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공포, 油前燈火?

칠흙같은시골겨울밤은유난히도길었다.
가물거리는호롱불아래,
어머니는연신바늘끝을머리결에문질러가며

헤진양말뒤꿈치에천을덧대어꿰매느라여념이없으시다.

가부좌틀고앉으신아버지께선그런어머니를위해

겉표지가누렇게바랜고소설,‘장화홍련전’을펼쳐든다.

좌우로몸을흔들어가며장화와홍련이이별하는대목을

고저장단에맞춰소리내어읽어내린다.

동생은앉은뱅이탁상을호롱불가까이에당겨놓고

몽당연필심에침발라가며백노지공책의칸을메운다.
나는아랫목이불속에발목을묻은채엎드려

무협만화삼매경에푹빠져든다.
가물가물불꽃이약해지면슬며시호롱불뚜껑을열어심지를돋운다.

일순불꽃이세게타오르며그을음이이는데

이쯤되면영락없이아버지의불호령이떨어진다.
‘기름한방울나지않는나라’에서부터시작된일장훈계는

‘근검절약’으로결론을내리신다.

석유가사용되는곳이라곤딱히호롱불밝히는일밖에없던시절,

읍내5일장이설때마다석유병을들고기름을받아와야했다.

밤이되면방마다호롱불을,

마루와부엌엔등초롱을매달아두다보니석유가여간헤픈게아니다.

그래서저녁만되면석유를아낄요량으로일찌감치저녁상물리고

식솔들을호롱불밝힌안방으로죄다불러들인다.
옹기종기모여복작대던60년대중반,그시절풍경이다.

다시60년대후반,석유곤로의등장으로석유는

또한번그진가를유감없이발휘한다.
집집마다문설주에매달려있던석유병은
한말들이통으로바뀌어마루밑에보관됐다.
석유통에가득찬기름을‘뽁뽁이’로뽑아

곤로에옮겨채우던기억역시선연하다.

부엌의혁명,석유곤로는때마침1965년식량위기를해결하기위해

정부가내놓은분식장려정책이나오기시작하면서

제2의주식으로자리잡은라면을끓이는데그저그만인물건이었다.

그래서당시엔라면과석유곤로를일컬어실과바늘이라고도했다.

미미하던석유소비는석유곤로에이르러탄력을받기시작하더니

농기계가동력화되고집집마다기름보일러가등장하면서

슬며시석유가격에대한부담감이생활속깊숙히똬리를틀기시작했다.

1973년,미국과이란즉,검은황금의수요와공급이

삐걱거리면서시작된‘10월전쟁’은
배럴당3달러수준에머물던국제유가를11달러로치솟게했다.
이른바전세계에제1차석유파동의먹구름이드리워지게된것이다.

당시미국자본주의를대표하는‘코카콜라’가격을

1배럴(158.9ℓ)로환산하면89달러인데반해
유한자원일수밖에없는원유는1배럴당20달러에도

못미친다는사실에화가치민이란국왕이

"배럴당100달러가된다해도전혀이상할게없다”고호언하여

비산유국들은하나같이모골이송연해지기도했다.

이리하여1차석유파동후진정기미를보이던유가는또한번솟구쳤다.

1979년’이란혁명’으로촉발된’제2차석유파동’으로

1980년말,유가가40달러를웃돌면서

또다시석유공포가드리워지기도했다.

이후에도걸프전을비롯일촉즉발의석유위기는

여러번비산유국들의오금을저리게하더니

어느순간魔의100달러벽이무너졌고

급기야115달러를문지방넘나들듯요동친다.

각종뉴스매체들은유가가연일최고기록을갱신하고있다는

소식을숨가쁘게토해낸다.
얼마전엔주유소가격공개사이트’오피넷’은

오픈첫날부터서버가마비되는소동이벌어졌다.
신판주유소습격사건이다.


천정부지油價앞에서호롱불(서민층)은맥없이가물거리기만하는데…
油前燈火가실감나는오늘이다.

*이미지는네이버에서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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