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만행산에서 安山을 빌며

만행산천황봉에서…

누구는봄이멈칫멈칫온다고했다.
누구는봄이자고나니문밖에와있더라했다.
봄은그렇게올듯말듯약올리다가도
주체할수없는대지의기운에밀려
한순간에발산되는지도모르겠다.

도심콘크리트속에서의봄은날짜로만봄이다.
싱그러움도생동감도없다.
확연한봄기운을직접호흡하려또배낭을꾸린다.
봄산행은복장도가볍고배낭도가볍다.
발걸음도가볍고마음도가볍다.

하늘은잔뜩찌푸려있다.오후늦게비올확률100%라했다.
남녘봄맞이행차를시샘하는지날씨가샐쭉거린다.
그래도차창으로스치는산야엔봄기운이엷디엷다.

봄은겨우내움츠러있던삼라만상을일으켜세운다.
이렇듯소생의계절이요,생동의계절인데
어이하여서편제중사철가에서의봄은그리도허무한지…

이산저산꽃이피니분명코봄이로구나.
봄은찾어왔건마는세상사쓸쓸허드라.
나도어제청춘일러니오날백발한심허구나.
내청춘도날버리고속절없이가버렸으니
왔다갈줄아는봄을반겨헌들쓸데있나.

겨울추위가아무리혹독해도반드시봄은온다.
정치판이아무리스산해도따스한봄은기필코온다.
이처럼봄은어김없다.

남원보절면과산동면의경계에위치한만행산(909,6m)
들머리는보현사*방향용평저수지뚝방아래.

*보현사(寶玄寺)
고려충숙왕원년(1314년)에창건된대가람이었다.
조선숙종18년에법당을크게수리한후
불행하게도화재로전소되고현존하는보현사는
최근에재건한것이라한다.

저수지뚝방을타고올라…

저수지돌뚝방사면을타고오른다.
막조성된듯여기저기공사흔적이뚜렷하다.
저수지바닥엔오줌지려놓은정도의물만고여있다.
졸졸흘러드는물줄기로봐서는하세월일듯싶다.
가랑비에옷젖고낙숫물에바위뚫린다했다.
다때가되면차는법,기다림을일깨운다.

푹신한흙길밟으며…

뚝방을올라서걷다가우측산길로접어든다.
산속으로들때까지얼마간,산책길이편안하다.
푹신한흙길에모처럼발바닥도호사한다.

요상한’진입금지’팻말에…

아흔아홉골초입에세워진스테인레스재질의이정표가요상하다.
‘상서바위1.8km,천황봉4.5km,진입금지’로적혀있다.
가는길을안내해놓고선밑도끝도없이’진입금지’라니.
만행만덕을닦지않은자는피안의만행산에들수없단말인가?
알쏭달쏭한이정표를뒤로하고마른풀섶을헤쳐
계곡으로숨어든다.

계곡을벗어나면서부터등로는급경사다.
산비탈길은토사라발딛기가쉽지않다.연신미끄러져내린다.
나뭇가지휘어잡아가며가쁜숨을토한다.
잘관리된묘지에이르러뒤돌아보니
그새주변산자락은발아래로가라앉아있다.

아흔아홉골을숨가쁘게올라붙으며…


능선에올라남쪽천황봉방향으로향하다보면
눈앞에우뚝솟은상서바위와맞닥뜨리게된다.
상서바위를돌아오르며상서로운기운을흠뻑쐰다.
상서바위를경계로장수군번암면과,
남원산동면,남원보절면이갈라진다.

상서로운기운이감도는상서바위가…


지리산에三道봉이있다면만행산엔三面봉이있다?
사위조망이뛰어난상서바위에서서아스라히넘실대는
지리산의연봉들을실눈뜨고서가늠해본다.

깔때기뒤집어놓은형상의천황봉을건너다보며…


깔때기뒤집어놓은형상의천황봉을향해걷는능선길,
푹신한고엽밟으며걷는재미또한쏠쏠하다.
봄산등로는대개질척거리는곳이많은데
만행산은물이잘빠지는지등로가뽀송뽀송하다.
등로따라간간히묘지가눈에띄는것도이때문인가싶다.

어느산이나산봉을거저내주진않는다.
입안이팍팍해지면서숨이목끝까지차오른다음에야
비로소사방이탁트이며모든산능이발아래로가라앉는다.

만행산의정상인천황봉역시예외없다.
완만하게이어지던등로는정상을2~3백미터앞두고
된비알로다가선다.
전형적인육산이나,짧지만밧줄에의지해야하는암릉구간도만난다.

다시허리춤추스리며…

대한민국산명중’천황봉’은몇개나될까?

천황봉(909.6m)
멀리서보았을때뒤집힌깔때기처럼정상이뾰족해
발디딜공간이나있을까,’영구’같은생각을했었다.
그러나정상은쉬었다가기좋을만큼적당히넓고편평하다.

정상표지석이가운데덩그러니박혀있는데잘다듬어놓은묘비석같다.
깎아만든인공석이라주변경관과영어울리질않는다.
정상표지석만큼은자연석이었으면좋겠다.

표지석에음각된봉우리명’천황봉’을보며생각한다.
대한민국산명중’천황봉’은몇개나될까?
일본의왕을일컬어天皇이라하는데그렇다면’천황봉’은
죄다일본의잔재일까?
일제하에서개명된걸로확인된속리산天皇峯은
작년에옛이름,’天王峯’을되찾기도했다.

산봉에서잠시영역표시를위해배낭을내린다.
산상방뇨로영역표시하는거절대아니다^^
깔끔하게알콜한모금으로영역을표시한후
남쪽능선을따라귀정사방면으로내려선다.

해발909.6m인천황봉에서날머리귀정사까지는2.5km.
남은거리에높이를대입해보니,답은급비탈길.

코끝을스치는짙은향내를따라눈을돌려보니
생강나무가막노란꽃망울을터트려바람에살랑인다.

생강나무꽃에서짙은향내가…

산속어디선가이름모를새는화답하듯봄을노래하고,
마법에서풀린계곡물소리도싱그럽게졸졸거린다.
그야말로봄의왈츠다.

귀정사,천년고찰이라들었는데…

절집물맛좋고…

귀정사*에닿아약수한바가지들이킨후
절마당을둘러대웅전과요사채를기웃거려보았으나
연이은소실로고찰의흔적은찾아보기힘들다.

*귀정사(歸政寺)
백제무령왕15년(515년)에현오국사가창건했다.
당초에는이산과절이름을만행산,만행사(萬行寺)라했으나
이절에는고승이많아명성이높았으므로임금이백관을거느리고와서
설법을듣고그오묘함에감탄하여3일동안머물면서
정사를보고돌아갔다하여그후부터’귀정사’라불리게되었다.
1002년에대은선사가중수,임진왜란으로소실,
1664년에복구했으나6·25때또소실,
현재는대웅전과종각칠성각과요사등이있다.

삿갓?뒤집어쓴벌통들

무궁화最古木’이라는데…

귀정사에서조금더내려오다보면마을어귀에
‘나라꽃무궁화最古木’이란안내판이내걸려있다.

안내판에는’일제치하에서무궁화나무를모두베어내도록하였으나
민족정신이투철한이마을에선베어내지않아이후
가장오래된나무로인정되어해방후이나무에서종자를
채취해전국에보급했다’고적혀있다.

산신께安山을빌고또….


마을어귀아름드리고목밑제삿상에
잘생긴돼지머리가올려졌다.

안전산행을기원하는’시산제’다.

이날제주인몽블랑산악회등반대장은
산신께안전산행을스페셜로주문했다^^.

이몸도엎드려천지신명께고했다.
올해도安山할수있게해달라고…약속했다.걱정하지말라고^^

녹두닭죽까지…


2008년3월22일,용평댐에서보현사-아흔아홉골-상서바위-천황봉-남릉-귀정사들러대상리마을로내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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