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한나뭇가지사이로드러난산기슭이스산하다. ‘충북의설악천태산계곡’이라고새겨놓은잘생긴빗돌을지나자, 이번엔바위면에음각된’天台洞天’이란글씨가발길을잡는다.
스산한바람에수북한낙엽은맥없이흩날린다.
때깔곱던가을은쫓기듯겨울색에밀려나고있다.
앞서걷던분이엿들었나보다.
딱한표정지으며뒤돌아보더니註釋을단다.
예로부터경치가뛰어난곳을일러동천이라하였는데
천태산에천태동천,가야산에홍류동천,지리산에화개동천,
금오산에금오동천,마니산에함허동천…."
무식해서용감한나그네에게제대로한방먹인다.
금방이라도무너져내릴것처럼위태하게막아선다.
삼신할멈은예로부터아기낳는일을맡고있는신이다.
그래서일까,아들을점지해달라고삼신할멈께빌고비는여인네들의
애끓는기원이바위면에켜켜이녹아있는듯하다.
물줄기말라붙은반들반들한삼단바위위로낙엽만무심하게쌓여간다.
좁다란황톳길이내려다보인다.
황톳길은저건너천년고목은행나무까지잇닿아있다.
길섶에가지런히매달아놓은형형색색산악회시그널이
바람에나풀거리며산객들을맞는다.
어디에도없는,이곳만의진귀한풍경이다.
까치밥을남겨놓은감나무도까치집을머리에인은행나무도
서둘러겨울채비를한듯앙상하게잎을털어냈다.
영국사수문장인1300년은행나무아래엔노란양탄자를깔아놓았다.
마지막잎새들이우람한巨木의몸통을부여잡고버텨보지만부질없다.
언제까지나푸르름을간직할순없다.
절정의빛을유감없이발했으면겸손한몸짓으로
스스로를비워내고다음을기약하는게순리다.
둘러보기로하고A코스인미륵길을따라본격산길로올라붙는다.
매표소에서1.4km걸어왔고정상까지는1.2km남았으나
이제부터본격슬랩이기다리고있는구간이다.
차례차례로프에매달리다보니그만큼진행이더디다. 함께한山友C가오늘따라무척버벅댄다.
첫번째맞닥뜨린슬랩은비교적가벼워준비운동하듯올랐다.
사방이탁트인첫전망바위를딛고서니
발아래,가을색에갇힌영국사는한폭의그림이다.
새벽녘까지酒님을가까이한게문제였다.
평소대로라면C를쫓아가느라기진맥진했을터인데
오늘은C와보폭이맞아딱좋긴하다.
"다음부터산다닐때컨디션을오늘처럼만하고와라"주문에,
"불난집에부채질하냐"며식식거린다.
다시로프를잡고바위벽에매달려가다서다를반복한다.
갈수록정체가심해고갤들어앞을보니
천태산이자랑하는짜릿한75미터바위벼랑이장벽처럼앞을가로막는다.
대기하는산객들이슬랩아래빼곡하다.
무리에섞여얼추70도나되는2단슬랩을올려다보는데
첫구간을지나중간쉼터바위에도무리지어대기중이다.
마냥기다리기보다안내판이가리키는대로우회로를택했다.
75미터슬랩구간보다정체는덜하지만이곳역시녹록치않다.
여전히슬랩구간으로,로프에매달려오르긴매한가지다.
복병처럼도사리고있어적당한긴장을요하기도하나
대체로구간이짧아맛보기암벽코스로그만이란생각이다.
바위타기삼매경에흠뻑빠져든산객들의표정은한결같이밝다.
그늘짙은산아래세상에서잠시라도벗어난때문일까.
75미터슬랩과우회슬랩길이만나는능선에닿아
배낭을내려바위에걸터앉아땀을훔치고목을축인다.
하늘이맑디맑아눈이시리다.
늦가을따스한햇살이몸속으로스민다.나른하다.
기상예보대로라면오늘(11/15)중부지방에비온다했는데…
주말산행시기상예보에신경끈지오래다.
앞으로기존광역예보를세분화해동네예보를시행한단다.
뭉뚱그린예보조차버거운데동네예보를날린다니
그야말로점입가경이다.
암릉오름길을벗어나능선삼거리에이르니왁자지껄하다.
삼거리너른쉼터엔자릴펴고앉은산객들로만원이다.
‘몽블랑산악회’꽁지머리대장도산중오찬을위해앉을자리를
오늘산행은구간이짧아바삐이동할이유가없다.
늘서둘기만하던등반대장도오늘은여유만만이다.
‘시간널널하니정상까지천천히다녀오라’주문한다.
천태산정상(714m)에오르면불뚝솟은바위정수리에
대개지역市道경계를이루는산에서흔히볼수있는데
지자체간알력이원인인경우가많다.조율이필요한대목이다.
천태산은충북영동군양산면과충남금산군제원면의경계를
이루는산으로우리나라100대명산에들만큼빼어난산세를자랑한다.
철제함위엔생뚱맞게도방명록이올려져있는데이곳을찾는
철제함벽면에나옹선사의詩를게시해놓아잠시발걸음을멈춰읇어본다.
창공은나를보고티없이살라하네
탐욕도벗어놓고성냄도벗어놓고
물같이바람같이살다가가라하네
천태산지킴이를자처하는한개인이해놓은것이란다.
이뿐만이아니다.그는슬랩구간에로프도매달았으며등로곳곳에
안내팻말도사비를들여설치해놓았다.
천태산에그의손길이미치지않은곳이없을정도로
천태산구석구석을쓸고닦는일에정성을다한다.
인근에서약방을운영한다는77세의배병우씨
꽁지머리?대장이정상에서내려오는일행들을불러앉힌다.
각자배낭을까발려챙겨온먹거리들을꺼내놓으니
이건숫제가을소풍이라해야옳다.
소주에복분자주까지,불콰해진얼굴로산아래를굽어본다.
내려다보이는산야도불콰해진얼굴을닮아있다.
D코스로향하는능선왼편은몇년전의산불흔적이그대로다.
삭막해진산비탈에시커멓게그을린나무는
마치지난악몽을고스란히간직한채
우리에게무언가메시지를전하려는듯하다.
하마등판처럼생긴맨질맨질한바위등을딛고내려서면
전망석이라쓰여진팻말이나온다.
영국사쪽으로방향을틀면폭좁아앙증맞은목계단과
낙엽쌓인오솔길이늦가을의정취를더한다.
산모퉁이를돌아오르면얕으막한남고개가나온다.
우측으로육조골과옥새봉가는길인데폐쇄되어있다.
옥새를감춰둔곳이라하여옥새봉이라는데
옥새찾아챙겨갈까봐등로를막아놓았나?
남고개를넘어몇발짝만진행하면왼쪽으로돌계단이나있다.
솔갈비수북한돌계단을따라올라보물532호영국사부도를,
다시내려와좀더걷다보면석종형부도와
보물534호원각국사비,원구형부도와만난다.
삼층석탑과끝물단풍,그리고만세루를배경으로
사진찍느라분주하다.단풍나무아래로다가가
기와불사를하고나니월서스님이쓴’행복하려면놓아라’를쥐어준다.
10,000원참여했는데선물받은책은13,500원이다.허~참~
오전에지나쳤던은행나무와산악회리본길을지나
고개마루에닿았다.직진하면역시지나왔던삼단폭포방향이다.
발길을오른쪽으로틀어비탈을넘고다리를건너망탑봉으로향한다.
천태산의산세가숨김없이드러난다.
이름그대로望塔峯이다.
탑주위엔별난생김새를가진바위들이시선을멎게한다.
상어바위에통째로팔을집어넣었더니그만덥썩?
물길메마른계곡을거쳐평탄한길로들어섰다.
삼거리-D코스-남고개-영국사-은행나무-망탑봉을거쳐
주차장에닿은시간은오후3시.
어죽과도리뱅뱅이,한마디로표현하자면’쥑인다~’
몇날지난지금도어죽과도리뱅뱅이가눈앞에삼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