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어리땀을서늘하게식혀주던벽소령골바람은금새차디차다.
어둠이서서히내려앉는다.
허기를채우려는산객들의손놀림도분주하다.
이곳저곳서버너불이피어오른다.라면에누룽지에커피까지…
그리고오가피술한컵부어원샷하고나니별빛더욱또렷하다.
산등성이위로휘영청떠오른둥근달은차갑도록푸르러가슴시리다.
가을밤의교교한달빛은지리산등줄기에그렇게천지기운을지피고있었다.
대피소마루바닥에담요한장깔고곤한몸을뉜다.
저마다들고나는시간대가제각각이라자다깨다를거듭할수밖에.
칼잠탓에삭신은쑤시나머리는맑다.
서두른다.형제봉에서의지리산일출을놓칠수는없다.
어둑한산장을뒤로하고헤드랜턴불빛에의지하여형제봉으로향한다.
형제봉바위난간엔이미여럿일출을기다리고있다.
저멀리하늘과맞닿은천왕봉과중봉능선위로붉은기운이드리워진다.
위험스러우리만치바위벽에삼각대를고정시킨사진작가도,디카를꺼내들고찰나를잡으려는아마추어들도,
하나같이장엄한일출이빚어내는특별한감동을맛보려재킷속으로스며드는새벽한기를감내하고있다.
엷게드리운구름층사이로태고의빛이장엄하게뻗치더니
일순천왕봉을차고오른불덩이는천지사방으로빛을발한다.
몽환적일출광경에취해아득한세계로빠져든다.
겹겹이둘러싼봉우리를딛고올라구름바다를주유하는꿈을꾼다.
1시간가까이홀린듯헤매이다공복을알리는신호에몸을일으킨다.
조식을위해초미니산장,연하천대피소에서배낭을내린다.
장터목,세석,벽소령산장에비하면규모는초라하나쉼터로서운치는한결깊다.
버너를꺼내고코펠에물을길러누룽지부터끓여낸다.
누룽지건져먹고숭늉들이킨뒤라면까지끓여먹으니든든하다.
산길에서만난S씨는먹거리를세심하게도준비했다.
밥을주먹크기로뭉쳐비닐로밀봉하고,말린누룽지도,장조림도
호두에,삶은계란에…이거영염치없게돼버렸다.
내배낭속엔햇반2개와참치캔하나가고작이었으니…
연하천산장을나서토끼봉(1,533m)으로향한다.
토끼봉으로오르는계단은잘정비되어있으나계단길은역시지리하다.
토끼가있어토끼봉이아니다.그렇다고봉우리가토끼를닮은것도아니다.
반야봉을기점으로동쪽,즉24방위의정동에해당되는묘방(卯方)이어서토끼봉으로불릴뿐이다.
토끼봉에서보는노고단은여전히아득하다.
그러나도저히다가설것같지않던반야봉은어느새손에잡힐듯하다.
지체한시간이많아화개재를향해곧장하산한다.
화개재(1,360m).
동쪽으로는1,533m의토끼봉이,서쪽으로는1,550m의삼도봉이솟아있다.
화개재는해안지방의소금이나수산물과내륙지방의삼베를비롯한농산물을교환하던
고갯마루였으며지리산에는이와비슷한역할을한고갯마루가많다.
허물없이어울리는곳
언제나꽃이핀다.
옥화네주막은찾을수없고
육자배기가락은들리지않고
이박사경망스런노랫소리장터에가득하고.
이루지못한사랑타버린가슴부여안고
훌쩍이고있을것같은데
그고운모습찾으려달려가고싶은데
가위눌린꿈속처럼오금이펴지지않는다.
황아장수해물장수엿장수
만났다가헤어지고다시만난다.
언제나꽃이핀다.
화개재에서삼도봉오르는길에공포의목계단이기다린다.
숨은턱끝까지차오르고입에선단내가날즈음마지막591계단에올라선다.
화개재에서2km를걸어삼도봉에올라선다.
삼도봉(1,550m)의산세는섬진강으로뻗어내리는불무장등능선의시발점이며
경남과전남·북을구분짓는봉우리이다.
삼도봉에서면눈앞을가로막는반야봉이지척이다.
또한지나온천왕봉,연하봉이저멀리가물거리며비로소노고단도만만하리만치눈에들어온다.
반야봉을건너다보며고민에빠진다.
삼도봉에서곧장노루목으로향하면반야봉오르는3.5km가줄어든다.
문제는사진찍느라메모하느라지체한시간이너무많았다.
여차하면약속시간내성삼재에닿기어렵다.
일행에민폐를끼쳐서는아니될일이다.
아쉬우나반야봉을비껴노루목으로곧장가기로했다.
노루목에도착하니바위위에주인없는배낭이여러개얹혀있다.
이곳에배낭을벗어두고빈몸으로반야봉에올랐다가내려와
다시둘러메고길을가는산꾼들이대부분이다.
반야봉의산세가피아골로흘러내리다가이곳에서잠시멈춰
그모양이마치노루가머리를치켜든모습과비슷해’노루목’이라불린다한다.
임걸령(1,320m)에내려서물보충을한다.
종주길에만난여러샘터중콸콸넘치는샘물은처음이다.
수통에가득담고단숨에한바가지를벌컥들이킨다.
임걸령을뒤로하고피아골삼거리지나노고단으로향한다.
노고단을넘어,
드디어최종점성삼재에닿다.
백두산에서기운차게흘러내린(頭流),백두대간의시작점이기도끝점이기도한지리산.
회색빛뿌연옹색한도시공간을벗어나지리산의너른품에,
이제다시일상으로돌아가며또다른산을가슴속에품는다.
4백여년전이색(李穡)의가슴시린山高歌로첫지리산종주를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