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종주기회를엿보던중황금연휴끝자락을붙잡았다.
주로당일산행만해오던터라이번아흐레간연휴는황금덩이못지않다.
그래!천금같은시간,옹골차게,빡세게걸어보자.
그렇게하여철원명성산(9/30),춘천삼악산(10/2),
양주불곡산(10/3),서울도봉산(10/5)을오르며워밍업했다.
추석날(10/6)아침나절엔어머니위패모셔진절을찾았다.
"이놈오늘저녁지리산종주떠나는데무릎도발목도잘좀보살펴주이소"
"고얀놈얼씬도않다가때되면나타나고작한다는말이네놈안위만지껄이느냐"고호통이시다.
그러면서도어머니는몰염치한이놈청을다들어주신다.
수일전,10월7~8일에지리산종주가있는산악회를뒤져이름을올려놨다.
추석당일밤10시,빵빵하게채운배낭을멘산꾼들이약속장소로꾸역꾸역모여든다.
하나같이전문산꾼폼새다.내심민폐나끼치지않을까걱정이앞선다.
서울을떠난버스는의외로막힘없이술술잘도빠진다.버스전용차로덕이다.
선잠에서깨어보니사위가캄캄한데내려서밥먹으란다.
윈드재킷을꺼내걸쳐도으시시춥다.
일행을태운버스는한적한시골마을도로변에정차했다.
산악회측에서늘상해본듯빠른손놀림으로준비해온음식을내놓는다.
보름달빛에의지해도로가맨바닥에쪼그리고앉아동태국에밥말아한술뜨고나니한기가가신다.
날벌레가득한가로등불빛은휘영청밝은보름달에먹혀졸고있다.
경남산청군유평리매표소를들머리로잡았다.
오밤중이라매표소엔아무도없다.국립공원을그냥통과한다.
매표소에서대원사까지는포장도로로2.2km거리다.
신라고찰대원사는비구니들의청정도량으로고즈넉한경내가인상적이라하나
경관도,지리산의산세도어둠속이라도무지가늠이안된다.
그러나밤하늘별빛그윽하고,皎皎月色(교교월색)이라적막하지만은않다.
헤드랜턴불빛에의지하며야간산길10km를걸어
사방이훤히밝아올무렵,치밭목대피소(1,425m)에닿았다.
지리산의숱한산장중가장조용하고깊은맛을느낄수있다는곳이다.
찬새벽공기가땀에젖은셔츠속으로파고든다.재킷을다시걸친다.
산장안취사장엔라면이팔팔끓고커피내음이번진다.
예까지오르느라1천리터물병이바닥났다.
다행히100m거리에식수가있어꾹꾹눌러담는다.
이곳을벗어나면장터목대피소까지가야식수를만날수있기때문이다.
중봉까지3.1km,천왕봉까지는4.0km,그리고날머리인성삼재까지는…으~
오밀조밀한암릉을따라써리봉(1,602m)에올라겹겹이너울거리는산자락에잠시넋을놓는다.
백두대간의끝봉우리이자,대간종주의시작점인천왕봉이눈앞에우뚝다가선다.
천왕봉가는길목에동생격인중봉(1,874m)이바지춤을잡아끈다.
중봉암릉지대주변에펼쳐진고사목들은지나는산객들을온몸으로유혹한다.
중봉에이르는길은치밭목에서오르는길과하봉에서오르는길이있다.
지리산의여유를즐기려면치밭목에서올라써리봉능선을타는것이좋다.
해발1,915m천왕봉.
한라산다음으로높은봉우리,천왕봉정상석에손을얹고잠시숨을고른다.
그리고사위를둘러본다.모든지리산자락이발아래너울거린다.
아스라이하늘금을긋고있는반야봉과노고단도가물가물눈에들어온다.
걸어서가야할곳이다.
한국인의기상이발원한다는천왕봉에서노고단방향을향해심호흡한번크게하고발길을내딛는다.
발품을판만큼,땀을쏟은만큼만산은속살을드러낸다.
산속을걷다보면눈앞에펼쳐지는온갖비경에탄성이절로난다.
형형색색의야생화,기묘한바위와그틈을뚫고자라는소나무,발품없이는절대볼수없는것들이다.
천왕봉을내려서면서부터군데군데암릉구간이이어진다.
그리위험하지않아보이는곳인데도여지없이쇠사다리가놓여있다.
제대로고정이안되어덜렁거리기도하고발판이심하게기울어있어실족이염려되는
쇠사다리도눈에띤다.오히려그자체가장애물이다.
천왕봉과제석봉사이가파른칠선계곡엔고사목과단풍이적당히조화를이룬다.
제석봉(1,808m)에이르자,사방에고사목이널려있다.
그러나이곳고사목은그저운치있게만볼수없는아픔이있다.
한때아름드리전나무,잣나무,주목들로울창했던이곳에
자유당말기,권력을등에업은자가도벌을하게됐고말썽이나자증거를없애기위해
제석봉에불을질러여타나무들까지횡사시켜버렸다는것이다.
고사목이아니라수난의횡사목인셈이다.
새벽2시에동태국에밥한술말아먹은게전부다.
매표소에서부터산길13km나걸어제석봉(1,808m)에이른것이다.
식수도바닥일보직전이다.
배낭속먹을거리라곤익혀야먹을수있는햇반2개와카레,반찬으로는통조림2개가전부다.
긴산행에대한경험부족이다.대피소어느곳에서도끓인물은구할수없다.
이정표를보니다행히도1.1km거리에장터목대피소가표시되어있다.
장터목대피소(1,653m).
산청군사천면사람들과함양군마천면사람들이이곳에올라와물물교환하던
장터였다하여장터목으로불린다.
1천6백고지에올라와물물교환을했다?선대어르신들다리심에감복할따름이다.
허겁지겁매점으로들어섰다.역시나끓는물은구할수없다.
밥을먹어야밥심이나는데…으~
매점진열대를보니선택의여지가없다.초코파이세개를챙겼다.
물통도채워야한다.가뜩이나기진맥진한상태인데음수대는가파른돌계단을한참이나내려선곳에있다.
물을받으려는긴줄에서서퍽퍽한초코파이로허기진배를달랜다.
장터목을나서1박이잡혀있는벽소령대피소로향한다.여전히멀고도멀다.
연하봉,삼신봉,촛대봉,세석평전을지나영신봉,칠선봉,덕평봉을넘어5시간은족히더걸어야한다.
장터목에서배려깊은S씨를만난건여간다행한일이아니다.
"저한테버너도코펠도다있으니벽소령에가서데워드시지요"
햇반을들고데우질못해허둥대는모습이영딱해보였던모양이다.
그렇게다가온그와는산행내내앞서거니뒤서거니하며
세상돌아가는이야기와산이야기를나누며지리산동지가됐다.
연하봉(1,730m)은장터목과세석평전사이에위치해있어지리산종주시반드시거치게되는봉우리이다.
한신계곡을타고오른골바람이제법세차다.
기암괴석사이를비집고뿌리를내린이름모를야생화가골바람에몸을실어박수치듯반갑게맞는다.
야생화향기그윽한연하봉은지리10경중제7경으로연하선경으로알려진곳이다.
드디어지리산의심장부라는세석평전이눈앞에펼쳐진다.
동쪽으로촛대봉,서쪽으로영신봉을끼고있는지리산최대평원지대다.
사방으로길고웅장한계곡을거느리고있다.
소와폭포가이어진한신계곡,빨치산의아픔을간직하고있는대성골,이름도거창한거림골,
그리고인적드문비경의도장골이모두이곳세석에서흘러내리는계곡이다.
이곳에세석대피소가자리하고있다.
대개지리산종주시,성삼재를들머리로하면이곳서1박을,
대원사나중산리에서출발하면벽소령대피소에서1박을하게된다.
물보충도할겸잠시쉬었다가영신봉을향해발길을옮긴다.
천왕봉에서아스라이보이던반야봉은여전히까마득하다.
지리산어느방향에서보아도반야봉은여인네둔부의아름다운선을빼닮았다.
영신봉(1,652m)에이르자,동행중인S씨는’우린지금매우의미있는봉우리에서있다’고했다.
잠시바위에걸터앉아산줄기를굽어보며그의얘기에귀기울여본다.
"지금이봉우리에서시작되는낙남정맥은하동,진주,함안,마산,창원을거쳐
김해의낙동강하류매리마을에서그맥이다하는한반도최남단산줄기지요.
우리나라산줄기는1백두대간1장백정간13정맥으로나눠지는데
바로낙남정맥은13정맥중하나로여기가출발점입니다"
술술풀어가는산지식에놀라워하자,대간,정맥종주산행에관심이많다보니
조금씩알아둔것뿐이라며겸손해한다.
칠선봉(1,558m)주변은단풍과기암이적절히조화롭다.
일곱암봉에운무가휘감기면마치일곱선녀가노니는모습과같다는
칠선봉을내려서며남겨두었던물한모금을통째로들이킨다.
물통이바닥날정도가되면반드시샘터가나온다.
아니나다를까이번엔등산로길목에서’선비샘’을만났다.
주능선을종주하면서두세시간마다식수를보충할수있고
반나절만걸으면대피소가있어종주하기그만인지리산을누가지리한산이라했던가.
사방을둘러하늘을본다.
말로만듣던푸른밤밝은달빛을기대해도좋을듯하다.
지리산등뼈의한가운데라는벽소령을향해발길을서두른다.
벽소령대피소엔산객들로북적인다.
새벽3시부터걷기시작,이곳벽소령산장에서잠시신발끈을푼다.
오늘밤,
산장벤치에누워벽소명월에취하고싶다.
쏟아져내리는영롱한별빛속으로빠져들고싶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