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릿재터널앞포도가장자리에버스가멈춰섰다.
잠시숨을고르며수북히쌓인눈밭을응시한다.
바람이차다.땀이식어등골이서늘해온다.
심설산행중빼놓을수없는즐거움은눈밭먹자판,
출입문이열리자겨울산간의냉기가
후텁지근한버스안으로잽싸게타고올라산객들을일으켜세운다.
모릿재는평창군진부면에서대화면으로넘어가는고개다.
오른쪽이오늘산행코스인잠두,백석산으로이어지는등로다.
바둥대며15분남짓된통신고식치른후에야
완만한능선길을내어준다.
누에머리형상을하고있어蠶頭山이라던데글쎄다.
‘견강부회’란사자성어가머릿속에맴맴돈다.
한참을걷고서고갤들어올려다보면또저만치물러나있다.
산은늘그자리에그대로있는데…
물한모금들이키며하늘을올려다본다.
앞서거니뒷서거니따르던낮달도멈춰선다.
바람에쓸려빚어진눈구릉은여인네둔부와도같다.
햇살받아반짝이는눈밭은새하얀도화지이며
그위로드리워진나뭇가지그림자는
순간순간한폭의멋진추상화를선사한다.
눈이시릴정도로파아란하늘에선금방이라도
파란물감이뚝뚝떨어질것만같다.
마냥넋나간듯자연현상에빠져들수만은없는일,
비경에는반드시복병이숨어있는법.
응달져얼어붙은산비탈길곳곳이눈으로덮혀있어
아차방심하면곧화로이어지기십상이다.
된비알에그흔한돌계단도안전밧줄도없다.
그저각자알아서安山하는수밖에도리없다.
눈물이흘러눈자위가따갑다.찬바람알러지탓이다.
눈물,콧물,땀범벅으로올라선잠두산정상(1,364m).
끝없이너울대는산능들은파란하늘과맞닿아있다.
바라만보고있어도가슴이요동친다.
산은땀흘려오른자에게속살을살짝내보인다.
뺨을에이는칼바람도,목덜미를파고드는한기도
파노라마처럼펼쳐진순백의겨울산군앞에선꼬릴내린다.
등고선상백석산까지는고도차가별로없는평탄한산길이다.
수북한눈때문에걸음은더디지만
생명력끈질긴산죽과사시사철푸른송림의기를받아서일까,
발걸음만큼은기운차고가볍다.
백석산정은지나온잠두산정보다널찍하다.
이곳역시정상표시석이나팻말은없다.
그러나강원산군전체를조망하기엔더없이좋은곳이란생각이든다.
태기산,청태산,대미산줄기가,그뒤백덕산,또그뒤치악산이,
대관령에서청옥산,두타산까지,또남으로발왕산과상원산줄기와
가리왕산,중왕산,청옥산이…
(산이름다알아서늘어놓은건결코아니고지도펼쳐가늠해본것이다)
높은듯낮은듯,끊어지는듯잇는듯,
숨기도하고보이기도하며,가기도하며머물기도하며,
어지러운가운데유명한체뽐내며하늘도두려워하지않고
우뚝선여러산봉우리인데~~
-송순,면앙정가中에서-
슬슬허기가발동한다.
좀더솔직히표현하자면산중일잔생각에
잠시배낭을내려놓으라는신호다.
백석산정아래볕잘드는눈밭에주저앉는다.
몇몇이둘러앉아한두가지씩만꺼내놓아도성찬(盛饌)이다.
빌빌거리는가스버너를일거에제압한건
오늘도역시나등반대장이자랑하는석유버너다.
햄도썰어넣는다.아무튼이것저것다넣는다.
심산기운까지모아모아~끓는물에넣는다.
이렇게하여비로소산중일품특안주가완성된다.
개죽같다고할지모르겠으나국물맛은쥑인다.
마랑치에서날머리로내려서는길이장난아니기때문이다.
1km를걸어고도600m를낮추는,그야말로급내림길이란다.
안부를곧장지나좀더올랐다내려서면두번째안부다.
이정표가거의없는산인지라,나뭇가지에매달려영암사방향을
가리키는귀한(?)팻말이있어이곳이던지골로내려서는
마랑치임을짐작케한다.
이제부터응달진급내리막얼음눈길이다.
아이젠뾰족쇠에얼음찍히는소리가유난히서걱거린다.
바짝신경곤두세우며내려딛다보니영암사길도지나쳤다.
돌탑을지나한참을내려오니계곡물소리가들린다.
얼음장밑바위틈사이로물줄기가지난다.
완만해진산길에이르러여유롭게하늘을올려다본다.
앙상한겨울나무사이로드러난하늘빛이섧다.
무심코뒤돌아보니산능선위에걸린낮달이손짓한다.
무심한인간인지라접수가되진않았지만
아무튼반가이손흔들어답례를보낸다.
등반대장이멋적은표정으로내려온다…..발목부상이다.
급내리막길조심하라며신신당부하더니만…
한달가량깁스를해야한다니이를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