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를달려온차량들이멈춰선곳은도라산역을2km정도앞둔검문초소.도로를가로질러축성된군사목적의콘크리트구조물위엔‘통일의관문’이란글씨가선명하다.초소앞도로는철제바리케이트로이중삼중으로차단해놓아삼엄한기운이감돈다.
이곳에도착한시간은08시30분.
이른시간임에도불구하고속속차량들이몰려들어5열종대로늘어선다.사열이라도받는듯운전자들은마치잘훈련된병사들처럼질서있게차를세운뒤저마다차량번호판을가리고깃발을매단다.대부분의운전자들이똑같은과정을여러번되풀이해본듯움직임이일사분란하다.간단한자재,공구를실은소형트럭,LPG탱크로리,승용차등줄잡아5~60여대가방북을위해대기하고있다.
이장소에집결하면모든방북차량은차량넘버를가려야하며붉은깃발을매달아야한다.번호판가리는것이야그렇다손치더라도모든차량에공히나부끼는붉은깃발은왠지섬뜩한느낌도든다.
잔뜩찌푸린하늘은금방이라도비를뿌릴것같다.
현대사옥을출발한개성공단행버스2대가이곳에도착했다.
매일정기적으로운행중이다.개성공단에진출한기업체관계자나협력사,현대아산관계자그리고개성공단에관심을가진소수를제외한일반국민들은북한을드나드는정기버스노선이있다는사실을아직은잘모른다.
버스출입문엔그날탑승인원들의이름과소속사가적힌명단이게시되어있다.아무버스에나올라타면되는게아니다.탑승객명단이이미북측CIQ에전달되어있기때문에상호간확인편의를위해명단대로움직여야한다.서울에서개성공단까지의버스요금은왕복12,000원선불이다.
탑승객중엔당일돌아올사람,하루에서부터길게는1개월이상머문뒤돌아올사람,아예상당기간현지에근무코자들어가는사람등실로다양하다.
현재개성공단에는시범업체로선정되어진출한15개업체중몇곳은생산라인을가동중이나아직도건축또는설비셋업중에있다.6월까지는15개기업모두가공장건축을마치고생산체제를갖춘다는게애당초계획이었으나현장을둘러본바로는7월은넘어서야가능할듯싶다.
아무튼15개업체정도가움직이는데도이처럼들고나는인원과자재차량이분주한데계획대로1차진출250개사가올해말선정되어내년초진출하기시작하면지금의왕래수속절차로는도저히불가능하다는느낌이든다.현대아산을비롯한남과북측관계자들이어련히알아서잘대처해나가겠으나입북절차를지켜보며,특히북측의CIQ업무를지켜보며느낀점은업무시스템의전산화를비롯하여혁신적인업무개선이선행되지않고는앞으로수많은인원과자재등의이동시적잖은시간적손실이예견된다.
이곳집결지에서버스에올라도라산역남측CIQ까지는채2분남짓.휴대품들을챙겨들고잠시내렸다.입북수속을위해서이다.최근새롭게단장했다는남측CIQ는간결하며깔끔한느낌이다.새벽부터길을나선일부인원들은간이매점에서샌드위치로아침식사를하면서하나같이휴대폰을들고어디론가통화중이다.
휴대폰은반드시이곳에맡겨두고가야만한다.모든통신기기휴대는절대금하고있다.하루밤묵고돌아올사람들은휴대폰에미련이없겠으나수주일이상체류하는사람들은휴대폰과아쉬운작별이라도하듯귀에서뗄줄모른다.
직접차량을운전하고들어가는인원들은비교적여러번왕래한탓에차량검색에대비,출발전에이미통신장치도제거하고뒷트렁크를비롯모든수납공간은말끔히비운채대기하고있는모습이다.
10시00분.
남측CIQ출발시간에맞춰빗줄기가흩날린다.애써편안한마음을갖고자심호흡을해본다.어릴적부터철저한반공교육을받으며자라온세대라서그런지많은것들이정리되지않은채오버랩되어머리속을헤집는다.왠지모를긴장감도온몸을휘감아온다.생전에가볼수있으리라곤아예상상조차하지않았던곳이기에더욱그렇다.
드디어우리군호송지프의선도하에대형을갖춘차량행렬이남방한계선을넘어이동하기시작했다.사진촬영을절대금하고있어차창을스치는모든풍경을머리속에만입력해야한다.진행방향우측창가저멀리엔초대형태극기가,그리고마주한북측엔그에뒤질세라더높이세워올린철탑위에인공기가펄럭이고있다.
동승한현대아산측안내원은‘인공기의가로폭이100m에달해한번게양시병사140명이동원되어야할정도의크기’라고소개한다.
선두에서일행을호송하던우리군지프는신호를받고북측에서내려온2대의인민군지프에임무교대후유턴해돌아간시간은10시12분.
남측CIQ를벗어나불과수분만에북측으로넘어온것이다.
마중나온인민군호송지프한대는선두에,또한대는후미에세워놓고2대의버스와5~60여대나되는차량들에대해일제히검문검색을실시했다.2명의군인이버스내로올라선다.무표정한얼굴로탑승인원들을수초간응시한뒤내려간다.
검문을실시하겠다는얘기도,협조해줘서고맙다는인사도한마디없다.이어북측CIQ에도착한시간은10시20분.
입북수속을위해또한번전원짐을챙겨차에서내렸다.제법빗줄기가굵어졌다.북측CIQ는현재가건물에들어서있다.바로옆에신축을위해포크레인이부지런히땅을고르고있는광경이눈에들어온다.좁긴하나나무벤치가서너개가놓여있는CIQ대기실은비를피할수있어다행이다.
여성세관원앞으로다가가방문증명서를내보이자,A4용지너댓장에빼곡히적힌방문자명단을훑어내린다.아직은우리측에서방문명단을넘겨주면대조하는수준의단순한출입업무만보고있다.
“ooo선생맞습네까?”“예”
“언제돌아갑네까?”“00일날돌아갑니다.”
“됐습네다”
북쪽사람과마주보며나눈첫대화내용이다.
버스에올라뚫어져라응시하던무표정한군인모습과는사뭇달랐다.상냥한미소로방문자들을맞고있어서인지잔뜩긴장해있던안면근육이한층누그러지는기분이다.
이어다음칸으로이동하여휴대한가방속물품들을테이블위에쏟아놓고이것저것질문에답을해야했다.세관원은디지털카메라를들더니“뭘찍을려고가져왔습네까”한다.
생산라인을담기위해가지고왔다고하니그렇다면나갈때확인해보잔다.이때가방속에서여권이튀어나왔다.해외출장시휴대하던손가방에그대로들어있었던것이다.
“이거이해외나다니는증명섬네까?”“그렇습니다”
여권을한장한장넘겨보더니탁접어넘겨주며“선생은여러나라를나다니는데오데가좋았습네까”한다.잠시머뭇거리다가“조국만큼좋은데가어디있겠습니까?”라고했더니,그는환하게웃으며“그렇지요”라며다음대기자를부른다.
북측CIQ에서방문절차를모두마치고버스에다시오른시간은11시00분.
그리고2~3분뒤,한국토지공사간판이커다랗게내걸린개성공단초입에도착했다.
서울을떠나3시간만에도착한셈이다.실제로는서울에서60km,자동차로1시간거리밖에안된다.
개성공단조성사업은2000년8월,현대와북한조선아태평화위원회가합의한사업으로한국토지공사와현대아산이북한으로부터토지를50년간임차해공장구역으로건설하고국내외기업에게분양해관리하는방식으로전개중이다.
이를위해개성시일대에800만평의공단과1200만평의배후단지를조성하고있는것이다.
현대아산측에서방문자들을위해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건물뒷편에단층숙소2개동을지어관리하고있다.숙소인근에한국전력,우리은행,패밀리마트,그린닥터스등이일찌감치들어와둥지를틀고있다.그리고조금떨어진곳에한국토지공사와외곽으로좀더벗어나현대아산,현대정유등이간판을내걸고있다.
부지조성공사가한창진행중이라전후좌우어딜둘러봐도중장비들의분주한움직임,그로인한건설음,황토빛먼지가전부이다.
그러나조금만시선을멀리두면개성시를병풍처럼둘러친송악산이한눈에들어온다.민둥산과는달리송악산의녹음은짙어보인다.예로부터푸른소나무가우거져송각산이라고도했다는말이빈말은아닌듯싶다.송악산은화강암석질의험한바위산이라고한다.그래서인지짙은녹음사이사이암릉이선명하게드러나보인다.
송악산의능선을자세히쳐다보면영낙없이임산부가누워있는형상이다.한때남쪽의계룡산이도참사상으로신흥종교,유사종교본거지였다면북쪽에는송악산이자식점지를비롯기도빨(?)이먹히는영험한산으로통했다고한다.휴전선이그어지기전까지는송악산도남쪽산이었는데…감회가새롭다.
개성공단은이제막걸음마를시작하고있었다.그시작점에서서,아직은허허벌판이나앞으로펼쳐질2천만평의광활한개성공단을머리속에미리그려본다.
동북아시대수출전초기지로서세계의주목을받을것인지,아니면알지못할변수에휩쓸려거품처럼스러져버릴지그누구도장담할수없다.그러나주사위는던져졌다.
이제조심스레한걸음씩일궈나가야한다.그게진출기업들의몫이다.
현대아산에서임시로운영하는방문자숙소의키를받았다.
이미공장이가동중인업체를찾은방문자들은자체숙소에기거하면되나공장건설중이거나업무차방문한사람들은예외없이이러한숙소를이용해야만한다.
현장건설을위해장기간머무르는근로자들은별도로현대아산개성사무소옆컨테이너막사촌에입주하게된다.
방문자수에비해아직은숙소가절대적으로부족하다.결국6명이방한칸배정받았다.사정을알고보니이것만도감지덕지인듯싶다.세면실과화장실은공동으로이용하게끔막사끝에붙어있다.
식사는구내식당운영방식으로영업중인「ARAKOR」가있다.선택의여지없이1식4찬을이곳에서각자식판들고해결해야한다.한끼에4,000원이다.
배식시간만큼은절대지켜야한다.시간지나면영업을하지않기때문이다.저녁엔술도한잔할수있다.다만미리음식주문을예약해둬야만가능하다.
북한땅에서의첫날밤.
「ARAKOR」에서삼겹살에소주파티가벌어졌다.현지진출기업관계자들과소주잔을치켜들고뭘위해야할지정리도안된채연신‘위하여’를외쳤다.아직은여가생활을즐길수있는어떠한시설도갖춰져있지않은악조건속에서의파견근무라이러한자리를갖는것도큰위안이될것이란생각이든다.
결국그들과도의기투합해한목소리로“****를위하여”로개성공단에서,북한땅에서의밤은그렇게저물어갔다.
6월16일새벽녘,지붕을두드리는빗소리에잠에서깼다.
나이지리아와의축구시합이중계되고있다.개성공단숙소한켠에서,그것도승리의순간을생각지도않은장소에서지켜볼수있었다는사실은참으로의미있는일이아닐수없다.
한이불을덮고잔일행들은빗소리에걱정이태산이다.그도그럴것이공장설비자재들을가득실은대형트레일러5대가경기도파주H택배물류창고를출발해오전10시반이면이곳에도착하는데비를맞아서는안되는자재들이라더욱걱정인듯하다.
천만다행스럽게도아침식사를마친뒤하늘은거짓말처럼개였다.오히려햇살이따가울정도다.멀리송악산도손을뻗으면잡힐듯하다.수채화물감을뿌려놓은듯투명하고맑다.오염되지않은자연은이처럼언제나전부를내놓는다.
설비자재하역을위해북측노동자20여명을차출하는등일행들은바삐움직이기시작한다.나는이틈에공단외곽일대를돌아보기로했다.승용차를이용해채정리가안된비포장길을기우뚱거리며시범단지구역을벗어났다.
신호등도없는허허벌판인데도교통안내원(교통경찰)이교차로마다지키고서있다.
좌로간다는깜빡이를켜면그때서야수신호로방향을지시해준다.
신호표시를않거나규정속도를위반하면벌금을물어야한다.필요치아노은교통안내원이등장한것은자업자득이라했다.음주운전에,거친운전습관등으로건설노무자들이사고도일으킨바있기때문이란다.
시범단지를한참벗어나지대나조금높은구릉에자리한현대아산개성지사건물앞에차를세웠다.송악산자락밑개성시가지일부가시야에들어온다.남동쪽을바라다보니자유의마을에세워진철탑기둥에태극기가기운차게펄럭인다.마주한철탑엔인공기도나부낀다.이곳서보이는두깃대사이는한뼘간격처럼보인다.어찌보면온갖풍상을겪으며묵묵히서있는당간지주의모습과도같다.
줄잡아100여대는넘을듯한H택배대형트레일러들이싣고온건설자재,설비자재를내려놓고대형을갖춰꼬리를물고출발하는모습도내려다보인다.
요동치고있다는사실하나만큼은틀림없다.시범단지에이어1차,2차가계획대로만순조롭게이어진다면特殊한特需도기대할수있지않을까.
숙녀복라인을가동중인S社공장건물외벽엔자사제품을착용한모델들의대형사진을여러장이내걸렸다.소운동장에서는간간이근로자들이오와열을맞춰체조를하는모습도눈에들어온다.
상당량의설비자재및부품하역을위해동원된20여명의북측작업자들과CIQ에서보았던세관원까지이곳에나와물품확인하느라벌집을쑤셔놓은듯하다.2명의세관원은패킹리스트도없이사무용컷터하나씩만달랑들고포장박스를긋는다.
“이건뭡네까?,저건뭡네까?”하면“이건이럴때,저건저럴때쓰는겁니다”하는식이다.
특별히까탈스럽지는않으나어쩌다물품포장시끼여들어간신문지쪽이라도나오면정색을하고문제를삼는다.북한으로보내는물품포장시반드시주의해야할대목이다.
짧은방문일정을마무리해야할시간이다.
오늘서울로나가야하는날이다.외국출장시예상보다업무가일찍끝나면비행기스캐줄을조정해미리나올수도,일이덜끝났으면마찬가지로스캐줄을연기하여더있다가올수도있다.하지만개성공단방문만큼은원칙적으로그렇질못하다.방문신청시돌아오기로한정한날짜에만움직일수있다.개성에서일주일머물며일을보기로했는데의외로이틀만에마무리되었다.그러면닷새동안꼼짝없이더있다가나와야한다.매우비효율적인시스템이나이러한문제도반드시북측과협의하여풀어야할사안이다.
나갈때의모든절차는들어올때의역순이다.CIQ의세관원및그외근무자도심지어군사분계선노상에서버스내로올라와무표정하게응시하던군인도올때마주쳤던그얼굴들이다.
도라산역남측CIQ통과를위해버스에서내렸다.들어갈때맡겨놓았던휴대폰도찾았다.그리고다시버스에올랐다.눈을뜨니계동현대사옥앞이다.처음밟은북한땅,북한사람과의첫만남,대화,이모든것들이아직은낯설고,꿈을꾼듯하다.
짧은시간,개성공단에서발견한것은이제막공회전을접고기어가맞물려돌기시작했다는사실이다.나눌얘기도,풀어야할숙제도여전히많으나탄력을받기만하면실타레처럼우습게풀릴수도있다.
개성공단,이제그가능성에무게중심을두고관심있게지켜보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