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바라진어깨에넙데데한등판만으로도仙風道骨을짐작케한다.
예사인물이아닌듯싶은데유독발걸음은무거워보인다.
엄지와중지로연신골통을짓누르기도,전후좌우로흔들어대는모양새로보아
사내의머릿속도어지간히수세미인듯하다.
마른잎사귀를털어내느라부산스럽게바스락댄다.
광활한철원평야를한참동안굽어보고있는사내는
안타깝게도한쪽눈을가린애꾸였다.
그러나사내의풍채와얼굴에서전해지는호방함은예사롭지않다.
말을잇지못하고긴한숨을토해낸다.
금학산은궁예의회한이겹겹이쌓여있는산이었다.
차를운전해도착한강원도철원동송읍은뒤로금학산이
금학산북릉과매바위능선이눈에든다.
학이막내려앉은모양을하고있다하여金鶴山이라는데
어느방향에서보아야鶴모양을볼수있다는얘긴지…
鶴을염두에두고서이리저리꿰맞춰보았으나통모르겠다.
눈썰미가부족하거나상상력이바닥이어서일게다.
5분쯤더올라가면금학산체육공원에닿게된다.
바로오늘산행의들머리이자,날머리다.
양궁장-금학체육공원-매바위-정상-비둘기능선-마애불상-비상도로-
금학체육공원-양궁장주차장으로돌아내려오는원점회귀산행이다.
5분정도올라서면매바위방향팻말이꽂혀있는비상도로와만난다.
그새재킷속몸뚱어리는땀으로척척하다.
비상도로한켠에놓인목의자에잠시배낭을내려장갑을꺼내끼고신발끈을조여맨다.
매바위능선으로이어지는산길로접어들자길은점차가파름이더해진다.
군데군데어지러이널려있다.
목재계단이설치되면토사유실로인한등로훼손엔
분명도움이되겠으나방부처리된목재주변의흙과낙엽은
상당시간부엽토가되지못해자연친화적이지않다는주장도있던데…
대지는곧꽁꽁얼어붙게될것이다.
봄이되면다시향기로운흙내를풍기며새싹을틔울것이고
폭염과가뭄,장마의시련을잘견뎌내고나면
또다시황금빛풍요를가져다준다.
대지는새싹을틔워낼때의짜릿함과황금들녘의황홀함을기억하기에
비워낸들녘이지만더없이여유롭고아름답다.
매바위에걸터앉아철원평야를굽어보는궁예는좀처럼
시선을거둘줄모른다.이따금장탄식도새어나온다.
금학산에서린회한이이토록깊었던가.
고암산을도읍으로고집하면30년을넘지못할것이다"
매바위에기대선궁예의귓전을간지럽히는모양이다.
양손으로머리를힘껏감싸쥔다.
금학산을진산으로정해야한다고고집했었다.
그러나태봉국의도읍은고암산으로해야한다는
궁예의고집을아무도꺾질못했다.
궁예가고암산을선택하자금학산은사흘밤낮을울었다고한다.
금학산수목들은죽지않았는데도3년동안잎이나지않았고,
산에서나는취나물은써서먹지못했다고도한다.
금학산과궁예에얽힌설화이다.
바위와로프구간이번갈아다가선다.
벙커를비롯군작전용시설물도능선곳곳에눈에띄고
북녘땅도육안으로건너다보인다.
최전방에위치한산이어서일까,산객발길은뜸한편이다.
나홀로산행은발길이뜸한산일수록맛난다.
나홀로산행의묘미는휘적휘적,쉬엄쉬엄걷는데있다.
복잡다난한세상사도훌훌털어낼수있어좋다.
분초를다투는지구촌의아우성도산에서만큼은消去된다.
10분더올라北望바위를지나완만한등로를걷다보면
흉물스런콘크리트헬기장이등로를막아선다.
산정수리를까고얹어놓은거대한콘크리트판을딛고올라
풍수지리에밝았던도선국사를떠올린다.
마르고닳도록금학산도읍을주창했던도선이
천년세월을훌쩍뛰어넘어묵직한콘크리트판을머리에인
금학산의모습을본다면과연무어라했을까?
운무의시샘으로금학산정상(947.3m)에서의조망이쉽지않다.
그옛날궁예가태봉국의진산으로정했다는,
6.25때처절한격전지이기도했던,
지금은휴전선너머북녘에있는고암산도
쾌청했으면이곳산정에서건너보인다던데…아쉽다.
운무가반짝걷히면서능선이드러나기도했으나
산정에머무는내내운무는산능선을무겁게휘감고있었다.
정상군부대옆엔또다른군시설물이들어서려는모양이다.
정상까지올라온건설중장비가쉴새없이움직이고
포대에담긴시멘트자재를옮기느라
동원된군인들의움직임역시분주했다.
북녘과마주보고있는군요충지라필요한시설이겠으나
궁예의한숨이서려있는금학산이라더욱가슴이아프다.
콘크리트자재가담긴포대를져나르던이등병이길이없다며막아선다.
휴대한등산지도를보여주며마애불상방면으로내려서는
비둘기능선길을가리키니’길이있었네~’라며멋적게물러선다.
조막손처럼오그라든단풍잎이애처롭다.
허망한가을이못내아쉬운듯나뭇가지끝에서버티고있다.
수북히내려앉은낙엽들은발밑에서바스락거린다.
등로를덮은낙엽길은방심하면엉덩방아찢기십상이다.
그렇거나말거나낙엽밟는느낌만큼은굿이다.
능선길330m,삼거리400m를가리키는팻말기둥엔
현위치가마애불상임을알려준다.
저만치소나무사이로등을보이고있는마애불을향하는데
낯익은행색이눈에들어온다.
그새마애불상앞너른바위로옮겨와가부좌를틀고있었다.
마애불전에合掌하여반배한후슬며시그의곁으로다가가앉는다.
이곳을찾게된배경을담담하게풀어놓는다.
사흘밤낮을울었다하오.어찌금학산의섭섭함을
모른채할수있었겠소.섭섭함을달래주고자금학산중에서도
최고명당인이곳에미륵불을세우고암자를짓게된것이오"
머리부분은왜뒤틀려몸체에얹혀져있는지,
또한암자는어떻게하여사라졌는지그연유가궁금합니다요"
"내오늘그연유를소상히밝히리다.
왕건이도선의예언을믿고내가망할것을확신했는데
내가이곳에세운미륵불로인해태봉국의기운이수백년을
이어갈것이라는사실을알게된거지요.
이에조바심이난왕건이부하들에게미륵불제거를명했고
그과정에서몸체가뒤로젖혀지고머리가꺾이는등
미륵불이심각하게훼손되었으며암자는불에타고석탑은동강이나
뿔뿔히흩어지게된것이오.
이런일이있은후나의기운도꺾여진불상의머리처럼
맥없이무너지게된것이지요"
운무가사라지자,마애불상앞너른바위너머풍광도산뜻하다.
너른바위위에앉아있던궁예는온데간데없이사라졌다.
낙엽은궁예의흔적이깃든너른바위에올랐다가
여인네치마폭처럼매끄러운바위벼랑아래로춤추듯흩날려사라진다.
궁예는낙엽이되어그렇게춤추듯사라져갔다.
산행들머리에서한참이나벗어나있었다.
잠시잠깐혼이나가있었나?등산지도를한손에들고서도
길을벗어나고말았으니이를어쩌나.
원점으로가려면어림잡아차도를따라4km는걸어야한다.
까짓거산을걷는기분으로도로를걷자.
산아래서산을올려다본다.
궁예의회한이서린금학산,
산정을뒤덮었던운무가옅게걷히며능선이조금씩드러난다.
마치궁예의회한을씻어내기라도하듯….
구자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