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진관사에서 문수사까지

주말이른아침서울의전철은산행인들이통째로전세낸듯하다.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관악산으로…

입춘문턱을넘은2월5일,요며칠날씨는입춘을비웃기라도하듯매섭다.
꾸역꾸역쏟아져나오는산행인파로지하철출구가비좁기만하다.
구파발역지상에는북한산성입구행버스를타기위한행렬이끝없이이어진다.
긴긴줄에지레겁먹고산행코스를즉석에서수정했다.
은평구진관외동,일명기자촌을지나삼각산진관사를들머리로택했다.

삼각산자락에펼쳐진진관외동일대는폭격이라도맞은듯을씨년스럽다.
깨지고부숴지고흙먼지가휘날리고..
은평뉴타운개발로주민대부분이빠져나간터라황량하기이를데없다.

이일대는60년대말,서울시가무주택기자들을위해조성한주택조합단지였다.
당시김현옥서울시장이무주택언론인들에게추천한후보지는논현동이었다고한다.
현장을방문한기자들은장화를신지않고는다니기어려울진흙탕에

어떻게살수있냐며분노했다.
궁리끝에기자들에게이곳을보여줬더니너무좋아했다고한다.
이렇게해서언론인450여명이평당2천원을주고이일대국유지5만5천여평을

매입해기자촌을조성했다.

그기자촌이지금강북뉴타운계획으로또한번개발바람이불어닥친것이다.
개발현장은으례그러하듯거주민들의주장이담긴페인트글씨로뒤범벅이다.
풍광좋은곳에병풍처럼들어설뉴타운,

삼각산은또그렇게콘크리트구조물에가려질모양이다.

진관사입구는산행인들의발길이뜸하다.
볼살을에일듯차가운날씨이나진관사초입오솔길엔햇살이따사롭다.
맨살을드러낸겨울나무가지사이로아침햇살이쏟아져내린다.
조계종소속인진관사는동불암사,서진관사,남삼막사,북승가사라하여
예로부터서울근교의4대명찰중하나로손꼽힌다.

기록에따르면고려현종이왕위에오르기전,

자신의목숨을구해준진관조사의은혜에보답하고자지은절이라한다.
조선시대에는수륙재(水陸齋)의근본도량이기도했다.
수륙재란물과육지에서헤매는외로운영혼과아귀를위로하기위해

불법을강설하고음식을베푸는의식이다.
이사찰은조상의명복을빌고나랏일로죽었어도제사조차받지못하는

굶주린영혼을위해재를올리기도한곳이다.
풍상의세월속에서도단아함을잃지않은고려시대고찰진관사는그래서더욱돋보인다.

화산(華山,삼각산)한쪽에불전높이솟았는데,
그윽한석벽에구름과물이줄을이었네.
중은고송간(高松間)에서나와찬물에바리를씻고,
객(客)은유수를따라올라와서날저물게문을두드리네.
누대에오르니아침에비온자국보이고,
바위위엔못속의용이지나간흔적있구나.
중봉(中峰)푸른기운속에조용히앉아
달밝은밤,종경(鐘磬)소리들으며,티없는말이그칠줄모르네.

-진관사의그윽하고조용한풍경을노래한海石김재찬의진관사詩-

진관사를지나자곧바로바위계곡이이어진다.
오른쪽에계곡을두고경사진바윗길을오르는재미가쏠쏠하다.

진관사계곡-비봉-사모바위-대남문-문수사-구기동으로코스를잡았다.
진관사계곡코스는아직도깨끗한편이다.

비봉으로가는등산객은대개불광동이나독바위를들머리로택하는까닭에
이곳계곡은자연스레청정한상태를유지하고있다.
계곡은온통순백의얼음으르뒤덮혀눈이시릴정도다.

매표소로부터2.4km정도를걸어오르면갈림길이나온다.
우측능선으로가면불광매표소,좌측은사모바위를지나대남문방면이다.
수많은등산객들로인해쉴새없이날아오르는흙먼지로목구멍이매캐하다.
겨울철등산로엔곳곳에복병이도사리고있다.흙에살짝묻힌빙판은경계대상1호다.
숨겨진빙판길에서의방심은곧사고로이어질수있기때문이다.
사모바위가있는넓은공간은장터가무색할만큼인파로넘쳐난다.
산정은초만원,그래도표정들은한결같이밝다.

사모바위를뒤로하고조금더가면겨우한사람이지날수있는돌문을만난다.
돌문을지나면곧문수봉이올려다보인다.
안전한우회길인청수동암문쪽깔딱고개를오른다.
입고있던재킷을벗어배낭에매단다.
숨이턱밑까지차오른다.

그러길10여분,온몸이땀으로흥건할즈음청수동암문에닿는다.
배낭을열어냉수를벌컥들이킨다.

햇살이들지않은암문반대편산비탈은군데군데잔설이다.
마찬가지로등산로도꽁꽁얼어붙은빙판길이다.

대남문망루에오르니저멀리도봉산의선인봉도시야에들어온다.
대남문을내려와문수사로들어선다.
문수사대웅전앞뜰에서건너다보이는보현봉의암벽이장관이다.
세조가참회의장소로자주찾았다는보현봉은서쪽하늘의햇살을받아

위용을발하며솟구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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