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팔셔츠를입고나설걸~,새벽공기가서늘하다.
풀잎에이슬이맺히기시작한다는,오늘이白露다.
외할머니께선병색이완연한어린손주를등에업고콩잎무성한논두렁길을걸었다.
백로에내린콩잎의이슬을손으로훑어먹이면병이낫는다는
말을철썩같이믿으셨던게다.그러나아이는외할머니의따스한등에업힌채
너무도어린나이에하늘나라로갔다.
무지하던40여년전,시골집에서의가슴아린기억이불현듯떠오른다.
그래서일까,오곡백과가여무는데더없이좋은절기인白露이지만,
이맘때가되면늘가슴속깊은곳에휑하게바람이인다.
인생은풀잎에맺힌이슬과같다고들하지만
白露에,草露보다도빨리떠나버린…잠시상념에잠겨본다.
AntonSchnack의우리를슬프게하는것들中한구절이스친다.
정원한구석에서발견된작은새의시체위에初秋의陽光이떨어져있을때,
대체로가을은우리를슬프게한다.
백로이자주말,더하여완연한淸秋인오늘,
조망산행을기대하며향하는곳은경북문경장성봉과충북괴산의악휘봉.
버스차창에턱을괴고망연히창공을바라다본다.
공활한가을하늘에두둥실떠다니는뭉게구름사이로햇살이찬연하다.
실로얼마만의높고파란하늘인가.
산행들머리버리미기재에닿은시간은10:30.
버리미기재는충북괴산과경북문경을잇는고개다.
괴산에서문경방향으로버리미기재에오르면
오른쪽은곰넘이봉지나대야산,왼쪽은장성봉오름길이다.
그러나양방향모두비지정등산로로묶여있다.
백두대간을종주하는산꾼들이반드시들고나는길목인데…
눈치껏산속으로숨어들수밖에도리없다.이럴때마다뒤통수가후끈거린다.
출입통제된등로,산다니다보면의외로많이만난다.
배낭의허리벨트도알맞게조여맨다.
초입부터등로가급경사인지라채30분도못걸어호흡이짧고거칠어온다.
암릉구간도간간히나타나나대체로육산이다.
등로곳곳에노송이군락을이루고있어운치를더한다.
백두대간능선과등뒤로곰넘이봉에서대야산으로이어지는
백두대간능선이장쾌하게한눈에들어온다.
그런다음대간종주길을벗어나삼거리에서왼쪽길로접어들어악휘봉을넘어
암릉구간을지나덕가산못미쳐안부에서우측입석리방향으로내려서게된다.
은티재,구왕봉,희양산으로이어진다.
장성봉정상(916.3m)에막발을들여놓으려는데
들머리에서처럼’출입금지’안내판을내건밧줄이길을가로막는다.
낯익은국립공원이정표도’탐방로아님’을가리키니영머쓱하다.
그런데웬국립공원이정표가이곳에있나했더니
장성봉이위치한곳은경북문경이지만속리산국립공원에포함되어있단다.
長城峰이라하여혹옛성곽터가남아있지않을까생각했으나
산자체가만리장성처럼첩첩웅장하여붙여진이름이라한다.
북서쪽의막장봉은손에잡힐듯바라다보인다.
장성봉정상을내려와막장봉갈림길에서배낭을내린다.
초반부터줄곧급경사길과군데군데암릉구간을지나온탓에체력이바닥이다.
다리힘이풀리면착지가불안정해져자칫발목을접지르기십상이다.
기력을보충해야할시간대,정오이기도하다.
이른아침에먹은토스트한조각으로예까지버틴거다.
팥빵하나,명함크기의다시마두조각,감귤2개가오늘행동식이다.
땀이식은등짝이서늘해져온다.
재킷을꺼내입어도보고,양광찾아옮겨앉아보지만
서늘한기운이가시질않는다.
더이상지체하다간감기들지도모를일,자릴박차고일어나발길을서두른다.
오름길을지나고사목이반기는827봉에이르자다시온몸은땀범벅이다.
고도가높아지자올망졸망한봉우리들이굽이치며손짓하고,
저멀리첩첩능선들도하늘과어우러져연신너울거린다.
가야할거리가아직도만만치않다.
그렇다고何歲月넋놓고있을수만은없는일,
걸음을재촉한다.등로가완만하다싶으면솟구치길여러번.
지도를살펴보니807,787,821봉등산봉을연신오르락내리락이다.
821봉에서보이는수려한암봉악휘봉에매료되어
백두대간을종주하는산꾼들도이갈림길에서망설인다고들었다.
악휘봉이지만잠시들렀다가가게된다나.
깎아지른듯한절벽에아슬아슬하게서있는괴석,
여기에노송이어우러진절묘한풍경은
예까지오른산꾼들을위한보너스仙境은아닐런지.
악휘봉입석바위는산아래동네,입석리를낳을정도로
마을사람들은기묘한형상의선바위를영험스럽게여긴다.
정상에서의조망은감탄불금이다.
월악산,조령산,주흘산,이화령이아른거리고
구왕봉,희양산,덕가산,칠보산,군자산이넘실댄다.
표시석을카메라에담을요량으로한참을기다렸으나
먼저온산객들,정상석에둘러앉아한상차려놓고일어설줄모른다.
뒷사람들을위한배려라고는…아쉽다.
무신경의표본이다.
하산을위해급사면을조심스레내려서는데거대한바위벽이아찔하게막아선다.
하얀바위벽에늘어뜨려놓은밧줄을올려다보니까마득하다.
산길다니다이런길만나면당혹스럽다.
사고로왼팔장애판정을받은바있어오로지오른손으로밧줄잡고
몸을끌어올려야하기때문이다.
밧줄을오른쪽겨드랑이에넣고오른손으로밧줄을조금씩올려잡으며오른다.
조금힘겹기는하나한손으로도할수있다는뿌듯함과
스릴을느낄수있어좋다.
바위틈으로난가파른길을내려와20분정도걸으면
덕가산방향을알리는이정표가나온다.
악휘봉일대이정표는하나같이거리를km로표시치않고
分으로표시하고있다.
계곡물소리가들릴때까지줄곧비탈이심하다.
주렁주렁탐스럽다.
서울로돌아오는길,옆자리앉은등반대장의일몰예찬,
"일상의좋고싫은것,가리지않고모두품에안고가라앉는일몰은
일출보다훨씬경이롭게느껴집니다"
어둠이배인차창에악휘봉입석바위와노송이투영된다.
아마도악휘봉의걸작산수화가오래도록눈에삼삼할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