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한가운데섬이봉긋솟아있다.
열두어집이옹기종기모여사는초미니마을을
U자모양으로과수원이감싸안고있다.
과수원간경계는탱자나무와아카시나무울타리가쳐져미로처럼구불거린다.
마치외부와단절된듯한모양새를가진마을,흡사섬마을과도같다.
마을로통하는길은두갈래.
하나는5리남짓거리인읍내까지꼬불꼬불논둑길이고
또하나는신작로를벗어나동네까지개천뚝을거슬러오르는길이다.
동네어귀에이르면과수원울타리너머로주렁주렁열린홍옥사과가
볼을붉히며수줍게맞는다.
가을햇살을제대로받아진홍빛이선연하다.
새콤한홍옥맛을떠올리는순간입안침샘이작동한다.
키낮은탱자나무울타리에도열매가노랗게여물어간다.
탱자나무를휘감으며웃자란구기자도탱자열매향과함께코끝을간지럽힌다.
이렇듯오곡백과가가을빛을띠기시작할때쯤이면추석이코앞이다.
논빼미에서잘여문벼너댓단정도베어내차례상에올릴햅쌀도준비한다.
참깨도볶고고추도따서말린다.
객지에나가사는자식들내려오면손에들려보내기위해서다.
추석연휴가시작되면서울로돈벌러간자식들을기다린다.
이제나올까,저제나올까.동구밖에나와눈이시리도록신작로쪽을응시한다.
중학교진학할형편이못돼도회지로돈벌러간옆집아이가부러워
형편이좀나은아이들도덩달아바람이들어도시로내뺐다.
낯설고물선이역,공장한켠에마련된기숙사에서,인근쪽방에서
잠깐씩새우잠을자며주야장천일했다.
이들이고향집을찾을때가추석이고설명절이다.
일년에두번뿐인명절엔무슨일이있어도고향을찾는다.
명절때나타나지않으면여지없이구설수에오른다.
‘서울서바람나지애미애비는안중에도없다.
다니던공장이거덜나땡전한닢없는처량한신세가되었다더라’등등.
그래서귀향전쟁에몸살앓는한이있어도기를쓰고길을나선다.
그렇게동네한바퀴돌며어른들께눈도장꽉박고가야뒷말이없다.
작업복과스카프는잠시벗어두고미니스커트를입고핸드백을맨다.
하이힐을신고빨간립스틱도발랐다.
청년들도뒤질세라칼날같이다림질한셔츠깃을양복밖으로빼내고
나팔바지뒷주머니에도끼빗도챙겨넣고고향을찾는다.
신작로에버스가멈춰서면일순흙먼지가자욱하게인다.
신작로쪽을뚫어져라응시하던어머님들은가물가물한거리인데도
단박에자식을알아보고개천뚝을내달려마중한다.
동생들은얼굴이뽀얗게되어돌아온언니누나가한없이부럽고자랑스러웠다.
“언니야내도서울물먹으면뽀얗게돼나?”
종일토록형광등아래서일하느라햇볕못봐파리해진얼굴이라는걸
철없는동생들은알턱이없다.
고생하며모은돈을쪼개동생들추석빔에,차례상올릴청주까지챙겨온자식을보며
어머님들은대견해하면서도한편으로는안스러워뒤돌아서치마폭으로눈물을훔친다.
어설픈서울말로동생들에게서울이야기들려주느라밤늦도록30촉백열등은꺼질줄모른다.
이렇듯내어릴적고향의가을은궁핍하나풍성했고모자란듯넉넉했다.
그런데지금고향의모습은너무나생경스럽다.
우선,옹기종기붙어살던12가구중절반은폐가상태다.
마당엔웃자라무성한잡풀이키를넘고구석구석무너져내려흉물스럽다.
말뚝박기와고무줄놀이하며재잘대던담벼락아래엔
노쇠한이웃어르신들이둘러앉아무심한세월을낚고있다.
재래종인국광,홍옥사과가전부일때과수원은울창한숲속과도같았다.
이젠농사짓기편리하게개량된키낮은사과나무라과거모습은온데간데없다.
그나마도관리할사람없어나무를뽑아버린채맨밭으로묵히는곳이더많다.
발길닿아맨질맨질하던개천뚝길엔콘크리트가깔렸고
개울가엔여기저기빈농약병이나뒹굴고폐비닐이나부낀다.
탱자나무울타리는조립식철망에자리를내준지오래다.
고속도로와우회국도가생겨나면서소잔등같던앞산은토막났다.
마을위를지나죽령터널까지엿가락처럼휘감겨지나는도로는
편리함을가져다준대신조용하던마을을앗아가버렸다.
포근하던섬마을과정감어린모습들은그어디에도없다.
나고자란고향마을의온전한모습은이제꿈속에서나만날수있을런지…
추석명절이가까워오면서떠올린고향마을은가을이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