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여름쯤의일로기억된다.40년세월이넘었어도기억속에여전히또렷하다.
소백산자락조그만초등학교1학년때의일이다.
여름으로접어드는이때만되면마치어제있었던일처럼생생하게당시의
일들이되새겨지는것은어느한선생님으로부터받은깊은감명때문이기도하다.
그날도장마로물이불어난개울뚝을따라등교를했다.
장마철엔늘그렇듯이잠깐씩구름사이로햇빛이고개를내밀기도해이런날을우리는
‘호랑이장가가는날’로만알고있었다.
2교시가끝날무렵부터하늘은먹물을뿌려놓은듯깜깜해져오면서빗줄기가굵어지기시작하더니
이내운동장은물바다가되어가고있었다.
곧수업은중단됐고개울을건너서등하교를하는아이들은마을단위로선생님인솔하에서둘러
교문을빠져나가기시작했다.
개울을건너지않아도되었던나는몇몇동네개구장이들과함께교문을나섰다.
곧바로집으로향하지않고책보자기를등에둘러맨채물에빠진생쥐모습으로
집근처논두렁밑을훑기시작했다.
장마때논두렁봇물줄기에는손만넣으면한웅큼씩집어낼수있는미꾸라지가있었기때문이다.
이렇게시간가는줄모르고들판을헤매고있을때였다.
갑자기지축을뒤흔드는듯한천둥소리와함께전율을느낄정도로섬짓한번개가스치고지나갔다.
뭔지는모르지만가끔씩있어왔던천둥소리와는다르다는느낌에공포가엄습해왔다.
우리는몸을숨길곳을찾아정신없이뛰기시작했다.
한참을내달음질쳐몸을숨긴곳은과수원탱자나무울타리밑이었다.
그런데이게웬일인가!저만치보이는우리동네는온통시꺼먼연기와함께불길에휩쌓여있었다.
당장집으로뛰어가고싶었지만한발자국도움직일수가없었다.
온몸이그대로석고처럼굳어버린것같았다.목소리를낮춰어느한아이가먼저입을열었다.
‘공산당이쳐들어온것’이라고했다.그때상황에서우린그말이가장정답으로여겨질수밖에없었다.
천둥소리는대포소리로둔갑했고번갯불은총알이지나가는흔적이라고또한놈이주장했다.
그러니쉽게집으로뛰어갈엄두가나지않았던게당연했을지도모른다.
고개를쳐박고울타리밑에쪼그리고얼마나있었을까?
내이름을부르는소리가희미하게들려오기시작했다.
양손을입가에모아큰소리로나를찾는사람은다름아닌우리반담임선생님이셨다.
우리마을에벼락이쳐서불길에휩싸여있다는소식을듣고한걸음에달려왔으나
정작반아이인내가보이지않더란것이다.
가까스로나를발견한선생님은넓직한등에생쥐몰골을한나를들쳐업고집으로뛰었다.
그와중에서도‘정말로전쟁이일어난것이냐’고선생님께여쭤보았다.
‘그게아니라너희집은괜찮다만이웃집대부분이벼락을맞아불에타고있단다.
다친사람들도있으니너무놀라지는말라’고하셨다.
전쟁이난것은아니라는말에‘살았구나’하는순간,눈앞에펼쳐진광경자체가바로전쟁이었다.
스피커전선을타고온벼락은어느집할것없이모조리스치고지나갔다.
이틀전스피커선을걷어내고라디오를장만한탓에우리집만온전해있어마루바닥은
야전병원간이침대로둔갑해있었다.
이미목숨을잃어짚더미에올려진동네아주머니가보이는가하면부상자들도많아여기저기서아우성이었다.
난생처음본응급차며,취재차량들이속속도착해후래쉬를터트리는광경들은지금도쉽게지워지질않는다.
선생님은나를안전하게집까지데려다놓고서는연신우물가에서두레박으로물을길러불길을잡기위해
비지땀을쏟으셨다.
그런일이있은뒤언제쯤부터인가학교에서담임선생님의모습을찾을수가없었다.
다른학교로옮겨가신것으로여겨진다.
오늘처럼천둥벼락이칠때면등에업혀가면서느꼈던선생님의따뜻한정이부쩍그립다.
*어제한양로원이낙뢰를맞아불길에휩싸여몸이불편한할머니두분이채빠져나오질못해
목숨을잃었다는안타까운뉴스를접하면서40여년전어느날의기억을떠올리며
언젠가적어놓았던글을다시들춰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