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연대기
기에르 굴릭센 지음, 정윤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1월
노르웨이판 ‘부부의 세계’란 말이 어울릴듯한 책을 접했다.
부부란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과 생각을 던진 책이라고 할까? 암튼 특이하게도 남편의 시선으로 그린 책이라 눈길을 끈다.
유부남인 주인공 존이 타미와 만나게 된 일을 시작으로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역순으로 진행되는 형식이다.
딸이 아파 병원에 갔던 존은 그곳에서 타미와 만나게 되고 서로 호감을 가진채 산책이란 이름으로 만남을 자주 하게 된다.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낀 두 사람, 존은 조강지처와 이혼하고 타미와 재혼을 통해 새로운 제2의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영원한 사랑이 지속될 것이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탐닉하는 부부의 애정전선에 이상이 없을 듯한 두 사람은 군나르라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깨지게 된다.
업무상 만나게 된 군나르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 타미, 그런 타미를 바라보는 존은 처음엔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점차 두 사람의 애정전선에 이상한 균열이 생기면서 부부간의 대화는 살벌을 넘어 전쟁이 터지기 일보직전에 이르게 된다.
도대체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것일까?
설마 조강지처가 떠나면서 말한 것처럼 그대로 자신에게도 이런 일들이 닥칠 줄 존은 상상이나 했을까?
미세한 균열은 바로 잡는다면 메꿔질 수 있지만 점차 벌어지는 균열, 특히 남녀 간의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차이는 보다 커지게 마련이라, 이들이 겪는 부부의 대화는 현재 실황 중계처럼 다가온다.
배경만 유럽이었을 뿐, 비단 갈등을 겪는 부부들이라면 아마도 바로 눈에서 바라보듯 이들처럼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을까? 도 싶은데, 부부라는 사이는 화성과 금성에서 왔다는 어느 책 제목처럼 꼭 내 이상의 현실에 맞춰주길 바래서는 안 될, 동반자란 사실을 두 사람은 잊은 듯 보인다.
처음의 강한 애정의 탐닉과 갈구가 지나면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하고 길들여지는 시간이 있고, 그런 가운데 사랑의 감정은 어느새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동반자란 생각, 더 나아가 서로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사이가 되기 마련이라는데, 이 책에서 보인 두 사람은 이 정도까지의 참을성이 없었는 듯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애정이 식은 후에 남겨진 그다음의 감정선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새로운 부부의 세계가 열린다는 사실을 잊은 두 사람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특히 전처, 존, 타미, 군나르, 이들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 남았다는 사실, 존이 마지막으로 타미에게 구애한 듯한 행동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하단 생각까지 들게 했다.
제목 그대로 결혼의 연대기는 두 사람의 대화와 그동안의 일들을 통해 진정한 부부의 세계는 무엇이며 결혼이란 것은 무엇인지,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부분적으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