 지닌 시아버지 샤를람이 바라보는 피에르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은 며느리 사빈과의 사이를 의심하고 손자 손녀에게 경고성을 날리는 말들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샤를람의 여동생이자 쉿 왕고모로 불리는 에디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조카 조르주에 대한 사랑의 비밀들까지 한두 가지씩은 자신들 마음속에 간직된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는 배랭스 가문의 사람들은 베랭스 군단 일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야회에서 피에르에게 결정타의 모습을 보인다.
참고 참았던 샤를람이 피에르에게 했던 모욕, 사빈과 마리의 잊지 못한 것들을 당한 피에르는 종적을 감춘다.
이후 배랭스 가문은 그가 있기 전과 후로 나뉘어 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주듯 각자 자신들의 유년을 거치면서 성장해가는 아이들은 피에르와의 연계를 통해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간다.
전반부가 이렇듯 배랭스 가문의 이야기였다면 후반부는 피에르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왜 사빈에게 자세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 정신병원에서 입원해 있던 피에르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는 전율을 일으킨다.
결코 여자를 사랑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첫사랑에게 고백을 하지 못한 채 엄마와 결혼을 통해 안식을 취하고자 했고 이후 피에르가 태어나면서 더 이상 남녀 간의 사랑은 할 수 없는 부부였다.
그런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시대는 제2차 대전이었고 전중에 독일 병사 요한 뵘란트와 사랑에 빠진 후 배다른 여동생 젤리를 낳는다.
한 개인이 전쟁 중에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수 그 자체의 사랑을 했다면 죄일까?
적국과의 불륜을 했다는 죄목으로 엄마는 삭발과 옷을 벗긴 채 모욕을 당하는 조리돌림을 당하게 되는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 피에르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책의 배경이 60년대부터 80년대를 흐르면서 보이는 과정 중에 배랭스 가문과 피에르의 관계를 통해서 보인 각자가 지닌 삶의 무게들은 저마다의 아픔이자 감추고 싶은 상처였다.
피에르의 엄마가 당한 일들을 읽으면서 영화 ‘라이언의 딸’과 같이 교차해 생각나는 것은 국적을 막론하고 당시 서구에서 이런 일들이 당연시했다는 생각, 그 가운데 피에르 입장에서 결코 말하고 싶지도 않았던 숨겨진 삶의 이야기는 비단 이들 등장인물들만이 아닌 누구나 살아가면서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치 연극 무대처럼 연상되는 문장의 끝마침, 은유와 색채의 표현이 전체적으로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된 이야기들 속에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