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지산 너른품에

민주지산정상에서서

버스는거친엔진음을토하며굽이굽이고갯길돌아해발800m도마령에멈춰선다.
칼든장수가말타고넘은고갯길이라는’도마령’은
충북영동에서전북무주로넘어가는첩첩산중고갯길이다.
이고갯길을들머리로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으로이어지는
능선종주가오늘산행코스다.

산허리를감아싼짙은운무가쉬걷힐것같지않다.
등산화끈을조여매고스틱길이를조정한다.
오전11시,도마령에서가파른나무계단을딛고오른다.

이내팔각지붕의上龍亭이눈에들어온다.
가시거리좋은날,상용정에올라산아래를굽어보면
구불구불고갯길이한눈에들어와장관이라던데오늘은그모두가희뿌옇기만하다.

운무가득드리운산길은그나름의매력이있다.

잠자리도잠시…

청명한날,산꾼들의정수리를달구는태양은먼산連峰을선사하나
흐릿한날,운무의신비한기운은침잠해있던기억들을일깨워준다.

흙먼지풀풀날리지않아좋고촉촉한땅기운이발바닥에스며드는것같아좋다.
조망좋기로이름난민주지산,운무에묻혀서도또다른매력을발산한다.

1시간정도를빡세게오르자,깎아지른바위들이막아선다.
밧줄을잡고바위에기어올라두리번…여기가각호봉인가,아니다.
두개의암봉이마주보고있는데지금서있는곳은짝퉁이고
건너편코닿을거리에있는암봉이각호산정상(1,176m)이다.

산정에서펼쳐지는운무의향연은가히환상적이다.
어디가하늘인지,어디서부터가산인지…
운무드리운여백에번진濃淡은그대로가수묵화다.
선계에서는캔버스가따로없고물감도붓도필요치않다.
오로지변화무쌍한자연만이캔버스이며붓이고물감이다.

각호봉을내려설때역시물기머금은암릉이라조심스럽다.
밧줄에의지해조심스레내려와민주지산으로발길을서두른다.

비교적편안한길을1시간가량걸었을까,오른쪽에대피소가보인다.
하루면너끈하게종주할수있는산길인데웬대피소…?

각호봉아래대피소

그랬다.1998년민주지산에서동계훈련받던특전사요원여섯명이이곳서
탈진해사망했다.이들영혼을달래며사고재발을막기위해
아담하게지어놓은무인대피소였다.
적설량이엄청난민주지산은겨울이면종종심술을부리는산으로알려져있다.

대피소에서300m를걸어닿은곳,민주지산(1,241m)정상.
튀는산이름을가진’민주지산’,과연어느것이맞는표기일까?
국립지리원지형도에서는眠周之山
전북무주군지에서는岷周之山
충북영동군지에서는珉周之山
산악회안내지에는주로民周之山….제각각이다.
그러나’동국여지승람’과’대동여지도’에서는이산을
白雲山이라고적고있다는데…점점더헷갈릴뿐이로다.

신호가온다.산행중食飮재미야말로빼놓을수없는것.
정상산비탈초원에자리를펼쳐놓고캔맥주부터따단숨에들이킨다.
순간화력뛰어난간편버너에불을당기자금새물이끓어넘친다.
(어라~지정된장소가아닌곳에서화기를…유구무언^^)
컵라면뚜껑따고보냉용기에담아온김치까지꺼내놓으니이순간,세상부러울게없다.

석기봉이희미하게모습을드러내고…

저멀리가야할석기봉이잠시잠깐보이는가싶더니이내운무뒤로제모습을감춘다.

물기머금은조릿대가바짓단을휘감는다.
조릿대사이로난좁은산길은질척거려바지는온통흙범벅이다.

산길을오르락내리락하는사이,어느샌가우뚝솟은석기봉이저건너에와있다.
흙범벅은바지만이아니다.
뾰족한석기봉은암봉으로,곳곳에매달린밧줄또한흙범벅이다.
그렇다고잡지않을수도없다.바위면도젖어있어미끄러지기일쑤인지라
흙범벅된밧줄을잡고용을쓰며기어오른석기봉(1,200m).

석기봉이눈앞에…

기진맥진하여오른탓일까?석기봉50미터아래에있다는삼두마애불을보러갈엄두가안난다.

석기봉아래암벽에양각된삼두마애불은서남쪽을향해있으며
높이6미터,폭2미터정도의크기라한다.
石奇峰이라는이름도머리가셋인이마애불의기이한모습에서
따왔을가능성이높다고하는데…

석기봉임을알리는나무표지판

각호봉에도,민주지산정상에도있는정상표시석이이곳엔없다.
석기봉임을알리는나무표지판하나만바닥에나뒹군다.
바위틈에끼워놓고내려오긴했는데바람에날아가지나않았을지…

멀리삼도봉이시야에들어온다.운무가많이옅어진탓이다.
석기봉에서삼도봉까지는1.4km거리인데도아득하게만느껴진다.
삼복염천에산길을헉헉대며걷다보니체력은임계를벗어나고있다.

지도를살펴보니석기봉에서도탈출로가있다.
이번산행의날머리인물한계곡으로곧장내려설수있다.
‘마지막산봉하나남겨두고샛길이라니,그럴수는없지’
숨한번크게들이키고삼도봉으로발길을옮긴다.

삼도봉(1,177m)은충북영동,전북무주,경북금릉,3개도3개군이갈라지는봉우리다.
정상엔덩치큰조형물이산정을깔고앉았다.
삼도화합을위해세워놓은상징물이라는데
좀더작게자연친화적이었으면좋았겠다는생각이든다.

면에경북금릉군,전북무주군,충북영동군을표시하고있는정상석


지리산삼도봉엔銅삼각기둥을조그맣게세워놓아깔끔하고보기좋던데…

삼도봉에서서걸어온길을돌아본다.
뽀족한석기봉이어렴풋하게나마눈에잡힌다.

삼도봉에서건너다본석기봉

이제부터하산길,4.4km를더걸어야한다
서둘러삼마골재로내려서면서밀목령으로이어지는백두대간마루금을올려다본다.

삼마골재에서왼쪽으로방향을틀어내려서면
계곡깊고숲짙어물이차다는물한계곡이다.

널찍한낙엽송길을따라쭈욱~
도마령에서시작해14km의산길을벗어난시간은오후4시반.
장딴지가뻐근하다.

하산주로인삼향그윽한동동주두어사발들이키고나니,
천근만근이던몸은금새새털처럼두둥실가볍다.
그리고또다시머릿속엔山이맴맴돈다.

도마령>각호봉>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삼마골재>물한계곡>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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