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산, 청계산에 오르면…

청계산에서관악산보기

수도권알짜배기택지지구라는곳,
인덕원역2번출구를나와청계사행버스를타고채10분이안걸리는곳에대단위
아파트단지가들어서고있다.막바지공사로분주한이곳이의왕시청계동과
포일동일원청계산자락10만평규모의청계지구다.

청계사로향하는호젓한길초입에떠억버티고들어선거대한콘크리트숲,
머지않아청계산은콘크리트숲에갇힌孤島가될지도모른다.
한때청계산을중심에두고2020년까지4개신도시를건설한다는
일명‘청계산프로젝트’추진계획도흘러나온적있어하는말이다.

버스에서내려걷는찻길우측계곡엔끝물더위피해나온사람들로빼곡하다.
아이들은개울물에던져놓고어른들은벌건얼굴로고스톱삼매경에빠져있다.
아스팔트길은산길걷는것보다훨씬힘이든다.

매표소인근에넓은주차장이있는데도승용차들은꾸역꾸역오르고또오른다.
청계사입구엔이미빼곡하게들어찬차들로빈틈이없다.
결국엔어설프게후진하며내려가느라비지땀을흘리는구만…

맨질맨질한바위에음각해놓은’우담바라핀청계사’에시선이멎는다.
우측등산로를따라오르려다청계사를들러물한모금마실요량으로
가파른돌계단을따라경내로들어선다.

우담바라핀절이라?
우담바라는불경에서여래(如來)나전륜성왕(轉輪聖王)이나타날때만핀다는
상상의꽃이라고한다.

우담바라가발견되었을당시청계사는전국불자들의발길이한달이넘도록끊이질
않았으며신도들은앞다투어극락보전안우담바라를친견했다고한다.
당시우담바라를’곰팡이다,풀잠자리알이다’라고보도한언론들을상대로
청계사신도회는‘누가감히우담바라를훼손하는가’라는
항의성명을발표하는등진실공방이오가기도했다.

당시청계사우담바라친견불자행렬(야후자료펌)

의왕시청계사를비롯,일부사찰에서피었다고주장한
우담바라이야기를정면으로비판하고나선스님도계신다.
남원실상사도법스님이다.
도법스님은“우담바라꽃바람이휩쓸고간불교계의모습은너무남루하다.
신도가많이모이고불전금이늘어날가능성이없었다면우리가
우담바라바람을일으켰을까”라고물은뒤
“우리가참으로부처님을잘모시고자한다면우담바라다라니를외울것이아니라
재산명예권력을내던진부처님처럼청빈한삶을선택해야옳다”시며불교계의
자성을촉구하기도했다.

천년고찰청계사는신라시대에창건되어고려충렬왕(忠烈王)10년(1284)에크게중창되다었고전한다.

조선연산군(燕山君)이도성내에있는사찰을폐쇄했을때봉은사를대신하여

선종의본산으로정해졌던유서깊은곳이다.

현재에사찰모습은1955년이후역대주지스님들이중수로이루어진것이지만전체규모와

가람의배치는조선시대에틀이잡힌것으로보인다.

사찰내에는극락보전과칠성각·봉향각·삼성각·요사등의건물이있다.
극락보전은이익공(기둥중간에는창방과도리·장혀사이에화반을놓고,기둥머리에서는

두공과창방에교차되는상하2개와쇠서로짜여진공포형식)겹처마팔작지붕으로석재의가공과

목재의치목이정교하며화려한단청이돋보인다.
또한지붕에는취두(지붕마루의양끝에얹는새머리모양을새긴장식기와.국가·사회적으로

격식이높은건물에쓰인다)·용두·이수등고급의장식물을올려전체적으로매우화려하고

고급스럽게지어진건물임을알수있다.-야후에서자료검색-

누워있는부처님앞을조심스레벗어나우측산길로접어든다.
이수봉을향해걷는능선에서바라다보이는관악산은손에잡힐듯하다.
과천대공원숲길도발아래다.
63빌딩황금빛외벽에부딪친빛은예까지반사되어눈이시릴정도다.
저멀리하늘과맞닿아있는서쪽바다도눈길좀달라한다.
근래들어산에올라이토록가시거리가좋았던날이없었다.
이곳저곳에서감탄사가절로터져나온다.

西海까지도~

이수봉에서몇걸음내려와옛골방면으로방향을트는길목에
‘청계산노래한사발’이발목을잡는다.
통키타도,막걸리도있다.
한사발쭈욱~들이키고…내려가려다뒤돌아보는데

왠지섭섭해한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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