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망히 그를 떠나 보내며
그림을배우겠다고화실을찾아온그는
당시高2학년이었던걸로기억합니다.
뎃생을위해목탄을집어든그의손마디는유난히뭉툭했습니다.
2년가까이그와함께한인연이있었기에
일요일아침날아든비보는더욱황망할수밖에없었습니다.
서둘러KTX를타고지방에있는장례식장에도착했는데…
그가명을놓은시간은,부친의발인이끝난직후였습니다.
아들인화가하영술씨도아버지를따라간것입니다.
아들이싸늘한주검으로들어왔으니유족들은물론이고
식장을찾은지인들도안타까운현실앞에
말을잇지못하는표정들이었습니다.
일요일밤,비통한마음을소주잔에담았습니다.
서예가장전하남호선생은국전초대작가,국전심사위원,
한국서가협회고문을역임하는등한국서단에큰족적을남겼습니다.
아들인
故하영술씨는중앙대예대및동대학원출신으로
프랑스쏘르본느파리1대학에서미술사학박사학위를받은후귀국,
후학양성과작품활동을해왔습니다.
(조선닷컴기사옮겨옴)
서예가하남호선생발인날아들도숨져
연합뉴스
입력:2007.10.0808:36/수정:2007.10.0816:00
▲장전하남호선생지난4일타계한서예가장전(長田)하남호선생의발인날아들인화가영술씨도숨져안타까움을더하고있다.8일장전의유족에따르면아들영술씨는7일오전9시께전남대병원에서지병인신장염이악화해47세를일기로숨졌다.
더욱이영술씨의사망소식은장전의발인이치러진직후전해져가족과지역미술계의슬픔은배가됐다.
장전의3남4녀중차남인영술씨는중앙대예술대학과대학원을졸업한뒤프랑스에서박사학위를받고돌아와강단에서학생들을지도했으며장전이후학양성을위해고향진도에세운남진미술관장을지내기도했다.
영술씨는지난달의식을잃고쓰러져아버지의타계사실도알지못했던것으로전해졌다.
영술씨의누나는“미술을하던동생이아버지의뒤를따라가기위해발인날에숨을거둔것같다”고말했다.
빈소는광주무등장례식장(☎062-515-4488)에마련됐으며발인은9일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