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에몸을맞춘다?
20년넘게몸뚱어리를감싸온사제옷을벗어던지는게군입대후첫통과의례다.
이제부터머리에서발끝까지낯선군모,군복,군화가대신한다.
그저대짜소짜로만구분되던보급품에꼼짝없이몸을맡겨야했던시절,
사이즈타령은언감생심꿈도못꿨다.
오로지군복에몸을,군화에발을,군모에머리를맞춰야했다.
4,50대이상남성들은이렇게옷에몸을맞춰본기억들을간직하고있을것이다.
언제부턴가낯선재킷한착이딸아이의방벽면에두팔을벌린채고정되어있다.
입는옷이라면옷걸이에걸려있어야마땅한데연유가궁금했다.
“왜멀쩡한옷을저렇게두팔벌려벌세워놓은거지?”
“아빤저옷이제몸에맞을거라고생각하세요?”
“라벨도그대로인걸보니새옷인데,맞지도않는옷을왜샀어?”
“쇼크요법이지요”
쇼크요법이라?
그랬다.언젠가저옷을입을수있도록몸을만들겠다는얘긴데이른바요즘44사이즈열풍에
대학2년차인딸아이도꼼짝없이44열병에도져있는듯했다.
한때이나라에‘몸짱’광풍이휘몰아치더니이제꽉죄는옷에몸을구겨넣는세상이되어버린것이다.
온몸을뒤틀어가며혼신의힘을다해다리를바지속으로집어넣는CF를보면서
모름지기옷이란입어편해야한다는생각은고전이되어버렸고
불편을감수하면서조차S라인이우선시되는세상이다.
그렇다면44사이즈란도대체어떤것이길래대한민국젊은여성들을이처럼달뜨게하는것일까?
일축하자면44사이즈란이세상에존재하지않는다.실체가없단얘기다.
이미1990년에사라진사이즈표기기준이다.
지금시중에나와있는44사이즈라는옷들은한결같이엿장수마음대로식표기일뿐이다.
같은44사이즈라할지라도제조업체별로그크기는들쑥날쑥하기때문이다.
심지어동일브랜드이면서도디자인에따라또다르다.
이른바무늬만44사이즈란말이그래서나온다.
결국날씬해지고싶은여성들의욕구를자극하여소비심리를부추기는교묘한상술이먹혀든것이다.
마치제과사들이영업전략상발렌타이데이를비롯해온갖데이를내세워
소비를조장하는것과별반다를게없다.
여기에우후죽순처럼생겨난44사이즈온라인쇼핑몰까지가세하면서
의류유통시장에일대소용돌이를몰고온것이다.
44체형은곧미인의필수조건이되어버린듯그파장은좀체수그러들것같지않다.
한의류판매점은올상반기매출액의20~30%가44사이즈의류가차지했다하니그위력이실감난다.
이를증명이라도하듯인터넷포털사이트를검색해보면44사이즈온라인쇼핑몰은부지기수로널려있다.
문제는인터넷이나각종패션관련매체가이를은근히부추긴다는사실이다.
44사이즈를입을수있는체형이야말로아름다운몸매의기본이라며노골적으로나팔을불어대니
너나없이본인사이즈가아닌데도그저44사이즈대열에줄서고있다.
결국제조업체들은어차피모호한표기방식인지라웬만하면44사이즈라벨을달아박아내고있다.
44를입어몸에맞으면모델이된듯만족해하며십중팔구구매로이어진다는것이다.
매장에늘어선여자마네킹마저도점차야위어져만간다.
이러한기현상은마네킹제조업체관계자가라디오방송에나와인터뷰한내용에서도잘드러난다.
“예전에는마네킹들이외국인모형을따와글래머스타일이주종이었습니다.
최근에는글래머스타일은거의나가지않지요.게다가올해봄이후로는44사이즈로만
주문이들어오고있어그이상사이즈는특별주문제작해야합니다.
우리는의류업체나의류매장의요구에따라갈수밖에없습니다다”고털어놓는다.
하지만마네킹을만들면서도이런사이즈의여성이과연얼마나될까하는생각을한다며
다수여성들도마네킹을보면서스트레스를받을거같아미안한마음이든다고했다.
90년에치수표기규정이ISO체계인센티미터기준으로바뀌면서공식적으로는44,55식의치수표기가사라졌다.
다만변화한표기방식의기재가의무사항은아닌지라44식사이즈는여전히통용되고있을뿐이다.
어쩌면스쳐지나는유행병일수도있는것을여성들의소비심리를부추겨가며
마치44사이즈가전부인양나팔을불어대는형국인데
자칫이그룹에속하지못하는다수젊은여성들의마음에상처가될수있다는점도생각해보아야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