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73호/2010.6.
2010년여름

통권제73호

<머리말>고구려옛터에서/회장姜中7

<특집>고우암최선호선생을기리며

최선호선생약력/박홍길9

최선호선생추도문/큰바위얼굴로우뚝하십니다/박홍길10

최선호선생대표작

⋅웃으며살수없을까16

⋅어머니의금반지21

⋅어머니24

<회원수필>

이해주나의시(詩)등단기27

朴松竹영혼과육신이분리되는아름다운순간을위하여31

成洛九적전(敵前)참호(塹壕)에서34

장광자식혜같이40

이몽희촛불을켜며44

이원우화투,그영원한안개49블루스의환상(幻像)54

박홍길텔레비전을켜보면59

2010년여름/통권제73호

전희준한편의시를읽으면서63

안태경남의발을씻어주다68어느전시회에다녀와서71

이기태빚더미인생74

박희선부를때와주지78

이병수곶감과우산집(愚山集)83문학의힘88

전정식친구91

이유없는무덤95

하창식동래학춤99나쁜버릇104

김상희신들의사과108

姜中九황제의여행111

윤용흠모나리자115

윤옥자작은미나리밭120

황다연메마른세상에감도는그리움의여운124감동의파장129

허현숙해리포터의마법젤리134

손수영억새와갈대138그녀가온다143

허정림빨간구두149

최홍석화왕산진달래꽃밭으로그를보내고154

황원준비밀160

정철규출근길164

정인조봄은중얼거리며가고169

정약수물러나기와벗어나기173

허드슨강변의라과디아공항179

심득순이름182청소187

황선영올레길에서193‘얌생이’의추억196

오기환그겨울의단상201

2010년여름/통권제73호

남기욱잊어버린친구206

강정이눈앞이흐리다211

골목길,그리고새벽달빛215

배기형이사(移徙)가는날222봄의서곡(序曲)227

배병채232

<기고>

성종화이가을에내가할일237밧줄에매달린인생241

정은영파랑245식욕249

권춘애살아서천년죽어서천년253못생긴나무256

문경희끝을읽다261게상어가있던풍경266

수필부산문학회회/272

회원주소/275

고구려옛터에서

회장姜中九

지난봄,아홉번째중국여행으로동북3성을다녀왔다.다롄(大連)을시작으로단둥(丹東)과퉁화(通化),지안(集安)을돌아보고,민족의영산인백두산에올랐다가룽징(龍井),옌지(延吉),지린(吉林),창춘(長春)을거쳐서북만주의중심지인하얼빈(哈尔滨)에도착하고보니감개가무량했다.

사방을바라보아도지평선뿐인그넓은대지가바로고구려옛터가아니던가.그로부터천년이지난지금도광개토대왕의치적을새겨놓은비석과대왕의무덤이나그네의발걸음을멈추게했다.

그리고일본제국주의의압박을피해온우리동포들의애국활동흔적도곳곳에남아있어서이범석장군의청산리대첩지와홍범도장군의봉오동전적지를돌아볼때에는가슴이뭉클했다.민족교육의요람이었던대성중학교는지금도동포들의교육을하고있고.

그곳에는우리동포들이많이살고있어서길을걷다보면쉽게만날수있고,오늘도선양고궁에는동포들이모여서고려문인이집(李集)선생을기리는백일장을열고있었다.

창춘에산다는권씨는고국의동포가반갑다며냉면을대접해주었고지안에사는강씨는육갑을짚어보더니내가아저씨뻘된다면서팔던옥수수를집어주는것이었으니,할아버지때만주로이주해갔다는그들의동포애는참으로대단했다.

하기야이국에서나고자란그들의설움을어찌다알수있겠느냐만그들은뿌리를알고우리풍습을지키면서부지런히살아가고있었다.

선양에산다는이씨는할아버지고향인경남합천의묘사까지참석한다고했고,엔지에서초등학교교사로근무한다는양선생은다섯살난딸에게민족혼을일깨워주기위해먼지안까지가족여행을간다는것이었으니말이다.

그들은하나같이조국애가대단했고통일될조국을그리면서살아가고있었다.그런데도고국에있는우리는갑론을박에다정치싸움만하고있으니….

이제부터는우리수필부산문학회회원들만이라도조국애를일깨우는수필,나라를사랑하는수필,우리민족의정서와긍지를높일수있는수필을많이써야겠다.그리하여사람들이우리<수필>을읽고나라를사랑하게된다면얼마나흐뭇하고보람있는일인가.

아름다운남해를표지화로그려준이기홍(李基洪)화백에게감사를드리고새로입회한성종화,정은영,권춘애,문경희,네분의회원님에게도환영의박수를보낸다.

∙∙∙고우암최선호선생을기리며

<약력>

1929.8.경남고성군출생

1942.3.고성초등학교졸업

1946.7.마산중학교졸업

1948.3.부산대학교예과수료

1953.3.서울대학교법과대학졸업

1956.2.7회고등고시사법과,행정과합격

1956.7.체신부수습행정관

1957.7.체신부우정국사무관

1957.12.사법관시보

1959.5.전주지방법원판사

1960.3.부산지방법원진주지원판사

1963.4.2군사령부감찰부장

1963.10.5군단법무참모

1964.5.부산지방법원마산지원판사

1967.1.대구지방법원판사

1969.1.대구고등법원판사

1973.4.부산지방법원부장판사

1973.10.부산지방법원수석부장판사

1973.10.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1979.5.대구고등법원부장판사

1980.7.변호사개업

1987.2.부산지방변호사회회장,대한변호사협회부회장

◎재부마산중․고동창회,재부고성향우회회장등

◎부산문인협회,부산수필문인협회,수필부산동인회(문학회),수필부산작가회회원

◎수필집<어머니의금반지>(1993),<포샤판사와정선군수>(1997),<아침산행을하면서>(2000)등

◎2009.10.81세로영면(경남진해천자봉공원묘지안장)

<최선호선생추도문>

큰바위얼굴로우뚝하십니다

우암(愚巖)선생님,선생님은결코‘어리석은바위’가아니십니다.온몸에겸손이가득배어있어남의눈엔그렇게보일뿐,진정으로우리들가슴에영원히새겨져우뚝한법관큰바위얼굴이십니다.법조계가우왕좌왕하여나라의기틀이흔들리고,따라서우리민초들의시선이흐려지는요즘이라,더욱선생님의그요지부동한자세야말로미래를이끌어주는미륵불인양,끄떡없는바위로든든한지표가되고있습니다.낮은자세로앉아비바람눈보라에도흔들리지않고,양심으로살고남을위해일하라는가르침을늘줄것만같아존경스럽습니다.

우리수필부산문학회,1963년여름부터시작하여2010년여름오늘,47년풍상에도춘풍추우끊임없이73권의회지를꽃피워낸역사위엔,선생님같이한결같은정성으로가꿔주신보람이있었기에가능했던것입니다.

선생님은1978년여름,우리<수필>제19호에폭설이내린날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올라가뉴욕시내의눈내리는야경을본감회를적은‘눈’을발표하신후,2005년1월제64호에큰병은없으나무언가생각대로움직여주지않는육신,고독을짤막하게술회하신‘나이들면서’를끝으로모두57편의글을발표해주셨습니다.제34호,43호에만빠졌을뿐27년동안1호에평균2편씩써주셨으니,참으로우리모임을사랑해주신성실의회원이셨습니다.2006년3월24일에건강상의이유로변호사사무실문을닫고문학활동도접는다고선언하셨는데,그동안이라도문안한번변변히못한허물무어라사뢰어변명할수없습니다.

제가선생님을처음뵌것은1988년3월이었으니까,선생님보다만10년늦게입회한셈입니다.처음뵌인상은솔직히좀무서운모습이었습니다.키가크고건장하신체구에역팔자(逆八字)의짙은눈썹이더욱위압적이었습니다.그러나바로인사를드리는순간저의오해는곧사라졌습니다.조용한음성,잔잔한미소가제마음을누그러지게했습니다.

그뒤우리회지의편집교정을보아오는동안,꼼꼼한원고지글씨에배어나는선생님의글에는동시대에살았던온갖수난이생생하게그려졌고,부모님에대한효심,고향에대한그리움,그리고법관으로서의정의와양심이늘짙게풍겨났습니다.특히,동서양의문학작품은물론법관으로서갖춰야할철학,윤리를위해엄청난독서를끊임없이하고있었음을엿볼수있었습니다.

제가창원출생이고진해고교출신이기에이웃고성과마산고교관계사람들과는비교적많이알고지내는터인데,선생님에대해서는모두들칭찬과존경으로얘기해주어서,선생님과가까이하고있다는사실이큰영광이요자랑이었습니다.

한때우리회지의뒤에붙은회원명단에는회원들의태어난연도를적은적이있었습니다.형제같은우의를다지고친목을북돋우며,술자리의인사나건배제의,또술권하는순서를어림한다는제나름대로의속셈이있어서였습니다.그러나언제나꽃이고싶어하는여성회원들의강력한반대,호적이잘못됐다고다투시는(?)몇몇회원들때문에몇년만에중단했습니다.

그래서선생님의출생연도가1929년임을알았습니다.글에서보면,선생님의자당께서부처님앞100일기도로태어나셨고,기사(己巳)년그해는지독한흉년이었다하셨습니다.역사책에서보면,바깥으론2월에교황청이바티간시국(市國)으로되고,10월엔미국등경제대공황이일어났으며,안으로는11월에광주학생사건이일어났고,김좌진장군등이중국연안현에서항일운동을조직적으로펼쳐나갔던해였습니다.

1929년,지독한흉년과일제탄압때문이었던가!저희집안제적부엔분명‘소화4년(1929년)’출생으로돼있는저의맏형이있는데,한살젖먹이로이승을떠난것입니다.그래서선생님을바라보면늘부러움이있었습니다.제고교3학년말겨울에25살나이로장가도못가보고눈감은둘째형과함께이형들이살아있다면얼마나좋을까생각하면서공손히술잔을올렸습니다만,선생님께서는늘잔잔한미소로사양하고일찍술자리를뜨셨습니다.

1993년2학기개강때,제가학장으로발령받아한창자리를정돈하고있을때쯤이었습니다.전화로미리확인하신후얼마안있어,엄광산그높은산골짜기까지차를타고큰보따리하나를들고직접찾아오셨습니다.바로첫수필집<어머니의금반지>원고였습니다.그때싸우다시피기어코두고가신두둑한봉투는여태수없이교정봐주고받은사례비치곤너무많은액수였습니다.그날퍼뜩떠올린생각이바로‘겸손’이었습니다.‘익은벼이삭’의자세가무엇인가를느꼈습니다.그래서그뒤모임때마다술한잔대접하려고무척애썼으나번번이허사였습니다.

그뒤로이어진수필집<포샤판사와정선군수>,<아침산책을하면서>등선생님의글을비교적많이읽은저로서특별한감회가있습니다.

<어머니의금반지>서평으로우리<수필>회원이셨던고현석(玄石)김병규선생님께서는선생님의글을다음과같이간단히정리하셨습니다.더욱요약해봅니다.

‘효성이지극하다.가식이없고진솔하다.소박쇄탈하다.유머가스며있다.문명비평을비롯하여법조인으로서의곧은자세가잘나타나있다.’등입니다.

선생님은세인이부러워하는서울대학교법과대학을졸업하여만인이우러러보는고등고시사법,행정양과를두루합격하셨습니다.그리하여전주지법판사를거쳐육군검찰부장,법무참모로군무를마쳤으며,진주마산대구등지의지원지법판사,부장판사를지내고,대구고등법원부장판사를거친후법관생활을마무리하고1980년에변호사사무소를개업했습니다.그리고는이후부산변호사회회장,대한변호사회부회장을역임하셨으며,그동안여러문학단체에가입,끊임없이수필창작활동을해오셨습니다.세권의수필집에실린글만도모두189편이나됩니다.

재판정에서근엄한법복을입고재판을진행하실모습을생각하면,어딘지어울리지않을듯한소박한내용의수필들이대부분입니다.그만큼인간적이고유머가넘칩니다.실제로우리수필회원들의단체여행에어쩌다참가하실때,그관광버스안에서나누던걸쭉한성담,굳이성스러운얘기라며문득문득던지시는한마디로파안대소케했습니다.

대학재학중이었던625사변1주일전에복막염수술을받고치료중이었다했습니다.인민군이쳐들어와아픈몸을이끌고고향고성을향해23일동안의피란길,‘어머니의금반지’덕분에겨우생명을건질수있었던얘기,그리고국군패잔병으로몰려인민군한테총살당할뻔한아슬아슬했던순간,또거꾸로인민군으로오인받아미군전투기의기총사격을받았던일들,이모두가‘곡예인생’그것이었습니다.그러기에죽음을초탈한‘웃으며살수없을까’를늘생각하며살아왔고,‘변호사사다’해도얼마든지웃으며감내할수있었습니다.

선생님,80년의인생은결코짧은것이아닙니다.선생님같이훌륭하신분이라면오래오래사셔서우리국가사회에더많이공헌해주셨으면얼마나좋으랴는바람이지만,어디만사가그렇게되는것입니까.

그동안법관으로서의공명정대함이우리나라민주주의기틀을다지는데크게도와주셨으며,변호사로서억울한서민을대변해주신보람컸었습니다.그리고동창회,향우회등의중임을맡아오시는동안부드럽고화목한인간관계를원활하게접목시키는일에크게이바지해오셨습니다.그리고수필인으로서끼쳐놓으신아름다운향기는오랫동안우리들의가슴을적셔주실것입니다.

선생님,이제기쁜마음으로웃으면서떠나십시오.그래야만사모님께서도마음편히여생을가벼이보내실것이며,경기도의회의원으로있는큰아드님을비롯한자녀분들,언제나선생님의고결하신뜻받들어행복한삶을누릴수있을것입니다.

선생님,이제더는사양마시고저희가올리는술한잔기쁜마음으로받아,향불향긋한냄새맡으면서들어주십시오.저승에서의복락길이길이누리소서.

2010년4월30일

삼가먼재박홍길큰절올립니다.

<최선호선생대표작>

웃으며살수없을까

최선호

웃으며살수없을까?

며칠전인가,신문보도에의하면미국의어떤교수가웃는것은건강에매우좋다는학설을발표하였다고한다.

그이유는잘모르지만,웃는행동이건강에좋다는것은결론적으로수긍이간다.사람이울고태어나서상당한기간이경과한후에방긋웃기시작하고,소리내어웃기에는또한상당한시일이걸린다.그렇다면사람이어떤즐거움을느끼면서좋아하고,만족이절정에다다랐을때에순간적으로나타나는환희의표정과소리가웃음이아닌가하고내나름대로생각하여본다.

만일태아가깔깔웃으면서어머니의뱃속에서나온다면어머니는좋아하기보다기절할것이요,웃을만한때에웃지아니하면귀여운줄모를것이고모성애도줄어들것이다.어린애가방긋방긋웃을때의어머니의기쁨과즐거움은더할나위없다.그렇다면어린애의웃음이모성애의근원이된다고도말할수있다.

웃는다는것은인간존재의양식에서볼때자유의한표현이라고할수있다.억지로거짓웃음을하는경우를제외하고는웃음이란인간자유의실존으로서가장행복한상태가아닌가싶다.

이렇게보면웃음이란사람에게가장가치있는것인데도불구하고,우리의전통적인윤리감정은웃음을인륜도덕에반하는것처럼여기는풍조가다분히있다는것을부정할수없다.이것은엄격한유교사상에서,아랫사람이윗사람에대하여웃는다는것은상하질서유지에금이가서사회기강을문란하게하지나않을까하는우려심에서나온것이아닐까생각할수도있다.그렇다면세상사람들이격의없이웃고지낼때사람과사람과의자유는완전히보장되는것이아닐까하는소박한관념에젖어보기도한다.

그러므로윗사람이나아랫사람,있는사람이나없는사람이한자리에모여서웃고지낸다는것은그웃는순간에는모두완전히평등한것이고자유스러운것이다.

물론사람이웃는다는것은웃을수있는여건이되어있어야한다.웃을일이있어도,그사람에게무슨큰걱정이있다든가불안과공포에싸여있다면잘웃지못할것이다.이러한어려운상태에있으면서도잘웃는다는것은여간훌륭한사람이아니다.

아들이구속되어있는어머니의얼굴도여러갈래다.어떤이는눈물을머금고울고오는사람,어떤이는약간미소진얼굴로오는사람가지가지다.물론좋은일이아닐바에야좋은얼굴을할필요는없지만,그래도우는얼굴보다웃는얼굴이더좋아보인다.자연은있는그대로를우리에게나타낸다.자연은그대로있는것이아름답다.그러나사람은아무말없이그대로있는것보다웃는얼굴이더아름다워보인다.

사람의실존의대부분은다른사람과관계하는데있다.가깝게는가족과의관계,직장에서는상하동료관계,사회에서의동창선후배관계,아는사람과의만남,모르는사람과의만남,여러가지로다른사람과접촉하며살고있다.여행을하게되면우연히모르는사람과한자리에앉게된다.하잘것없는일에도남과시비하게되고다투게되는일도있다.그리고현대사회는심한경쟁속에서살고있다.

그리고우리들은하루라도돈을쓰지않고는살수없다.즉여러가지종류의계약을체결하여계약내용에따라살고있는것이다.

이와같이사람의생활은다른사람과의관계와연관속에서이루어지고있는데,웃으면서다른사람을대한다는것은사람과사람과의관계를가깝게하고부드럽게하고따뜻하게할것이다.우리가가게에물건을사러가도손님을보고웃는가게주인은손님을다시오게할것이다.

근대사회는기계가움직이는대로사람도움직인다.거대한기계속에서사람도기계의일부분이되고기계의부속품으로전락하고있다.이것이인간소외의원인이되고있다.심지어는기계자체가우리의많은생명을앗아가고있다.참으로놀라운일이다.초밥집에서로보트가아무리맛있는초밥을공급하더라도사람이만들어주는초밥의맛에비할수없을것이다.로보트는사람이아니고웃음이없기때문이다.사람이동물과다른것은여러가지점이있겠지만동물에게는웃음이없다는점이다.

아무리근엄한법정이라도재판장이가끔미소를띠어준다면그법정의분위기는달라질것이다.신부,목사의엄숙한설교에도가끔미소를교인들에게준다면하나님을더욱가까이할수있을것이다.

우리보다생활수준이높은선진국가를보면많이웃는것이생활화되어있다고할수있다.우리가보기에는별것아닌것을가지고파안대소한다.

텔레비전프로에도웃는시간이많이할애되고있다.그래서코미디언의인기는대단하다.코미디언은단순한연예인이아니라국민의건강을증진시키는의사에못지않은역할을하고있는것이다.

요사이은행이나식당에서는스마일운동이전개되고있다.얼굴을활짝펴고웃고있는스마일그림을가슴에달고있다.참으로좋은착상이다.웃는데무슨시설과돈이필요하겠는가.즐거운마음과봉사하는마음을가지게되면얼마든지웃을수있다.

그러나웃는것도하루아침에되는것이아니다.오랫동안어릴때부터생활화하여야한다.우리나라가세계미인대회에서진,선,미에들어가지못하는것은다른나라에비하여웃음이뒤떨어지기때문이다.어릴때부터웃는얼굴을생활화하여자연스럽게아름답게웃어야한다.점수를따기위하여갑자기웃으려니좋은점수가나올수없다.

살다가보면사이가안좋은사람도있고,보기싫은사람,만나기싫은사람,인상이좋지않은사람도있다.그러나만나서웃으면다풀리고좋아진다.사람은웃음으로써기분이좋아지기때문에크고작은감정은모두해소할수있는것이다.

우리들은어떤모임에자주나갈기회가있다.특히,계모임에는누구나자주나가서모이게된다.이럴때우리들은가장웃을기회가많다.

별것아닌것을화제에올려웃는다.다른사람의좀바보스러운태도에도웃기까지한다.웃는소재는여러가지가있다.우리들은웃기위하여남들과만나고있는지모른다.친근한동창끼리모이면웃으면서만나고웃으면서헤어진다.그래서기분이좋고심신이가벼워진다.우리의생활주변에웃을만한소재는얼마든지있다.만나서웃으면다가까워지고친해진다.

현대사회는인간소외의시대라고도하여웃음이없는시대라고한다.이런속에서인간본래의본성을되찾아야하고인간의주체성을회복하여야하는의미에서도건전한웃음이생활화되어야할것이다.

(1982.11.)

어머니의금반지

최선호

어머님은평소에늘금반지를끼고계셨다.나는무슨치레로끼는줄알았다.“어머니,집에계실때에는금반지를빼고계시지요.”라고말씀한적도있었다.그러나어머님은“위급할때에는금이제일이다.돈이나마찬가지다.돈은늘가지고다닐수없지만금반지는끼고만있으면되지않느냐.”고말씀하셨다.

나는어머니의이말씀이그때에는무슨말인지몰랐고예사로받아들였다.그러나6․25사변이터지자어머니의말씀이옳다는것이실증되었다.

나는625사변이나기1주일전에복막염으로서울명륜동소재수도여자의과대학부속병원(지금의고려대학교의과대학부속병원)에입원하였다.전보를받고어머님은별로준비없이훌쩍올라오셨다.

인민군이서울에쳐들어오기전날밤에들것에들려서어머니와함께명륜동하숙집으로옮겼다.하숙집에서인근병원의치료를받고있었는데고향으로내려갈기회만보고있었다.

인민군치하에있었으나,우리나라의화폐는여전히통용되고있었다.나는서울에서굶어죽는줄만알고있었다.하숙집에서1개월가량요양했는데,어머님은며칠후에내려가자고하셨다.여기에서앉아죽으나살려고바둥거리다가죽으나마찬가지가아니냐,죽더라도발버둥이라도쳐봐야되지않겠느냐는말씀이었다.

“어머니,돈이있어야움직일게아닙니까.돈없이어찌움직인단말씀입니까?”라고하자,어머님은“여기반지가있잖아.며칠있으면곧팔릴것이다.”라고말씀하셨다.

어머니의말씀이적중되어다음날아침에마대를어깨에걸친젊은이가불쑥들이닥쳤다.나는쌀을사러온줄알았으나금을사들이는사람이었고,그푸대안에는돈이잔뜩들어있었다.

어머님은금반지를풀어주고얼마를받았다.이돈으로노자를하여우리모자는23일만에고향땅을밟게되었다.어머님은당신께서끼고있는반지가어느때인가큰역할을할것이라고믿고계셨을것이다.어머님은배운것은없었으나,앞으로어떤급한일에부딪힐때에는끼고있는반지에의지하려고한예지(豫知)에감탄하지아니할수없다.

내가취직을한후에어머니에게금반지를해드렸다.어머님은옛날의금반지를회상하면서몹시기뻐하셨다.그러나625때서울에서팔아넘긴금반지와같은일은다시없을것이라고믿었던지,허술하게간수하여금반지를분실하셨다.어머님은625당시의어머님은아니었다.기억이흐려서어디에풀어놓았는지모르겠다는것이었다.

그뒤에나는어머니에게새금반지를해드렸는지알수없다.아마무관심속에서잊어버리고지나왔을것이다.

어머님은1년간의병고끝에금년4월에세상을떠나셨다.어머님이남기신유품은시계하나와돈7만원,반지하나였다.반지는금반지가아니었다.

며칠전나는35년전에복막염으로입원하였던그병원에갈기회가있었다.내가입원한4층병실은어느건물인가얼른알아차릴수가없었다.그러나문득어머님의금반지가머리를스쳐갔다.생전에금반지를하나더못해드린것이한이된다.그리고금반지를마련하여관에못넣어드린것이몹시후회스럽다.

(1985.12.)

어머니

최선호

어머님이돌아가신지석달이나지났다.옛날같으면3년상을치러야하나,간소하게가까운절에서49제를지내고상복을태웠다.

어머님은식도암으로몇차례입원을하셨다.입원중에는내가사흘밤을어머니입원실에서잤다.불편한보조침대에서자려고하는나를기어코당신의병상침대에자게하고어머님은보조침대에서주무셨다.내일의아들근무를염려한나머지한사코침대를사양하셨다.내가환자가되고어머님이간호인이된것이다.

집에서누워계실때에도일찍자라고하시며오랫동안당신옆에있지못하게하심은내몸을염려해서였다.

어머님은기사년(1929년)8월에나를낳으셨다.기사년과그전해인무진년은역사상유례없는흉년으로,나를배태하시고서도밥이라고는하루에한끼니도자시기어려웠고,피와택사(澤瀉)로써연명하셨다한다.

생후얼마되지도않아중이염으로앓는나를업고용타하는의원을쓸다시피하여다니셨다한다.내가대학예과를수료하고건강이안좋아1년을쉴때에도,약단지가쉴새없을정도로탕제를먹게한어머님의정성으로대학에입학할수있게되었다.

고등고시에두번이나낙방하였을때에도어머니는절에서1백일기도를하셨고나중에는무당을불러굿을하기까지하였다.

나는대학2년때에복막염으로입원하였다.당시어머님은간호하러서울에오셔서1주일만에625사변을만나길이막혀고향에내려오지못하고인민군치하에서40여일동안병상에있는나를위해밥을굶다시피하여살렸다.그리하여23일이나걸려서어머님은병든나를부축하여고향까지겨우내려오셨다.

이러한일은어머님이나에게하신많은일중의몇가지일에불과하다.

어머님은숨을거두시기전까지도나를염려하시고걱정하여주셨다.이런어머니이기에나로서는지난추석절의어머님제사는감회가깊었다.아내도며칠전부터제사에신경을쓰고정성을다하였다.제상앞에꿇어앉아조용히강신(降神)하니와르르쏟아지는눈물을가눌수가없었다.

어머님의지난날은참으로가슴아픈일이많았다.어머님은유년시절에는별로걱정없이지냈었으나,우리집에오신후로는조부님의병환으로기울어져가는가세를바로잡으려고혼신의힘을기울이셨다.조부님을여의시고조모님과여러숙부님의뒷바라지에청춘을보내셨다.아버님이한동안이나마직장없이집에계셨을때어머님은얼마나속이상했을까짐작이간다.초년엔가정이평온하였으나,중년에이르러아버님과사이가벌어져이름만의내외였다.그래서어머님은더욱나를애지중지하였을는지도모른다.

나는이런어머님을흡족하게모시지못하였다.마음은있었지만마음대로되지않았다.더구나2년전에는동생이병사하니한이맺혀병을얻었을는지모른다.

어머님의운명은순간적이셔서임종을지켜보지못했다.운명하신어머님의모습은너무나깨끗하고평화스러웠다.눈을감고깊이잠들고계시는것같았다.어머님의얼굴은병석에서의이지러진얼굴이아니라주름살이펴인아름다운얼굴이었다.

어머님은돌아가시기며칠전에목욕을하셨다.이승의때를씻어버리고저승으로가시겠다는뜻일것이다.

어머니의손과발은깨끗하고부드러웠다.그러나따뜻한기가가시고차차차가워오는것을느꼈다.염을하고수의를입힐때에도나는어머니의시선에서눈을떼지아니했다.

어머니의한평생은편안한날보다고통과불안스러운날이많았다.그리고평균수명보다훨씬더사신것을생각하니자식으로서마음의위안을느낀다.

장례를치르고나서도어머님이살아계시는것같은착각에사로잡힐때가많다.수시불쑥불쑥생각나는어머님을볼수없으니이세상에안계시는것은분명하다.

어머님!우리들에대한모든시름을다잊으시고부디저세상에서편안히지내시기를바랍니다.(1985.12.)

나의시(詩)등단기

-누리고싶은여백의자유

이해주

수필집<덤으로사는인생>박문하추천으로등단(1971)

수필부산문학회고문,한국문인협회회원,한국시인협회회원

수필집<여백의자유>외3권

시집<위치>외2권

부산대학교명예교수

나는30여년간재직했던부산대를정년퇴임하고일본후쿠오카국제대학교수로제2모작인생을시작하면서,새로운내정신세계를구축(構築)하기위해다시시를쓰기시작했다.40년의오랜휴면기간이었다.이무렵시인이며평론가인차한수교수는,내게재기(再起)의격려로서1999년<세기문학>신인상을안겨주었다.이리하여제2시집<봄이오는소리>(2002년)와제3시집<집어등(集魚燈)>(2005년)을상재하게되었고,지금도열심히작품활동을하고있다.

돌이켜보면,나는청소년시절열렬한문학지망생이었다.625전쟁중에는위생병으로참전하여중부전선의참호속에서도시를썼다.누구의지도를받은적도없이,오직꿈과열정으로죽음과삶이분별될수없는현실을노려보며,그래도내일을믿어보려는몸짓으로시를썼던것이다.

휴전후,대학시절에는전쟁의폐허위에서문학지망을포기하고경제학을전공하면서,그래도미련이남아시동인지<돌샘(石泉)>을통하여작품활동도하고,더러는일간신문과대학신문에작품을발표하기도했다.그러다가1959년습작노트에서1950~53년전쟁시기의15편과,휴전후1954~59년의15편을골라30편으로엮어김용호시인의서문을받아첫시집<위치(位置)>를출간했다.

당시김용호선생은‘푸른별’,‘남해찬가’등으로널리알려진유명시인이어서,내심주저스러우면서도용기를내어이주홍선생의소개편지를들고서울자택을찾아갔던것이다.선생께서는찬찬히원고를읽어보시고쾌히서문을써주시겠다고하여얼마나기뻤는지모른다.

서문말미에는이렇게써놓았다.‘하늘의별은역시우리들에게있어서신비로운매력적인존재다.이제우리시단에하나의별이탄생하였음을우리들은본다.이별이그광망을더욱빛내고보다오랜광년을가질수있는것인가어떤가는오로지내일의과제라고생각된다.이러한의미에서시집<위치>의작자는그러한정신적작업을끊임없이꾸준히지속할것을바라면서,그의보람있는첫작업을같은대열에선동지적인입장에서경하하며기대하는바이다.’

이서문에서인용한‘사랑하는것을위하여’라는졸시(拙詩)를여기에그대로옮겨본다.

사랑하는것을위하여

어둡고흐린

매서운바람이불던

어느한밤

유독히작열(灼熱)

빛을머금고

빛나는별의행렬(行列)속에

또렷한

원광(圓光)을그리면서

스러져간사랑하는별들이있었다.

오늘이흐린

밤하늘위에

아사랑하는것을위하여

어느계곡

깊은밀림속에

빛을던질유성(流星)이되었으리니

차라리

눈물속에

너를보낸내사

가슴두드리며

차디찬이녕(泥濘)속에

석고(石膏)처럼여기서서

사랑하는것을위하여

아다시는오지않을너를위하여

내이밤지키며이시를읊노라.

1952.8.

이렇게김용호선생의서문을받아이주홍선생의표지그림으로나의첫시집<위치>는1959년11월세기문화사간행으로햇빛을보게되었으니,20대의내정신사(精神史)를정리한셈이다.

그리하여그해크리스마스이브에첫눈이내리는중앙동‘설야(雪夜)’다방에서출판기념회를가졌는데,이주홍,김정한,김태홍,박철석,손동인선생등문인들과친지들이참석하여성황을이루었고,살매김태홍선생께서는부산일보에신간평(新刊評)을써주셨다.

그러나이러한주위의기대를저버리고나는오랫동안시를쓰지않았다.왜냐하면두마리의토끼를좇다가는한마리도못잡을것같은긴장감때문에전공인경제학쪽으로만관심을쏟고매달렸던것이다.

그런데이제와서되돌아보니,나는반듯한경제학자도못되었거니와시인으로서의자리도제대로잡지못한‘어중잡이’꼴이되고만것같다.

그런데도나의제2모작인생은,처음처럼꿈과열정으로이어져있어후회는없다.담담한심정으로금빛노을바라보며강변길을산책하면서‘여백의자유’를언제까지나만끽하고싶은것이다.

영혼과육신이분리되는아름다운순간을위하여

朴松竹

<현대시학>추천완료

세계시인상,부산문학상,가톨릭문학상,부산시인상,부산여성문학상본상수상

시집<눈뜨는영혼의새벽>외15권

수필집<사랑하므로아름다워라>외다수

생명의물오른환희가숨쉬며다가오는3월이다.

엄동(嚴冬)의긴겨울동안웅크린침묵속에서아픔을안으로삭혀가며인내와고통으로새생명을싹틔우며원색의아름다운초록빛기쁨으로저마다에마음의창마다노크를한다.

‘인생은그날의꽃과같으며그영화가들꽃과같다.’는시편속에서많은것을아픈마음으로묵상하게된다.

그리고언젠가2천년전으로추적되는씨앗을고고학자가발견하여땅에심었더니그죽은것같던씨앗이싹눈을틔워서새생명으로살아나더라는방송을들었던적이있다.

그죽은것같이보이던씨앗이다시새생명으로살아났다는것은참으로신비롭고경탄스러운기적같은사실이다.

이처럼꽃이시들어떨어져죽어야다시새생명으로살아나는것처럼인간도순회하는자연순리에따라한치의오차도없이세월의회전목마를타고세상이라는뜰에서저마다의삶의꽃을피우다가열매를맺고떨어지는꽃잎처럼세포분열하듯이육체와영혼이분리되어죽음을맞게되고또그죽음은영생이라는텃밭에새생명으로부활하게되는것일까.

시인하이네는‘죽음은인생의종말인동시에완성의순간이다.인생의벌이아니라인생의새로운탄생이다.’라고했고,미국의예일대학교수이며신학자인H뉴엔은‘생명은하느님을찾기위해서/죽음은하느님을만나기위해서/영원은하느님을소유하기위해서주어진것이다.’라고했다.

그렇다면삶이란하나의단계적인성장이기도하지만또한나이를먹고늙어간다는것과내안에서의젊음을상실하여간다는것은하루하루산다는것이죽음가까이가는것일까?아니면또하나의새로운다른세상으로들어가기위한탈바꿈의여정으로죽음이라는문을거쳐야하는필연의과정이라말할수있을까.

나는며칠전에이상한꿈을꾸었다.죽음을맞이한나자신이장례식까지치르는내모습을감동적으로지켜볼수있었다.

꿈인듯생시인듯

참으로이상한일이다.

이제막살갗을빠져나온내영혼이

숱한사연붉게물든삶을내려놓고

별빛은하수강물에발을담그고

자갈씻겨가는물소리로꿈인듯생시인듯

바람이몰고가는적막속에서등뼈휘어진삶의무거운짐내려놓고

이승을하직하고저승에가있는내모습을어제밤꿈속에서보았다.

산다는것이허기진다고무시로한탄하던

이지상에서의아름답던생의흐느낌으로

따뜻한가슴살섞던영혼과육신이분리되어

노을속에노을로산수유꽃흔들림으로바람에꽃이지듯이

영영어디론가떠날차비를하며꿈인듯생시인듯

이승을하직하고저승에가있는내모습을어제밤꿈속에서보았다.

왜이런꿈을꾸었을까?마치남의죽음을바라보듯이등뼈휘어진무겁던삶을내려놓고편안하게깊이잠든내모습을바라보면서태어날때는내의지와는다르게울고태어났지만이지상을떠날때는하느님께서보시기에좋은나의아름다운뒷모습이되었으면얼마나좋을까하는생각과함께눈만뜨면내마음과는다른유다와같은내가되어가는나자신이한심스럽지만,그러나어쩌랴!언제고부르시면이지상을떠나야할추위타는이나이께와서야‘어미가자식을잊을지라도야훼하느님은우리를잊지않으시다’는그말씀에의지하며천하보다더귀하게여기시는그분의사랑을조금이라도닮아가려고애써노력하며오늘도시행착오의인생을살아간다.

적전(敵前)참호(塹壕)에서

-지기(知己)와나눈대화-

成洛九

경기고보졸,일본미도(水戶)고재학중중일전출병

<현대문학>추천완료

부산수필문인협회,불교문인협회,금정문화예술협회고문

한국漢詩,時調등단,동협회회원

국민훈장목련장,동백장수훈,실상문학본상,부산예술상

수필집8권,시집4권

누구나젊은날의꿈은찬란하였다.그런데전쟁에휘말려그청운의꿈이부서진상처는잊을수가없다.

더구나수학중에일본군에끌려가서천신만고를겪으며죽어갔던친구들이있었고,또죽음에직면하면서도민족에끼칠멸시의눈길을염려하며최후까지교육받은조선청년의지성(知性)과존엄(尊嚴)성과한국의자존심을지키려고애썼던그날들을백발의이날에도잊을수없다.

1943년늦가을밤,포연이작열하던대륙의전야(戰野)에야포(野砲)기지의구축과발포준비를마치고의장(擬裝)까지완료한우리는참호속에서다음명령을기다리며밤을새웠다.경계와긴장도시간의흐름에따라해이해지는것이인간마음이다.같은조준(照準)수의졸병에일본인이있었으니,동경제대의경제학부에재학중이던마쯔오까히로오(松岡裕生)였다.징병유예의혜택이없어지고징집당해생사고락을함께하는동병상련(同病相憐)의처지라친숙해졌다.

중천의달이밝았다.광막한벌판,그야말로광무(廣袤)산하(山河)거친바람이스치는대지를비춘달이었다.옛날이땅의조조(曹操)는이러한월명성희(月明星稀)한밤‘적벽강(赤壁江)에적을앞에두고서도뱃전에창검을눕히고술잔을기울이며시를읊었다는그900수십년전(1081赤壁戰)의중국인의심정과지금조급히서두는중일전쟁에임하는일본군의심정을헤아려봄이어떠한가?’하며내가그를바라보는데그(松岡)는‘역시친구는반도의빼어난선비기질’이라며얘기를늘어놓는다.대륙의중국인과섬나라일본인의정신세계를관조하라는자네야말로조조와같은정신세계를왕래하는것을엿볼수있다는것이다.솔직히일본군이점령했다지만무저항으로물러섰다가중국의거센반격에뒷감당을못해쩔쩔매는전황이오늘의현실이아니냐는것이다.

그는나를보며<까마귀의북두칠성>을들어본적이있는가?묻는다.‘시인미야쟈와(宮澤賢治)의동화말이아니던가.사랑과전쟁과죽음에대한숭고한인간정신이용해된어른에게도교훈을주는동화였지.’내대답에,‘그렇지!미워할수없는적,전쟁의승패를초월한전쟁관…,사랑에굶주린적을죽이지않아도되는세상을바라는세계관이부럽지않은가?’라는것이다.

일본군부는국민에게‘야마도다마시이(太和魂)’란고약한종교의광신자로만들었다는것.스스로목숨을던지는광신순교자로만들었다는것이다.장차그들의위에서지도할자질을닦는학생들을무차별이런참호속으로내동댕이쳤다는것에분개하는그였다.이모두일본의지성인들이침묵함으로써군벌의오만을키워오늘이지경으로만들었다는자탄이다.

나는그래도일본은성숙된사회라고하였다.그예로동경제대의헌법학자미노배(美濃部)교수의용기를지적하였다.중세의지동설(地動說)을주장한갈릴레이(Galilei)를처벌했던교회나국가권력에도전하듯근대의스피노자(Spinoxa)는300년전에그의신학정치론(神學政治論)에서신학과철학과학문을구별하여인류의끝없는학문자유를주장한그학설을신봉한미노베(美濃部)교수는소화(昭和)군벌(軍閥)을비판하고그의학설을굽히지않았다.일본이만주사변(1931)이전까지만해도그래도정당정치라우길수있었는데군벌이천황의절대군주제를업고지나사변(支那事變:중국침략전),태평양전쟁으로치달으면서군부가정치중심이될때,그부당함을예리하게비판하였다.이는곧일본헌법은명치의흠정헌법으로천황은인간아닌신으로서신성불가침의천황주권제도를부인하고국민중심의정치원리로‘통치권(주권)의주체는천황이아니고법인이라할수있는국가다.’라고주장한것이다.총알을맞아전사하는순간에도‘천황폐하만세’를외치며죽어야한다는서슬푸른군부의총검아래의이주장은대단한용기가아니던가?군부는기어이그를학비(學匪)로몰고귀족원의원직과교수직을박탈하고추방하니길상사의절에서테러를당해가며침묵을지키고있는사회고보면그만큼성숙된사회라할수있으며,그리고지금적과마주친이참호속에서도우리가이렇게토론할수있는그자체가수준급사회가아니냐고역설하였다.친구(松岡)도웃으며‘그렇고보니우리가미노베(美濃部)교수의공범자가됐네그려.’하며그도실소하였다.

우리는이밤조선과일본의국적을떠난친구이며전우(戰友)이상의지기(知己)로공감이교감된학우가아니냐며이런지기를만나무슨말을주저하랴?하는말에더욱우의(友誼)가믿음직하였다.나는앙드레지드가말한‘지성인의참모습은자유비판적주장에있다.’는말을되새기며일본이세계조류에역행하는면은유감스럽다고말했을때친구(松岡)는우리는지성인이아니던가.나라의장래에암운이덮인것을모른척하는것은지성을잃은처사라는것이다.

나는일본이거창하게내걸고있는대정(大政)익찬회(翼贊會)는그지향하는방향이의문스럽다고언급하자친구(松岡)는그부당함을동조하며기염을토했다.

일본의유일한국민대변기관인중의원(衆議院)을그들이무력화한다는것이다.작년(1942년昭和17년)4월제21회중의원총선을보면재적466명중군벌의추천과압력에익찬회(翼贊會)가381명이고동방회7명,기타4명무소속74명이다.익찬회(翼贊會)란무엇인가?그들군벌독재의양날개가되어군벌을찬성하고돕는다는모임이아니던가?그들이중의원4분의3을넘게점거하여국민의소리를가로막고군벌에굴종하는무리들이익찬회(翼贊會)다.

지금세계의인류가인간의기본권을운위하는데일본만어찌신국(神國)신군(神君)에충군(忠君)애국하고팔굉일우(八紘一宇:세계를한집처럼사랑하고의좋게)를외치면서세계제패의전쟁에혈안인가?천부적인인간양심과사상,학문과진리추구등은인간의내적인자유다,외적자유인언론출판의자유등을철저히박탈당한일본현실을개탄하는친구다.

나는그래도조선에비하면자네들은호강받는처지라며조선처지를언급했다.제나라왕실은살아있는신이라받드는일본이조선왕실에는총검을들고난입하여국모를잔학하게살해하는만행이며조선인에게치안유지법으로치안재판(즉결재판)으로자행하는폭정이다.더구나일본에유학한조선학생들.언어풍속이다른이국에서친구들끼리만나객지생활의서러움을나눈일기장등하숙집을들추어찾아내불법집회로뒤집어씌우고,두번이상모였다면불법결사로,불온사상의집단으로단정하여감옥이나전쟁터로보낸것이부지기수다.일시동인(一視同仁)내선일체(內鮮一體)를외치면서호오(好惡),애증(愛憎)이딴판이면서세계평화를운위하는오늘의일본군부다.

친구(松岡)는나의이런지성이있어친구요지기라는것이다.우리는생각할수록모순에빠지는현실을개탄하였다.하지만생각하는갈대는해결하는능력은없는것이세계적인현실이라볼수밖에없었다.그해결을위해우리는넓고무한하며영원한진리탐구의도끼를든것이아니던가.그런눈으로보면전쟁따위는일장의희극이다.군부가계속강요하고확대하는전쟁은허공에지은거미의집에불과하다하겠다.

멀리서간헐적으로들려오는포성에밤은깊어가고달빛만교교(皎皎)하다.마치허허막막한사막위에던져진자신을느낀다.

어느나라민요이던가?‘-달빛의사막길을나그네의낙타는걸어갑니다.…’심야의환청을타고들려온다.그렇다!그사막의모래바람에끝없는무늬를이룬위로초로와같이명멸하는물거품의우리다.이렇게전쟁의이슬로하나의편린(片鱗)조차남기지않고사라질우리다.

한치앞을분간할수없는적과대치한참호(塹壕)속에서그래도새파란꿈을안고이국친구와나누었던67년전의대화를소중히여기에담아보는것이다.

-경인(庚寅)진월(辰月)의만월(滿月)아래옛생각을떠올리며

식혜같이

장광자

<한국수필>추천완료

한국문협,부산수필문인협회회원

수필집<모양없는빛속에서>,<한마디말>

상담에세이집<나는상위권아버지는하위권>

내가식혜만들기를좋아하는것은솥뚜껑을열었을때,동동떠오른밥알을보는반가움때문이지싶다.

그래서야유회나모임이있는날은간혹식혜를해간다.사람들은손이많이가는걸해왔느냐고반색을하지만,좋아서하는일은힘든줄을모르기마련이다.

요즘은전기밥솥이있어서온도를똑같이유지할수있으니재를넘길일도없다.뜨겁거나오래두어서쉬어질일이없는것이다.옛날같으면아랫목에묻어두고혹시나싶어열어보곤하지만,그럴염려가없다.단지그시간이지나지않도록시간을맞추는일이신경쓰여서,식혜를만드는날은밖에나갈일을만들지않아야할뿐이다.

우리나라음식중에는쌀로만든음식이많다.밥을비롯하여약밥도있고튀밥도강정도있다.고두밥을쪄서누룩으로버무려띄운술도있고,엿기름치댄물로밥을삭힌식혜도있다.날이면날마다먹는밥에게는미안한말이지만그중에도맛있는것이식혜다.

그래서그런지내마음속에는죽도밥도튀밥도아닌,식혜만큼만살았으면하는바람이있다.

수많은밤을잠못들어뒤척였고,아직도부모로서숙제가끝나지않은채살고는있지만,그래도밥알본래의모습을잃지않으면서밥알그대로있지않고단물에삭아서떠오르는,고정도로만살게되기를염원하게된다.

태풍이나광풍속에서도새잎을틔워내는나무처럼의연히견디며살아가는사람들을보면,식혜나되고싶은내소망은하잘것없어보인다.

그러나삭지않으면밥알은뜰수가없다.몇시간을뜨거운열속에서버티다가더는견딜수없어위로떠오른밥알은손가락을대고문지르면힘없이스러지지만,제모양을간직한채동동뜨는모습을보며,나도딱저만큼의모습이기를바라는마음인것이다.

사는것은견디는일이다.무쇠는불구덩이속에서견뎌야만연장으로거듭나고밥알도오래삭아야식혜로거듭난다.살아오면서나도수없이삭은것같은데아직도거듭나기는멀다.걸핏하면살아온날이허무하고,이랬더라면저랬더라면하며부질없는공상에마음을뺏기는걸보면,삭아서뜨는밥알만도못하다.

그엄마에그딸이라했던가,애기를낳고갓어미가된딸이전화속에서엉엉울어서놀래서기함을했다.무슨일이나생긴줄알고.갓난쟁이가밤새보채고울어서감당이안된다고,노력해서될일같으면애를써보겠는데,그것도아니고앞으로애한테이렇게매일생각을하니눈물밖에안나온다고울었다.

세상일이노력한다고뜻대로된다면무슨걱정이며감당못할일이어찌그일뿐일까.애기를낳아본적이없으니그렇겠지만그냥크는아이가어디있을라고.

밤에도몇차례나깨어서젖먹이고기저귀갈아주고,칭얼대면안고방을돌아야하고,그렇게하면서비로소부모가되고어른으로거듭나는것이다.밥알이식혜가되기위해오랜시간을견디듯이그렇게생속이삭으면서새로운사람이되는것이다.자고싶으면자고가고싶으면가던날은봄날이었음을겪지않으면어찌알겠는가.

그래도아기가방긋방긋웃기시작하면오만시름다잊고,자식크는재미에세월가는줄모르기마련이다.우리모두그런부모의노심초사속에자랐음을딸아이도이제부터알아갈것이다.

평소에잘도나다니다가하필딸이애기낳을무렵에허리를삐끗해서딸보기가말이아니었다.갈데안갈데칠락팔락다닌탓이려니반성하면서도,꼭가야할자리에못가는마음이편치않았다.

산후도우미가온다고해서안심을하고있었더니,전화속에서울어쌓는딸아이를보다못해동서를보냈다가올케를보냈다가그래도울먹이는전화를받고더는어쩔수없어아픈몸이끌고서울에갔었다.

아기기저귀도갈아주고목욕도같이시키고돼지족발도고아먹이면서초보엄마가된딸을보살피고왔다.그러면서뜬금없이찔뚝없는짓도했다.밤도새벽도없이우는아기를함께달래다가“이렇게키워놔도크면대든단다.”는말을해서딸이눈을동그랗게떴다.착한딸한테그런말이왜불쑥나오는지참,나도친정어머니한테잘도타박을했으면서꼭이런말해주러간꼴이되었다.식혜처럼삭으려면아직멀었다.

어찌되었건치료를중단하고가서무리를한탓에허리는되감겨고생중이지만견딜수밖에,앞으로또얼마나더견디고더삭아야할지부모노릇이그리쉬운게아님을살아갈수록느끼게된다.

이제갓어미된딸도더도덜도말고삭아서동동떠오르는밥알처럼살아가기를,그래서맛있는식혜가되어다른사람의목을축일수있다면더바랄것이없을것이다.

촛불을켜며

이몽희

<시문학>추천완료

시집<달빛의소리>외4권

사진시문집<내사랑나의부산>

시사진집<그림자에게>

바다빛깔이조금씩검어지기시작할즈음에해운대바닷가를거닐다가파도에밀리는초한토막을주웠다.반뼘쯤이나될까.심지는모지라져몸뚱이속으로숨어버렸고온몸이찍히고부러지고금가서한군데성한곳이없었다.

손수건으로물기를닦고몸뚱이에묻은모래를털어낸다음옆사람의라이터를빌려불을붙였다.심지를덮은살을한참녹인뒤에야간신히불이붙었다.모래를헤집고둑을쌓아바람을막고그안에촛불을세웠다.그많은상처를말끔히잊고거짓말같이맑고밝은불빛을내며모래성을비추고내얼굴을비추고방금얼굴을내민개밥바라기와눈을맞춘다.볼품없이모지라져바다위를떠돌던초한토막의찬란한부활이었다.

‘솨아솨아-’밤바다의파도는단조롭지만신비로운영원의노래에스스로취해밀려오고밀려간다.저소리너머를추적해가면과거속으로사라진바다의역사에닿고저소리가지향하는시공을앞서가면바다의미래에상상이닿을것이다.이런생각을하다가불현듯방금다시살아난이초가밝혔을지난날이어두워진바다위에신기루와같이떠오르는것을보았다.

친척누님이결혼하는날열두살짜리인나도아지매나누님들을따라겨울밤이깊도록자지않고있다가문구멍으로신방을들여다보았다.“니는보는기아이다.”이러면서밀어내던누님들이비켜주는자리에서문구멍에눈을대고들여다본신방안에서는촛대위에서가끔씩파르르떨면서타고있는촛불이그방의주인이었다.호롱불아닌촛불이밝혀주고있는신방은신비한분위기로성화(聖化)된공간이었다.둘러쳐진병풍,불빛에현란하게번쩍거리는이불,반들거리는가구,그한가운데마주보는듯가까이앉아있는신랑신부는이세상사람이아니었다.딱히무어라비유할말이그때는생각나지않았는데좀더커서생각해보니그것은무슨전설이나신화속에나오는먼시공과그속의행복한남녀를거기에옮겨놓은,그런느낌이었던것같다.

잠깐동안눈앞에펼쳐졌던그정경은한자루촛불이연출해낸신비그것이었다.훗날성인이된후신방에촛불을켜는이유를알았고,촛불이야말로첫날밤에가장잘어울리는조명이라는것도알았다.화촉동방(華燭洞房)이라는말이얼마나멋지고적절한말인지도알게되었다.그누님은이별과고독과가난의일생을살았다.그렇지만나는촛불아래에서환상같은선녀가되어임을만났던그하룻밤이면일생의불행을어느정도보상받을수있었을것이라고,요즈음도그누님을볼때마다그런생각이든다.

전기가들어오지않는시골에서살았던청년시절의한때,나는밤에자주촛불을켰다.촛불과마주하고있으면불꽃에영혼이있는것처럼느껴졌다.고독과명상과그리움이먼곳에서전해오고또그것들은밤의어둠을건너멀리내가모를곳으로번져가기도하였다.그래서편지를쓰면사연이그만큼절절하고깊어져연서를쓰기에는참적격인불이었다.내가태어나서처음으로사랑의시를썼던청춘시절의그어느밤에도내방에는동굴같이아늑하고반경이깊은촛불이켜져있었다.

난방이제대로안된겨울밤추위에놀라눈을떠보면머리맡에손가락마디만큼남은촛불이가물거리는데누군가가남겨놓고간막걸리주전자가혼자얼어가고있었다.신문지에촛불을옮겨붙여주전자언저리를한바퀴돌려찬술을달랜다음딱한모금마시면서‘이것이바로시야’중얼거렸던시절의그촛불이참으로그립다.

사랑의맹세를하는연인의사이에놓여서유한한불빛으로영원을밝히던촛불이있었을것이며,간절한기원으로가슴터질듯한사람들이그앞에꿇어엎드린제단위에서그들의간절함을함께나누며사람보다더절실하게눈시울을적셨던신전의촛불은또얼마나다정하고자비로웠을까.

재직중,유아교육과학생들이교육실습을나가기전날밤에치렀던촛불의식에해마다동참하면서나는촛불이가진그신비로운힘을삶의현장에서강하게실감할수있었다.전등을모두끈깜깜한실내에서하나씩밝혀드는촛불,그불빛을받아떠오르는젊고아름다운얼굴,그얼굴들에는하나같이경건과성스러움과초월적의지가한데어우러진신비가있었다.촛불은태양빛과전등불빛에길들여진인간의세속적인일상성을벗겨내는동시에,어둠이가져다주는마음속의두려움과무력감,혼돈과절망을몰아내고초월과성(聖)과진리가공존하는새로운시공하나를불러오는힘이있었다.

학생들은초의불빛속에떠오른벗들의얼굴에서새로태어난제모습을보면서눈물을흘렸다.그리고떨리는목소리로오직희생과봉사와사랑으로교사의길을갈것을다짐하였다.그때그들의표정과목소리에는시간에마멸되지않을초월성과영원성이사무쳐있었다.나도학생들과더불어감동하면서촛불과함께한그굳센다짐의힘으로그들은어렵고힘든교사의길을꿋꿋하게헤쳐갈것이라고굳게믿을수있었다.

지금은촛불을켜는사람이드문시대,밤에도수많은태양이뜨고촛불을켜서어둠을밀어내던깊숙하고은밀한공간까지마법같은전등불이굽이굽이찾아들어아무도촛불을켜지않는다.아무도촛불아래에서시도연서도쓰지않으며신비한촛불로새로운시공을여는신방은이제이땅어디에서도찾아볼수가없다.기원의제단에서도조금씩밀려나는촛불,어찌보면변방으로밀려난사람일수도있는사람들이잘보이지않는바닷가나산기슭바위뒤은밀한곳에서그들의슬프고여린소망을기원하는그앞에서나켜지는촛불,이제머지않아그런촛불들도잦아들것이다.

밤에도대낮같은휘황한불을밝히고현란한불꽃을피워올리면서집단으로창조하고집단으로찬미하고집단으로기원하는시대,이시대에혼자촛불을켜서어디를밝히고무엇을찾아서증언할것인가.침묵보다더가치있는말이아니라면차라리침묵하는것이더나은것처럼어둠보다더의미있고신비로운세계를불러오는그런촛불이아니라면켜지않는것이더나을지도모른다.

나는일어서서타고있는초를바닷바람앞에세웠다.촛불이금방꺼졌다.촛불이켜졌을때아무도돌아보지않았듯이그꺼짐때문에어둡다하는사람아무도없었다.아!나는알았다.촛불은스스로눈을감은것이며스스로바다에몸을던져다시는불을켜지않으려했던것이구나!나는남은초를소중히주머니에넣었다.언제고다시켜서또한번연서를쓰고사랑의시를지을것이라미소지으면서.

화투,그영원한안개

이원우

<한국수필>추천완료

전명덕초등학교장

전덕성토요노인대학장

수필가,소설가

대중가요연구가,초량애덕의집노래봉사자

그는그저시골에서농사나짓는사람이었다.그렇다고해서전혀출입이없지는않았고.가끔은상경하여,고관대작들과어울렸다면?결코보통내기는아니었다는표현이가능할지모르겠다.그런데그가누군지아무도모른다.

그제신문에서이주인공에대한기사를읽었다.

그가화투를쳤다는것이다.이지용,사도세자의5대손이요,고종의당질(堂姪)인이지용의집에서였다.묘하게도한일합방이이루어진해1910년어느날이었다.한참내려가다보니도무지믿기지않는몇줄이있다.거짓말좀보태어모골이송연하였다.그날밤그가날린돈이무려11만환이었다!당시순경의봉급이20환이라면이건계산이안된다.

가라사니가없는내가볼펜을들고한참이나걸려끼적거렸다.110,000÷20=5,500개월봉급.다시2,000,000원×5,500개월=110,0000,000….무려110억원이다.여기서200만원은현재초임순경봉급을어림잡은액수다.세상에오늘이런일이벌어졌다치더라도,며칠동안천지가시끄러울것이다.

우스개소리하나.누가말이다.화투가우리나라에들어온게몇년인가묻는다면나는확실하게대답할수있다.1876년,맨앞1은제외하고876!천주교가전래된1784년을아무리외려해도안되어서‘칠갑산’을매체로하다보니영원히머릿속에저장되던것과같은이치(?)다.아무튼수입30여년이지나는동안에그화투란놈이한일합방당시상류사회에서최고의사교수단이되었다니,참알다가도모를일이다.

화투라하면나는노무현대통령이떠오른다?그런어이없는‘발설’을해놓고내가무사할(?)수있다니,내간도어지간히큰모양이다.하기야이일로인해김길태처럼거짓말탐지기앞에앉아봐야,아무런반응이안나온다.그이야기를한번해보자.오래전그가어느당부총재시절,강서노인학교에서그를만났었다.나는현직교장이었고.노인학생들앞에서사라져가는노랠불렀다.안타깝게도내가기억을되살릴수없지만가락재생(再生)은가능하다.일가친척없는몸이……/하룻밤풋사랑에잘난동과못난동이/화투장에점을치며/맺은날짜애태우며맺은날짜애태우며/기다리는여자라오……

노부총재들으랍시고덧붙였다.몇주안에경로당에찾아가10원짜리고스톱이나치겠다는공언(?),그걸나는아직기억하고있다.세월이무상하여10년이흘렀고,날의아스럽게여겼을노부총재가유명을달리한게벌써1년이가까워온다.그러나그가졸업했었던진영대창초등학교건너편노인대학에는올해일고여덟번강의가잡혀있으니,민요한소절이아니라도마음이산란하게되었다.만약진영경로당을한번찾는다면노부총재에게진간접빚은갚는셈이리라,하하.

얼마전우세를단단히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즉어중간하게아는게근심이된다는걸체험한것이다.가만있으면중간은된다는게결코틀린말이아니더라.자초지종을적으려고다시10년전으로거슬러올라간다.<주간조선>이었던것같은데,기자(記者)도진피아들과다름없었던듯화투를소재로이런아름다운(?)이야기를하나썼던것이다.

‘비’광(光)말이다.거기한영감이보이지않는가?영감이10세기엔가일본의서예가였단다.글씨연습을하는데자꾸만게으름을피우고싶어밖으로나왔다.비가와서우산을받치고섰으렷다?청개구리한마리가늘어진버드나무가지끝잎을향해한사코뛰어오른다.수백수천번을그러던녀석이마침내잎을붙잡는데성공한다.크게깨달은영감이더욱정진하여마침내당대최고의명필이되었다는것.

나는그말만믿고그걸아무데서나써먹었다.심지어는어떤문학모임에서도,성공담의대명사처럼입밖에냈으니가관이로다.작년이다.여남은살선배와그의동료들이고스톱을치는자리에서였다.구경만하고앉았었다.‘비’석장이설사로깔려있고,누가비광을뒤집었을때,옳다구나싶어그영감의일화를전가의보도처럼휘둘렀다.‘집나간가시나애배어돌아왔다’는농담에파묻히는가싶었는데,‘피’를한꺼번에6장이나쓸어담은주인공이나에게귓속말을건네는게아닌가?아,그거<수신(修身)>에나오는내용이오.

나는쥐구멍이라도찾는심경이었다.슬그머니자리를뜰수밖에.모자라기는그기자나나자신이나오십보백보라속으로투덜거리며….

나중에알았지만,그‘비광(光)’영감이야기가일본교과서<휴신(修身)>에실린건사실이었다.우리나라학생들이그교과서를통해고작화투에나나오는이야기를가르쳤다니,어안이벙벙해질수밖에.그래서화투라는게일본과우리나라사이에묘한함수관계로남는다싶었다.

나는고스톱에서손뗀지가오래다.따라서밑빠진독에물붓기식으로적잖은돈잃지않아,알뜰살뜰한용돈관리도된다.항상따는못된축에게흥글방망이노는심보를부리지않아도되고…….3만원쯤따서낯에철판을깔고일어서는결기를한번도못부려본후회,그것도이제추억이렷다?

나아가서폭넓게보자.43년동안의교직생활기간에말이다.화투가인관관계를유지하는데한몫을했으니,그래은혜쯤으로여기자.만약에그화투마저못만졌다면,내교감,교장시절은모든게더욱꼬인채였으리라.아찔하다.

사위를포함한내자식들,더구나사나이는고스톱매너가좋았으면한다.절대얼굴이나처럼붉으락푸르락해서는안된다.인생을그렇게각박하게살아야하겠는가?5만원쯤날려도태연자약한표정,원컨대그이상이하도아니다.

참,일본화투에는광(光)이없다더라.그게우리와다르다.그사실을주체성으로라도삼아야지어쩌겠는가.2010~1876,무려134년이나우리곁에있어온화투,패가망신한자며죽은자가무릇기하이뇨?독립선언서를문득떠올려본다.거듭밝히지만하룻밤에110억을날리게한그마흔여덟장‘동양화’를펼쳐들고지금도눈부라리고싸우는사람이무릇기하이뇨?그래서말인데,내가보기엔화투야말로영원한안개다.

2010년3월18일덕천동경로당에서노인들과10원짜리고스톱을치고와서

블루스의환상(幻像)

이원우

교직생활이자그마치43년이다.돌이켜보면순간순간몸살을앓았다.

사적으로그맞잡이가그맞잡이다.동성(同姓)아주머니술이라도싸야사먹는다는속담이있다.내일찍부터줄곧나자신의이익부터챙기는그런성정(性情)으로지내왔는지,가끔가슴에손을얹는다.그러면서고개를갸웃거린다.

그런데하나확실한(?)게있다.

마지막1년여동안,관리직(교감,교장)으로서의지도력부족…….두루뭉술하게표현해서그렇지,그지도력이라는덕목이워낙다양하다.경륜이나식견등은둘째치고라도,세속적인인기만좀더있었어도말년을편안하게보낼수있었으리라.

관련있는우스꽝스러운고백.

나는중요한일과나행사가끝나고,가끔우르르몰려가는회식자리가항상달갑지않았다.푸짐하게먹는것은좋은데,곧장이어지는뒤풀이에영마음이내키지않는것이었다.노래방까지가서춤판이벌어지는게질색일때도있었다.몇번블루스때문에봉변(?)을당하고난뒤,그정서가고착되고말았다.여담하나.언젠가여자교감이손을내밀었는데,내가팔짱을끼고다가갔더니기절초풍을하더라.그래갖고서야아랫도리거리는1미터이상이니….

세월이흘러내일모레일흔이다.이나이에블루스타령이라면,남들이의아스러워하리라.그러나이번엔온도차가나는블루스라설마하니손가락질이야하겠는가?

오래전,그러니까70년도에나는Blue라는셰퍼드암컷한마리를길렀다.‘푸른’이라는뜻을가진형용사가고유명사가되다니싶어,처음엔어색해했다.그러나몇달이지나니적응이되더라.

그blue가한발짝만나가면정말다른뜻이된다는걸근래에알게된다.한창연습중인올드팝송세곡,Ican’tstoplovingyou와Allfortheloveofagirl,Anythingthat’spartofyou에서나는아주특별한단어하나를발견했는데,그게바로blue다.우연의일치라고설명하기에는뭔가아쉬운…….워낙영어가짧아영한사전을뒤져보고나서야,그게또다른뜻‘우울한’이포함되어있다는걸알았다.

그blue에s를붙이면?바로‘흑인음악’이되는것이다.한데같은장르라도,영가(靈歌)는종교적이며희망적인데반하여,블루스는세속적이며비관적이란다.‘흑인들이부른우울한노래’라해도괜찮으리라.

나는블루스몇곡을흥얼거려보았다.‘남포동블루스’,‘남천블루스’,‘대전블루스’,‘황혼의블루스’,‘선창의블루스’등등.한결같이이별이요,눈물이요,무정이다.아닌게아니라이가사만들먹여도눈물이날것같은데,멜로디가가슴을무너져내리게만든다.

게다가특별한음계가도사리고있어더우울(증)에빠지게하는게블루스다.여기맞춰왜남녀가부둥켜안고흐느끼기라도해야직성이풀리는걸까?우리같은문외한(?)이신경쓸일이아니다만….지금은더더욱초망지민(草莽之民),블루스탓에수모당할일조차없는처지,강건너불구경하자꾸나.

그래도여기서어떻게접겠는가?동냥하려다가추수못본다고했지만,설마다음이야기가블루스의본질까지훼손시키지는않으리라여긴다.내게두가지사연이있다.

처음것도오히려눈물겹다.열대여섯해전이다.글자도깨우치지못한한할머니가노인학교에다녔다.물론다른프로그램을잘따라하지못하였다.다만경음악이라도틀어놓으면잽싸게일어나서사교춤을추는데,내가보기에도그솜씨가기가막힌다.처음건네던할머니의말이생각나서그저물끄러미바라보고서있을수밖에.남편이63년도엔가월남전에서척추에총상을입었단다.남자의기능을잃고종일누워있을수밖에.마침내할머니까지우울증이왔더라나?두사람이합의(?)하여,아내(할머니)가사교춤을배우기로했겠다.사전약속두개,반드시친구들과같이다니고,블루스는추지말것!글쎄그게제대로지켜졌는지모르되,할아버지는몇년전저승으로떠났다더라.

그제겪은또다른일.시각장애복지관에서나는가족들과함께‘남포동블루스’를부르고있었다.

네온이반짝이는남포동의밤/이밤도못잊어찾아온거리/그언젠가…그렇게2절이끝나기전에,쉰을갓넘긴아주머니와일흔살이넘은할머니가일어나서부둥켜안더니블루스를추겠단다.나는솔직히말해그둘을경이로운눈으로바라보았다.내가정확하게들었는지모르지만,그걸복지관에서배웠다고했고.런데정말그들의춤솜씨는능수능란(?)했다.아니아름다웠다.가세상에태어나서처음으로블루스다운블루스를보았다싶었다.

그다음에우리가고른건‘남천동블루스’다.나훈아가작사와작곡,노래까지도맡은거다.못잊어다시찾은거리남천동밤거리/밤바다는여전한데네온은밤을태우고어쩌고저쩌고하는….두시각장애인의블루스는계속되었다,한참이나.

마치고나서고물이다되어털거덕거리는봉고에그들과동승하였다.시내를한바퀴삥도는동안이런저런이야기를나누었다.앞을못보게되었을때,스스로목숨끊을생각은예외없이한단다.그러다어느누구가이랬다.그래도지금은꽃보다아름다운게사람이란건안다고.‘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에서얼른‘녹음방초’를‘인간만태(人間萬態)’로대체하고,눈시울을적셨다.엄마가생각나서다.

참,블루스엔체온이녹아든다고덧붙였으렷다?마지막덕포동에서내린할머니가말이다.설마하니그럴리야있겠나,그건농담이겠지.그러나그들은등과등이맞닿아서라도따뜻함을느껴야한다.

이쯤되면노래든춤이든블루스를내가짊어지고말이다.천둥인지지둥인지모르는주제에너무멀찌감치나간것같아부끄럽다.어쨌든나는블루스의환상(幻像)을본셈이다.

텔레비전을켜보면

박홍길

한글학회,외솔회이사,윤좌동인

한국문협회원,부산수필문인협회고문

<우리말어휘변천연구>,<달빛그혜안>등8권

텔레비전을켜보면기가차는말들이난무한다.말을부려먹고사는방송국,그것을감독하는당국,이들을지켜보면서도말이없는국민들,모두가반성해야한다.

제목을‘…켜보면’으로정한것은나름대로뜻이있어서다.‘켜보면’의‘켜’는으뜸움직씨요‘보면’은도움움직씨다.이풀이씨‘켜보면’에서의‘보면’은‘켜’를도와준다는말본스런기능을한다.눈으로본다는것이아니고,짐짓그리한다는뜻의해보기도움풀이씨이다.‘고기를잡아(서)(살펴)보니상처가나있더라.’(시각적)와‘고기를잡아보니재미있더라.’(시험적)와에쓰인‘보기’의차이이다.

그러니까바둑이나야구등몇가지를제외하고는거의보기싫은,뒤숭숭하고아니꼬운얘기들이판을치는방송이다보니,텔레비전을켜기싫으나,혹시색다른사건이나터졌나싶어어쩔수없이켜볼수밖에없다는뜻이다.

암을앓아보니까

앞에서이끄는말을해보기도움움직씨‘보다’에대해서풀이했지만,내친김에이말을잘못쓴방송둘을얘기해본다.

어느보험사광고에출연한유명한배우의말이다.

“내가6년전에암에걸려보니까….내가경험을해봐서그런지….”

죽음에이르는이무서운병을어찌‘시험삼아’걸려보고경험해본단말인가!비록6년뒤인지금병이나아이광고방송에출연하지만,보험에들어볼만하다는얘기다.도무지말이되지않는다.이말은어쩜‘보험금’이넉넉하니,시험삼아한번앓아보라는얘기가된다.큰일날일이다.

이보험사와는관계없는광고이지만어느장례전문회사의방송,스스로최고라고한창자랑하는중인데,신문에는그회사사장이많은사람들한테서긁어모은돈을몽땅싸서외국으로도망을갔고,부사장은잡혀들어갔다고했다.

또어느장례회사광고방송에나온,역시유명한배우는늘씬한장례차를툭튕기며시종싱글벙글웃고있다.슬픔에겨워있는유족들앞에서경건해야할장례전문회사사원들이계속웃는다는것은도리에어긋난다.

이런보험회사나장례사,누가믿고돈을맡기겠는가.선전,광고모두가자유라지만,그러나국가에서는이런언행에대해서조금은규제해야마땅하다.

불길을잡으려고물을뿌려보지만

텔레비전뉴스다.화재현장,시커먼연기가치솟아오르고시뻘건불이활활타오르는건물을향해위험을무릅쓰고소방관들이물대(호스)를잡고물을뿌리고있는장면이다.

“불길을잡으려고물을뿌려보지만때마침몰아치는강풍으로좀체꺼지지않아겨우5분만에진화했습니다.경찰추산피해액은약이백만원….”

의문,망발이여러군데다.

좀체꺼지지않는불길을무슨재주로5분만에껐는지.언제나느끼는일이지만,화재현장의피해액은생각보다적다.아무리땅은그냥있다지만,집한채,가재도구가거의불탔을텐데겨우이백만원이라니?

또한가지,‘때마침’강풍이몰아쳤다니망발이다.남의속을이토록뒤집어놓을수있는가.‘때마침’은‘때가늦지도이르지도않아알맞게’이다.불이났을때는강풍이불어야좋다는뜻인가.제일재미있다는‘남의집불난것구경하기’가아닐수없다.이경우는‘하필’또는‘설상가상’강풍이불었다고해야한다.‘불난집에부채질하기’격으로방송원이당사자의아픈가슴에설상가상으로칼질하는말씨는절대삼가야한다.

여기서또해보기도움움직씨‘보다’에대해서얘기해야겠다.

눈앞에생명이위태하고집이불타가는데,그리고소방관은온갖위험을무릅쓰고사력을다해,정말물불가리지않고악전고투하고있는데,어찌해서시험삼아‘물을뿌려보지만’인가.소방관들의몸짓이그렇게무성의하게보인단말인가.목숨을내걸고희생적으로일하는전체소방관들을모욕하는이런말을듣고도소방관계관에선왜말이없는가?

장난삼아,시험삼아하는말을함부로해서는안된다.더욱이만인의말하기의귀감이돼야할방송국방송원의말씨는정확하고순화된것이어야한다.빈자리라면아무런거리낌없이번지는전파로되,그래도문명의보람이라고들하는데,누군가가약간의거리낌으로걸러,누구에게나눈도귀도즐겁게해주는방송이되면좋겠다.

한편의시를읽으면서

전희준

부산수필문인협회이사,필맥동인

수필과비평작가회의고문

한국도서관협회부산지구협의회고문

수필집<호박잎과카레>,<세번째삶은?>,<퇴직후10년>

‘백줄의초고를열줄이하로줄이지못하면서정시쓸생각은말아라.’,‘꽃’의시인(詩人)김춘수의충고이다.‘춤은인스턴트식품을먹이는행위가아니니까감상을위해서는어느정도축적된체험이있어야한다.’일흔나이전위무용가홍신자의말이다.

위두사람말의맥락에서라면한편의시(詩)를감상한다는것은열줄이하로압축해표현한시인(詩人)의정서를나대로의체험을바탕으로하여그것을다시백줄의초고상태로되새겨보는일이라해도무방할듯싶다.

이순간내가별을쳐다본다는것은그얼마나화려한사실인가.

7년전12월21일새벽,문경땅이화령에서눈쌓인백두대간길에올라14시간을걸어충북괴산연풍면의희양산자락성터에서내려서은티마을을지났다.산골마을고샅길에개들은짖어대는데머리위밤하늘에는별들이쏟아져내릴듯반짝이고있었다.찬기남아있던지난4월초순,낙남정맥나머지구간을타느라해시(亥時)에도착한지리산청학동밤하늘에도별무리는반짝이고개울물은소리내며흐르고있었다.

오래지않아내귀가흙이된다하더라도이순간내가제9번교향곡을듣는다는것은그얼마나찬란한사실인가.

베토벤이고뇌를뚫고환희를지향해완성한것이제9번교향곡이다.베토벤은고전파음악가로하이든,모차르트와더불어음악의형식을완벽하게만들어교향곡이라는거대한음악을완성시킨대가이다.하이든이시작하여기초공사를해놓고,거기에모차르트가발전시켜음악을더욱풍성하게만들고베토벤에이르러쏘나타형식을확립했다.이형식을포함하는쏘나타,협주곡,교향곡등을더이상완벽할수없다할정도로만들어놓은것이다.

음악사에서완벽한형식을완성시키고,교향곡에서절대적인존재인베토벤의악보를연구한한연구자는베토벤의악보중한마디를12번지운흔적이있었다고했다.이렇듯완벽함을추구하는음악가에게치명적인약점이나타나기시작했다.

귀가서서히들리지않게된것이다.그렇게청각을상실해도베토벤은작곡을포기하지않았다.피아노의다리를모두잘라내고몸체를마룻바닥에붙여놓고하나하나진동을느껴가며작곡을했다.심지어는깡통을뒤집어쓰고미세한음이라도들으려고애쓰는등보통사람들은상상도할수없는온갖방법들을활용했다.

이런상황에서베토벤은제9번교향곡작곡에착수했다.교향곡은오케스트라가연주하는쏘나타이다.청중들이연주회장에가보니오케스트라좌석뒤에합창단과독창자들이앉아있었다.교향곡에합창이들어가는것은처음이었다.귀가들리지않는작곡자가이상한음악을작곡했구나의아해하는청중들의귀에들린합창은난생후처음들어보는음악이었고감동이었다.연주와합창이끝나자청중이모두일어나박수치며베토벤을외쳤으나그는나타나지않았다.소리를듣지못하는베토벤은연주가끝난것도,청중이열광하는것도알지못한채무대위커튼뒤에서있기만했다.독창자가그에게로다가가손을잡고무대앞쪽으로나왔다.그제야그는그의작품이성공한것을알았다.

제9번교향곡의마지막부분,합창의가사는인간의승리와인류의형제애를노래한쉴러의시(詩)‘땅위의평화’이다.‘환희의송가’라고도한다.베토벤의제5번교향곡은‘운명’이다.자신의운명을예견한작품이었을까.그러나그는제9번교향곡으로자신의운명을이겨낸멋진성공스토리를남겼다.운명의신모이라(moira)는여신이다.‘환희의송가’는운명을극복한자가부르고,듣는노래이다.

그들이나를잊고내기억속에서그들이없어진다하더라도이순간내가친구들과웃고이야기한다는것은그얼마나즐거운사실인가.

50년전‘화니’라는영화를보았다.항구에서선구점을하는노인이병석에누웠다.병문안을온늙은친구들에게병석의노인이말한다.‘죽음이두렵지는않아,삶을단념하기가어려울뿐이지.자네들과함께했던점심도,악의없던장난도…….그런잔재미들때문에.’

일흔중턱의세월을살고있는내주위가그러하다.함께산에갈수있는친구가점점줄어들고있다.술도예전같지들않다.담배도거의들끊었다.남자가일떨어지면썩은고목인데마음통하는친구만나어울리는즐거움조차없으면무엇으로살아가나?친구,소중한노후의보배들이다.

두뇌가기능을멈추고내손이썩어가는때가오더라도이순간내가마음내키는대로글을쓰고있다는것은허무도어찌하지못할사실이다.

내젊었던40년전,고교에서가르친졸업생이내살고있는고장의지자체장으로출마해여당후보로낙점받았다는소식을들었다.축하차들를채비를하는데사흘전소지했던운전면허증지갑을찾느라30분을허비했다.전등아래에서신문은돋보기안경에또돋보기를덧대가며읽는다.일어섰다가다시읽으려면방금벗은돋보기안경을찾느라자주소란을떤다.대화를나누다말하고자하는사물의명칭이생각나지않는경우도잦다.초면인사를하고두서너번을더만나고도그얼굴을얼른기억해내지못하는데이름을기억하랴.자주결례를해민망할때가많다.모임날짜나약속은달력에꼭꼭기록해둔다.

시(詩)로출발한금아선생이주옥같은수필을쓰다가전보다나은글을쓸수없다며절필했었다.아흔연세무렵다시동화를쓰시다졸(卒)하셨다.‘이순간’은동화를쓰던시기,남은날들을헤아려보며‘역시개똥밭에굴러도이승이좋다.’고절실하게안겨오는실감(實感)에서쓰셨을것이다.

교외의주택에서새벽새소리에잠깨어,새소리들으며이글을쓰고있다.날씨갠밤하늘엔별들이반짝일것이다.공감되는시(詩)를음미하며fmradio의음악을듣는다.주위를에워싼오월의푸른잎새들은저렇게부드럽고푸르다.온전한오감(五感)으로세상을느끼며사는것은행복한일이다.

남의발을씻어주다

안태경

고등학교교장역임

<한국문학>추천완료

한국현대시인협회,부산시인협회,부산문인협회회원

시집<투명한눈>,<겨울에내리는비>

산문집<월급봉투를태우며>,<여백으로흐르는강물>등

나는제법오래걸어도발에서땀이잘안나는체질이어서목욕할때나샤워할때가아니면발을씻는일이드물다.하기야이틀이멀다하고샤워를하고있으니발만따로씻을필요가없기때문인지모르겠다.아무튼,자기발일지라도발만씻는일이거의없는내가남의발을씻어주다니.특이한경험이아닐수없다.

그런데자기발을남이씻어주는서비스를받아본사람은더러있을듯싶다.3,40년전까지만해도이발소마다면도해주는아가씨가있어,면도후에손톱을깎아주거나발을씻어주는서비스를하는데가있었고,동남아나중국등관광지에발마사지를해주는업소가있기때문이다.요즘에는우리나라에도그런업소가있는듯싶지만관심의대상이될수는없다.

나도7,8년전에중국장가계에갔을때단체로발마사지를받아본적이있다.손녀뻘되는아가씨에게발을내맡기고있으려니피로가풀리기는커녕미안한생각이들어몸이움츠러드는느낌이었다.돈몇푼때문에이방인남정네의발을주무르고있는어린처녀가어찌안쓰럽지않았겠는가.

그렇더라도이용해주는것이그네들을경제적으로돕는다는사실을몰라서가아니라,나의어쭙잖은휴머니티때문에마음이불편해졌던모양이다.그러나신혼시절에아내가내발톱을깎아주고발을씻어주던그감미로운추억은사랑의흔적으로내마음깊은곳에남아있다.

늘그막을살고있는요즘에는몸의유연성이턱없이떨어진때문인지몸을구부려발톱을깎는일이여간수고롭지않다.그렇다고같이늙어가는처지인아내가깎아주기를기대할수는없다.그런데발톱깎기보다훨씬수월한발씻기를남이해주기를바랄수있겠는가.바란다고해줄사람이어디있겠는가.

그러니남이내발을씻어주는일도,내가남의발을씻는일도요즘의일상에서일어날수없는것이너무나당연하다.그런데이별난일을경험하게되었다.어느누구와서로씻어주기로합의해서해본것이아니라가톨릭교회의연례행사인‘세족례(洗足禮)’를통해서다.

최후의만찬때에예수님께서제자들의발을씻어주셨다.‘주님이며스승인내가너희의발을씻었으면,너희도서로발을씻어주어야한다.내가너희에게한것처럼너희도하라고,내가본을보여준것이다.’(요한복음13장14~15절).발을씻어준다는것은자기를낮추고상대를공경하는행위라고볼수있다.예수님께서는행동으로본을보이시며애덕과겸손을가르치신것이다.

세족례는이가르침을마음속에깊이새기고실천하기위해서연례행사로정해진것으로알고있는데,일종의의식이다보니자칫씻는흉내만내는경우도있겠다.그렇더라도몸을구부려잘알지도못하는사람의발을씻어준다는것은남앞에확실하게자기를낮추고남을도우는상징적행위가아닐수없다.

이왕씻어줄바에야형식적으로물만두어번끼얹을것이아니라는생각이들어정성껏씻고수건으로닦는동안에나도모르게스스로를성찰하게되었다.

내딴은겸손하게살려고노력했지만,남앞에진정으로자신을낮춘일이많지않은듯싶어후회되고,평소에하고싶으면서도해보지못한일이한두가지가아니지만,그중에서기부나봉사활동을제대로못한것이늘마음에걸린다.그러면서도이나이가되도록비교적건강하고편안한삶을누리고있음이분에넘치는은총인듯싶어송구스럽다.

어느전시회에다녀와서

안태경

어느동호회에서주최한그림전시회에다녀왔다.친구의부인이그모임의회원으로작품을출품했기때문이다.내가그림에취미가있다거나작품을평할수있는안목이있어서가아니라,작품전시회자체를축하하기위함이었다.

예술이라는창조활동은어떤수단을통한표현행위이고,그표현은발표했을때완성되는게아닐까싶다.그림의경우전시회를열어발표하게되는데,좋은평가를받는일도중요하지만많은사람이와서봐주어야출품한화가가보람을느낄성싶다.

그렇다고내가단순히관람자의숫자를보태기위해서간것은아니다.친구의부인이라는인간관계때문에라도그작품세계를이해하기위해노력해야할것같고,그작품들을세상에내놓기위해기울인열정과감내한고통을위로해야될것같았기때문이다.어쩌면일종의의무감비슷한마음으로갔는지모를일이다.

그랬는데전시된작품들을둘러본나는감탄을금할수없었다.나같은문외한이작품수준을가늠할수있을까마는,대부분의작품이그냥취미로하는아머추어솜씨가아닌것은직감으로느낄수있었다.모든작품마다고운여심이은은히풍겼기때문이다.

특히친구부인의작품을대하자눈을크게뜨고바라볼수밖에없었다.예상했던것보다수준이너무높았기때문이다.몇년전까지는주로모란만그리고있었던것으로알고있는데,이번에출품한작품은매화,풍경등소재도다양하였다.

3년마다열린전시회가네번째라니,12년동안각고의노력을한셈이다.하루3시간씩연습했다면,말콤글래드웰이말한‘1만시간의법칙’을초과한것이다.그러니보통사람들의범주를뛰어넘은‘아웃라이어’는못되었더라도자기나름의높은경지에도달하기에는충분한연습량이라고볼수있겠다.하지만예술의창작이라는것이어찌노력과시간만으로가능하겠는가.타고난재능이없으면아무리오래애써도일정수준이상으로올라갈수없다는사실은여느사람도상식적으로알고있을듯싶다.그래서그한계를넘어선부인의작품에서쉽게눈길을거둘수없었던것이다.

또한가지놀란것은화가의나이다.숙녀의나이를거론하는것은대단한결례가되는줄알지만,노년사회학자들의연구결과를인용하려니어쩔수없다.

그들의‘창조적생산성’연구에따르면,예술분야에서는창조적인사람들의위대한업적이대체로40~49세의연령층에서이루어졌다고한다.말하자면그연령대이후에는쇠퇴한다는뜻이겠다.이연구결과를어느정도믿어야할지알수없지만,늙어갈수록창조적능력이감퇴된다는사실은예술적작업을하고있는노인들이공통적으로느끼고있을듯싶다.

나역시이범주에서벗어날수없다.우연히,30여년전에발표한글을읽어보니요즘쓰고있는글과현격한차가있다는것을느꼈다.그때의글에는향기까지는몰라도윤기가있어부드럽고매끄럽게읽혔다.돌이켜보니발표할때마다평도그런대로괜찮았던것같다.

요즘의나는늘그막의끝자락을살고있기는하지만감성은아직유연하고꿈도있다고자부하고있는데,글을써놓고보면너무메마르다.벌거벗은겨울숲같이앙상하고삭막하다.그런데도이것이내모습자체라면어쩔수없지않느냐고자신에게타이르면서,붓을꺾지못하고아직도꾸역꾸역글을쓰고있다.

이런내눈에비친부인의그림은말그대로놀라움그자체였다.칠십대중반의나이에도쇠퇴하기는커녕보다높은경지로발전해가고있기때문이다.그그림앞에한참서있노라니,나이에덜미를잡히지않는부인의치열한예술적탐구가한층돋보이고,글이제대로써지지않는까닭을나이탓으로돌리고있는자신이한심하다는생각이들었다.

빚더미인생

이기태

한국문협,부산문협,부산수필가협회회원

검사정년퇴임,변호사

수필집<떠나는사람남는사람>,<네거리에버려진공>

‘차마을’이라는친목회가있다.30년이넘은오래된모임이지만대학총장,변호사,의사,종교인,언론사사장,자영사업가등부산에서는제법알려진다양한이로구성되어있다.

금년부터월례회때마다나이순으로짧은스피치를하기로하였는데,이번엔서울에서오신강박사님의차례였다.

대학교수로,정당인으로,고위관리로다양한경력을지닌강박사님은특히하루에책한권씩을독파하는놀라운독서력과해박한지식,한시도남을웃기지않고는못배기게하는해학으로존경을받아왔다.

그분의그날밤의스피치를요약하면대충이런내용이었다.

‘81세나살다보니내인생이과연무엇이었을까살펴보지않을수없다.내인생은한마디로부채만진인생이었다.수많은사람으로부터은혜의빚을졌을뿐옳게갚은것이없다.

그래서연초에결심하기를지금까지진은혜의빚을조금이나마갚아가는것에남은삶의목표를두기로했다.

우선작건크건은혜를베풀어준약500명의이름을추려연하장이나마손수적어보내고무거운은혜를입은약200명의인사들은직접찾아보고감사의말을전하기도했다.물질적으로는갚을수없는빚들이지만그렇게라도하지않고서는편히눈을감을수없을것같기때문이다.’

이스피치를듣는순간나는상당한충격을받았다.나도이나이가되기까지많은은혜의빚을지고살아왔지만500명이고,200명이고하는방대한인사들과무슨형태로든인연을맺은기억이없기때문이다.

평생법조계한길을외골수로살아왔고사교적이지못한성품탓인지나는연하장100명도보낼지인이없는데강박사님은부럽기짝이없는풍요로운인생을사신분이라하지않을수없다.

그런데강박사님의스피치에서깊은감명을받는한편나는그말에전폭적인지지를보낼수없다는생각이들었다.

사람의삶은누군가의은혜를입지않고는절대로생명을유지할수없는존재다.부모가계시지않았던들어찌내가존재할수있었겠으며부모의양육과보살핌이없었던들어찌이세상에서살아남을수있었을것인가.

특히나의경우20대초반,대학시절에중증폐결핵으로생사의기로를헤매었을때,그때부모님의각별한보살핌,특히어머님의희생적인간호가없었던들어떻게불치병이라탕치던그병에서살아남을수있었을까.

너무나지중한부처님의가피도입었었다.국립마산결핵병원에입원해있던시절,나는몽중에거룩한이로부터진록색선약두잔을얻어마신후나의폐공동은급속히흡수되었고주치의는“이건기적이야.”하고거듭말했다.

각종학교에서의스승의사랑도유별히받았다.열녀로나라의표창을받으셨던외조모님께서나의입원생활3개월동안손수조석의음식을마련하셔서내간병을해주셨다.도저히고등고시시험을치를수없는건강상태에서누워서한공부끝에고등고시사법과시험에합격한것이어찌신의은혜가아니겠는가.친구의은혜나지인의은혜를일일이어찌매거할수있겠는가.

그러나나는강박사님같이나에게은혜를베푼분들을일일이찾아뵙고감사의뜻을표할생각이없다.

내게은혜를베푼분들은대개가타계하셔서찾아뵈올수없기때문이다.그러므로때때로그분들을상기해서마음으로감사할따름이다.

그런데사람은입은은혜를반드시갚아야만하는것일까.내가남에게은혜를입은만큼,아니오히려남에게더많은은혜를베푼다면그인생은결코빚진인생이아니지않을까.

은혜를부채로생각한다면시혜는적극재산인셈이다.은혜입음과베품을상계한결과시혜의양이많다면그인생은결코빚진인생이아닐것이다.

많이베풀자.힘되는데까지남김없이베풀자.어차피빈손으로왔던인생인것을,모두털고간들아까울게없지않겠는가.

그래서나는강박사님과는달리은혜를입은분들을새삼스레찾아서감사의뜻을표할마음이없다.

부를때와주지

박희선

<시와의식>추천완료

부산문인협회부회장,금정구문인협회회장지냄

부산수필문인협회,부산여성수필문인협회회원

수필집<꽃이말했다>외3권

점핑논술속독학원원장

자정무렵에병문안을다녀왔다.정원장의연락을받고달려갔지만위급한상황이아니라여유를부리며쉬다왔다.배한개를깎아다먹을때까지어디가아픈지말을하지않고웃기만한다.무슨일이냐고다그치는내게“그냥,뛰어와줄것같아서….”할뿐이었다.밤중에무슨면회를오느냐고간호사가물었다.학원선생들은이시간이편하다는말에,그리좋은일자리는아니라며전등을끄고나갔다.직업에따라다른알맞은때와시간이있지않던가.

가끔그사람의의향과는달리보고싶어전화를걸때가있다.내뜻이잘전달되어손잡아주면마음에이는천둥이쉽게가라앉는다.그런경험이더러있어서내힘이필요하다고할때는나서서도우려한다.근래에와서더굳혀진생각이다.적절한시기에내리던비는황폐한땅을살렸다.배고플때주는밥한그릇이인생의진로를달리할수도있다.

간식을잘챙겨주던찬희어머니가다급하게나를불렀다.강의를끝내려면삼십분은족히더있어야되는데급하게와달라고요청을했다.그래도나는맡겨진수업을성실하게끝내어야된다는이유로꾸물거렸다.그러고는잊어버렸다.긴시간동안이어진학부형상담을마치고집으로가는길이었다.별일없으니오지않아도괜찮다는연락을받았다.나는그리깊이생각하지않았고급히간다고무슨위로가될까싶어넘기고말았다.

가벼운마음으로출근을했다.근무처가아파트입구근처에있어서인연닿은사람들이오가며들락거리는곳이다.찬희어머니가안방에불을질렀단다.내가모르는또다른고민이많았던모양이다.벌써몇번째라고혀를찬다.처음엔남편에대한원망으로가볍게흉내를내었으나회수를거듭할수록일이크게벌어졌다.

병문안을간것은열흘이지난뒤였다.얼굴을붕대로감고있어서말한마디못하고손만잡았다.커피를마시던조용한모습이침대위에겹쳤다.얼마나힘들었을까.모두모른척지내다가이제와서잘보살펴주지못한후회를했다.찬희아버지가내옆으로다가왔다.‘부를때좀와주지그랬어요.’

그말이비수처럼마음에꽂혀편하지않았다.퉁명스럽게뱉은말때문이아니라스스로얼굴을들지못했다.아무리생각해도적당한위로의말을찾을수없었다.‘달려가손잡아주었다면별일이없었을까.’몇번이나이말만되뇌이며병원문을나섰다.

도시의인심은우울증환자에겐암흑덩어리다.시멘트로포장한열일곱평아파트는깊은근심을달래주지못했다.이웃은약자의절규에귀를막았다.혼자끙끙앓다가울다가소리지르다가끝내는애꿎은화재를불러생명이위태롭다.

우울증에깊이빠진여인은어둠을먹고맑은정신마저야금야금갉아먹는병에휘말려헤어날수없었다.쏟아내는불만을들어주는일도한두번이아니어서난감할때가있었다.그런까닭에가볍게넘겼는지모른다.

구치소에수감되어있는김선생께면회를다녀왔다.사정이야어찌되었든간절한부탁을거절하지못했다.면회신청을해놓고전광판에접수번호가나오길기다리는데검정색양복을입은청년한무리가들어왔다.먼저와있는여자에게정중히인사를했다.겉으로보기엔평범한여인인데등장인물로인해특별하게보인다.화장기조차없는얼굴에수심이진을치고있다.무엇을전달하는지내용은들리지않고‘예,형수님.’이라는말만크게들렸다.그들은회오리바람처럼주변을몇바퀴돌았다.마치만장하신여러분은우리형수님을불편하게하지말아달라는시위같은거라고나할까.표정이밝아진여인은청년들의보호를받으며전광판을지켰다.조금전모양새와는달리어깨에힘이잔뜩들어있었다.

몇몇사람들이편지를쓰고있다.나도꽂혀있는편지지를뽑아들었다.막상쓰려고하니할말이없어건강잘챙기라는말만늘어놓았다.몇번이나편지지를구겨대는아낙의눈엔눈물이줄줄흘러내렸다.누구아빠로시작하는이도있고사랑하는아들에게로이어지는애절한편지를옆눈으로보면서내편지는접어두었다.

사월인데도접견실엔을씨년스러운바람이불었다.바깥에는등꽃이만발해있고연산홍이눈을부시게했으나자연과는먼거리에있었다.습한시멘트기운이얼굴을덮치더니매캐한기운이연거푸재채기를불러왔다.반지하에서이뤄진면회는칠분만에끝났다.그의몸에서나온증오의냄새가내게고스란히전달되었다.그래도나는청을들어주기로결심했다.열사람에게물어아홉사람이나쁜사람이라고말려도,한번의거절로더불행하게만들면어쩌나하는생각이앞섰다.그이후열번정도는더갔지싶다.우여곡절끝에영어의몸에서풀려났다.적절한때에나를잘활용해준그가더없이고마웠다.

자연은세상일이아무리복잡해도때를맞추어일을한다.도무지올것같지않던봄이흙담사이로고개를내밀었다.잡초가돋아나지못하도록마사를깔아도,곁가지다잘려뿌리만남아있는가로수에도기꺼이움이텄다.아스팔트길패인곳에민들레가노란꽃을물고있다.수천수만번의짓밟힘을거역하지않고오로지이날을위해참아오지않았을까.새삼꽃이피고지는것이예사롭지않다.하물며사람이오고가는데야무슨말이필요하랴.

늦은밤,찬희어머니가스스로삶을포기했다는문자를여러통받았다.자리에누웠으나좀처럼잠이오지않는다.뜬눈으로맞은새벽녘에축축한바람이심하게불었다.조금오른아들의성적표한자리숫자에행복해하던순간의모습이바람을타고무겁게떠나갔다.

“버거운삶이여안녕…….”

화상의고통에서버둥거리던여인이퍼렇게멍든우울증에종지부를찍는순간이다.바람은여전히잦아들지않고햇귀도아직보이지않는다.

무슨일이든시기를놓치면돌이킬수없는후회를낳는다.남을돕는일이나도움을받는것도알맞은때가있었다.그냥곁에있어서위로가되고어쭙잖은하소연을들어주어죽음의수렁에서벗어나게할수도있지싶다.애타게기다릴때가주지못했던나는떠난뒤에야심한가슴앓이를한다.사람이이렇게도쉽게생명줄을놓을줄이야.

곶감과우산집(愚山集)

이병수

<수필문학>추천완료

부산수필문학협회,영호남수필문학회회장역임

한국수필문학가협회부회장,재부산청문우회회장

수필집<이모작삶이아름답다>,<생존신고>등7권.

산청의곶감이최근인기가높다.백화점에서도날개가돋힌듯팔려나가고있다하니기분이좋다.산청은내고향이어서그러하다.10여년전만해도감고장으로이름난덕산고을에서가지찢어지게주렁주렁열려풍작을이루었는데,농촌인력부족으로다따지못해,그냥방치해버린다는언론보도가있었다.

그런데그후지방자치제가강화되면서,산청군이예부터이름난감을산청토산물로지정해홍보함으로써,곶감고을의명성을되찾은것이다.

산청고을의감은옛날부터맛이좋을뿐아니라,저장성이높은곶감으로만들어져애용되었었다.한때는임금님에게진상품으로까지상납되었던것이니산청군으로서는당연히향토의전통식품으로되살릴만한것이었다.

곶감은생감을깎아서말린것이기에건시(乾柿)라고도불린다.깎은감을잘말려서고급식품인곶감으로격상시키기까지에는한달이상에걸쳐적지않은공이들어가야한다.

어릴적우리집뜰안엔다섯그루의감나무가있었다.고종시,단성감,장덩이,대감등골고루있었다.해마다감딸철이되면수백접(한접은100개)을따야하였으므로,온식구가매달려도1주일넘게걸렸었다.나도열살무렵엔나무에올라가감을많이따보았다.장대끝에나뭇가지로가위를만들어붙여,감열린가지에다대고비틀어꺾어서망태기에담는일이었다.처음엔호기심으로재미가있었지만,이내지치기도하였는데,일손이모자라니한몫을안할수도없다는생각이들었다.이렇게딴감은이웃에나누어주기도하고,곶감을깎거나홍시로만들기위해장독단지에넣어창고에보관했다먹기도하였다.아버지께서는매년100접넘는감을깎아서곶감으로만들어선물용으로쓰고,시장에갖다팔기도하셨다.

곶감을만드는일은평민을양반으로격상시키는일과도같아서여간힘드는일이아니었다.햇볕에말리기위해바깥에내어놓았다가소나기가내릴양이면급히집안으로걷어들여야하는일이비일비재했으니,신경이쓰이는일이었다.

곶감을말리는과정에서신기한현상을볼수있다.20일쯤말리고나면,곶감몸에서눈처럼하얀분꽃이피는것이다.그것은시설(柿雪)이라고불리는데바로설탕이었다.곶감이자신의온몸에서당분을뽑아올려몸에하얀분장을하는것이니,곶감의진수(眞髓)가바로여기에있다.주홍색감이허물을벗고서백색미인으로화신(化身)을하는것이다.

그변장술이감탄할만하다.우리가식생활에애용하는설탕은남방지역의사탕수수나무에서액체를뽑아화학적으로가공을한것아닌가?그런데곶감이하얀옷으로분장하면서발하는시설(柿雪)은화공적과정을거치지않고자연발효과정을거쳐설탕으로변한것이다.마치배추로김치를담글적에배추가완전히곰삭아서배추가전혀딴맛으로변용(變容)한경우와같다고하겠다.

산청곶감은옛날에임금에게의진상품으로까지올렸던것인데,금년1월에는영국여왕에게도선물로보내어졌다.그결과지난번에여왕으로부터감사하다는편지가왔다고하니(2월24일국제신문보도)이제산청곶감이세계명품으로떠오른셈이다.

곶감의인기가상승하면서웰빙식품으로서의효능까지인정받고있다.어느친구가보내준이메일을여니‘곶감의효능9가지’가떴다.풍부한영양가치가있으며,설사병치료에효과가있고,고혈압예방에좋으며,달여서먹으면숙취해소에효능이있다.표면에형성된하얀가루가만성기관지염에좋으며,몸을따뜻하게만들어주므로비위를강화시켜목소리를곱게하는데도효과가있고,남성의정액생성을도와정력강화에도효과가있다고한다.곶감표면의하얀가루는곶감의정수(精髓)이니,그가루를털어버리고먹는것은‘복을차버리는것과같다’는말까지있다.

나는지금곶감을보면서아버지께서생시에곶감을정성스레깎아말리시던모습을떠올린다.까닭이있다.아버지께서는유학자였던내할아버지의문집-우산집(愚山集)발간계획을갖고있었는데,815해방후소요경비조달이걱정이었다.생각끝에집나무에열린감을수확하여곶감과홍시를생산해이것으로문집출판경비를조달하기로마음먹었었다.그리하여3년간계속사업으로마련된경비로출간을추진한결과문집발간을완성하였던것이다.

지금생각해보면,근근이생계를꾸려나가던집안형편에서는문집발간은감당하기어려운큰사업이었다.그럼에도아버지께서는당신선고(先考)의문집발간이자기에게부과된가장절실한과업이라생각하고곶감생산의수입으로이를성취시켰던것이다.

아버지는일제강점기하의소년시절한문서당에서공부를하고있었다.그무렵일제가당시보통학교(소학교)를개설해학생을강제입학시키려했다.이때할아버지께서는일제에항거하여‘나의자식은왜놈학교에보낼수없다.’고입학을거부했다.이때문에내아버지는신교육을받을기회를놓쳤다.

당시서당에서가장수재란이름을떨쳤던아버지께서는당신아버지의완고한입학거부방침에따라결국신교육을접하지못함으로써,그후평생진로가막혀취업도못하고농사꾼도못되어어려운생활을겪어야했던나의아버지.다른친구들이보통학교로입학해졸업후에군청,도청서기등으로취직하여출세한것을보았을적에어찌원망스러운생각이없었으랴.그러나당신아버지에대한단한번의불평도하지않으셨던효심어린내아버지의모습이눈앞에선하여고개가숙여진다.

문학의힘

이병수

법정스님의타계로한동안길상사가세상에떴다.그런데알고보면길상사는전엔요정이었다.80년대김영환이란기생이계곡물흐르고새소리들리는서울성북동어느경치좋은곳에처음으로‘청암정’이라는정식집을열었는데,이것이훗날번창하여대연각이란큰요정으로변하였던것이다.

거기엔사연이있다.김영환은1932년16세의꽃다운나이에진향기생으로출발하여몸을담고있었는데,어느날함흥영생고보영어교사인백석과의만남으로하룻밤의사랑을맺고평생연분을맺기로언약을하였다.그러나백석집안의완강한반대로뜻을이루지못하고헤어져있으면서김영환은죽는날까지월북시인백석을기리고살았었다.

백석은하룻밤사랑으로서로의마음을간직한채김영환에게자야(子夜)라는아호를한지에써서편지한장을남기고떠났다.자야라는아호는옛날중국변방의전쟁터로떠난남편을기다리는이야기인자햐오가(子夜五歌)라는이백의시에서따온것이었다.자야는그후번창한대원각을운영하는동안돈도많이벌었거니와수많은정치인과단골들의구애를받았었다.그러나이를모두뿌리치고불교를신봉하고보살이되어일관되게살았다.

얼마후에김영환보살은법정스님의‘무소유’를읽고감동되어법정스님께대원각의모든것을시주하려하였으나,철저한무소유의실천가법정스님의뜻과는거리가멀었다.결국엔그자리에‘길상사’란절을세우기로합의가됨으로써절을짓게된것이었다.

그리하여상당한시간이소요되어요정을허물고절을준공시켰다.길상사절을열때에법정스님은자야에게길상화(吉祥華)라는법명과염주하나를주었다.

청빈과나눔의생활을철저히실천한법정스님은‘무소유’로인하여크게세상에알려졌는데,법정스님의다비식을치르고서는길상사가또한세상에떠올랐다.이렇게길상사는제3공화국시절한창번창하던요정-대원각여주인김영환보살이당시시가1,000여억원에달하는막대한재산을아무조건없이법정스님에게시주키로합의함으로써요정에서사찰로변신하게된것이니이를누가상상이라도하였으랴?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말이연상된다.

술과음악과여자가어우러져웅성거렸던화려한고급요정이갑자기마음의수도장인절(寺)로변신하게되었으니이얼마나엄청난둔갑인가?그뒤엔법정스님이있었으니법정스님은글로써남의마음을흔들어놓는위력을지녔던전능하신분이었던가?‘펜은칼보다무섭다’는말을실감한다.

생각을바꾸면세상이달라진다는말이있다.기생이었던김영환은백석과의하룻밤사랑으로어찌평생을약속할정도로정이두텁게들었더란말인가?이성과의사랑의정이란그렇게도깊고진하였더란말인가?

영어교사였던백석은교사일뿐아니라,시인이기도하였다.‘하룻밤을자도만리장성을쌓는다’는말이있다.백석은시인이었기에김영환의마음을온통사로잡아꽉붙들어매어놓고어느누구도침범못할성을쌓아놓았던것이다.영환은스스로백석의포로가되어진심으로따르게되었으니백석을떠나보낸후에도기약없는세월을그를사모하면서지냈던것이다.이는시인의힘이요,문학의힘이아니고무엇이겠는가?

그후영환은불교에귀의한삶으로전환하게되었으며,법정스님을만나게됨으로써새로운삶의목적을안내받게되었다.법정스님의‘무소유’에탐닉되어‘버리고가기’를깨닫고‘마음비우기’의경지에도달함으로써1,000억이넘는재산을선뜻쾌척하기로결심을굳혔던것이다.여기엔무슨힘이작용한것이라해야할까?

법정스님은스님이면서수필을쓰는문학가였다.그러므로법정스님은종교적힘을통하여영환의마음을비우도록감화를주었으며,또문학의힘을통하여인생관까지도확고하게바꾸어놓도록감동을시킨것이다.

문학의힘은위대하다.사랑의힘,종교의힘또한위대하다.

친구

전정식

한글학회회원,부산지회명예평의원

전부산교육연구원장

교단수필교목,영호남수필동인

<어디서와서어디로가는거야>(시집),<세월따라바람따라기쁨도슬픔도>,<소리없는소리>등

일본말에‘산바가라스(三羽烏)’라는말이있다.

이말은세마리까마귀라는뜻이다.까마귀는한국에서는흉조로보지만일본에서는길조다.

이일본말산바가라스는어느집단에서특히뛰어난사람을말한다.우리사전에는‘삼총사’로번역이되어있다.세사람의친한벗을뜻하기도한다.

특출한두벗과사귐으로써나는우리의사귐을산바가라스라고하고있다.그런데,지난해11월과금년1월에이산바가라스의두친구를여의었다.작년에는나보다한살위인강봉완군이,금년일월에는여섯살위인허준구교장이타계하였다.

우리가살고있는이넓고넓은풍진세상에부모형제와아내와자식이있는가정은포근한보금자리다.그에버금가는소중한것이친구다.

나는어릴때는증조부모,조부모,세분의숙부님이한집에서사는대가족속에서자랐다.어릴때의이대가족의식사시간의광경을어쩌다가기억하지만,남자어른과아이들은큰방과마루에서,증조부모님은다른방에서,한두분의숙모님은부엌에서식사를하였다.

이런가정환경속에서나는장손으로서조부님을비롯한여러가족으로부터특별한대우를받아공부도다른가족들에비해많이할수있었다.이런성장과정이나의인격형성에큰영향을미치어서,언제나특별히대우를받는것이당연하다고생각하며살아왔기에친구사귐은서툰편이었다.

이런내게사회생활을하면서뜻이맞아서근육십년가까이사귀어온친구가있었다.위의두친구였다.

작년과금년은친구와친지여섯사람이타계하여내게고독감을안겨주었다.작년(2009년)4월에는고교동기생인고군과동갑인황교장이갔다.특히황교장은신설학교의교장으로나가면서나를교감으로오게하여서이때부터인연이짙어져서,황교장이교육위원회의과장으로가자나는장학사발령으로함께근무하게되었고그뒤에교육연구원장일때는나는연구관으로,내가중학교장으로잠시있다가연구원장으로발령을받아근무할때그는학무국장으로있었다.이런일련의인사에그가크게작용했을것으로생각되나그는일체이에대한말이없는그런위인이었다.

내가지금살고있는해운대신시가지대동아파트로오게된것도그의권유에의해서였다.대신동터줏대감으로자처하며아내가아파트로이사를하자고말해도마이동풍이었던나는,그의말에44년을살던대신동을떠날것을결정하였다.나는가끔그와는전세에큰인연이있은것이아닌가생각하고있다.

나는친구인강군과허교장하고제주도한라산여행을한것을잊지못한다.지금은관광제주로면모가일신하여여행이편리하지만,당시는시골중의시골이었다.부산에서제주까지,한국전쟁때에수송선이었던평택호를여객과화물을싣는선박으로개조하여일주일에한번씩왕복하고있었다.화요일인가에오후다섯시에부산을출발하여이튿날오전아홉시에제주시에도착하였다.열여섯시간이걸리었다.여관시설도형편이없었다.제주일주도로는비포장이었다.그도로에는버스는아예다니지않았다.우리는한라산을오르다가제주시에서등산객을위하여세워둔용진각에서이틀을잤는데,이숙소를차지하기위해산기슭의숙소에서한밤중에출발해야했다.제주출신의부산대교수의안내를받아한라산을오르는데한밤중이라그도길을잃고우리를세워두고길을찾을정도로숲이우거져있었다.방목으로키우고있는말이우리일행의소리에놀라서뛰쳐나오는바람에우리는화들짝놀랐는데말도우리를보고놀라서달아난다.용진각에서출발하여한라산에올라분화구로되어있는백록담을둘러보고서귀포로내려와서바다로흐르는정방폭포를보고천제연에서목욕을한다음에길가주막에서막걸리를마시고는제주시를향하여비포장도로를걷기시작하였다.마침지나가는트럭이있어손을드니태워주었다.트럭짐칸에우리셋은흔들리며가다가숲에방목해둔말이자동차소리에놀라서숲속에서뛰어나와서우리트럭앞을향하여달려가자우리는짐칸에서어린이처럼소리소리지르고말은말대로놀라서앞만보고달려간다.한참그러다가숲속으로뛰어들어가버리었다.

두친구를보내고나니,그때의그여행한기억이생생히되살아난다.

그무렵,우리는술잔을앞에놓고문학이며,철학,역사등을곧잘토론하였다.격론을벌이다가어떤때는맨발로다방으로뛰쳐가서토론을계속하기도하였다.젊은날의이와같은우리들의열정의장면들이스크린에비치는영상처럼나의뇌리에스쳐지나간다.

이제는이승에서는다시볼수없는두친구가그립다.

팔십도몇살이나넘은나이도잊고나는허준구교장의영전에서한참을엉엉울었다.

두친구가갔다는생각을하면세상이텅빈것같다.가끔멍하니허공을보고는속으로흐르고또흐르는눈물을어쩔수가없는요즘의나이다.지금도나의환상속에는둘은살아있다.두친구는갔다.

친구야그립구나.명복을빌고또빈다.

이유없는무덤

허정

<한국수필>추천완료

부산문인협회부회장,한국시고문

전한국수필작가회부회장,전해운대문협회장,전한나라당부산시당부회장

<국사정수>,<수험세계사>,<인간희극>,<삶의의미를되새기며>등6권

옛날부터전해오는이야기로‘처녀가아기를낳아도제할말은다있다.’라는말은삼척동자도하는말이다.이세상의모든행위는자기주장대로라면다그럴듯한이유가성립되는것이다.

어떤한개인을놓고도어떤사람은‘그사람곧고정의로우며훌륭한인격자다.’라고표현하는가하면또한편에서는‘그사람눈물도인정도없는모질고독한구렁이보다못한놈’이라혹평을하는경우도있다.

우리민족의영웅이며온민족이하나같이숭앙하는안중근의사를예로들더라도우리에게는그렇게훌륭한분이지만당시일본위정자나심지어우리민족중에도일본의주구노릇을하는친일적인물들은사회를어지럽히는독한테러리스트로폄하했던것이다.

북한주민들을헐벗고굶주리게하고언론,사상을통제하여인민을압박하며세습왕조를획책하고있는김일성부자도북한주민은물론남한의친북좌파세력은훌륭한지도자로경배하고있는현실이다.

한인격체의선악의기준이보는시각에따라확연히다를수있겠지만그행위가사회통합적측면에서보면공동이익에훼손되는가아니면도움이되는가에따라달라질것이다.

사람에대한평가는말할나위도없고사회의모든사상(事象)이절대선이나절대악이있기야하겠지만대부분의사상은사회적으로법률적판단에의해혹은사회통념상재제를가하기도하지만시대적가치관이나환경에따라서그기준도엄청난차이가있다.

우선요즘신문지상에많이회자된사회적논쟁거리인사형제폐지나간통죄폐지론에대한논의를보자.

몇달전천주교,불교,개신교,원불교등4개종단대표들이정부와국회에사형제폐지를촉구하는공동성명을발표했다.이에김부겸의원도사형제폐지특별법안을발의했다.유영철,강호순,조두순등의극악무도한행적이기억에선명한때라이움직임은더눈길을끌었다.

일반적으로사형존치론과폐지론의논지는둘다합리성이있어보인다.사형이범죄를예방하는기능이없거나또있더라도만약에무고한한사람이처형되는억울함이있을수도있다는것이폐지론자의주장이다.여기에존치론자의논리도만만치않다.사형집행1건당살인이7.8건쯤줄었다는것이숱한논문들의일관된주장이다.물론살인이줄어든것은사형이라는결과를피하고싶어서일것이다.거꾸로미국의경우사형제를폐지한주에서는살인이그만큼늘어났다.이연구의선구자인버플로대의아이작애틀리히교수는스스로열렬한사형제폐지론자이었지만논문에서는동일한결론을냈다.왜일까?그것은아직의문이다.

세계에서거의없어진간통죄의경우도존치론과폐지론자의이론이팽팽하다.이혼율이30%를넘는이시대에효율적인법리차원에서존치이유가없다는사상과미풍양속을지속시키고일부일처제의사회질서를유지하기위해서는존치해야한다는이론이다.이말을들으면이말이옳은것같고저말을들어보니저말도옳은것같은것이대중이고그대중속에내가존재한다.

대형할인점에서바나나껍질에미끄러져전치8주의상처를입고2,400만원의상해배상을청구한주모씨(38)사건에대해대전지법은할인점은70%의책임을지라고판결했다.주씨는바나나시식코너옆은지나다가넘어졌다.

만약지리산피아골에서등산하다바나나껍질에미끄러진경우에도국립공원관리공단이배상하라는판결이나올까.그렇지않다.많은손님이오가는공간에서는청결한바닥유지에따른편익이청소비용보다훨씬크다.그러므로청결한바닥유지를하기위한노력이필요하다.반면지리산등산로를매장바닥처럼관리한다면너무비효율적이다.그런인센티브는필요없다.이와같이인센티브는더바람직한결과가나오도록디자인돼야한다는것이다.

안전벨트,충격흡수엔진룸,안전유리등차량안전장치를이용하면교통사고시운전자의사망률이낮아진다.자신의부상확률이낮아지면속도가주는편익을선택할인센티브가생긴다.따라서안전장치를믿고과속하다가사고를더많이낼수도있는것이다.1975년샘펠처먼시카코대교수(경제학)는안전장치의무화의성과를실증분석했다.놀랍게도양방향효과의크기가그의같아사망운전자의증감은거의같다는것이었다.사망운전자수에는변화가없었지만길을걷다가치어죽는사람의수는늘어났다는섬뜩한결과를내놓았다.보행자의경우과속의피해를보면서도안전장치의혜택은못받았기때문이다.놀란미국정부는속도제한강화등보완책을강구했다.우리나라교통법규는안전벨트미착용의경우범칙금3만원을물게한다.

지구중심설을토대로만들어진신학세계에17세기에이르러태양중심설을낸갈릴레이갈릴레오는성서의권위를추락시킴으로써당시의권력자들앞에서지동설을고집했다가는생명을유지할수없었기에재판정에서‘태양이지구를돈다.’라는말을하고풀려났다.죽음앞에서자기의학문적성과와신조를꺾고지구중심설을인정하고사면되고나와서는‘흥,그래도지구는도는걸.’이라했던것처럼확실한근거를가진과학적진실도여론의대세앞에서는질수밖에없었다는사실이현실이다.

동래학춤

하창식

<수필문학>추천완료

부산가톨릭문인협회,수필문학부산작가회,부산문인협회회원

수필집<가슴따뜻한세상을꿈꾸며>외

장수(長壽)는인간의근원적욕구중으뜸이라할수있다.동서고금을막론하고.그러기에우리선조들은10가지불로장생을의미하는사물들,즉십장생(十長生)에큰의미를부여하였다.

해(日)달(月)산(山)내(川)대나무(竹)소나무(松)거북(龜)학(鶴)사슴(鹿)불로초(不老草)가십장생이다.혹자는,해돌(石)물(水)구름(雲)소나무대나무불로초거북산을들기도한다.아무튼이들십장생중동물들로는거북과사슴,그리고학이포함된다.거북의실제수명은100년이넘지만,사슴은20~30년,학은20~60년밖에되지않는다고한다.하지만우리네조상님들은거북이는1만년을살고학은천년을산다고생각하였던것같다.천년된학은흰빛이푸른빛으로바뀌어청학이되고,다시천년을살면검은빛으로바뀌어현학(玄鶴)이된다나.

어릴적할머니머리맡에서들은이야기가생각난다.오랜옛날거북의딸과학의아들이결혼을하게되었다.부모들은정말로좋은인연이라며무척기뻐했다.거북의딸은기뻐하면서도한편으로는슬프게울었다.부모거북이물었다.“왜우니?”딸이대답하였다.“결혼은기쁘지만9,000년동안과부로살아야한다고생각하니저절로눈물이납니다.”라고대답했다고한다.학과거북이장수동물의상징이라생겨난옛이야기일것이다.

다른작은새들의수명은기껏해야4,5년에불과하다.장수한다는새들인검독수리의수명이25년,재갈매기의수명이36년이다.이에비해,경우에따라60년까지도살수있는학이기에십장생에포함될자격이충분하다는생각이다.지금까지최장수한학의수명은86년으로알려져있다.오늘날에야인간수명이길게는100년으로연장이되었다고볼수있지만얼마전까지만해도인간의수명은대략60년으로생각되었다.때문에,인간과비슷한수명을갖는학이십장생중에서도우리인간과더욱가깝게느껴지게된것은아닐까.

학은근본적으로다른새들과맵시가다르다.홀로서있을때의그고고한자태를보라.V자대형으로무리지어하늘을나는모습또한우아하기그지없다.선비의기품을느끼게한다.

학이나타나거나하늘을나는꿈은매우길(吉)한꿈이다.해몽사전에따르면,학이하늘을나는꿈은출세할징조이다.학이뜰에서사람과노는꿈을꾸면귀한자식을얻게된다고한다.뿐만아니라,학을타고내려온노인이무엇인가를주는꿈을꾸게되면협력자에의해신분이영화로워지고부귀영화를누리게된다고한다.

그런만큼인간과자연을소통하는매개자이자,자유와행복의상징으로우리에게다가오는새가학이다.그래서우리네선조들은아득한저어디,우리모두에게있었을것같은인간의본향을그리워하면서선학동,청학동등과같은학마을을이루어왔는지도모르겠다.이청준의단편속에서,임권택감독의영화에서만날수있듯이.

해마다11월이되면우리말로두루미라고도불리는학의비상을볼수있다.‘뚜루루~뚜루루’운다고두루미라고불리었다고한다.두루멀리다닌다고두루미라는풀이도있다.학은국제조류보호회의(ICBP)에등록되어있다.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적색자료목록(RedDataBook)46호에등록된국제보호종이기도하다.적색자료목록이란IUCN이전세계의멸종위기에처해있는동식물들의목록과그들의실태및보호대책등을수록한책자들을말한다.우리나라에서도천연기념물제202호로지정,보호되고있다.희귀성이더할수록더욱품위가돋보이는새이다.

학은집단으로모여군집생활을한다.그무리속에서가족단위로생활한다.학은일생동안일부일처를철저히지키는다정한부부애의상징이기도하다.학의구애동작을보자.부리를하늘로향하고수컷과암컷이소리를내며걸어가다암수가마주보고절을하듯머리를숙이고이어점프하듯공중으로뛰어올랐다가사뿐히내려앉는동작을반복한다.이를흔히‘학춤’이라고한다.

지난해11월어느해거름때,국립부산국악원개원기념특별연주회프로그램의하나로‘동래학춤’을감상하였다.부산광역시무형문화재제3호,그유명하다는‘동래학춤’을지천명(知天命)의나이에들어서야처음보았다.동래지역에서많이볼수있었던황새(관학(鸛鶴))의군무(群舞)를보고창안했다는춤이다.우리나라자수나칠보장롱에그려진소나무위의학은황새가잘못그려진것이라는설이있을정도로많았던황새다.황새도지금은IUCN의적색자료목록제26호(우리나라천연기념물제199호)에등재될정도의희귀종이되었다니가슴아리다.

흰바지저고리에명주천으로만든흰도포와통영갓을쓰고추는학춤에반했다.남자들의춤이저렇게아름다울수가있을까.감탄이저절로나왔다.춤사위하나하나가그야말로예술이었다.활갯짓,뜀사위,돌림사위,외발서기,좌우활개사위,소매걷음사위,모둠뛰기사위등등.넓은도포자락의펄럭임은학의나랫짓그자체였다.앉았다일어서며아주천천히몸을돌리는그우아한몸짓과손놀림에서고고한선비의향기를느낄수있었다.여류소리꾼의구음소리도훌륭하였다.70대나이라고는믿을수없을만큼우렁찼다.굿거리장단도학춤의품위를더하였다.

춤꾼들의학춤을보면서학과함께춤을추고,학과함께하늘을나는기분에젖을수있었다.깊어가는가을밤을아름답게수놓은공연이었다.춤꾼들에게감사의박수를아낌없이보내었다.150년넘는역사를가졌다는‘동래학춤’이다.전통을훌륭하게보존하며전승을위해노력해온,관계자분들께진심으로고마운마음이우러나왔다.

깊은감동에서깨어나지못한채공연장을나섰다.그날따라더욱맑았던가을밤하늘이글을쓰는지금이순간에도눈에선하다.눈부시게흰깃털로둘러싸인학들이가을밤어느들녘교교한달빛아래서아름답게군무를즐기고있을것같다는생각이문득들었었다.상큼한가을밤바람이솨하고내얼굴을스치자,미당(未堂)선생님의시(詩)한구절이절로떠올랐다.

천년맺힌시름을/출렁이는물살도없이/고운강물이흐르듯/학이날은다.//

천년을보던눈이/천년을파닥거리던날개가/또한번천애(天涯)에맞부딪노나.//…..

(2009.7.7.)

나쁜버릇

하창식

누구에게나한가지버릇쯤은있을법하다.사전에서정의하듯여러번되풀이함으로써저절로익고굳어져고치기어렵게된성질이버릇이다.술버릇,입버릇,말버릇,잠버릇,손버릇.한가지도모자라서너가지버릇을가진사람들도적지않다.나도예외는아닐것같다.좋은버릇보다는나쁜버릇이더많다.부끄러움을무릅쓰고이렇게나의나쁜버릇을공개하는이유는간단하다.이런공개적인방식으로내치부를드러냄으로써내못난버릇을고쳐보겠다는굳센다짐을공약하는것이다.공약(公約)이공약(空約)이되지않길바라면서.

내버릇중뭐니뭐니해도가장고약한버릇은정리정돈에게으른버릇이다.그게으름때문에낭패를당한경우가어디한두번뿐일까.특히기록물을잘남기지않는버릇은정말나쁜버릇이다.

하던일을마무리하고나면그로서끝이다.때문에내가작성했던문서를복사한다든지,일이종료된후파생되는각종문서나기록매체등을보관하는데,게으른버릇때문에곤란을당하는경우가허다하다.토마스머튼이그리는유토피아와같은사회라면내나쁜버릇이아무런문제가되지않을것이다.모두가모두를신뢰하기에.하지만,날이갈수록서로가서로를믿지못하는사회가되어가다보니,나의나쁜버릇때문에죽을맛이다.

각종평가서나신청서혹은이력서등을작성할때자신의과거업적이나경력등을기록해야할경우가많다.그럴때마다내가작성한서류에대한증빙자료를요구받는경우가대부분이다.정치를필두로경제,문화등모든방면에서거짓이일상화되다보니,증빙자료에대한요구는점차더강화되어가고있는듯하다.심지어과학이나교육,언론분야에서조차거짓이진실을덮는경우가적지않은사회이다보니더욱그럴것이라이해하지못하는바는아니다.

며칠전에만해도분명히내책상위나서랍에두었던주요편지나문서들인데도,막상2~3주일만지나면어디에두었는지찾을수가없다.그러니오래된자료들을증빙자료로요구받을땐나의하루는완전히엉망이되어버리고만다.오래된기간이라해야겨우1달전자료도마찬가지이다.책상위나서랍등을아무리뒤져도찾을수가없다.때로는기억을되살려문서를발급한기관이나사람들에게거꾸로재요청을해서증빙서류를발급받기도한다.그렇지만,증빙자료를찾을수가없어포기하는경우가더많다.분명히있었던사실이었지만증빙자료에관한기록물이남아있지않다보니어쩔수없이그사실을삭제하는수가더많다.때로는그것때문에불이익을당하더라도불가피한셈이다.

때문에,내주위에매사에꼼꼼한사람들을보면정말부럽기그지없다.1년전아니몇십년전의문서들까지복사를해두거나서랍정리를잘해서,필요시간단하게자료를끄집어내올수있는그런분들을볼때마다정말마음으로부터깊은존경심이우러나온다.이젠나도그런사람들반푼이라도닮아야지하면서도그게안된다.버릇인탓이다.

그런데내게더큰문제는버릇을탓하기전에사회를탓한다는것이다.늘상유토피아타령이다.거짓과위선이없는사회,정직이당연시되는유토피아라면얼마나좋을까하는생각만한다.서로가서로를신뢰하고,모든사람들이진실만을말하는데,증빙서류가왜필요한가?그건내생각일뿐이고,현실적인우리사회는그렇지못한것이사실이다.없었던일을있었던것처럼거짓말을하는경우는물론이고,사실이아닌것을사실처럼부풀려위장하는것이버젓이허용되는사회가현실인걸어쩌나.

고위공직자의임명때마다청문회를통해드러나는거짓과위선에대해우리국민들의상대적박탈감은얼마나큰가.노블리스오블리주를외치며그들에게돌팔매질을한다.그로서끝이라면얼마나좋을까.사촌이논을사면배가아픈사람들이나자신이고내이웃이다.그들에게돌팔매질을하면서도자신들의허물은애써감추려한다.요즈음교육현장,특히중고등학교현장을보면정말안타깝기그지없다.나를위해서너는죽어야하고,자신을위해서하는거짓은불가피한선택이될수밖에없다는게요즈음살벌한교육현장이다.정치판은더말할필요도없다.국민에대한약속을밥먹듯뒤집어도아무도죄책감을갖는사람들이없다.‘이나라에과연정의는있는가?진실은존재하는가?’하는근본적인의문이일어날때가적지않다.우리모두,늑대가왔다고외치던양치기소년이되어버린지오래다.

아무렴남의탓하는버릇보다더고약한버릇이있을까.내나쁜버릇을고칠생각은아니하고너의탓이라고하는버릇은정말없애야할버릇중의하나이다.그러니엉뚱하게사회탓하지말고내나쁜버릇이나남주지말고서둘러고치도록애써야겠다.증빙서류요구가있을때마다환장할노릇이긴하지만내가사회의버릇에적응해야지,어찌사회더러내버릇에적응하라고할수야있겠는가.오래된버릇을고치기는정말힘든노릇이다.그래도이제부터라도중요문서들은복사본을만들어두어잘보관하고어디눈에잘띄는곳에두는것을버릇으로만들도록노력해야겠다.

사실은….항상눈에잘띄게둔다고치운것이나중에도무지기억이나질않아찾는데더큰애로가있어왔지만.쓰레기더미같이어지러운서류뭉치속에서중요한서류를더쉽게찾는것이내버릇이니이는더큰문제가아닐수없다.오호통재(嗚呼痛哉)라!

(2010.4.15.)

신들의사과

-사과에대한斷想(2)-

김상희

<문예시대>,<수필문학>추천완료

한국수필학회,한국수필문학가협회이사,영호남수필협회회장

수필집<열매열전>외3권

갑자기신화가살아났다,사과의담론에는많은신(神)들이살고있기때문인가.

한알의사과로생긴여신들의질투가전쟁으로번지고,마침내는하나의왕국이망한‘트로이의전쟁’그10년의비극.

‘펠레우스와테티스의결혼식때,제우스는모든신들을초대했다.그초대에서빠진불화의여신에리스는분기를참지못하고하객들사이에황금사과한알을던졌다.그사과에는‘가장아름다운여신에게’라고새겨져있었다.마침거기에있었던지혜의여신아테나와미의여신아포로디테(비너스)와헤라의세여신은그사과의주인은자기라고주장했다.난처해진제우스는세여신을자기의양을먹이고있는목자파리스에게판결을위촉해버렸다.파리스는아름다운배필을얻게해주겠다는아포로디테의꾐에넘어가황금사과를그에게주어버렸다.

그후,아포로디테를따라스파르타로온파리스는아포로디테의도움을받아스파르타왕메넬라오스의왕후,헬레네를데리고트로이로도망쳤다.‘트로이의전쟁’은트로이로달아난왕후헬레네를찾기위해그리스가트로이를공격하면서일어났다.두번에걸쳐일어난10년의트로이전쟁은질투의사과한알로일어난무서운비극이었다.

사과를제재로한이야기중,가장많이알려진것은‘천지창조’에나오는이브의이야기다.하나님께서천지창조를마친후,아담과이브에게모든창조물의사용과그것들의관리를허락했으나,선악과만은따먹지말라는금단의계명을내렸다.그러나,먹음직한선악과의유혹과뱀의꾐을뿌리치지못한이브는그열매를따먹는다.그리하여,이브는인류최초의수형자(受刑者)가되어에덴동산에서쫓겨났고,그의후손동성(同性)들은출산의고통을당하게된다.

선악의판단은이성적윤리적행위다.창조주는그것을신의전유권한으로삼고,인간은소유할없는능력으로치부하신것같다.어쨌든사과열매사건이후,인간은낙원은상실했으나,대신이성을소유하게되었다.

좀다른이야기지만,인간을가장사랑했던신을찾는다면,나는프로메테우스(Prometheus)를꼽고싶다.그는제우스를속여신들의전유물인불을훔쳐인간에게주었다.그죄로제우스의노여움을사,코카사스산꼭대기의바위에쇠사슬로묶여독수리에게간(肝)을뜯겨먹히는고통을당했으나,헬라클레스의도움으로살아났다.

문예비평가알베레스(R.M.Arbérès)는‘주위에서불을비춰주지도않아,제스스로자기불을지피거나,아니면암흑과추위속에서떨지않으면안될세기도있다.그런시대에는…불은각자의힘으로얻는획득물이며모든불은적의를품고있는신에게서훔치지않으면안된다.그럴때,인간의모험은프로메테적모험이된다.’고했다.

이브의반역을‘어떤독점에대한반역’이라규정하고,거기서프로메테우스의반역을떠올렸다면,견강부회하는매지자(sophist)의궤변일까,아니면,애지(愛智,philos-sophia)하는후예의마땅한연상일까?

반역하는사과는나라를뺏겼던윌리암텔의독립운동에도영향을끼쳤으며,스위스를영세중립국이되게하였고,뉴튼(Newton)에게는‘만유인력의법칙’을발견하게하였다.만약,이브의이성획득의반역이없었던들텔의자주독립이나뉴튼의위대한발견이과연,가능했을까?

사과!향기와맛과영양으로만대할무정물만은아니다.그건내포의언어로인류문화발전에공헌한형이상학의열매다.맛으로먹기만할과일이아니라,씹으면씹을수록깨달음의깊은의미를내재하고있는인류문화의한광맥이다.

황제의여행

姜中九

제1회교원학예술상수필부문입상

<수필공원(현에세이문학)>추천완료

한국문인협회,부산문인협회,한국수필문학진흥회,에세이부산문학회회원

국제문화예술상수필본상수상

수필집<가을에그린초상화>외다수

“감자는내가깎을게.”

“그냥두어라,이터럭손아.”

“그럼그릇은내가씻을래.”

“제발그냥두어라.좋은말할때.”

나의제안에대한우리친구들의반응은언제나이렇다.밥을짓고반찬을만드는것은말할것도없고심지어는그릇을씻는설거지마저나는손도못대게한다.

그러면서도우리친구들은전국의명승고적을찾아다니면서휴양림이나콘도에숙소를정하고임사장은밥을짓고문교장은반찬을만들며박교장은승용차를운전하면서즐겁게여행을하고있으니참으로기특한일이아닌가.

그런데도박교장은날마다집에있는부인에게전화를걸어서친구들이밥과반찬을잘해주어서임금님같은여행을하고있다면서자랑을하고있으니,나는할말이없다.

일이이렇게된것은나의음식솜씨가시원찮기도하지만젊은날친구들과동해안여행길에나섰다가내가저지른짓궂은장난때문이었으니자업자득이다.

우리친구들은젊은시절부터여행을할때에는누구는텐트를치고누구는밥을하며,누구는반찬을만드는등으로업무를분담해왔다.그래야여행을추진하기가쉽고또공평하기때문이다.

그런데어느해여름경포대에서야영을준비하던친구들이텐트를치고난나에게된장국을끓이라는것이었으니,그래서된장국을끓이던나는짓궂은장난끼가발동했다.

그랬더니저녁식사를하던친구들이비명을지르는것이었으니,그것은감자와마늘을껍질째넣고된장국을짜게끓였던것이다.그런일이있고난뒤로나는주식과부식업무에서퇴출을당하고말았다.

중국의5대항구인진황다오(秦皇島)의대표적명소인동산공원(東山公園)은정문을들어서면황금빛이찬란한마차행렬이달려나온다.제일앞에는진시황제가타고그뒤로문무백관들이타고달려오는마차행렬은실물처럼크고생동감이있었다.그것은진시황제가기원전215년에진황다오를순시한역사적인사실을재현해놓은것이다.

중국최초로통일국가를이룩한진시황제는문자와도량형과차바퀴를통일하고만리장성을축조한위대한군주였다.진시황제가넓은국토를순시할때에는황금마차에다수많은문무백관과시종들을거느리고행차를했다니얼마나호화로운가.

그러나천하를호령하던진시황제도흐르는세월은어쩔수가없었던지이곳에와서하느님께제사를지낸후서불(徐市)에게동남동녀500명을주어서동쪽나라로가서불로초를구해오라고했다.

그때진시황제가하느님께제사를지내고서불을동쪽나라로떠나보낸진황구선입해처에는명나라헌종이세운‘秦皇求仙入海處(진황구선입해처)’라는비석이서있었다.뿐만아니라지금은그러한사실을모두조각품으로재현해놓은것을보면참으로호화로운행차를했던것같다.

나는우리친구들과여행을하다보면나도진시황제같은호화로운여행을한다는생각이들때가있다.일류기사가운전하는자가용승용차에다솜씨좋은요리사들을대동하고전국의명승고적지를유람하고있으니황제같은여행이아닌가.

사범학교동기생인우리친구4명은국내여행은말할것도없고해외여행도자유화된후부터해마다한두번씩해왔다.동남아시아를시작으로유럽과북아메리카,오세아니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까지다녀왔으니대단하지않은가.

그런데우리친구들도흐르는세월은어찌할수없어서이제는해외여행은거의하지못하고국내의명승고적지를찾아다니는것이고작이다.

그런데도마음은아직도젊어서여행길에나서면지난날해외여행을할때의즐겁고어려웠던일들이화제에오른다.파리에서무랑루즈쇼를보러갔던이야기는단골화제이고퀘백에서값비싼양주를사마시던일과석양이아름다운나일강에서의뱃놀이도자주화제에등장한다.

뿐만아니라고산병에시달리며손가락이갈라져서피를흘리면서도아타카마사막을종주하고잉카문명의보고인쿠스코와마추피추를돌아보던31일간의남아메리카여정과신들의나라인인도와동물들의천국인아프리카를32일동안이나헤매고다니던이야기가나오면늙은몸에서도힘이솟아나는것은추억을먹고사는인간이라서일까.

사람들은나이가들수록친구가있어야한다고야단을하지만나는이런친구들이있어서행복하다.뿐만아니라친구들과함께여행을하다보면나는진시황제가문무백관을거느리고여행을하는것보다더행복한여행을한다는생각마저든다.

이친구들은전생에나와는어떤인연이었을까.다정한형제였을까,아니면어느산사의도반이었을까.그리고다음세상에는어떤인연으로만날것인가.나는이런친구들이참으로고맙다.

모나리자

윤용흠

<한국시>추천완료

한국문인협회,현대수필문학회회원

시집<종심>,<흰구름산마루에흐르고>

수필집<산너머남촌>,<남촌의달빛서정>등

14세기~16세기의이탈리아를비롯한유럽에는그리스로마의문화를재생시키려는르네상스의여명이찬란히밝아오고있었다.‘누구든원하기만하면무엇이든지할수있다’<아르베르티>.인간의이상과욕구는한껏부풀렸고‘새로운세계새로운인간의발견’을위하여사람들은마냥고무되어있었다.미(美)의세기를이끌고과학발전에이바지할수재,천재,만능인등이제제다사(濟濟多士)기라성처럼떠오르고있었다.레오나르도다빈치(1452~1519),아르베르티(1404~1472),미켈란젤로(1475~1564),봇디첼리,라파엘로등매거할겨를이없을정도이다.

<모나리자>,르네상스의만능인,미완성의거장(巨匠)인레오나르도다빈치의대표작.1503~1506,53cm×77cm,판화유채스푸마토기법(흐릿하게그리는기법),루브르미술관소장,모델,리자게라르다니(1479~1542?,게라르다니夫人)의초상화이다.인물을배경보다높게배치하고감상자들을정시(正視)하는자세로구상한것은당시로서는독창적이었다고할수있겠다.무릇예술에서조화와균제는생명이라지만특히시각적공간적예술인미술에서더욱그렇다.원근법과명암의능숙한처리가스푸마토기법과어울려그림전체가엷은안개로덮인듯한효과를자아내고있다.그‘신비의미소?’도일렁이는안개속에서만제모습을나타낼수있었던것으로짐작된다.

다빈치는그림의균제를위하여1:1.618의황금비율을다분히적용하고있다.코와눈썹의길이와턱과코의길이의비율,인중과입술의길이와입술과턱의길이의비율,얼굴의가로와세로의비율들이균형을이루도록했다.

프랑스의화가겸미술사가인자크프랑크가<모나리자>에얽힌다빈치의신비로운비밀을500년만에풀었다고영국의인디펜던트지가최근보도했다.요약하면이렇다.

<모나리자>의얼굴과손을표현한붓자국은너무미세해서,X선투시나현미경으로도포착하지못할정도이다.그가엄청난공력을들여정밀한붓질로신비의미소,빛과어둠이동시에묻어나는두손,어둡게묘사된피부에서배어나오는빛등의효과를얻었으리라고말했다.다빈치의붓질은결코1~2mm를넘지않았으며,중요한부분에서는1/3~1/4mm의크기로채색했다.그는먼저스케치를하고붓질채색을한뒤그림전체를덧칠하는방식으로그렸을것이라고추정했다.그에따르면다빈치가반복한물감층만해도30겹이나되었고,이런미세작업에는확대경이쓰였으리라고추정했다.그는또1503년에시작한<모나리자>는1516년다빈치가프랑스에이주했을때까지도여전히여기에매달려있었으며,1519년다빈치의사망직전에야그림이끝났으리라고말했다.

약20년간의세월,반생을한작품에쏟아붓다니!그강인한집념과놀라운정력에우선경탄을금치못한다.미세작업이라기보다나노공법에가까운정밀성을보인것은다빈치의깊은과학정신의영향이었으리라.다빈치는<모나리자>,<최후의만찬>,<자화상>등작품과소묘,밑그림등500매,과학과예술에관한원고5,000매를남겼다.연구활동량에비해완성작이적으므로미완의거장이라불려지지만,과학과예술의거의전분야를섭렵연구한만능의천재였다.

세계적명작에관해문외한이용훼(容喙,말참견)하는것은매우조심스럽지만,솔직한심정을털어놓는것또한감상자의도리라생각되어몇말씀적기로한다.

첫째,예술은과학적합리성을원용할수는있으되과학화를시도해서는안된다고생각한다.다빈치는<모나리자>에,나노공법에가까운미세작업으로거의반생을소진하고있다.미켈란젤로의<최후의심판>은130cm×120cm에,400명가까운인물을묘사한거대작임에도5년남짓밖에걸리지않았다.다빈치는정밀성에집착하여시간과정력을과용한듯하여아쉽다.

둘째,‘신비의웃음’이라는것.필자에게는그저점잖고정숙한,보일듯말듯한,엷은웃음으로밖에보이지않는다.25년전루브르미술관에서실물을보았을때나,그것에관한보다많은정보를접한지금이나동감이다.미감에둔한시선엔‘신비의웃음’같은것은담을수없는가보다.여성24~27세는한창피어오르는청춘기이다.굳이봇티첼리의<비너스의탄생>이나<밀로의비너스>에서와같은,나긋나긋한몸매나요요한웃음을바라지는않는다.부잣집의젊은부인,<모나리자>에게선몰래풍겨야할향긋한‘여자내음’마저아쉽다.신비의웃음이란어떤것일까.천사의엷은웃음?아니면젊은여성의행복한웃음?아니면여왕의점잖은웃음?어쨌든,범상치않은수수께끼같은웃음을가리킴일것이다.그녀의점잖고얌전한웃음은다빈치의<자화상>에나타난우람하고근엄한모습을여성화한것처럼느껴진다.그래서<모나리자>의여러모델설중의다빈치의<자화상>설이더욱신빙성이있어보인다.<모나리자>하면‘신비의미소’를연상함은‘세계적명작’이라는명목가치에이끌린대중적쏠림정서일수도있을듯하다.

셋째,예술성.체험과상상력으로사물을독창적으로표현하는기술이다.문화도시피렌체의상류층젊은부인인<모나리자>,머리모양,옷매무새,몸가짐등이조금더얌전하면서도발랄하게,정숙하면서화사하게표현할수는없었을까.르네상스문화의번성기에점잖음과정숙함일색으로표현된것은시대상이잘반영되지못했고인물의특성이두드러지지못한듯하여참애석하다.그는예술성보다는합리성,창조성보다는사실성(寫實性)에치중했던듯하다.다빈치작<최후의만찬>의초점은예수에있다.12제자의개성을표현하기위하여그들에관한문헌을섭렵하고시민들중에서합당한모델을찾아내었다.제자들을그리는데는성공했으나‘신이인간으로화(化)한모습’,예수를표현하는데는실패했다.번민과숙고로해결될문제가아니었다.예술성과창조성의문제였다.마침내,몽롱한예수를그려놓음으로써‘미완성’으로끝냈다.미켈란젤로의<아담의탄생>은사람을흙으로빚은것이아니라,신의검지와사람의검지가닿을듯말듯하게접근하는모습을그렸다.신의넋이사람에게옮아감으로써아담이탄생되었음을보여주는것이다.얼마나놀라운예술적창조인가.

작은미나리밭

윤옥자

아동문학평론으로등단

한국문협,부산문협,국제팬클럽,한국수필회원

부산수필낭송문학회회장역임

논저<구연동화의교육방안연구>외2권

동화책,구연동화책다수발간

황조근조훈장,천등아동문학상

하루에도몇번씩작은미나리밭을들락거린다.

갖가지채소가풍성한어머니의남새밭처럼.

미나리의독특한향과초록,효능과영양,잎새와품성때문이다.

미나리는비타민과칼슘,칼륨,철분,단백질,탄수화물을듬뿍품고있다.

미나리를무척이도좋아함은참을성많은품성때문이다.아무리척박한곳이라도약간의물기만있으면잘도자란다.정화능력도강하다.

하지만남새밭채소들은어머니와머슴의발자국소리로자란다.아침저녁물주고북돋우고깻묵주며잡초뽑느라호미가바빴다.

어릴땐우리집에환자가득실거리는게챙피했다.

어느봄날걸을수없는할머니가지팡이를안고,지개에얹혀왔다.심한류마티스환자였다.

일꾼이돌미나리를큰나무절구통에넣어찧으면,어머니는즙을내어하루두세번씩할머니에게드렸다.그것을마신할머니는일주일도채안되어지팡이를두고걸어가셨다.

남새밭채소들은많은식객들의반찬줄이었다.남새밭옆의약초들은환자치료의생명줄이었다.

어머니는남새밭일보다는탕약달이고,환약만드는일에온갖정성을다쏟으셨다.

삶고,볶고,찌고,쌀뜨물에불리고말려도구통에빻거나방앗간에가서찧어환약을비비느라지문이닳을정도였다.

선친의명성은어머니의정성과한숨과눈물과애환의열매였으리만큼.

미나리의신통함은심심찮게이어졌다.

한번은얼굴이시커멓고누렇게뜬남자가왔다.무섭고곧쓰러져못일어날것같아숨어서살폈다.

만성간염으로생긴황달환자였다.돌미나리즙을하루에서너번씩먹였다.걸린시일은기억이안나지만그분도다나아서나갔다.

미나리의효능은만병통치약같다.혈압강하,해독작용,변비해소,채혈,지혈,청혈작용도한다.

신경쇠약증이나스트레스에도도움을준다.특히여성질환,즉월경과다증과식욕감소(다이어트)에도효과가있다.

미나리는사철우리밥상에얹힌다.주로점심때상추와여러쌈채소위에미나리를곁들린다.미나리몇줄기를돌돌말아된장에콕찍어밥없이그냥도잘먹을만큼.

이렇게미나리를좋아하기까지는어머니의공이컸다.밥상은약상이라며건강식품을고집하셨기때문이었다.봄철엔꼭여러가지쌈을싸주셨다.그쌈이싫어일부러토하기도했지만우리어머니에겐안통했다.결국아주쓴머구잎쌈도잘먹을만큼.

그엄마의그딸인지우리아이들도어머니처럼키웠다.당근시금치삶은물에우유를타고제철채소로죽도끓이면서….쌈을싸서한입씩넣어주면영락없는제비새끼들의노란입같아참행복했다.육고기를먹일땐육고기의세배가되는채소를미나리쌈으로먹였다.

아비가된지금도쌈을싸주면말은“어머니드세요.”하면서도넙죽넙죽잘도받아삼킨다.

자식입에밥들어가는쏠쏠한그재미는예나제나늘방실웃음쏟는다.

우리의전통음식된장과김치는최고의보약임을후손들에게전해야한다.가장한국적인것이가장세계적이라는명언과함께.봄철미나리,쑥,달래,냉이,씀바귀의영양과효능까지.

여름엔미나리도세어쌉쌀하지만풋고추에감아막장에찍어먹는재미도일품이다.

입맛이없을땐미나리잎과갖가지채소를손으로뚝뚝뜯어넣고,된장,고추장섞어비벼참기름한방울섞어먹으면바로꿀맛이된다.

‘작은미나리밭’이란이름엔슬픈사연이숨어있다.퇴직하면개울가돌미나리심고,남새밭가꾸며살고파힘들게마련한땅과집이어느날갑자기사라졌기때문이다.

시골미나리밭남새밭대신아파트베란다에프라스틱대야(다라이)와큰화분에미나리,상추,잔파심은뜻을위로하기위해그이가붙여준이름이다.

비록하얀박이랑빨간고추올릴지붕없고,호박넝쿨,수세미,오이넝쿨감을울타리는없어도작은미나리밭을열심히들락거린다.미나리와쌈채소날마다먹으면서.

메마른세상에감도는그리움의여운

황다연

<시조문학>추천완료.시조시인

1996년부산시민헌금으로제작된‘부산시민의종’종신에시조헌정각인됨

한국문협회원

시조집및산문집다수있음.

‘깊은마음이보살이난곳이며큰원력이보살이난곳이며대비심이보살이난곳이며또한대승정신이보살이난곳’이라고화엄경은말한다.

보살,즉사회리더는적어도이만한마음그릇은갖춰야한다는뜻이다.

오랜기간필리핀의영화로움으로주목받던이멜다여사는젊었을땐미인이었다.그덕분에사교계총아가되면서야심찬정치인아내로선택되었다.대권을차지한장기집권자퍼스트레이디로서지나친호사를누린,지나치도록속된삶이그의영혼을타락시켜서일까.노년기이멜다모습에선한자락의인고의아름다움도없었다.

탐욕이더럭더럭묻어나는그얼굴을보며40세가지나면자기얼굴을책임져야한다는말이절실하게다가왔다.

육신은마음을담은그릇이기에당연히정신세계가이미지를형성한다.그런영혼의집,육신은언젠가는썩어흙이되지만사람이미지는자기활동영역속에있는모든사람에게오랫동안남게된다.

행복하게도내곁엔아름다운영혼을가진사람들이제법있다.

얼마전베로니카씨가서울사는자녀배웅하러역에나갔다가역전에스칼레이터에서넘어져아찔했는데다행히괜찮다고하기에도인천명일선생님저서‘신침입문(神鍼入門)’에서읽은명징한글귀가생각났다.‘기적은없다.진리의3대원칙중무리(無理)에포함되는신기한이적은,다스스로지은공덕의힘으로일어나는불가사의한신력이다.’라는.

이책서문에서약도안주고치료도해주지않는방치처방이최상의양약이되는환자가지구상에많다면서환자스스로공덕을짓게하여스스로자연치유력을기르게하는일이중요하다고명시해놓았다.그러면서자연치유력의원천은공덕력이라는것과참된사람이잘사는사회를조성하는희생정신에서영광된축복이나온다고도했다.

<심령의학>이란부제가붙은이책서문에저자는‘만법의백과사전이될것’임을천명해놓았는데환자마음상태를제외하고병을얘기할수없듯개인의마음씀이를제외하고개인운명을얘기할수없는것이다.

평소봉사정신이생활화되어있고건강한사회만들기에정성을기울이는그녀,다행을함께기뻐하기위해그녀를만나점심먹고돌아오는길에그녀부친이경험한아름다운옛이야기를내게들려주었다.

“좀추운겨울퇴근하는길이였대요.아버지는많은자녀기르시느라늘허름한옷차림으로사셨는데그날다리위를지나가는데다리아래사람들이옹기종기앉아있어가던길멈추고다리아래를내려다보니까다리아래모여앉은사람들이손짓하며부르더래.반갑게손짓하는그따뜻한정이고마워다리위에서훌쩍뛰어내려갔더니술과돼지고기를나눠먹는그사람들이나병환자였대잖아.아버지옷차림이허름했다보니그사람들은자기처지와비슷한사람으로보았겠지.반갑게술잔을권하는그인정이또고마워아버지는아무렇지않게그들이권하는술을마시며오늘무슨좋은일있었냐고물으셨대.그랬더니글쎄자기동료결혼이있던날이라고하더래.그래서아버지는주머니를다뒤져남은돈얼마를건네주며행복하게잘살기를기원한다며축하인사를하는데마침그때다리위를지나가는동료판사가그모습을보았대요.아버지는그날그술마신따뜻한기분으로기분좋게집에와서엄마한테있었던일그대로얘길했다가엄마잔소리를많이들었대요.이튿날출근했더니법원에선‘하판사가거지하고놀더라’소문이쫙났더래요.그이후아버지별명이거지판사였대나.’나는아버지의그런모습생각하면내아버지는그릇이큰어른이란걸느끼게돼요.”

순박하면서도대범한부친삶의일면을내게얘기하는베로니카씨표정은아버지자랑하는열몇살소녀같아보였다.옛날엔‘잘살아요.’하는말이그냥물질적풍요를누리라는의미로해석되었는데어느땐가부터는차원이다른의미로해석되는것은내연륜의힘탓인가보다.

샘물에입술적시며바람을타고다녔다

눈물마르지않는대지봄빛으로깨워놓고

아픔의뼛속에머문것들

햇살로피어나게한다.(종전문)

새벽과저녁에또중요한행사때절에서종을치는것은지옥에있는목숨을구원하기위해서라고한다.화탕지옥등수많은지옥을살면서겪는구고구난한인생길에서으레히새로워지는전환기땐방망이로종을치듯자각을일깨우는계기가있다.

한없는사랑이샘솟는대지의어머니같은마음가짐으로산다면자각의통로없어도‘잘사는’후회없는삶을경영할수있는데성현의단계에도달하지못한상태에선부족한만큼실수를,그와같은잘못을지으며사는것이사람처지다.

베로니카씨부친처럼개척정신이남다르고어려운사람을온유하게배려하는큰덕망도큰지혜가바탕되어있어야한다.

여든인생사시는동안그런얘기거리를너무많이갖고있다는것을미루어볼때베로니카씨부친삶의여정이그대로우리삶의귀한교과서가되는데,성공적인그분삶의일화한편을내글소재공부거리로얻은것은그날내겐큰소득이었다.

끊임없이수행해온마음공부를통해그만한삶의그릇을갖출수있었으리라.

눈에보이는것들마다귀에들리는것들마다가슴에이게하는것이너무많아목이바짝바짝타는이땅곳곳의종은그래서오늘도샘물에입술적시며인연의바람타고다닌다.문득문득우리연민의삶이느닷없이뼛속에심은아픔들이랑새로움의기류로씻고본래의환한모습찾으라고속삭이듯한다.

청아한공기로세수한새벽종소리의아름다움이우리영혼의등불되어또다른아름다움을볼수있게하듯고통스런사람아픔을쓰다듬어주는일은그래서기쁘게사는힘이되어준다.

언젠가또누구에게나기쁨을주는사랑의말한마디가영혼을넉넉히하는영양분이되듯넉넉한세상만드는힘이되기도한다.

감동의파장

황다연

좋은기분은그어느날뿌린자비의꽃씨속에서생겨나는걸까.

아니천지만물모두생불(生佛)인세상이라는미륵세계속에내가잠시머물렀음인가.

얼마전이었다.드물게장기연시인의전화를받았는데‘시화전’얘길했다.

옛날에동인시화전한번참여했던번거로웠던기억때문인지그이후시화전엔무관심했다.“선생님좋아하기때문에추천합니다.이젠이런행사에좀참여하세요.”하기에나도선생님좋아한다면서그거하면좋은거냐고물었더니전국100명시인의시화전이라면서누군가우리시를읽어아름다운감정가지게되면그만큼아름다운사회가조성되니까좋은기회라고한다.자원봉사도하며사는사려깊은시인의권유라동참하기로했다.

시내대학앞의표구점에부탁하면된다는도움말도잊지않았다.

그런데내집가까운경성대학앞표구점에의뢰해만든게조잡스러워도저히쓸수없었다.할수없이다시추천받아간곳이부산대학앞아트갤러리였다.100개의시화가한장소에서얼굴을내보이는데우선뚜렷한개성이필요했다.

그곳여사장님미적감각을도움받아가며특색을강조하면서까다롭게주문했더니액자고르는일,또비구상삽화형식의그림의논등담당화가와통화해가며나보다더내작품제작에성심성의로대하는그진지한경영자세에저으기감동을받았다.

돈도안되는일인데도전혀게의치않고화가는시의내재적의미를읽어내지못하는경우가많다면서어떤형태의그림을좋아하느냐,어떤색채를좋아하느냐는등고객취향을최대한으로반영하려는그정성스런모습이격조있는정원에피어난꽃처럼아름다워보였다.

자기이익보다고객이익을더생각할줄아는아량은세상을자신처럼사랑하며사는마음의여유에서생겼으리라.

오늘문득새삼스럽게,감동은자기욕심만주장하면찾아오지않는행복의파랑새임을느낀다.

명상의샘터에옛날표주박되어

한줄햇살넉넉히내려

다려놓은무향차

한잎의새소리담긴파릇한생기를준다.(명상의샘터전문)

경봉선사께선자기에게주어진의무와책임을깨끗이실행하는그것이곧도(道)라하셨다.

그런범주속에서또라즈니쉬는자연성인‘도’는크게어리석다했는데진리의법칙으론크게어리석은사람이크게득본다고한다.

지혜의보물창고가큰,깊은앎의세계지닌정신적자산이풍부한사람은어떻든남다르다.

사장님이아직젊다는것도희망인데,고객만족도를더앞세우는후덕한사려까지지닌아름다운품성속에잠재되어있는전도유망함을엿볼수있어더욱기분좋았다.

공동사회생활은얼마씩순진하게손해볼줄알아야누군가그만큼이득을본다.

그리고누군가이득을본그이상으로손해를본사람에게더큰이익이되돌아가는부메랑법칙으로세상은움직인다.삶은곧‘선의지의실현’이란인간정신이그스스로를육성시킨다는것도영혼의향기를지녀야알수있는일이다.

유명한지휘자정명훈은‘세계정상의수준에서활동하는지휘자에게는음악외의요건또한매우중요하다는것을배웠다.50대에들어선나이지만지휘자로서더많은것을배워야한다.’고했다.

‘음악외의요건’의중요성을깨달았다는그의겸손의가치는끊임없는자기연마과정과연관된더높고더넓은세계를공부하는교육임을내세우는그배움의자세는보살(菩薩)의몸기르는공덕의처소와같다.

타인의이익을생각하는마음여유속에서자라는이타정신(利他)이오늘의그를만들었다해도과언이아니리라.

미국최고영성가로떠오른데이비드호킨스박사는그의저서‘의식혁명’을통해‘눈에보이는외형적인힘보다그윽한인생속에내재된진실의힘이월등하게좋은길상파워를만들어생명사회에좋은영향끼친다.’고했다.

오랜운동역학연구결과에의해성자의말씀인진리의위력이또입증된것이다.

살면서이렇게아름다운그리움의파장을만드는사람은끊임없이배우는자세로인생을경영한다.위험을기회로활용한사람들도살면서누구에겐가아름다운그리움몇자락씩남긴일있었을것이다.

영화‘피아니스트’의주인공폴란드인유태계스필만이생과사의갈림길에서쇼팽음악을연주하여독일장교를감동시켜살아남은일도,늘그의영혼속엔일체생명에대한자비정신이살아숨쉬고있었던그파동의힘이그런기적을만들었을것이다.

이렇게최선의선을실현하며모든삶과함께발전하려는대지와같은마음을내는향기로운영혼들은습관적으로,언제나공공의이익을추구하면서국가발전과세계평화를생각하는원숙한내면세계를갖고있다.

‘인간은교육을통해완성된다.’는평범한이치가또다시진리의북소리로늘배움을구하는사람을자극한다.

집으로돌아올무렵아트갤러리사장님께‘오늘여러고마움잊혀지지않을거예요.’라고인사를했는데이런즐거운감정은오랫동안생기를주는기쁨에너지로내삶속에여울지곤한다.

운명과의지의힘에이끌려사는삶의과정에서불청객처럼찾아온맵고짜디짠슬픔들이어느덧바람되고물이되어‘나’라는아집,아상(我相)이라는고집을거의닳아버리게해서일까.

겸양을가진아름다운영혼을만나면그들겸양이내모습비추는자각의거울되어무상의아름다움으로살도록나를부추긴다.

이래서좋은인연만나는것도복이라고하리라.

해리포터의마법젤리

허현숙

부산수필문인협회회원

부산수필학회회원

부산여성수필문학회회원

“우리아빠는색소폰을잘불어요.”정민이의말입니다.“저는아빠를닮아서추위를잘안타요.”,“아빠는음악을좋아하세요.”정민이는아빠를참좋아하나보다고생각했습니다.그러나그아이의이모가학교를다녀가기전에는정민이의아빠가이세상사람이아니라는사실은전혀눈치채지못했습니다.아이는참밝고착했습니다.공부도곧잘하고생각이너무어른스러웠습니다.하지만그아이는작년이맘때쯤아버지를잃었습니다.

건강하던사람이갑자기암말기라는진단을받았을때,그아이의아버지는모든일을접고가족과함께여행을떠났답니다.아이들에게아무것도남겨주지못하고떠나는아버지가되고싶지않다면서,큰돈은남기지못할지라도아빠의기억만은아름답게남겨주고싶다면서그렇게그는난데없이가족과해외여행을떠난것입니다.아이들이생전처음보는외국의정경에빠져좋아할때아마도그는진통제를수없이삼키면서아픔을참았을것입니다.그리고아이들에게마지막선물을그렇게남기고안타깝고아쉬운삶을마감했을것입니다.

정민이는하버드대교수가되고싶다고합니다.꿈을이루기위해그아이는아이같지않은노력과최선을다하는모습을보여줍니다.언제나모든일에긍정적입니다.나는그아이에게서날마다많은것을배웁니다.그리고감동합니다.처음에나는그아이가가여워서자꾸바라보는게아닐까생각했지만,곧그아이는날마다선한에너지를뿜어내는아기천사라는것을느꼈습니다.어렵고힘든일은“제가도와드릴게요.”합니다.다른아이들이하기싫어하는일을“제가할게요.”합니다.그런아이를바라보면서그아이의아버지와어머니를떠올립니다.어떻게키우면이렇게예쁜딸로만들수있을지생각도해봅니다.

어느날나는45가지의맛이나는젤리를학교에가져가서해리포터에나오는젤리라면서아이들에게나누어주었습니다.많은아이들이한약맛고춧가루맛코딱지맛이라느니더러는뱉기도하면서,아주재미있는표정을드러내었는데그아이는참맛이있다고말했습니다.“제가고른것은다맛이있어요.이건새콤달콤이건고소한맛,이건초코맛,이건바나나맛….”신기해하면서그작은젤리로행복해하는아이를보면서나자신이마법사가된기분이었습니다.

아버지를잃은지얼마안되는이아이는슬퍼하며주저앉지않습니다.초등학교5학년작은아이이지만삶을새콤달콤하게사는법을아는것같습니다.언제나밝고씩씩하게살면서남을기쁘게해주는아이입니다.이아이를가르치는저는한동안우울증을심하게앓았습니다.쉰을넘기면서하지않아도되는마음고생을많이했습니다.남들이흔히말하는너무편안하고여유로워서생기는그런병을앓은것입니다.참오랫동안길고어둡고추운터널을지나온것같습니다.혼자서추워하면서혼자서슬퍼하고힘들어하면서많은시간을보냈습니다.삶에대해완전히자신감을잃었습니다.남은삶을어떻게살아갈지너무막연하고깜깜했습니다.누가나를힘들게한것이아니라나자신이나자신을못살게굴었습니다.생각해보면별다른이유도없었습니다.그저치아가몇개빠져임플란트를한일도슬펐고,하얀머리카락이자꾸만자라나는것도슬펐고얼굴을몰라볼정도로생겨나는주름살도절망스러웠습니다.

아이는절망하지않습니다.언제나웃고가슴에는희망을가득안고있습니다.내가교수는힘든직업이라고말해주었더니,“안될때안되더라도일단꿈을크게가지려고요.”합니다.나는이아이에게서결코꺼지지않는그무엇을봅니다.이아이는꼭무엇인가이루어내고야말것입니다.누구에게도다정하게웃는이아이는오늘도저에게“힘을내세요.”하는눈빛을보냅니다.이아이는내나이쉰에만난해리포터의마법젤리입니다.

억새와갈대

손수영

한국문인협회회원

부산수필문인협회회원

다스림동인

부산수필낭송문학회회원

신록이온천지에서빛나는5월이다.나는특히5월을좋아한다.5월은,이른봄의여리디여린연두색도아니고뜨거운한여름의나른하면서도뿌옇게먼지낀진녹색도아닌것이사물의특징을명쾌하게살려주는명료한초록그자체이기때문이다.검은댕기머리왜가리도,왜가리의표적이되는송사리떼도5월의초록때문인지그모습이더욱선명하다.

나이들수록봄이좋다.2월바람에실려온이른봄냄새에가슴이야릇해지는설렘도좋지만나는특히5월봄이더좋다.생명있는모든것들이자신의모습을신선하게그리고또렷이드러내기때문이다.이제껏관심이없었던억새와갈대를새롭게보게된것도바로이5월이지않은가.사람들이5월을계절의여왕이라부르는이유를충분히알겠다.

우리마을에는자연생태내,학의천이있다.오전아홉시반경부터한시간가량학의천을걷는다.특별한일이없는한거르지않는데하루하루다르게올라오는작은풀꽃에서생명의희열을느낀다.요즘은붓꽃이쫑긋하게올라오다가드디어활짝피었다.보라달개비도꽃망울을터뜨릴준비를하고있다.샤스타데이지와마가렛도한구석에숨어있고,농사꾼인내친구가가장싫어하는개망초는지천으로많다.그러한개망초까지도사랑스럽다.이름모르고피는꽃들또한얼마나많은가.초봄에피어그자체가기쁨이었던내새끼손톱보다작은하늘색아지랑이꽃,노랑소꽃은이제보이지않는다.풀잎만무성할뿐이다.그대신억새와갈대가굳세게새순을키우고있는중이다.

억새와갈대는가을에보아야제대로맛이나지않을까.그러나봄볕속의그들이또얼마나경이로운지그곁에서살아보면알게된다.눈에서가까우면마음도가까워진다고,모든사물이다그러한모양이다.이마을에오기전에는산에있는건억새,물가에있는건갈대라고만구별했었다.그러나이곳에와서야억새와갈대를구별하게되었다.하루하루그들이변해가는모습은참흥미롭다.5월초입산책로를따라기치창검같이도열해있는억새는그엄정함이마치시골선비같다.갈대는또어떤가.물가쪽에서무더기로흔들리는걸보면여자의마음은갈대라고노래하는아리아가저절로생각난다.

억새와갈대를먼곳에서부터차근히바라보는눈맛은그저그만이다.빗으로반듯하게빗어놓은것같은늙은억새는아마빛으로반짝거리고그옆새내기억새의연두색은청순하기그지없다.늙어서반짝거리는것이어디억새뿐일까.빛나는늙음에위안을받게된다.멀리서보면,흰머리카락이검은머리카락을물들이듯,그법칙대로새순연두색이늙은아마빛을침범해들어가는것이정연하기이를데없다.한지에연두색물감이번지듯한다할까.엄정하면서도단아하게새끼들을키우는억새다.

누구와이별한적이있었던가.물가쪽노년의갈대,머리숱을풀어헤치고냇물을하염없이내려다보며흔들리고있다.무심히흐르는냇물이원망스러운가.그녀가견디기엔너무무거워보이는혼덩어리를어쩌지못하는갈대의흔들림이애달프기그지없다.새순이가장포시랍다는5월이기에,갈대의헝클러진혼덩어리는더욱슬퍼보인다.그흔들림에가슴이저려오는건비단나만의느낌은아닌듯하다.시인신경림도‘갈대는저를흔드는것이제조용한울음인것을까맣게몰랐다/(중략)산다는것은속으로이렇게조용히울고있는것이란것을그는몰랐다’라고읊고있지않은가.시인도5월의갈대를본것일게다.

모든것이한창어우러지고있는5월중순에도억새와갈대의변하는모습은더욱재미있다.늙은억새는새끼들을허리께까지빠듯하게키워올리고자신은빛나던아마빛을마침내잃게된다.드디어스스로의목을치더니허연줄기로만남다가쓰러졌다.덤불로다시한가락지푸라기로변해가는모습에서억새의굳은의지같은걸느낀다.꺾일지언정굽히지않겠다는결기서린선비의정신을보았다고나할까.

억새에비해키가두배나껑충큰갈대는새끼들을자신의목언저리까지뽑아올려진초록으로싱싱하게키워냈다.그래서그런가.슬픈혼덩이그자체이던갈색머리숱이어느새새끼들한가운데에서오히려꼿꼿해진다.자식잘키운어미의자랑스러운모습이라고나할까.잘자란새끼들이어미를에워싼다.노년의갈대는마침내자식들속에파묻혀흔적을감춰버렸다.모성애가가장강한식물이갈대라더니정말그런모양이다.늪지대의생명을키워내는것은갈대다.그뿐일까.물속으로숨어든도망자를살려내는것역시속빈갈대가아니던가.사람사는모습이대동소이하나개인차가있는것처럼식물이라고해서어찌다르랴.자식잘키운갈대가있듯새끼들을자신만큼키워내지못한못난갈대들도있다.그들은그래서더욱슬프다.슬픔을이기지못한채마침내초라한지푸라기가되어폭삭삭아지는건억새의최후나마찬가지다.

5월끝동,어느새억새와갈대는속대하나씩을쑥뽑아올렸다.늦게태어난속대는먼저생긴잎들보다다섯뼘이나더크다.머리에초록이삭들을달고제법여유를부린다.초록이삭들은곧씨앗을떨어뜨릴것이고각각아마빛숱과갈색숱을달고그들은,뜨거운뙤약볕과후끈한무더위,그리고떠다니는무수한먼지와그들의진청색이뒤범벅되어자신들의진정한모습을찾기힘든뿌연여름을견뎌낼것이다.그리고가을이오기를기다리지않을까.그들의전성기는역시가을이기때문이다.

생명이있는모든것들은그환경을닮는것인가.강퍅한마른흙을의지해야하는억새는자라는것이어기차고뻣뻣하다.옹고집에강파른성정이엿보인다.물가쪽에서살아가는갈대는키도크려니와무성한잎조차도부드럽게곡이졌다.누그럽고유순한청록의젊은갈대는마음씨착한우리마을아낙을꼭빼어닮았다.팍팍한환경에서살아가는사람살이와비옥한환경에서살아가는사람살이가영락없는억새와갈대이지않은가.

억새보다는갈대의모습에서사람이살아가는모습을많이보는것같다.갈대를처세술의달인이라커니여자의마음은갈대라느니인간은생각하는갈대라고하는걸보면그러하다.그렇다고해서억새에대한인간의관심도적은것은아니다.‘아아~으악새슬피우니가을인가요~’하는가요도있고화왕산억새태우기는가을밤의황홀한정취였다.사람들의미련함으로화왕산의불꽃을이제는볼수없게되어아쉽기그지없다.그러나한줄기바람과영롱한햇빛에은색물결이한바탕출렁이면그아름다움에온만물은아아~비명을지른다.봄날의속빈갈대를모성의결정이라부른다면가을날억새의은색물결은미학의절정이라불러도좋을성싶다.

나는5월의그들이좋다.새로운생명을길러내고정연한아름다움을만들어내는갈대와억새를볼수있는5월을간절히기다린다.

그녀가온다

손수영

어쩐일인가.현관이훤하다.제멋대로널브러져있던신발들이깔끔하게정리되어있다.현관정리는항상내차지였는데오늘은아들이했다.

‘댓돌에신발이나란히놓여있으면도둑도들지않는다.’는옛말을들먹였건만내말에대꾸는커녕오히려헤벌려놓기만하던아들,며느리였다.그런데어쩐일인가.아들말에의하면,풍수지리설에서그렇게해야집안에복이들어온다했다며며느리가신발장정리를부탁했단다.아니,그건내가늘해오던말아니냐고생색을내었지만콧방귀도안뀌는아들이다.

아들녀석과의마찰로속이부글거렸다.부글거리는속은곧상처가된다.아이들살림에관여하지말고그냥열외자로있을걸,후회막급이다.매양그랬었는데뫼책없이또실수를한것이다.내친정어머니로부터자주들어오던말이라거나세간에전해오는말들을인용하고읊어대봤자그녀석들에게는씨도안먹히는데포털사이트같은데뜬기사같은건기막히게잘도듣는것같다.속담이나금언등옛조상들의지혜에서생겨난말들이인터넷기사들과크게다를것도없건만내가인용하면잔소리,뻔할뻔자라고생각하는듯하다.그러나가만히따져보면내아들,며느리의이러한행동은자신들의삶을주체적으로옳게살아내는한방법이아닐까하는생각도들긴한다.‘남의충고에귀기울이다보면자기의삶을살지못하고충고하는사람의삶을사는거나다름없다’는코엘료의말도있지않은가.마치이솝우화에나오는당나귀를팔러가는부자의이야기와진배없을터이다.

어린시절,폐디스토마를앓아툭하면쏟아내는토혈과잦은결석으로사람사이의소통에소극적이었던나는멀찍이나앉는아웃사이더였다.그것이나자신을방어하는최선의방법이었던모양이다.더욱이참견하거나사태의언저리에있다가는본전도못찾을정도로말솜씨가서툴다.때에따라적당한말을찾아쓰지못하고겨우한다는말조차도얄밉다보니설득력이없었던것이다.나는미운아이,그자체였다.그러자니방관자가될수밖에없지않은가.그것만이내자존감을지켜주기때문이아닐까한다.포도가시다는여우와뭐다를게있으랴.

어른이되어서도실수연발에종종오해를사게되는데왜그런오해가생기는지에대해곰곰이생각해봐도당최그까닭을모르겠다.어쩌면그건이편도저편도아닌,책임을지지않아도좋은방관자가겪어야하는어려움일수도있겠다.방관자가갖는나태함이나그만이갖는공간의자유,그리고그것들이주는안일함을얻는데대한당연한댓가가아닐까.

사랑받는걸불편해했다.사랑받는방법을몰랐다고해야겠다.어머니나선생님에게매를벌때도그자리에앉아서고스란히다받아낸다.오히려작전상과잉반응을해서어른들을깜짝놀래키는영악함때문에더미움을샀던것같다.곡마단이마을에들어와서천막을치고몇달이고공연을할때도여차하면곡마단에묻혀서도망질칠생각만했으니바람만잔뜩든,한마디로사랑스런아이가아니었다.그렇다고문제아도아닌것이원체내가이쪽도저쪽도,그렇다고중간자도아닌방관자가아니던가.

맏이로태어났건만맏이로서의카리스마로동생들군기를잡는다는건아예꿈도못꾼다.카리스마는커녕오히려내어리광을받아줄상대는없나,눈을굴리기만했었다.머리가나쁘면손발이고생한다고,동생들보다머리가나쁘면손발이라도재야할텐데그마저도천성이게으르다보니공부고집안일이고간에할것없이모두뒤졌다.키로제압하거나인물로라도버텨보련만키에서나인물조차도동생들에게쳐졌으니맏이로서의권위욕만목에찼지의욕은낮을대로낮아진것이다.이나이에어울리지않는치기어린나의감성이라는것이어릴때에어리광을부리고싶었던그연장선상이아닐까하는의구심이든다.

아이들이또래집단놀이나나이에맞춰공부하고기초를다질때,소설책을보고어른들언어를몰래엿들어내머릿속에선걸맞지않는성숙한언어들이드글거렸었다.그렇다고그언어들이제대로뽑아지느냐하면그것도아니다.오히려적절하게뽑아내는데에는매우서툴러이따금사람들의웃음을사곤했었다.그렇게몸에맞지않았던언어가내입에쉽게붙겠는가,내문장에쉽게붙겠는가.지금글을쓰고있지만주옥같이아름다운우리말을제대로찾아쓰지못하는건너무일찍웃자란때문이아닐까.

동생들에대한콤플렉스나웃자람에대한콤플렉스는아들,며느리와의관계에서더욱절정에이르는것같다.어른으로서응당가져야할나름의지혜를보여줄수있으면좋으련만…….충고는고사하고라도일상적인말조차곧이들으려하지않으니내꼴만우스워질뿐이다.심지어여섯살손녀까지도할머니의말을귓등으로도안듣는다.마치나자신이‘트로이목마’의예언자인그녀,카산드라를닮은것만같아한숨만쉬고있다.

카산드라,그녀가나에게온까닭은무엇일까.내말이다른사람들에게신뢰를주지못하는연유를생각해보자.카산드라에게사랑을느낀아폴론이열렬히구애를하자그녀는예언능력을주면사랑하겠다고약속한다.그러나그녀는예언능력만받고사랑하겠다는약속을어겼다.아폴론은카산드라에게벌을준다.그녀의예언을아무도믿어주지않는벌을내리므로트로이는전쟁에서질수밖에없었다.그건신뢰를얻지못한그녀탓이다.그녀는약속에대한책임을지지않았다.그럼나는누구에게무엇을받았으며무엇을주겠노라고약속했던가.

어느누구와도그러한약속을하지않은것같다.오히려약속을하지않은방관자로서,떨어지는떡고물만앙큼하게챙긴까닭에카산드라가내게로보내어지는벌을받은게아닐까.사실나는여러사람에게고맙기이를데없을정도로많은사랑을받아온것같다.그런데도누군가에게뭔가를주어보지를않은것이다.신의저울은과연공정하긴하냐고신에게대들기나하지않았던가.그래서신은그녀를내게보냈는지도모른다.

두려워서혹은자존감을다칠까봐아무것도안하는무책임한방관자보다는사랑하고,약속하고,책임지고,누군가를위해나설수있는용기,그런것들을가슴에품고행동할때,인간적인매력을주고신뢰를얻을수있으리라.행동해야행복해진다고했다.행동하는것이야말로아름답기때문이다.내친구의딸전예완의니체미학에관한철학박사학위논문에보면,더이상소급될수없는근원인삶이곧몸이며창조행위라는등식과함께자신을타자에게부어주는행위에대해니체는‘아름답다’고했다는부분에내눈이꽂힌다.

육체나정신이싱싱하게빛나는것이매력인,젊은이들의행위에대한아우라가그들만이가진특권은아닐터이다.나이에따라그나름의빛남이있지아니한가.흰머리칼이뿜어내는고귀하고차분함,온화한미소는세월이만들어내는매력이다.카리스마너머의너그러움도세월의산물이아닌가.신뢰라는증표는어께위에세월의먼지가쌓이면더욱제맛을살린다.그러나카산드라,그녀가내어께위에쌓인세월의먼지를무시하고더자주오는건무슨까닭이란말이냐.어릴땐성숙한체하며굳어있었고나이들어선오히려철딱서니없이젊은체한탓이아닐까.

나보다는아주,아주약간만젊은어느이름있는문화평론가가공개방송에서대놓고말하길,‘늙은사람이커피마시며모차르트듣는건징그럽다’고했다.내주변의젊은이들도그런생각들을가지고있는건아닌지,노년에모차르트듣고커피마시는행위가과연나이에걸맞지않게유치한감성을내보이는것인지,그러한것들이내아들,며느리를포함하여젊은이들에게신뢰를얻을수없는요인이되는건지진정알고싶다.그문화평론가의말을곱씹으며부쩍자괴감마저이는요즘이다.

허나,비록그녀가자주온다해도이나이에접어든나는징그럽도록치기어린감성으로살란다.어쩔건가.그때나이때나‘체’하면서살아왔는데….변하면죽는다고했으니상처를받을지라도,내뿌리가약하고얕다는걸누군가에게들킬지언정나이를잊고살란다.

그러나이나이쯤되면좀귀여워지기는해야하지않을까.그동안사랑받는걸불편해했다면이제는사랑받을준비를해야할때다.엄정하던내어머니가노년에이르렀을때,너무귀여워서사랑하지않을수없었듯이어머니처럼나도귀엽게늙기는해야겠다.그렇게된다면내아들,며느리가나에게귀를기울여주긴하려나.

빨간구두

허정림

부산문협회원,불교문협,수필문협,수필부산문학이사,부경문학회감사

수필낭송문학회회장지냄

제10회문예시대작가상수상

수필집<어미새의눈물>외2권

다시그녀가돌아왔다.

희열이혈류를타고내리는듯하다.단지짧은한순간에파노라마처럼스쳐간사연의주인공을기억하고,시간이꽤나흐른뒤에귓결에스치듯지나가는이름으로반갑게알아본다는사실이만분의1의확률이나될지모르겠다.우연이라기보다는어떤영적교감같은게느껴진다.티브이에서잠시상면했던그녀의얼굴이그간에뚜렷이내머리속을맴돌며잊히질않았고,그하회가궁금하던참이었다.

오늘아침,아무런생각없이티브이를켜고,무심결에눈을주게된순간,내귀에그녀의이름이들려왔고,화들짝놀라화면을주시했을때,한순간내생각이적중했다는사실을알았다.나는그녀가헤어진엄마와꼭만나리라는것을예감하였고,그것은그녀를위한나의염원이기도하였다.꿈은이루어진다는말이절실하게느껴진다.그것은그녀의염원인동시에그녀의꿈을이루게하는나의믿음이었음으로.

네살배기어린것이스물여섯꽃이되어돌아왔다.

시간이닿을때마다귀를기울이곤하는‘그사람이보고싶다’라는티브이프로그램은눈물젖지않고는배길수없는우리민족의한(恨)의한마당이다.어릴때가족을잃어버렸거나어쩔수없는불행으로국외로입양보낸어린아이들이훌륭하게자라연어가모천으로회귀하듯속속부모를찾아드는것을본다.

그녀도엄마를찾으러수만리를날아왔다.손에는성경책과구두한켤레가들려있다.미국으로입양갈적에엄마가사준선물이라고한다.구두를보면엄마가반드시저를알아보고달려올것이라며,웃고있어도눈시울엔눈물방울이맺힌다.그럼에도밝고씩씩하게자란풋풋한그녀의모습이대견스럽기만하다.

얼마나신으면밑창이닳아없어질까.엄마의딸이라고증명서처럼내민구두두짝,새빨간구두는등만남아윤기가반드르르하다.행여놓치면엄마를영잃어버릴까,자고새고발에서떼지않으려고어린것이얼마나발버둥치며울었을까싶으니가슴이저려온다.말도생김새도전혀낯선땅에서,오직자신만이통하는한사람이얼마나그립고보고싶었을까.외롭고쓸쓸할때마다구두를어미젖가슴만지듯어루만지고쓰다듬으며,위로받고살아온서러움의기나긴세월이었으리라.거기에켜켜이내려쌓인그리움과소망이저리고운때깔로되살아난것일까.밑창도없이등만덩그런빨간구두가유난스레반짝거린다.

보석같이반짝이는빨간구두한켤레는내생에걸쳐잊히지않는한폭의수채화다.고향집댓돌위에가지런히놓여,흘러간유수한세월에도낡거나빛바래지않는다.언제나그대로내유년을채색하며시도때도없이밤하늘의별처럼되살아나곤한다.

해방되기두어해전,내나이너댓살이나먹었을까.대처로가신아버지는추석전날에야집으로돌아오셨다.가뭄에콩나듯다녀가시곤하던아버지는양복을입고,모자를쓰고,까만가죽구두를신고,한손에는가방을,다른한손에는지팡이를든,시골에서는좀체볼수없는멋쟁이셨다.그때동내사람들은아버지를일러‘하쿠라이’라고했던것같다.

안방에서우리들의인사를받곤들고오신가방에서선물을꺼내신다.언니오빠들에게어떤선물을주셨는지는기억에없지만,막내인내게빨간구두를손수신겨주셨다.생전처음본구두가얼마나요술같이예쁘던지,밤새껴안고보고또보다늦게서야잠이들었던가보다.

쬐꼬만계집아이가추석빔을차려입고빨간구두를신고,혼자대청리냇가바윗돌에걸터앉은앙증맞은풍경이눈에선하다.세상에오직하나뿐일성싶은보석같은구두는신었지,그걸아버지가선물로사다주셨다고자랑은하고싶지,그래서“우리아버지가사다주신구둔데요.큰집에제사지내러갈라는데,구두가젖을까봐내를건널수가없어예.”라며업어다건네줄것을지나가는어른께부탁드린일이까마득히생각날때가있다.

“아이구,하수이댁이(어머니의택호)막내딸내미,말을얼매나야무치게하는지,나중에커서변호사되겠더래이.”온마을에소문이자자하더라고,훗날어머니의웃음섞인말씀을들은적이있다.

그렇게내어릴적동화속에만살아계시는아버지는도시로가신이후,그길로영원히우리곁을떠나시고말았다.아버지와나사이엔대청리냇물이은하수처럼흐르고,천변의바위곁엔빨간구두를신은어린내가있다.아버지란이름이떠오르면빨간구두가등장하고,덩달아아버지모습이따라나오신다.내의식속의아버지는빨간구두이고,그구두는곧내아버지인것이다.

아가에게빨간색예쁜구두를정표인양신겨보낸불쌍한젊은엄마.그딸을못잊어한사코다시찾아헤매다지병이더쳐,입양보낸2년뒤에하늘나라로떠나버렸다고한다.외삼촌과의해후에서엄마의슬픈소식을듣게되었지만,그마음속에여태살아있던어머니라는존재의희망이그녀를저처럼씩씩하고훌륭하게키워냈다싶다.

외삼촌이사준한복을차려입고,처음입어본다며맵시를돌아보고미소짓는모습에그늘이드리워보인다.엄마를찾아함께살겠다던포부로희망에부풀던그녀에게그엄마를영원히볼수없다는현실을수용하기엔얼마나많은날들을견뎌야할까.그래도천상천하외톨이가아니라자신을애타게찾았다는혈연을만났으니그나마소중한존재의뜨거움이크나큰위로가되지않을까싶다.먼나라에가신엄마의처음이자마지막선물이되어버린성경책과보석같은빨간구두가그녀의미래를지켜줄버팀목이될것이란나의믿음엔흔들림이없다.

내유년의수채화에깃든또하나의판타지,조용한시간이면뒤를이어찾아드는동병상련(同病相憐),나는애련한엄마가되어그녀의행복한미래를바라마지않으련다.

화왕산진달래꽃밭으로그를보내고

최홍석

<수필시대>추천완료

부산문인협회,청하문학회,부경대학교문우회회원

부경대학교경영대학교수

좁은언덕배기오솔길을혼자걷고있었다.안개가자욱했다.먼발치에서두세사람이걸어가고있다.그들의뒷모습이보였다간사라지고사라졌다가다시보이곤했다.걸음을서둘렀다.어디로가는지는모르지만배를타야했다.배를타기위하여나는포구로걸어가고있었던것이다.비릿한바다냄새를싣고넘실대는물결이보이는좁은선착장으로들어섰다.그러나바로눈앞에서배가떠나가고있었다.나도저배를타야하는데발을동동굴러도소용이없었다.선미에서있는사람들의모습이유령처럼보였다.소리없이배는안개속으로사라지고나는발길을돌렸다.그리고는다시떠날배를기다리며바닷가를어슬렁거리며걸었다.밀물때인가?바닷물이밀려들어왔다.정강이까지물이차올랐지만바짓가랑이는젖지않았다.작은보트가밀려왔다.검은옷을입은사람들이네댓명내리더니해안가어느집으로들어간다.식당을찾아간것인가?그렇게생각하니나도배가고팠다.그들이어느집으로들어가는지궁금하여뒤따라가는데홀연그림자도없이사라졌다.해안가집들도보이지않았다.안타까웠다.나는왜하나도되는일이없는가?아쉽고안타까운마음으로짜증내다가잠이깨였다.창틈으로이른아침햇살이스멀스멀기어들고있었다.벌떡일어나냉수한모금으로목을축이고는습관적으로컴퓨터를켜고문자메시지를체크하였다.폴더를열자마자소스라치게놀랐다.그분이별세하였다는메일이도착되어있었던것이다.이무슨청천벽력이란말인가!그가죽다니.너무나큰충격에한동안망연자실하여앉아있었다.기어이가셨단말인가!

꼭일주일전이었다.그분이갑자기쓰러져서대학병원에입원하고있다는소식이전해졌다.부랴부랴하던일을접고병원으로차를몰았다.안내데스크의도움받아환자이름만으로찾아간신경외과중환자실.그러나나는그를볼수가없었다.정해진시간외에는중환자실입장이제한되어있었기때문이다.병실입구에서간호사로부터상황설명을듣고는발길을돌려야했다.두주일째의식불명이라고했다.자택으로전화하여그의아들에게서상황설명을들었다.저녁잘드시고TV보다가갑자기속이메스껍다하시며쓰러졌는데병원으로옮겨뇌출혈수술을받았다고했다.의식이돌아오지않아걱정인데원래강한분이니곧깨어나지않겠느냐고했다.틀림없이다시일어날거라고위로하며전화를끊었다.그리고는곧좋은소식이오겠지하며일상의나로돌아왔는데훌쩍일주일이지난것이다.

평소에그분의건강을좀알고지냈던터라걱정이없었던것은아니지만정신력이워낙강한분이라반드시일어나리라굳게믿었다.그러나기다렸던좋은소식이어쩜이리도허무하게슬픈소식으로뒤바뀔수있는지참으로하늘이원망스러웠다.

내가그를만난것은십여년전이다.동료교수몇명과같이황령산기슭의어느추어탕집에점심먹으러갔는데일행몇분과함께먼저와서식사를하였던그가우리것도같이계산하고갔다.그리고얼마안있어서또다른식당에서만났는데이번에도그가먼저지불하고갔다.이건아니다싶어서그의연구실을방문하여감사의인사를하고는답례로나도점심대접하고싶다고청하였다.“있는건돈밖에없는사람인데뭘그런것때문에일부러여기까지왔어요?”그리고는얼굴가득웃음을담았다.그로부터우리는가끔점심을함께하였다.그는늘같은또래의동료교수들과점심식사를하였는데덕분에나도말석에나마그분들과어울리는영광을누렸다.

김쾌덕교수,그는나보다세살연상이고창녕사람이다.직장동료로서가끔점심같이먹는것외는도무지경험을공유하는구석이없는사람이다.전공은물론이고혈연,지연,학연,어느것하나닿아있는것이없다.그럼에도그에게는나를매료시키기에충분한인간적인매력이있었다.세상을바라보는따뜻한시선,이세상모든사람들을다끌어안는포근한마음,때로는스스로종합병원이라고부르며힘들어하면서도자신의삶에대한강렬한열망이있어서보기좋았다.낙선의고배를들고힘들어하는내손잡아주며하마몸상할까걱정해주던그마음이고마웠다.내가추천해준회사의주식사서돈벌었다고만나는사람마다이야기해서나를투자의귀재(?)로만들어주기도했다.

지난해이른봄이었던가?그의제의로우포늪을구경한적이있다.창녕읍에있는전통찻집주인으로자칭우미인이라는분을안내자로내세웠다.그녀는모습이아름다워서우미인이아니라우포늪에미친여인을줄여서사람들이그렇게부른다고했다.우리는우포늪구석구석을다니며자연의아름다움을만끽하고동식물군의치열한생존경쟁에전율하였다.술정리동탑의탑돌이까지마치고돌아오는길에우리는언젠가시절이좋아지면화왕산진달래를한번보러가기로약속하였다.화왕산은가을의억새꽃도장관이지만봄날의진달래도그에못지않다고했다.이제그것은참으로부질없는약속이되고말았다.

또다시차를몰고거리로나섰다.이번에는보훈병원장례식장이다.어둠이내려앉은거리로때늦은겨울바람이온갖쓰레기들을몰고다니며공놀이를하고있었다.스치는차량들의불빛속으로그와함께했던시간들이주마등처럼흘렀다.집이너무가난하여아버지가지고있었던빚을갚겠다고자원하였던월남참전.그전쟁에서총상을입고생사를넘나들다겨우살아난기적같은삶.몸에박힌파편들을다찾아내지못해서날씨만궂으면수시로온몸이저리고아프다고하였다.그런날은누구에게도말못하고오직혼자정처없이떠돌아다닌다고했다.혈당수치가높아서먹고싶은것맘대로못먹고하루도운동하지않으면안되는삶이라고했다.운동이라고해봐야돈들여따로배운것이없으니그냥지치도록운동장몇바퀴걷는것뿐이다.어떤날은동네아줌마들사이를함께걸으며‘꼭이렇게까지하며살아야하는가?’회의가들때가한두번이아니라고하였다.그리고는고혈압,당뇨없는사람들을무척부러워하였다.지난해2월,정년퇴임후로는거의매일도시락싸들고산에간다고했다.그렇게처절하게살았는데어쩜이리도허무하게갈수있단말인가?장례식장그의영정앞에섰다.눈에익은사진이었다.눈물이왈칵쏟아졌다.“선생님,왜이러십니까?우째이리허무하게가십니까?”더는목이메어말이나오지않았다.그냥엉엉울었다.다시는그를볼수없다는서러움이북받쳐올랐다.건강하게살겠다고몸부림치던그의모습이안타까워울고,남기고가는가족들때문에눈도제대로감지못했을그의처지가딱하여울었다.참으로오랜만에엉엉소리내어울었다.

“최교수,화왕산진달래꽃같이못봐미안하오.”

아닙니다.화왕산진달래가저리도아름다운걸요.저기보세요.드라마세트장건너편으로산불번지듯진달래꽃이피어나고있어요.”

진달래피려면아직도멀었는데우리들의언약속에는벌써진달래꽃이피어나고있었다.핑크색서러움이안개처럼아스라이피어오르고있었다.화왕산진달래꽃밭으로그를보내고눈물이범벅된얼굴로나는애타게그의영혼을찾고있었다.저만치화왕산정상이내려다보였다.그는어디에있는가?소월의초혼을목놓아읊었다.화왕산에진달래가흐드러지게피었는데그는가고나는남아이아픈봄을홀로울고있다.

비밀

황원준

<문학예술>추천완료

한국문인협회,부산수필문인협회회원

띠풀,동백수필동인

비밀은그비밀을만든장본인외에는아무도모를때만이비밀일수가있다.그러나타인들의입장에서는비밀은누설이되거나탄로가났을때라야비로소그사실이비밀이었다는것을알수가있다.그러므로비밀은그비밀을만든사람만알고있을때에는표본실의박제에지나지않지만,언젠가알려지는것을전제로할때비밀은생명력을가진다.그런이유때문인지비밀은태어나면서부터제스스로껍질을벗기위해부단히애를쓴다.

부화와탈피를위해인고의세월을견디다가환골탈태하는그날이오면온세상을파다하게날아다니는새나매미처럼언젠가누설되는그날을하염없이기다리기도하는점에서비밀은‘알’같기도하고‘번데기’같기도하다.

비밀의시제는과거다.비밀은누설되기전,과거의사실만이비밀일수가있다.비밀이현재진행형일때는그것이비밀인지아닌지,비밀이있는지없는지조차아무도모르는상황인것이고,또미래에는제아무리감쪽같이지켜온비밀이어이없이탄로가날수도있기때문이다.

비밀은‘남의비밀’보다내자신의비밀일때더욱가치가있다.‘남의눈에박힌들보보다내손톱밑에박힌가시가더아프다’하듯이제아무리위중한비밀이라고하더라도결국한때잠시회자되고말,남의비밀보다는아주경미한일이라도‘나의비밀’이내게더큰영향을미치기때문이다.

비밀도갈무리를잘하면자신의삶에큰도움이된다.나에게수치스러운비밀이있다면행여나그단초가드러날까말과행동을조심하게한다.비밀은사람을자숙하게만들고매사에삼가게한다.또내자신이이미큰실수로인한비밀을숨기고있으므로남의실수에대해서도관대해질수가있는원천이되는것이다.그런까닭에타인에게온유하고겸손해질수있음은물론,세상을바라보는시각이온정적이고긍정적으로변해갈수도있다.

그러나최선을다해그비밀을지키려고노력해보지만언젠가는누설이될것을예상하여야한다.세상에는영원한비밀이란없기때문이다.일단비밀이들통났을때는수습이중요하다.근신하여야한다.그비밀의전말에대해고백하고진심으로사과하여야한다.

하지만그이미드러난비밀로인해전전긍긍할필요는없다.비밀의덫에서벗어나지못하게되면정작그비밀보다는덫에점점옥죄어서자신을그르치게만들기때문이다.비밀이드러났을때는자신과주위가평정심을되찾기까지유구무언이상수다.

비밀은이미있었던일이되기도하고내가꿈꾸는일이되기도한다.내밀하게감추어둔꿈하나가있었다.스물다섯쯤에가졌던파렴치한나의꿈은어떤여인으로부터지독한사랑을받아보는것이었다.참으로치졸하고부끄럽기짝이없는꿈이었다.내가남을사랑하겠다는것이아니라남이나를사랑해주었으면하는것이었으니말이다.그러나어쨌든사람이간절하게원하면‘돌도부처’가된다하더니그비밀한꿈이이루어졌다.

물론그꿈은그렇게터무니없는생각으로부터시작되었기때문에당연히후회스러운결말을보고말았다.다시생각해도얼굴이화끈거리는일이었기에그풋사랑의전말은오래도록숨겨두고싶은비밀이었다.그런데이제와서자꾸만그비밀을발설하고싶어진다.

누구나부러워할지고지순한사랑을받고서도내게는훈장이없다는처연한사실을깨달은후부터시작된증상이다.사랑을통하여남은흉터가깊을수록자신에게더빛나는훈장이된다는것을알게되었다.그것은상처입은진주조개가상처를아물게하기위해내어놓는분비물이영롱한진주를빚어내는것과같다.그럼에도불구하고사랑의순정을수학문제처럼인식하고공식에만대입하려했던내자신의영악함을나는이해를할수가없다.

사랑하는동안,사랑했던사람은늘상처를받는다.그러나그사랑이끝나고나면사랑했던사람에게는사랑의상처는없다.오히려사랑을받기만했던사람에게깊은상처가남는다.내나이스물다섯과그녀나이스물시절,풋풋한그녀의사랑과는달리받기만원했다는것은내가그만큼사랑에이기적이었다는징표일것이다.진정으로사랑한사람은상처가아물고그자리에진주가영롱하여도사랑을받으려고만하는사람은쉽사리상처가낫지않다가마침내흉터로남는다.

요즘에와서유달리자주눈에띄는흉터때문일까.그시절의내가참원망스럽다.그럼에도불구하고나는참철면피다.자꾸만그사랑이그리워진다.그어설펐던사랑은짐짓잊고,다시사랑하는일에최선을다하겠다는것이아니라또다시그런사랑이찾아와주길은연중갈망하고있다는것이아니고무엇이랴.

출근길

정철규

한국문인협회회원

부산수필문인협회회원

문창동인

아침이열리지않는다.거실시계보다10분빠른주방쪽시계는아직여유를부리고있다.내려다보이는거리는한산하고점멸로바뀐채로밤새깜박거렸을신호등이반갑다.건너편더부지런한창의불빛이살금살금거실로스며든다.

베란다로나서는문을열면새벽냄새가들어온다.겨울이면찬기운의공기한모금이볼에와닿지만봄이오면새벽안개가문틈을날름거린다.문은경계다.새벽과아침의사이에서서나와세상을갈라놓고있다.하지만난이아침의문을열채비를한다.보통의아침이지만또다른감흥이날설레게한다.철없던시절멋모르고다니기시작한직장인데,아이들이대학에간지금까지용케도버티고있다.아직갈곳이있다는사실하나만으로도정말고맙다.평범하면서날마다새로워지는아침이라더행복한하루다.

당시시민회관부근어느허름한골목길공터에서작업대만드는일을하던난그일이마무리되기도전에지금의직장으로출근하기시작했다.딱한해만아니,한학기분의등록금만이라도마련해보자는작정을하고들어선직장을지금까지다니고있다.한편으로뭔가해냈다는기분보다‘그동안뭘했을까?’라는자괴감이드는건어쩌면아직도시작해야할그무엇이있기때문이리라.

어느친구와얘기를나누다가한번도직장을옮겨보지못한나자신을낮추어지지리도못난놈이라고말한적이있었다.우물안의개구리이며세상의흐름을제대로읽을줄도몰라속기를밥먹듯한다고도했다.지금의직장을떠난다는건곧굶어죽는다는것과같았다.하지만친구의생각은달랐다.

그친구는공장신설관련일을하기때문에여러곳으로옮겨다녀야한단다.단조일을하는그친구는낯선곳에새로운공장을만들어주고그공장이정상화되면또다른곳으로옮겨서똑같은일을되풀이한단다.어릴때스스로를운랑(雲浪)이라하더니어쩌면꼭어울리는일을하느냐며같이웃었다.한편으로이리저리구름처럼,물결따라옮겨다니는걸즐기는듯도했다.난친구에게그런일을해내려면용기가필요할것이라고했다.이번일이끝나면또어디의일을맡아야할것인가를걱정하고일정하지않은수입으로가족들생계도챙겨야할텐데정말대단하다고했다.보통사람과는달리아주낙천적이거나아니면순간순간대단한결단력을지닌친구의어깨를추켜세우며술잔을권했다.

하지만친구는나의머무름이더큰용기라고했다.너무나선명하게끝이보이는데도참고,세파에휩쓸리지않고꿋꿋하게자리를지켜나가는일이더어렵다는얘기다.세상구경이야마음껏할수는있겠지만생활은엉망이란다.아버지로서항상아이의눈에머물러야하지만그렇지못한것이제일마음에걸렸다고했다.주말에만잠깐다녀가는아버지가어떻게진정한아버지일수있었겠느냐는푸념을늘어놓는다.그친구는이후에도여러번,나의한직장에서의장기근속을두고다른걸포기해야만가능한일이라며진정한용기의한표출이라는표현을서슴지않았다.

엘리베이터단추를누르며또하나의문을열고들어간다는생각으로구두끈을질끈맸다.똑같은일상속으로들어가는문이지만항상새로운문이었다.어제와다르고10년전과도다른하루를열고있다는자부심이어깨를눌러약간의긴장도느껴진다.

그리자주는아니었지만,처음들어섰던문을벗어나려는노력을멈추지는않았다.하지만어떤문하나도제대로열고들어가지는못했다.그때마다나는‘합리화’란아주편리한도구를이용하여들어가지못한이유몇개씩을스스로만들어두었다.나이가들어가면서여러차례문을만났고새로운문이보일때마다언제나문을두드렸다.눈곱만큼의틈이있어내가들어서고난뒤,문안에서나를받아주었다면지금과는또다른아침이나를기다리고있을지도모른다.

그러나난내앞의대부분의문들이그러하듯지금의직장이라는큰문안에모든걸두고잠깐씩들락거릴정도에불과했다.깊이들어가기보다기웃거린게더많았다.야학을하고다시대학을다니고또문학을만났다.그리고지금은산이더가까이와있다.숲을걸으며끝이없는상상의나래를펴는일이일상의유일한낙이다.건강을핑계로틈만나면산으로향하는내가때론엄청난이기주의자구나하는생각도들었다.아이들이자라고가장으로서양어깨를누르는책임감을쉽게떨치지못한탓도있다.다른문안으로들어가서세상을더배워야겠다는생각이있었지만쉽게결단을내리지못했다.우유부단한내성격에도그원인이있으리라.

시동을걸며라디오에서흘러나오는경쾌한음악에몸을맡긴다.하지만생각의굴레는여전히‘문’에머문다.

그러면서서서히,오늘의이출근이신입사원의그것과다르지않음을상기한다.새양복을꺼내입고넥타이까지맸으니더상큼한기분이다.룸미러안으로살짝미소를그려넣는다.한결넓어진이마앞으로내려온머리칼을도로밀어올린다.제법흰머리가보인다.그래도아직은주름이깊지않아다행이다.이런모습을혹시들키지나않을까조바심이생겨아파트주차장안을두리번거렸다.차들이웃는다.

이아침을깨우며나는갈곳이있다.내가해야할일이있고나의,얇지만조금은넓은업무에대한지식이고객에게도움을줄것이다.아침에내가들어설문안에는지금껏나를도와주고내가도와주었던많은동료들이있다.가끔은얼굴을붉히기도하지만술잔을기울이며세상모두를얻은듯고래고래소리를질러도웃음으로답해주는고마운사람들이있다.문안에도세상은있다.

친구가말한‘남아있는자의용기’를다시음미하며주차장을나선다.곧봄이올것같다.

봄은중얼거리며가고

정인조

<예술계>추천완료

부산문인협회회장

수필집<멀지않아어느날>

시집<돌의날개>,<표류하는존재>

시와수상집<약창에비친잔물결>

봄밤도투덜거리며왔다.

잎이나기전에꽃을내뱉는봄꽃,중얼거리며지고있다.바람세게부는날토요일아침금강공원에올랐더니길가장자리에수북수북벚꽃이떨어져쌓였다.하루만참아주면휴일관광객에게뽐낼수있겠는데.내가공원주인인것처럼안쓰럽다.수북이낙화한벚꽃도미안한지입을삐죽거리면서도폴폴날아다닌다.채피지도못하고지고말았으니저도억울할게다.“벚꽃이흰꽃인줄알았는데분홍이네.”옆에가던여자가쌓인낙화를보고던진말이다.벚나무가지들은나더러바람좀자게해달라고손짓하는것같다.굳세게남아있는것만이라도보여주고싶다는듯,내가무슨재주로바람을잠재울수있을까.‘모란이지고말면한해가다가고만다’는영랑의시처럼해마다이맘때면비바람이불어그화려한벚꽃을시기한다.비바람에떨어져버리기엔너무아깝다.며칠만이라도두고보고싶은세상을훤하게밝히는벚꽃이다.그런데기어이밤에빗소리까지들린다.설상가상이아니라‘풍상가우‘라할까.그만눈을감아버렸다.봄밤엔별을보지않아도되는데,긴담벼락을빠져나가는봄이컹컹우는소리를낸다.올봄엔비가오고또오고,누워서도오고서서도오고,실성한봄은참꽃을비틀다가오리목순을꼬집기도한다.그녀도폰을받지않다가아예꺼놓았다가,이제가라?아니면어떻게오라?종잡을수없는그녀는그녀가무엇을흔들고있는지그녀자진도모르는것같다.그러나무언가흔들고있음은올봄날씨와같다.그럴수록나도한껏버텨본다.평행선도필요한선이다.미끄럼타는별보다날아가는맷돌이되고싶다.불감증인가,체위(體位)를바꾸고싶다는걸까,가끔,풀밭위에서돌멩이위로.

경주동리목월문예대학가는시내버스는학생들로만원이다.한주일후토요일이다.보문호를지나불국사가는버스다.버스기사가마이크로안내방송을한다.“학생들오늘벚꽃구경은아주포기하세요,그제까지는굉장했는데간밤에약을좀뿌렸더니꽃자리에잎이돋아버렸어요.”보문단지는벚꽃으로유명하다.보문호를거쳐불국사가는길은덕동호까지끼고돌며길가엔벚나무가잎반꽃반,그것도아름답다.‘허물어지고또허물어지면그게바로생명이에요.’강은교시인이한말이다.오늘문예대학은강은교시인특강이있는날이다.자칭강은교시인팬입니다.그래서궁금한것이많습니다.이어서,60년대후반혜성같이나타난시인으로서울서교수를하지않고왜부산으로왔느냐,강시인의시의주제가‘허무’인데,평론가도그라고본인도수긍하고있는데문학에있어서허무의표현이연약한인간의구원에어떤역할을할수있을까,또강시인의시제목은사물의이름이아니고대부분추상명사로시와의연관성을이해하기힘들고어렵다,시제목은어떻게붙여야하나,라는나의질문에한답이다.“허무는창조적가치다.저녁황혼무렵,아침동이틀무렵,한부분을정지시킨그공간이시의공간이다.빈공간을만드는정지된침묵의미(美),한공간에서다른공간으로빠르게화살쏘듯이동하는과녁을향해포물선을그리며순간순간멈추는공간이시의공간이다.”그순간을화산이폭발하듯언어의폭발이있어야시가된다.시를읽는것은두개의공간을연결하는것이다.쓴사람의공간과읽는사람의공간이감동으로만나야,우리들속에잠행하고있는소리를끌어내야지,한번읽고말면좋은시가아니다.다시읽어보는시가좋은시다.괴롭다,외롭다징징거리지말라,말을많이하지말라,제목은구상과추상이잘합쳐지는것,자연스럽게제목이나오더라.강은교는신촌꼭대기달동네의신혼시절을잊지못한다고했다.

또다른특강에서송기원소설가는말한다.

부모,자식,선생말잘듣는착한사람이치매잘걸린다.술잘먹고욕잘하는사람은치매안걸린다.바람많이피워야좋은작가된다.세계명작대부분이간음,아니면근친상간하는내용이다.그시대의도덕으로는쓰레기인간의이야기가세계명작이다.죄와벌,이방인,악령등모두비도덕이야기다.남에게욕먹는이야기안쓰려니까좋은작가가못된다.남에게잘보이려는얘기쓰면좋은작가못된다.나도나쁜생부이야기썼더니동인문학상주더라.대리만족,나쁜이야기마음껏낙서하듯써라.가장더러운데보석이나고가장깨끗한거다.눈치보지말고쉽게,이야기하듯써라.무의식적으로써라.의식은1%밖에안된다.그의식이고정관념이다.아버지어머니가가라는데로가면안되고반대쪽으로가야한다.자기만의시선이있어야,남의문체는아무리아름다워도필요없다.자기속에잠재한더러운콤플렉스,무의식을뱉어내라.이콤플렉스가나쁘게올라오면병이되고좋게올라오면예술이된다.진실은무의식에서나온다.관습과풍습,도덕등모든걸벗어나야좋은작품이나온다.그리고사물을한시간만바라봐라.

아,그녀는어디서초록을구걸하는걸까.산(山)에감길분홍보다아름다운초록을.벽은두꺼워하늘은높아아직이러고있다만,오줌누고어디쯤엔가저장된춘화나꺼내심장을파닥거리게해야겠다.지랄같은봄밤을위해.

물러나기와벗어나기

정약수

본명:정진농

<수필춘추>추천완료

부산대학교영어영문학과명예교수

한국문인협회,부산수필문인협회회원

에세이집<이카러스의새로운비상>,<발자국을정리하다>

지난2월말에나는31년간을재직해왔던대학에서정년퇴직을했다.정년퇴직을전후해서만나는사람들마다의인사가대개“서운하시죠?”,“시원섭섭하시겠습니다.”,“아직더하셔도될터인데….”등이었다.간혹어떤사람은“뭐라고말씀드려야할지….”라며꼭무슨안좋은일을두고차마말하기가곤란하다는듯말끝을흐리는경우도있었다.그럴때마다나는“아,아닙니다.”라거나“시원하기는해도섭섭하지는않습니다.”혹은“그만큼했으면됐지,뭘더하겠습니까?”라며웃었다.내이런대답은괜한인사치레가아니라내솔직한심정을그대로표현한것이었다.

정년을맞는사람들의태도는대개두가지형태로나타나는것같다.한가지는지금까지재직해오던직장을물러나는데대한아쉬움과서운함또는상실감과함께정년후에대한우려나불안감을갖는형태요,다른하나는지금까지직장이라는제도나조직의틀속에갇혀생활해오다가이제는그것을벗어나는데대한해방감과홀가분한마음과함께정년후에다시한번새로운삶을살아볼수있다는기대와희망으로그것을받아들이는형태가그것이다.나의경우는물론후자이다.그러니아쉽다거나,서운하다거나,아직건강이괜찮으니더하고싶다거나하는마음이들이유가없다.

그두가지형태를여기서나는편의상‘물러나기’와‘벗어나기’로명명해본다.물러나기는정년퇴직을수동적으로받아들이는방식이다.그것은자신의의지와는상관없이,또는자신의의지와는반대로제도나법률이나규정에의해서어쩔수없이맞이하게되고,마지못해서자리에서물러나는형태이다.반대로벗어나기는비록그것이제도나법률이나규정에의한것이라하더라도자기스스로그것을긍정적으로,자발적으로소화해서받아들이면서그것에능동적으로대처하는방식이다.그럴경우벗어나기는정년후의삶을제도적틀에서벗어나보다더새롭게열어나갈수있다.

다니던직장을도중에본의아니게물러나야하는건불행한일이다.그럴경우그것에대한마음의준비나현실적인대처도제대로안되어있기가십상일것이고,물러나고난후의현실적인문제도걱정이아닐수없을것이다.권좌(權座)의경우도마음편히물러나는것이쉽지는않을것이다.권력에대한끝없는욕망과미련때문에도그럴것이고,물러나고난뒤에오는상실감이나허무감,그후마주치게될배신감같은것도삭이기가쉽지만은않으리라.그러나나처럼대학교수로서다른어떤직종보다정년이늦은편인데다이미예정되어온일을가지고새삼스레그것에대해서아쉬움이나상실감을느낄이유가없다.만약에그렇다면그것은과욕이거나생각이부족한데서오는소치일것이다.

이지상에서사람이차지하는모든자리나지위는다한시적이지,영원한것은없다.직장의자리든,권력의자리든,명예의자리든,그어떤자리든지간에어떤특정인에게영원히주어지지는않는다.자리뿐아니라생명역시마찬가지가아니겠는가.생명역시이세상그어떤사람에게도영원히주어지지않는다.그러고보면자리와생명에는공통점이있는것같다.생명체역시살아있는동안이세상어느한자리를차지하고있는것이다.그러다가언젠가는그생명의자리마저비우고떠나야하는때가온다.만약어떤생명체가이지상에서영원히산다고가정해보자.어떻게되겠는가?

20세기의가장위대한시인의가장위대한시로알려져있는T.S.엘리엇의<황무지(TheWasteLand)>에는다음과같은제사(題詞)가나온다.

한때나는내눈으로새장속에매달려있는쿠마의무녀(巫女)를보았는데,아이들이무녀에게다가가“무녀야,너는무얼원하니?”라고묻자,무녀는대답했다.“나는죽고싶어.”라고.

그리스신화에의하면,쿠마의무녀는예언의능력을갖고있었는데,그로인해아폴로신에게서영원한생명을허락받았지만,영원한젊음도함께달라는요청을깜빡잊어버렸기때문에차차늙고쪼그라들어새장에갇히는신세가되었다.더는예언의능력도없어지고아이들의놀림감이되고있는무녀에게삶은무의미한고통과수치일뿐이다.이는언젠가는죽어야하는생명이죽지않고계속이지상에머물러있을때에어떤모습이되는지를상징적으로암시해준다.

얼마전돌아가신법정스님의산골(散骨)이그분이한때머물렀던송광사인근불일암후박나무밑에묻혔다고한다.그분의수상집중하나인<버리고떠나기>라는제목처럼그분은평생을버리고떠나는삶을살아오시다가이제는이세상에서자신의혼이깃들었던육신마저도그렇게미련없이버리고열반에드셨다.그법정스님의수상집<버리고떠나기>에는다음과같은구절이나온다.

만약나뭇가지에묵은잎이달린채언제까지나떨어지지않고있다면계절이와도새잎은돋아나지못할것이다.새잎이돋아나지못하면그나무는이미성장이중단되었거나머지않아시들어버릴병든나무일것이다.소나무향나무대나무와같은상록수도눈여겨살펴보면계절이바뀔때마다묵은잎을떨구고새잎을펼쳐낸다.늘푸르게보이는것은그교체가낙엽수처럼일시적이아니고점진적이기때문이다.

법정스님은자연의이러한순환의질서에서인간도예외가아님을설파하고있다.인간의생명역시넓게보면자연의일부로서자연의순환의질서에따라삶과죽음,태어남과떠나감을반복한다고보아야할것이다.삶과죽음같은근원적인문제가아니라도우리가살아생전에누리거나차지하고있는세속적인지위나자리역시마찬가지이다.그누구도자신의현재의지위나자리에영원히머물러있을수는없고,머물러있어서도안된다.그러므로정년퇴직이란어떤의미에서그러한순환의질서를제도적으로구현한것이다.그렇다면그자리를물러나거나떠날때의자세가어떠해야할것인가는해답이주어진셈이다.

‘물러나기’아닌‘벗어나기’,이것이그해답이다.수동적으로물러나는것보다능동적으로벗어나는것이다.그래서다시한번새로운시작을준비하는것이다.누군가자신의인생을태어나서자라고교육받고직장을갖고결혼을해서자립하기까지를일생(一生),직장생활과가정생활을병행하며자식을낳아기르고교육시키며살아가다가직장에서정년을맞는시기까지를이생(二生),직장에서은퇴한이후를삼생(三生)으로구분하여삼생이야말로진짜자기삶을꽃피울수있는황금의시기라고한것을보고나도공감을표명한적이있다.

금년봄,나도이제이생을마무리하고,삼생에접어들고있다.또한번새로운삶의출발선상에서있는셈이다.시작은언제나긴장되고가슴설레는법이다.이시작이어쩌면내삶의총체적인마무리단계로접어드는시작인것도같다.다시한번법정스님의글한구절이떠오른다.‘삶은순간순간이아름다운마무리이자새로운시작이어야한다.’

허드슨강변의라과디아공항

김훈

<문예한국>수필추천완료

<새시대문학>시추천완료

전해운대문인회회장

한국문인협회,부산문인협회,부산수필,영호남수필,형산수필,전북수필회원

수필집<하얀손수건>,<판문점세관>,<살기싫은천국살고싶은지옥>등

노인이빵을훔쳐먹다가재판을받게되었습니다.

“늙어가지고염치없이빵이나훔쳐먹고싶습니까?”판사가법정에선노인을향해한마디를던졌습니다.이에,노인이그말을듣고눈물을글썽이며“사흘을굶었습니다.그러다보니그때부터아무것도안보였습니다.”고대답을했습니다.

판사가이노인의말을듣고한참을고민하더니,“당신이빵을훔친절도행위는벌금10달러에해당됩니다.”라고판결을내린뒤방망이를땅!땅!땅!쳤습니다.

방청석에서는인간적으로사정이정말로딱해판사가용서해줄줄알았는데….해도너무한다고여기저기서술렁거리기시작했습니다.그런데아니이게웬일인가.판사가판결을내리고나더니자기지갑에서10달러를꺼내는것이아닙니까?그리고는다음과같이말하는것이었습니다.

“그벌금은내가내겠습니다.내가그벌금을내는이유는그동안내가좋은음식을많이먹은죄에대한벌금입니다.나는그동안좋은음식만을너무나많이먹었습니다.이노인앞에서참회하고그벌금을대신내어드리겠습니다.”

이어서판사는“이노인은이곳재판장을떠나가면또다시빵을훔치게될것입니다.그러니여기모여방청한여러분들도그동안좋은음식을먹은대가로이모자에조금씩이라도기부해주십시오.”라고했습니다.

그러자,그자리에모인방청객들도호응해십시일반(十匙一飯)호주머니를털어모금에응했습니다.그모금액이무려470달러나되었습니다.

이재판사실이알려지자그판사는유명해져서나중에뉴욕시장선거에당선되어시장을역임하게되었는데.그가바로라과디아판사라고전합니다.그러나아깝게도이분이뉴욕시장으로재직중비행기사고로순직하셨습니다.

그러자뉴욕시민들은시내에가까운허드슨강변에공항을건설하여매일수많은세계여행객들에게편안하고,편리한라과디아공항을이용케하면서이분의이름‘라과디아’를기리고있다고합니다.(좋은글중에서)

2010년6월2일서울,부산,인천등지역단체장과교육감,지방의회의원을선거를통하여선출하였습니다.당락의희비와열풍은지나갔으나,당선자에게는축하를,낙선자에게는위로를보냅니다.그러나지난광역단체장들중에재임중에불의의사고가아닌공직비리와연관되어자살로공직을먹칠한사례,재판에회부되어시민을실망시키고공직을떠난사람들을보아온불행한국민이이땅의민초들입니다.아름다운인간뉴욕시라과디아시장.12년간3기를연임하고도한푼의세비도받지않은도꾜시장에게재연임을열망하며그리워하는도꾜시민들을옆에서보노라니부럽기도합니다.

제발정해진세비는써도좋으니도덕적해이없이오직국리민복(國利民福)을위한성실한공직자상을보여주었으면싶습니다.그리고그뒷모습을보고자라는당당한우리의젊은이가있기를바랄뿐입니다.선거철만되면온갖감언과수많은선거공약을남발했던정치인과지방단체장들에게그래도도덕적성공을기대해봅니다.

논어에‘불천노불이과(不遷怒不二過:노여움은옮기지말고두번다시과오를범하지말라.)’라는말이있습니다.현재벌어지고있는정치적반목과갈등은조선시대와비슷한유형인듯합니다.모이면반목(反目)과불화(不和)요넷만모여도파당(派黨)으로패싸움연속이니말입니다.이제일방(一方)동행(同行)하는배려와협력정신이이시대의화두가되기를기원합니다.

이름

심득순

부산수필문인협회회원

한국경제인연합회‘근로자문학상’2회수상

고요하고투명한여름밤이었다.하늘에는별이가득하고검은바다너머로불어오는미풍에한없이행복한시간,잠깐은그랬다.나의수필부산문학회입회를앞두고,문학의대가(?)와조촐한자축연을마련한자리였다.

영도다리아래포장마차에서막걸리한잔을사이에두고,꿈속에서나그려보던시간과공간을초월한또다른세상속,분위기에빠져들었다.단비같은담소가오고갔다.나를추켜세우는말들에정신이아득해졌다.사람에취하고문학에취하고대기속의향기에빠져들었다.그동안글이랍시고이곳저곳에끼적거리다가‘수필’이라는동인지에수필가로등단해정식회원으로입회할수있는기회가마침내찾아온감격에,마음이밀물처럼범람했다.이벅찬순간이경이롭기만하였다.

“득순이라는이름이,득아라면좀더낫지않을까요?”

무심코내뱉었을마주앉은그의이말한마디에일순간,한여름밤의짧은꿈은무참하게깨져버리고화들짝현실로돌아왔다.여류수필가이름으로는어쩐지거리가멀어보였던모양이었다.당연히나를생각해서한말일것이다.극과극의양면에서잠시허둥거렸다.다된밥에재뿌린듯곤혹스러웠다.부활의시간은가고수난의시대가도래됐다.바람빠진풍선처럼마음이움츠러들었다.넝마조각처럼너덜너덜해진고약한기분이었다.나의이름에관한한안좋은추억이고개를불쑥내밀었다.

대학진학반과사회취업반으로나누어진교실에역사교과수업시간을알리는종이울렸다.책상위에교과서를펼쳐놓고,지난수업시간에숙제로내어준,조선왕조왕들의시호를아직다외우지못한나는속이바짝바짝타들어가고있었다.최초의태조왕부터마지막27대순종왕까지달달외우는짝이부러웠다.“심득순!일어나서외워봐.”애써선생님과시선이마주칠까조마조마마음을졸이던중에딱걸리고말았다.“태정태세문단세예성····”,“자리에앉아!얼굴은곱상하니참하게잘생겼는데이름은촌스럽게득순이가뭐냐!”더듬더듬우물쭈물,제대로답을말하지못한나에게선생님은내이름을빌미로냅다고함을내지르며야단치시는게아닌가.60여명의급우들앞에서망신살이단단히뻗쳤던날이었다.칠판에내이름석자를분필로크게써놓고,갑자기작명가로돌변하신선생님특강으로끝나버린수업시간.내이름때문에엉뚱한방향으로빗나간수업시간은나의이름에멍에를덧씌운안좋은추억으로남겨졌다.

여고를졸업하고곧바로취직을해서회사에근무하던때.왼쪽가슴에명찰을달고사무실에앉아업무를보다보면,외부에서들어오는거래처직원들을상대해야해야하는일이많았다.내자리위에서류들을내려놓고서,내얼굴과유니폼에달려있는명찰에찍힌이름을번갈아살펴가며곁눈질하는,그들의심상치않은표정을읽어야할때가있었다.아예심청이,심순애라고마음내키는대로짓궂게불러대는바람에씁쓸한기분을억누르기힘들었다.

첫사랑이었던남자가육군장교였던관계로우리는교제중에수백통의편지를주고받았다.그의편지글첫머리에는언제나‘사랑하는순아!사랑스러운나의순아야!’로시작했고‘순아!그럼이만안녕’으로끝을맺곤하였다.그에게서나는항시순아로통했다.

득을많이보고순하게살라고득순이라고아버지께서작명을해주셨다.3남1녀외동딸인내이름이형제중제일못났다고투덜대기도하고원망도많이했다.부르기좋고듣기좋은수많은예쁜이름들속에왜하필투박하고못생긴이름을지어주어,짓궂은사람들로부터짓이겨지는감정을때때로겪어야하는가싶어서한때개명을꿈꾸기도했다.법이바뀌어개명도쉽게하는모양인데나도이때를틈타대열에동참해서내맘에쏙드는예쁜이름으로바꾸어볼까유혹이생기기도하였다.지나간학창시절에친구들과함께,내또래의남학생들과어울려다니면서‘윤희’라는가명으로우쭐대던철없던날들도있었다.

그러나나는누가뭐라고하든내이름을소중하게여겨주고싶다.이름에관한한고개숙인여자로살아왔을지언정,누구보다더내이름에대한가치를높이사고싶다.아버지말씀대로살아오면서알게모르게득(得)을많이본것같다.인복이많았다.예를들자니너무많다.몇가지간추려보자.학창시절A형간염에걸려건강에적신호가나타난적이있었다.병원에입원해야할만큼병세가위중한데도병원에입원할형편이못되었다.다행히이웃에아는의과대학생이있었는데그의주선으로개원한형의병원에서무료로링거를맞으며매일통원치료를하고건강을되찾았다.

학교를졸업하고30대1의높은경쟁률로입사하고,부모님도움없이도혼수품을장만해서결혼식을올렸다.그리평탄한결혼생활이었다고말할수는없지만딸과아들,남매를낳고아이들을통해지난날내꿈은성취됐다.피할수없는위기상황도많았다.육교를내려가다가앞으로꼬꾸라질뻔했고,백화점에스컬레이터에신발이걸려뒤로넘어질찰나에빠지기도하고,달리는자동차와정면으로부딪힐위험한고비도몇차례있었다.집이화마에휩싸일아찔한순간을맞닥뜨리기도했다.그런데그럴때마다위기를모면케하는구세주가나타나서피해를입지않고무사히넘어가곤했다.그냥내앞으로말없이스쳐지나가는삶의한현상일뿐이었지한번도위험에직접빠진적은없었다.어디선가누군가가항상나를지켜주고도와주었다.그모든것이아버지가지어주신이름덕이아닐까싶은생각이들었다.한평생평탄치않을딸의앞날을예견하신아버지가인복많은운명으로좌우하신것이리라.

‘나이오십에다다른지점은오르막길이끝나고내리막을앞둔고갯마루’라고동길산시인의수필속글이말해주고있다.오십하고도몇살더먹었으니이제는이름의굴레에서벗어나나잇값을해야할고갯마루내리막길을지나가고있다.갈길도바쁜데이름에연연해서정신을흐리는일이없도록마음을다독거렸다.앞으로이름에관한한주눅이들지않겠다고결심을굳혔다.

손자들의새순같은보드라운입술사이로불쑥불쑥터져나오는말.어제도오늘도끊임없이어눌하고편하지않은발음들이내귓속으로파고들어와웽웽거렸다.할머니이름은“시임드어억수운.”

(2009.11.12.)

청소

심득순

경인년새해도다급하게지나가고있는날이다.하루가눈코뜰새없이,빠르게지나가고있는날이다.그런날,새아파트로이사한딸네에네살배기손자를돌봐주려고간다.딸이직장으로출근한사이,슬슬발동이걸리기시작한다.딸의취향에따라깨끗하게잘정리가된집인데,어쩐지내눈에는성이차오르질않는다.정초부터이어진맹추위에감기몸살기운이뼛속깊이들어앉아있는나.오늘만큼은햇볕잘드는뜨뜻한방안에서,그저조용히누워만있겠다고작정하고간날이다.만사를제쳐두고이불밑에서푹쉬고싶은마음이간절할뿐이다.손자는새로산장난감을가지고노느라외할머니에게눈길도마주치지않는다.성가시게치대지도않고혼자잘놀고있으니,나는딸의책장에서평소읽고싶었던신간서적이나한권꺼내와방바닥에편안하게드러누워서천천히읽기나하면,그야말로호사를누리는만족한시간을보낼수있을것이다.

남향으로나있는아파트큰유리창이발단이다.햇빛이지나칠정도로쏟아져들어와눈이부신다.온몸을찔러대는정오의햇살속으로먼지가군락지를이루어폴폴거린다.참아야지,오늘은정말참아야지하면서도잠깐의휴식도참지못하는내마음은몸과다르게,나를불러일으켜세운다.매서운칼바람도마다않고창문을활짝열어놓고청소를한다.내가사다둔,공기정화에좋다는산세베리아,안스리움,네마탄샤스이름을외기도어려운몇가지화초들에게물을주는것을시작으로끝을알수없는작업이진행된다.혹아파트주민이라도엿보게된다면청소대행업체에서나왔나착각할정도로,현관문할것없이문이란문은다열어놓고청소를시작한다.고층아파트통로와창문으로빠져나가는집먼지가속을후련하게풀어주며잘도사라진다.내바람에취해잠에서깨어나듯,남아있는지저분한흔적들을초고속청소기속으로싹싹집어넣는다.물걸레를꼭꼭씻고짜서닦고또닦는다.파릇파릇,물기가오른화초와눈부시게말끔한집안이상쾌해서저절로흥이난다.넓고깨끗한아파트에서거주하는딸네에서대리만족중인나는세상부러울것하나없다고생각한다.한바탕요란하게청소를끝내고나니,칼칼해진목구멍에서따끈한차한잔을재촉한다.끓인물에노란국화꽃몇송이동동띄운다.국화향기가사방으로번진다.찻잔을들고볕좋은창가,베란다의자에가앉는다.국화차한모금에피로가가신다.심장박동마저휴식중,잠잠하다.이곳이별천지,무릉도원이따로없다.

퍽!퉁!마른하늘에웬날벼락이.아!이럴수가,별안간나에게로빛의속도와도같은벼락이왕창떨어진다.천지를뒤흔드는천둥소리가밤낮을바꾸고,주먹만한별이내눈앞에무더기로쏟아져내리는기상이변이돌발한다.핑핑눈알이돌고머리가터진것같다.꿈인지생시인지구분을할수가없다.내가공들여한일에희열감을느끼며자부심에도취되고,그윽한국화향기에빠져서깜박했었나보다.바로머리위에떼어둔창문이있었던걸.그새정신줄을놓고서벌떡일어났다가,단단한창문모서리에내머리통이맞장을떴던것이다.하루가다르게늘어가는건망증,치매를향한전조증일까?

새해벽두에치른액땜이라고자위하기에는너무가혹하다.창문밖,세갈래고가다리위로한가하게자동차들이줄을잇고,그너머감만부두,또그너머너른바다뒤로오매불망늘그립고정다운영도봉래산자락이어쩐지낯설다.누가일부러시켜서한일도아닌데,어느때부터시작된집안청소에대한집착.사소한집안일에목숨바친,지난시간들에대한대가라고보아넘기기에는상처가너무크다.극심한통증에다정신도얼얼하고,청소편집증에걸린내가한심해서몸서리가나도록울화가치밀어오른다.집으로돌아와저녁내내애꿎은남편에게툴툴거린다.

청소!‘더럽거나어지러운것을쓸고닦아서깨끗하게함’이라는낱말풀이가아니더라도청소,그말을생각만해도이제는머리가지근거린다.

오랜세월동안,하루에도열두번씩집안청소를해오고있다.온집안구석구석들쑤셔서정리하고,빗질하고물걸레로빡빡문지르고,행여이부자리나입던옷가지에집먼지,집진드기라도붙을세라집밖으로들고나가숨이차도록털어댄다.그런모습을자주대면하는이웃은그런내가유별나다고핀잔을주기도하고,더러는부지런하고깔끔한성격이보기좋다며칭찬을아끼지않는다.그러거나말거나청소에굶주리고한이맺힌듯,날이면날마다털고,쓸고물걸레로닦아내기를반복한다.방바닥에떨어진머리카락한올도그냥내버려두지못하고,사정없이유리테이프에대고찰싹붙여버린다.쫙쫙,유리테이프소리가담을넘어간다.마치결벽증환자라도된듯,매일매일시간이닿는대로집안을치우는데사력을기울인다.깨끗하고청결하게잘정돈된방안을보는것만으로도,안정된마음을얻게되고,기분이좋아진다.반질반질,윤기가흐르는장롱이며가재도구는심장에든화기를잠재우기에효과만점이다.심기가몹시불편할때마다대대적으로벌이는집안청소에는엄청난가속도가붙으며,나를청소의달인으로변신시키곤한다.마치하인을부리듯내몸을혹사시킨다.그래선지나이오십줄에들어서고부터,조금씩몸이부대껴오는것을느낀다.손가락,팔,다리,어깨,허리,무릎관절마디마디에통증을알리는신호가지속적으로감지된다.

엄동설한보다무시무시한시집살이에이골이난적이있다.삼대독자외아들과인연을맺고,시부모님과한지붕밑에서살던때다.알코올에절어사는시아버님의주사로인해마음상한날이갈수록늘어간다.달콤한신혼재미와행복하고단란한가정을꾸리려는소망은일찌감치포기하고살던세월이다.나긋나긋하고싹싹하지못한내성격도가정불화에한몫거든다.시아버님마음에들게끔며느리로서비위를잘맞춰드리지도못했던나이어린새댁시절.험악한집안분위기는두근두근불안증을키운다.답답하고암울한현실속에서탈출구를모색하던어느날,청소로우울한기분을해소시키는나를발견한다.청소는내마음속에가득쌓인먼지까지몽땅쓸어가주던동지.그때부터청소와의동침은피할수없는나의숙명으로받아들이게된다.

뜻하지않은불상사로인하여저녁내속이부글거린다.뇌진탕이나뇌출혈이염려되어오늘밤,쉽사리잠이올것같지않다.이제는정말몸을사려야할때가왔노라고생각한다.잡다한생각이꼬리에꼬리를물고들어온다.두어달전좌천동도로위에지천으로깔려있던노란은행나뭇잎이떠오른다.

서걱거리는낙엽정원위에서서시내버스를기다리던중.은행나뭇잎들이노란물보라를일으키는포도위로초겨울햇살이가만히내려앉고,나는그곳에서발자국을찍어대며버스가도착할때까지잠시머뭇거린다.이도시에서장렬하게퇴임식을치르는낙엽들의신선한감각이발바닥을타고올라와온몸을달군다.좌천동우체국앞,도로가에노란물결이차고넘친다.내가낙엽정원에서서잠시여유롭게몸을담그고감상에젖어있을동안,저만치노란작업복차림의미화원아저씨는떨어지고나뒹구는낙엽들과씨름중이다.누군가는거리에하염없이흩날리는낙엽에서센티심리를맛보고,또누군가에게는한낱지겹고고달픈노동거리로전락할뿐.낙엽은청소리어카에서생명줄을놓고,나는등골이시리도록미화원빗질소리를귀에담고서있다.그날,미화원아저씨빗질속에어쩌면낙엽과함께쓸려들어가고말았을,집두고나온달팽이열댓마리와겨울식량을조달하던부지런한일개미들생각에마음이쓰인다.

그동안,잘못된나의지나친청소습관으로인해무고하게희생된수많은집개미와바퀴벌레까지이제야내마음속으로들어와안긴다.고군분투!나의주특기,청소는언제까지이대로계속될것인가?

(2010.1.11.)

올레길에서

황선영

<문예운동>추천완료

국제펜클럽회원

동의대학교사학과명예교수

수필집<산바다그리고친구>,<먼뫼산책>

나는지금친구들과함께제주도의올레길을걷고있다.서귀포동쪽의민물과바닷물이만나는쇠소깍에서출발하여약14Km떨어진외돌개까지,이른바제6코스의올레길을여기말대로‘놀멍쉬멍걸으멍’나아가고있는중이다.3월에도하순이라지만아직바람은차고멀리한라산의꼭대기는흰눈을이고있다.그래도돌담너머드문드문보이는희거나붉은매화꽃은더없이정겹고,발아래푸른바다와먼수평선에,움츠렸던마음이한껏펼쳐진다.제주의올레길은처음부터이처럼다정하게맘속으로다가든다.

오늘이렇게맑은날에새봄의향취를느끼면서,들녘의돌담길사이로걷는발길이더없이경쾌하다.파도가하얗게밀려드는해안선,그리고코발트빛보다더짙은물결과부드러운윤곽의저섬들….이아름답고한적한해변과나란히해서,아스라이펼쳐있는올레길을한없이걷고싶다.오늘같이이른봄볕아래서만이아니라여름날초저녁달빛속이나,가을철에어깨너머한라산을바라보며걷는걸음도행복하리라!배낭을멘채마주치는나그네의표정이너무나편안하다.이럴때는함께걷는동행조차짐스러운것같다.

제6코스올레길은서귀포시내를통과하는길임을특색으로한단다.처음에야아름다운바다와아담한찻집이있고명승지로이름높은폭포도있었지만,두시간도채못가복잡한시가지와자동차소리로분위기가달라진다.그래도굳이이코스를택한것은나날이성장하여이제는부티마저풍기는서귀포를다시보고싶어서다.그리고말로만듣던이중섭화백의피난시절살던집과미술관을찾아가보기위해서다.아담하게차려진미술관에서.그가당시일본에떨어져살고있던아내와아들에게보낸구구절절그리움을담은편지가읽는이의가슴을에운다.이제는중년을넘긴그아들이몇해전에제아비의가짜그림을들고서울에나타나다니…!그시절의가난을아직떨쳐내지못한탓일까?

다시바닷가로내려가몽돌밭을지나자저만치홀로솟은바위섬외돌개가보인다.오랜만에보는외돌개는건너편이공원으로새단장되어처음보듯낯선모습이다.가난한섬나라제주는이제옛말,가는곳마다여유가넘치고있다.여기가올레길제6코스의종점이자,다시월평포구에이르는제7코스의출발점이란다.현재까지열린16개코스의올레길가운데서가장찾는이가많은길이바로제7코스라하는데,어제우리가한라산에올랐을때몇몇친구들은등반대신저길을답파(踏破)하고지금은자랑에열중이다.해서오늘우리들의걷기는여기가끝이된다.이제는추억속에잠길오늘의올레길을빠져나오면서자신에게물어본다.“언제든또올레?”,“그럼,와야지!그때는혼자서….”

얌생이의추억

황선영

얼마전등산하다다친발목을치료하려고근처의한한의원을찾은적이있었다.접수창구에서절차를마친다음간호원의안내를받아병상에누워환부주위에몇대의침을맞고있을때,마침수간호원으로보이는한여직원이일일이병상을돌아다니며사탕을몇알씩나눠주었다.이윽고내차례가되어내몫의사탕을꺼내는순간내가무심코던진말,“난괜찮아요,아까창구에서벌써몇알얌생이했거든요!”이에그수간호원이빙그레웃더니,“사탕그릇언제보셨어요?참손도빠르시네!”하고재치있게받아넘기는것이아닌가!

말씨의억양으로보아그녀는이고장출신이아닌것같은데,용케도부산사투리‘얌생이’를잘이해하고있는듯했다.아마도중년은더되어보이는그녀의연륜속에서자연스레해득한말뜻일게다.반면에옆에서거들고있던,이고장출신인듯한20대의간호원은그말을알아채지못했다.아니‘얌생이’가염소를가리키는경상도말인것조차도잘모를성싶었다.그도그럴것이오늘에와서염소를얌생이라부르는젊은이는아무데도없으니까….

한데잊혀져가는그‘얌생이’가우리말사전에버젓이올라있다는사실을아는사람은더드물것같다.다만이경우사전의풀이말인즉,엉뚱하게도‘어떤물건을조금씩슬쩍슬쩍훔쳐내는것’이라되어있어실소를자아내게한다.이어사전에서는,그렇게훔쳐내는사람을‘얌생이꾼’이라부르고있고,그러한행위를하는동사(動詞)형태를‘얌생이몰다.’라고설명하고있다.

아니!그다정한토속말‘얌생이’가이처럼도둑질로바뀌다니…!얌생이를몰고다니던그순박한얌생이꾼을함부로도둑놈이라부르고…!이런망발에대해,당장핏대를세워항의라도해야옳을일일지모르겠다.그러나한갓경상도사투리‘얌생이’가이처럼엉뚱한뜻으로나마변전(變轉)되어사전에까지등재된사연을더듬어볼때,오히려지난한시대에이땅이겪은정경(情景)과아픔이새삼고향에대한아련한향수처럼가슴속에서피어오름을느끼지않을수없다.

지난1950년에발발했던한국전쟁은우리의삶을송두리째바꿔놓을만큼큰변화를가져다주었다.그런와중에서한편으로는북한공산군의침략에밀려수많은피난민이부산으로모여들었고,다른한편에서는그공산군을막아낼미국을위시한UN군이또부산항으로상륙했다.이에따라부산항구는미군의보급기지가되어나날이산더미같은군수물자가하역되었고,이물자들은자동차나철도를통해밤낮없이북방으로공급되었다.

별안간엄청난인구가유입되고피난정부가들어서긴했으나,당시부산으로서는더불어먹고살아갈생산기반시설을갖추지못한상태에머물러있었다.모든것이모자라고아쉬운마당에서,쉴새없이들어오고실려나가는군수물자에눈길이감은오히려자연스런귀결일지모른다.먹을거리를위시해서값진물건을태산같이쌓아둔저미군의보급창과물자를실어나르는철도역주변은배고픈부산사람들에게미다스왕의보물창고나마찬가지였다.

‘어떤수로든저곳을털어서라도살아갈궁리를해보자!’,‘그런데고양이목에방울을어떻게달것인가?’,‘옳거니!아마도염소,즉얌생이가그방울이되어줄지도모르겠다!’이래서몇마리방목하는얌생이를,허술한경비를뚫고야적장(野積場)안으로내몰아보았더니결과는대성공이었던모양이다.얌생이몰이를핑계로보물창고잠입에성공한그얌생이꾼이그날거둔횡재는이루말로다할수없을것이다.

그다음날도또그다음날도이런얌생이몰이는계속되었고,입소문을타고서유사한수법의모방이점차확산되어갔다.당시초등학생이던우리또래에게도,‘부산진화차밑에살살기는얌생이꾼…’이란노랫말은더이상귀에설지않았다.하지만미군들이그얌생이꾼들을좀도둑으로알아차리는데는별로오랜시간이걸리지않았던것같다.경비가삼엄해졌고여기저기단속이강화되었다.‘얌생이’가도둑질을나타내는말로화한연유는바로이런데에있었다.

그렇거나말았거나그때의얌생이꾼들은별로죄의식도없이자신의성공사례를무용담인양부풀려떠벌이기를좋아했고,듣는이들은그꾼들을마치아라비안나이트속에서,용감하게도‘열려라참깨야!’를외치며40명의도둑들이숨겨둔보화를되가져온알리바바만큼이나부러워하기도했다.

얌생이꾼들은점점조직화되어진화된방식으로교묘히미군부대에서물품을빼내었고,차츰분야별로전문화되기도했다.이에시내도처에서그들이공급하는물품에따라,깡통시장부속골목공구가게등이따로번창했다.그가운데서도우리또래에게는초콜릿이며C레이션통조림으로넘쳐나는깡통시장이바로극락세계였다.

모든것이어려웠던그시기에어쩔수없이얌생이를할망정,그래도집에돌아오면대부분의얌생이꾼들은가족들로부터존경받는훌륭한가장이었다.자녀들의교육에온갖희생을마다하지않았다.‘내비록이짓을하고다닌다만너희들만은열심히공부해서사람답게살아라!’고염원하며학비를마련하여학교에보내고유학도시켰다.이렇게해서더러는성공한기업가로출세했는가하면의사판사아들딸이여기저기서줄줄이나왔다.물론이들은나중한국사회의비약적발전과정에서제몫을다했다.

이렇게볼때,‘얌생이’란한시대의어쩔수없는상황에서생겨난시쳇말로,마냥수치스런뜻으로만여길일은아닐것같다.그얌생이꾼들은정말‘개같이벌어정승같이’썼다.당시‘얌생이’란말속에는현실적생존과미래의비전(vision)을담은절규(絶叫)가서려있었다.

얌생이에도기발한아이디어와관찰력,그리고재빠른손놀림이성공의관건이었을것이다.그래!사탕을나눠주던그수간호원의지적대로,바로우리네특유의그밝은눈과빠른손이얌생이성공의비결이었고,그것이오늘에이르러마침내선진국으로향하는경쟁력의바탕이될수있었다고한다면,이는지나친억설일까?

그겨울의단상

오기환

수필가,시조시인

부산불교문인협회,부산시조시인협회,부산문인협회,한국문인협회회원

전연산중학교장

빙점하의기온에서만상이떨고있는데사무실에는포근함만가득하다.지난해중반에사무실한쪽에심야전기난방장치를설치했다.추위가닥쳐도가격이저렴한청정에너지덕분에쾌적한기분을만끽한다.지난하반기부터원유가격이폭등할때도예산의압박에서벗어날수있어서좋다.부담이없으니고맙고감격스럽다.

컴퓨터앞에서궁싯거리다가잠시고개를들고눈의피로를풀어본다.눈이침침하거나어깻죽지가뻐근할때는재빨리일어나서서성거리는버릇이생겼다.노년의행동이라여긴다.젊었을때는이런것쯤별문제가안되었는데···.그래서이따금문을열고현관을벗어나본다.겨울추위에얼어붙은교정의나무들은더춥게보이고그래서더욱앙상하다.지난해봄에는그렇게찬란한모습이었는데말이다.봄날의울창한모습을꿈꾸면서이계절을참아내는가보다.

쉴새없이학교운동장의변두리를걷는마을주민들이제법눈에띈다.걷기운동을하는모습이다.옷을두껍게입고목도리를단단히한채마스크까지걸친모습이다.걷기운동을통한건강다지기이다.이추위에학교운동장까지찾아온그녀들의용기가대단하다.사람은나이들면아픈곳만남는다.특히여성들은아픈곳이더많은듯하다.그아픔을이기려고저렇게추운날씨를박차고걷고있다.벌써수차례돌았는지몸동작이유연하게보인다.건강할때건강을챙기는이들의모습에서삶의활기를배운다.이걷기운동은누가시킨것도아니리라.스스로깨달은체험이리라.

지난달초에심한몸살을경험했다.목이잠기고오한이심했다.이불을뒤집어썼는데도온몸을떨어야했다.온몸의마디마디가그렇게통증을느낀것은처음이었다.그길로아침운동을접고집에서머뭇거리게되었다.10여년가까이쉬지않고해온아침운동을빼먹기시작한것이다.딱하루운동에빠졌는데연속으로1주일을쉬게된것이다.사람의육신은하루라도편하기를바란다.그리고하루편하면더편하고싶고그다음에는타성에젖는다.이래서는안된다고수차례다짐을했지만마침찾아온엄동의위협에기가질리는것을어쩔수없었다.

그래서찾아낸것이하루백팔배의운동이다.달포전에책을통해서익힌후에언젠가는적용할운동이라고생각했다.어느한의사가계발했는데인체구조에서이론적배경을찾고있다.절하는동작을통하여몸의유연성에는도움이된다는내용이다.약20분가량절을하고나면온몸에열이나고땀이방울방울맺힌다.이운동이추운계절에는안성맞춤이다.요즘처럼영하의추위에밖에나가기싫은어려운형편을고려한운동이아닐까.

거금으로러닝머신을구입해도서민들이사는좁은집의공간에는놓아둘곳도마땅찮다.홈쇼핑에서선전하는근육질의사나이나여성들은경제적여유가많은부류에속하리라.그러나과연집에서그렇게운동할분들이얼마나될까.작심삼일이란말은대부분사람들이경험한말이다.문제는마음에달렸다.비록운동기기를사용하지않더라도자신의몸으로할수있는단전호흡이나,절하기운동으로도충분히몸을가꾸고또건강을다질수있으니얼마나좋으냐.며칠지나자절하기운동이제법익숙해가고있다.요즘에는아침에108번의반을절하곤한다.그래도충분한느낌이다.유산소운동으로는미흡하지만시원하게땀이흐르기때문이다.

뜰을거닐어본다.내년에는이계절,이곳에서나를만날수없게된다.시간은나를기다려주지않는다.그래서오늘은더욱실감이난다.오늘이흐르고나면다시는그시간이되돌아오지않는것이다.나는지금그아쉬운맛을상상하는것이다.퇴임까지6개월을앞둔자의추억만들기라고할까.

이생각저생각에잠기는동안에나는어느덧교사의본관동편끝자락에서있다.바람이그리세차지않은데바람끝이따갑다.부산에서이런기온은좀체만나지못했다.벌써1주일째영하의날씨에부산전체가떨고있다.부산에서는강수량이적어서건조주의보와함께산불도걱정스럽다고한다.한파에수도파이프가얼어서물이나오지않는곳도있다고한다.식수걱정이심하다는뉴스도들린다.

야생화들이다시는살아날수없을것같은황량한화단.얼어붙은대지는말라버린풀만이바람에하늘거린다.잎이다떨어진나목들이깊은겨울잠에빠진듯하다.아무도대화를나누고싶은모습이아니다.내년에다시보자고말하려고해도들은척도않는다.이런죽은듯한모습들도봄에대한화려한꿈은꾸고있을듯하다.지난계절에대한화려한영화를누렸던꿈이리라.

다시운동장으로발걸음을옮긴다.야생마처럼날뛰던우리아이들이그립다.가끔말썽을피워도천진하게자라는미래의꿈나무들이아닌가.새로피어난싱싱한새싹들이아닌가.이아이들이추위에도아랑곳하지않고축구공을신나게따라다니며숱하게발길질하던요며칠전의시간들이삼삼하다.그들의훈기가방학후열흘이지난동안에모두운동장깊은곳으로사라진듯하다.

누군가교직은아름답다고했다.이힘찬활갯짓을하는아이들을보면서이아이들과함께웃고뛰놀수있다는것이얼마나고맙고감사한일이냐.흰백지에점을하나씩찍어가고그림을그려가는그들의모습에서무한한꿈과희망을볼수있었다.말을제대로잘못하던아이가친구들앞에서제법자신의뜻을밝히며또렷하게말하는장면에서우리는그아이에게무한한가능성과꿈을발견하는것이다.그래서힘이솟아나는것이교직이아닌가.

바지끝으로바람이차갑다.잠시의겨울단상에서깨어난다.언제이렇게차가운날씨에내가노출되었는지모르겠다.부산의날씨치고엄청나게차가운영하의겨울날씨한복판에서잠시서성거리며그겨울의마지막단상에잠겨본시간이었다.

잊어버린친구

남기욱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수필문학작가회회원

부산수필문인협회회원

하동문학작가회회원

오래전부터만나지못한초등학교때의친구가있다.어디살고있는지소식을듣고싶다는생각은항상하고있었지만연락이끊긴지어언십여년의긴세월이흘러버리고말았다.마음속에는아직도큰자리를차지하고있지만그동안머리에서만맴돌뿐행동으로옮기지못한채살아왔다.

그러다가얼마전에늦은줄알면서도알만한친구들에게수소문을해봤으나알고있는친구는하나도없었다.혹시나하는마음에향우회에도전화했으나깊은산골에라도꼭꼭숨어버렸는지여전히모른다는대답만돌아왔다.지금은당장찾기힘들겠다싶어안타까웠지만그래도살아있다면언젠가는꼭만나게되리라막연한기대는버리지않았었다.얼마전엔학연이나지연이있는한예전처럼지인을찾는것은어렵지않다는반가운이야기를들었다.

고등학교다닐때전학을가면서헤어졌던친구가30여년이흐른후나를찾은일이생각났다.그때만해도통신수단이발달하지않았던때라방학이되면편지를통하여소식을주고받은것이전부였다.그러다소식이끊어져까맣게잊고지냈는데어느날연락이왔다.다행히내가살던고향마을이름을오랫동안기억하고있어서마을이장과몇번의통화를한끝에나를찾아내연결이되었다.오랫동안헤어졌던친구의목소리를듣고얼마나반가웠는지모른다.

그로부터세월을뛰어넘는재회를하여10여년이지난오늘까지도한달에몇번씩소식을주고받으며우정을쌓아가고있다.내가찾고있는그도고향을떠난지오래되어누가기억하는사람이있겠는가하고고향마을에연락할생각조차못했는데나를찾은고교시절친구의용기있는행동이불현듯떠올라그렇게하면되겠다는생각이들었다.

그런생각을하고있던중에이제는만날때가된것인지어느날밤꿈에죽었다는소식을접하는악몽에시달렸다.하염없이슬퍼하다잠꼬대에놀라깨어보니다행히꿈이었다.더이상미룰수가없어사소한일들일랑훌훌털어버리고어디에서어떻게살고있는지확인을해봐야겠다는결심을하고다음날용기를내어면사무소민원담당직원에게전화를했다.

나의신상을정확하게설명해주고십여년전에헤어진친구라고하며혹시원한관계때문에찾고있는것으로오해할까봐그런일은절대아니라고걱정하지말라는이야기까지덧붙였다.내전화번호를확인하더니찾게되면연락을해주겠다고했다.

3일째되는날드디어연락이왔다.그는서울에살고있었으며내이름을대며찾아달라고부탁을해서전화를하는거라고전했더니그도잘안다고하기에내전화번호를알려주었다고한다.연락이오지않았느냐고했다.아직오지않았다며친구의전화번호를알려달라고해서적어두었다.

이제야찾았다.그토록궁금해했는데드디어찾게되었다.만나는일은이제시간문제다.그로부터며칠후서울에갈일이있어통화를해볼까하다가그만두었다.살아있다는것은알게되었으니전화오는것을기다려보련다.찾고있다는것을알았을텐데며칠이지나도연락이없다.살아오는동안생각대로일이풀리지않아서인지아니면세월이흐른만큼미안하고쑥스러운감정이쌓여마음의문을쉽게열지못하는것인지알지못하지만좀더시간을두고기다리는것이도리인것같다.

연고지를모르고달랑이름석자와나이만으로는아무리찾고싶은사람이있어도찾을수있는방법은쉽지않다.이번일을겪으며도시보다는시골이고향인사람들은마음만먹으면잊고지냈던친구들을찾는것은그리어렵지않다는사실을알게되었다.

그로부터며칠이지난후면사무소에전화를하여담당직원에게고맙다는인사를전했다.친절하게도고향에오면들러서차한잔하고가라는따뜻한인사가되돌아왔다.나같은사람이또있느냐고물었더니간혹은있단다.면사무소에서그런일을해주는지는몰랐는데세상은각박하고삭막하지만은않은가보다.

그와헤어지기전에는자주만났었다.그는서울에살고나는지방에있었지만서울에갈때면그의집에들러친구부인은애들방으로내몰고같이자며우정을쌓아왔었고우리큰아이가오랫동안병원에입원을했을때는하루가멀다하고만화책한보따리씩가져다주고밑반찬까지날라주던일은평생을두고잊을수가없다.그렇게다정다감한친구였다.누가그일을매일같이해주겠는가?형제들도어쩌다가한번이지형제보다도따뜻하게배려해주던일들은지금도눈에선하여집사람과정말고마운친구라는이야기를자주나누고있다.

찾게된동기도집사람의권유때문이었다.이제나이도들어가고그냥모른체잊어버리고살면안된다고꿈에까지나타나고했는데만날수있는길을찾아지난이야기들을나누며고운정쌓아가며사는것이어떠냐고재촉을하였다.또어려운상황에서도당신을찾는친구들도있는데찾겠다는마음만먹으면훨씬쉽게찾을수있을텐데왜그러고있냐고하는데자극을받았었다.한참늦었지만연락오기를기다릴것이아니라먼저시도해보지않으면평생을두고후회할것같아찾기로굳게마음먹어그결실을보게되었다.

당장이라도연락하면반가운목소리는들을수있지만아직까지책상위에는그의전화번호가적힌메모지가그대로있다.있는곳을알았으니만날수있는길을만들었는데그의전화번호가쉽게눌러지지가않는다.처음마음과찾고난후의마음이달라서인가아니면살아온세월이가로막고마음속에비워지지않은채로남아있는얄팍한자존심때문에망설이고있는시간이길어지고있는지는알수없으나언젠가는가볍게훌훌털어버릴수있을것이다.그때까지그대로두고보련다.머지않아즐겁게웃으면서통화할수있는날은틀림없이찾아올것이기때문이다.

눈앞이흐리다

강정이

서울예술대학문예창작과졸업

<경남신문>신춘문예수필당선

<수필문학>추천완료

수필집<달을찾아나서다>

<애지>로시등단

물체가겹쳐보여안경점에갔더니20분간책을보면10분은멀리보라한다.가까운것을20분보면먼것을10분보라는것이다.

그리고되도록멀리보기를자주하란다.

그랬던가…,그러고보니언제부턴가멀리보기를잊은듯하다.

내꿈은먼곳에있다고,멀리있기에잡을수없노라고아예포기한채발밑만보기로한것일까.무엇에쫓기듯늘발끝만보며동동거렸다.

그래서인지길을가다가나뭇가지에앉은새들이포로롱날아오르는모습을보게되면나도모르게발길을멈추고한참이나서성이게된다.

마치내꿈이저기서,제마음가는대로한껏누리고있는듯하여넋을잃고바라본다.

참새는땅을콕콕쪼다사철나무속으로쪼로롱숨고,직박구리는그몸집과남루한날개옷에어울리지않게샛노란개나리꽃잎을입술에문채벚나무꽃가지로오른다.

딱새는복숭아나무에서살구꽃가지로재빠르게몸을날려자유로운데나는발목이조여질질끌며살고있다.

그런데멀리날수있어,비상할수있어서늘부러웠던저텃새가알고보니그게아니었다.

어느조류박사가새의발목에리본을묶어관찰해보니참새는행동반경이500미터이고딱새는400미터,직박구리는1킬로미터라는것이다.

이럴수가,발목묶인내가수시로드나드는서울이천릿길이나되는데마음내키는대로자유를누리는저새가고작500미터,1킬로미터라니….

멀리와가까이의경계가흐려진다,내눈이흐려진다.

TV속‘위대한밥상’을먼것이라여기며나는지금라면을먹고있다.

‘동물의왕국’에서누우떼를덮치는사자는머얼리아프리카에나있다고여기며산책길발밑에떨어진사마귀,그사마귀가오히려벌에게먹히지않으려버둥대는것을보고있다.보는것과보여지는것의경계가흐리다.

가깝다고여긴남편의냉랭함이아주먼낯선사람으로보인다.그런가하면하늘나라엄마는아주멀다고만생각했는데몹시지치고시린어느날귓가에스치는“아가야,힘내거라.”는소리,엄마의혼결이늘곁에서뒹굴고있지않은가.

그러하니멀고가까움의거리를무엇으로재겠는가.

시간인가,거리인가,정(情)인가,마음인가.

늘멀리있다고만여긴꿈이어쩌면지금여기내가장가까운곳에서이루어지고있는것은아닌지.마음이눈을가려,어리석음이눈을가려참모습을보지못하는건아닐까.

성서의‘돌아온탕자’에서재산을탕진하며멀리돌다자신의정체성을되찾은작은아들이,늘아버지와함께하던큰아들보다어쩌면더가까운가족이아니었던지생각해볼일이다.

가족이란공간이라기보다마음의거리에있지않은가말이다.

그토록미워하던전처자식이멀리보면내가낳은아들보다더가까이있는게아닌지.

내식구안위에급급하다멀리아이티난민돌아보기를놓치고있지않은지.

내손톱에든피멍자국만들여다보다천안함실종자와그가족의아픔을먼곳이라착각하고외면하고있지않은지.

카메라줌을조절하듯거리를조절해봐야될것같다.

그재앙이언제어떻게내가까이에떨어질지누가알겠는가.

멀리와가까이를다시가늠해야겠다.

멀고가까움을눈으로재려하니마음이무뎌진게아닌지.

눈을감고마음을열어보자.

우주가다시내가슴에들어오지않을까.

그러면내주위가선연히드러나지않겠는가.밝아지지않겠는가.

‘영원히살것처럼꿈을꾸고내일죽을것처럼오늘을살자.’멀리와가까이를헤아리게하는이말이가슴을스친다.

골목길,그리고새벽달빛

최헌

<수필부산문학회>추천완료

부산매일신문기자활동

우리들신문발행인

부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경영기획실장

부산경제진흥원원스톱기업지원센터장(현)

내게서면이태어나고자란고향이라면해운대는제2의고향이다.

국민학교3학년때부친의갑작스런전근으로우리가족은해운대로이사를했다.당시만해도부산도심에서외떨어진곳이던해운대에는집에서농사를짓거나고기잡이를하던친구들이많던시골스런분위기였다.송정이나청사포,운촌등지에살던친구들의집에놀러가면마당한가운데고깃배에쓸그물이널려있고,주전자가득담치나고동을삶아간식으로먹었다.

지금의해운대초등학교뒤편이나신시가지주변에는제법농토가많아가을걷이가끝난논에서연을날리거나,마른이삭을주어불장난을하며겨울방학을보낸기억도남아있다.

당시에도해운대는전국최고의해수욕장과온천으로명성을날렸다.

한여름이면지금도남아있는31번버스종점이나지금은스펀지건물이들어서있는39,40번버스종점등은수박이나파라솔등을든피서객들로북새통을이루었다.가을이면전국각지에서수학여행온학생들로지금의해운대구청부근일본식여관들이즐비했던골목길은왁자지껄했다.

피서객들로붐볐던한여름을제외하면해운대는어린우리들에게지상최대의놀이터가돼주었다.피서객이몰려들기전초여름,한적한해운대백사장에서우리는우리들만의전용피서지를찾아때이른해수욕을즐겼다.초가을이면축구공하나로그넓은백사장을독차지했다.

울창한송림을자랑하던동백섬과해안바위들은다람쥐처럼날뛰는아이들에게전쟁놀이하기좋은놀이터였다.철사같은것으로해안가바위틈에숨어있는게잡기로해가지는줄모르는날들도많았다.달맞이고개옆수평선위로떠올라바다와백사장을온통붉게물들이던아침해로하루를시작했던내고향해운대는이제기억저편에타인처럼너무도낯설게남아있다.망각의강을따라아지랑이처럼가물거리는기억저편.이제막중학생이된한소년의애틋한풋사랑과여린상처가꿈결인양떠오른다.

국민학교를마치고막중학교에진학했을때였다.부모의성화로학교수업을마치고집부근에서과외를하게되었다.과외를시작한첫날,좁은골목길을지나마당이넓은허름한가정집안방에차려진과외교습소에는작은칠판하나에앉은뱅이탁자들이까까머리중학생을기다리고있었다.

서울어느대학을졸업했다는나이든과외선생이과외시간보다일찍찾아온나를붙들고이런저런것들을묻고있을때였다.나와같은또래로보이는한여학생이불쑥방문을열고들어와과외선생에게낯익은눈인사를건네며자리에앉았다.순간아마막사춘기에접어든중학생은난생처음심장이얼어붙는느낌을가졌으리라.

‘소년,소녀를만나다.’

유년기를금방빠져나온순진한소년이이세상에서처음으로이성을만난것이다.수업이시작되고과외선생은유창한발음으로교재인성문기초영어를읽어내려갔지만어느새붉어진얼굴을들킬세라중학생은앞줄에앉아태연히수업을듣던그녀의숨소리에귀를기울이고있었을지도모르겠다.그날이후중학생은학교수업이마치기를기다려집으로내달렸고,저녁을먹고는몇번이나양치질을했고,연탄불에더운물을끓여매일머리를감으며과외가시작되는저녁시간을기다렸다.

그녀에게잘보이고싶어영어사전을통째로외우려들정도로예습을했고,과외선생의칭찬을독차지하기위해밤을새워공부했다.과외를시작한지1년,2년이흐르면서함께과외를받던학생들이점차빠져나가기시작했다.자연스레그여학생과단둘이수업을해야하는날들도많아졌다.과외선생에게는무척힘들었던때였지만사춘기소년에게는오히려꿈결같은시간들이었다.

3학년이되자그녀마저수업을빠지는날이늘어났다.

과외를받는집입구골목에있던개인병원집외동딸이라과외선생은직접그녀를데리러가기도했으나예쁜얼굴에공부를썩잘했던그녀에게힘든사춘기가찾아왔던것같다.그녀마저결석하는날이많아지면서과외가없어질지도모른다는불안감에자발적으로가까운친구들을섭외해빈자리를채워보기도했지만당시어려운형편에과외를받을만한학생들은그리많지않았다.경제사정이넉넉지않았던나의부모님도과외수업비를대기힘들었지만전교상위권을맴돌던당시나의성적에쉽게말씀을꺼내지못하는눈치였다.결국나는고입연합고사를시험을치르고과외를그만두어야했다.과외선생이고교생까지가르칠여력이안된것이이유였겠지만그녀도더이상다니지않는다는얘길들었기때문이다.

고교에진학한그해,우리가족은부친의전근으로다시해운대를떠나이사를했다.만3년에걸친나의열병과풋사랑도그렇게막을내려야했다.그러나지금생각해도이상한것은당시그리도맘졸이며그리던그여학생에대한구체적기억이별로없다는것이다.처음그녀를만났을때보았던유난히까만눈동자,단정한단발머리,분홍빛머리띠같은몇몇이미지들이내기억의전부다.

당시나의일기장을사랑의맹세로가득하게했고,그토록많은날들을가슴설레며함께공부했지만초등학교동창인그녀에게단한번도말을건네지않았었다는사실도새삼놀랍다.그짧지않은세월동안유난히숫기가적었던소년은어쩌다마주치기라도하면속내라도들킬까봐일부러외면하며,모른척했던것같다.하지만몇몇기억은30여년의세월이흐른지금도잊혀지지않는다.

비오는마당을가로질러뛰어와젖은교복과단발머리를수건으로닦아내며잠깐스쳤던그소녀의미소.어느봄날주말하얀블라우스에청바지차림으로골목길을빠져나가던그녀의뒷모습이피다만연분홍벚꽃처럼아련하다.그녀가과외수업에오지않는날이면집으로가지않고늦은밤그녀의병원주변골목을어슬렁거리며3층옥상에있던그녀의방을훔쳐보며맘졸였던기억도생생하다.

전봇대뒤에숨어푸른달빛을서럽게지켜보던어린소년의눈망울도생각난다.

속마음을나누던가까운친구로부터그녀가평판이좋지않은친구들과어울리며방황하고있다는소식을전해듣고남몰래눈물을삼켰던아픈기억도있다.

더욱이홀로연모하던그녀가법적으로결혼이허용되지않는동성동본이고,당시동네유지였던그녀의부친과소년의조부가종친일로잘아는사이라는사실도그소년을무척이나힘들게했던것같다.

오랜기간사랑의열병을앓던소년은자라대학생이되고청년이되고사랑을하고그때그소녀만한딸을둔중년의가장이되었지만어쩌다해운대를가게되면그녀가살던병원주변을배회하며기억의파편들을찾아헤매곤했다.

세월이흘러주변모든것들이변하고사라졌지만아직도해운대버스종점앞그병원건물과골목길은그대로남아있다.

그시절흰가운을입은간호사들사이로아이들울음소리가간간히들렸던병원은사라지고대신음식점으로변한그곳에용기를내어손님으로찾아간적이있다.고기굽는냄새로가득한그녀의3층집에서단발머리를한그녀가오르내렸을계단과그녀가살았을방들의흔적을추억하며홀로소주잔을기울였다.음식점주인에게서병원집딸이서울의모대학미술학과에다녔고,독신으로프랑스에서화가로활동하고있으며,이곳에는몇년에한번씩들르곤한다는애기도들었다.

꼭한번만나고싶다는말을전하고싶었지만그녀에겐이름조차낯선의미없는타인에불과한자신을깨닫고입술을깨물수밖에없었다.가슴깊은곳에서밀려오는안타까움과오랜그리움을삭히려술잔을들이키다창밖골목을보니그옛날처럼달빛아래우두커니전봇대하나가골목을지키고서있다.그녀는세월을따라흘러갔건만까까머리중학생은회색전봇대처럼자라지않고앳된얼굴그대로그자리를떠나지않았다.

‘비록이룰수없는사랑일지라도이토록아픈그리움을사랑으로영원히기억할것을맹세한다.’

소년의일기장에적어둔마지막푸른맹세도이제새벽달빛처럼희미해져버렸다.

짙푸른바다저편에서아침해가떠오르면붉은햇살이하얀백사장을붉게물들이던내고향해운대.아침이면방패연처럼맴돌던그리움이수평선저너머로오래도록붉게피어나리라.

어둔골목길을헤매이다길을잃는날들이많았습니다./만난적이없기에우리는이별도모릅니다./먼지처럼흩어지는기억속에서도/어긋난길목을돌아선그대의뒷모습은아름다웠습니다./이른새벽이면꿈결처럼벚꽃이흩날리고/석양을떠도는새들의낯선울음소리가득했지만/시작도끝도없는그곳에아직기다림이남았습니다./덜컹대는시간의무게에발걸음을돌리면/달그림자드리운창밖으로그리움이뚝,뚝,발끝에머뭅니다.

이사(移徙)가는날

배기형

부산시교육위원회재무과

전부산구치소근무

수필부산문학회회원

예로부터일생동안자신의집을한번짓는것도어려운대역사라고했다.

1970년신혼초에전세금10만원으로단칸방생활을시작한나는성격이예민한집안주인의성화로밤9시이후면금족령이내려졌다.그래서직장생활때문에퇴근시간이불규칙한나는늦은귀가로담을뛰어넘는등무모한만용을부리기도했다.

그리고70년대중반부터불기시작한집장사아줌마들의성화에몸부림치며앞만보고달음질치던시절도있었다.우후죽순처럼건축붐이일어나고있을때,직장동료부인의권유로집사람이거기에뛰어들었던것이다.그녀가우선땅부터매입하면집짓는돈은차용하면되고전세를놓으면쉽게변제할수있다고했던것이다.

집을짓는과정은기초공사가중요하고레미콘차기사는콘크리트믹스가바로현금이라고했다.집사람은둘째딸을들쳐업고일을하는근로자들에게국수를끓여대접하는등정성을기울였다.건물이완공되어갈무렵에는인부들이밤에도예고없이와서현관바닥마무리작업을하고갔다.작업에대한불만을제기하면동시에몇군데공사를하기때문이라고하는변명을늘어놓았고,구청관계자에게통사정을해가면서준공검사를받던것도지난날추억이되었다.

동래에서네번째근린상가를지을때에는지하구조물터파기작업을하다가옆에있는카센터담장이무너지는바람에목수사람이좌측늑골에골절상을입어서입원을하는등처음부터전을했고,공사비조달이힘들었으며,시멘트와브로크등은도상에가서구입하는등발품을팔아서한푼이라도아껴야했다.

공사비는통상적으로4단계로나누어지급하는것이관례였다.지하기초공사때한번주고,지상일층에철골조가마무리되는시점에인건비를많이주어야했으며,3단계는뼈대가세워지고사무실벽의형태가되어갈무렵이며,나머지4단계는시방서대로공정이끝날무렵에주었다.

공사를직영하는입장에서는건축재료를계속공급하여작업에차질이없도록독려해야했다.다행히공사가진행되는동안에부상을당했던목수도쾌유되어동참하게되어서작업에가속도가붙었다.만일인사사고라도났다면모든것은허사로돌아가는것이아닌가?

1990년3월에시작한지하1층,지상5층의근린상가건물은9개월의공사끝에드디어준공되었다.그때나는공정하나하나에땀과눈물을흘리면서정성을다해준아내가한없이고마웠고동참해준기술분야의모든분들에게감사했다.

1987년3월사직동에서3번째2층다세대주택을지을때에는화장실문제로집사람이이웃주민들에게멱살을잡히고뺨을맞았던사건도있었고,준공직전에이웃들이제기한탄원서때문에민원이해결되지않으면준공검사를해줄수없다는구청의통보를받기도했다.

집을짓는것은헌집을철거하고신축절차를거치지만이해관계에있는이웃들이자신들에게피해를주지는않는지,예민해져서텃새라도부리면문제는아주복잡해지는것이었다.

그리고집을짓는문제로아내와말다툼도자주있었다.나는평범한주부이고,가정의행복을위해내조를잘하는아내를기대했지만,아내는두번다시오지않는젊은시절에경제적인기반을다지자는주장이었다.

하지만현장에서시비가있고고민이몰려오면,불평과불만이고조되어어느날에는이짓그만두지않으면이혼도불사하겠다는강경한말까지한적도있었다.금융권에서차용한3천만원은6개월마다이자를치러야하는고충도있었고,집장사라고눈총을주던이웃사람들이먼저이사를가기도했다.

20년을한곳에살면서많은사람들과임대차계약을맺고때로는전세금을담보로한채권양도통지서도받았다.전세금중일부를차용한금액을채권양수인에게건물주가지급해줄것을바라는채권양도통지인,즉세입자명의로통지하는절차이다.건물주와세입자는주종관계가아니라계약당사자이다.위약사항이없으면,대등한관계이나무리한요구로인한시시비비와분쟁도야기될수있는것이다.

살아온세월의연륜만큼이나,애환이실려있는건물이갑자기매매가성사되고,아들결혼식도올렸지만늦둥이의아파트장만과그뒤처리로무엇인가부딪쳐야실마리가풀리는도전의연속이었다.하지만때로는자신의의지대로이루어지지않는것도우리들의일상이고진면목이아닐까?

2009년12월30일오늘은이사(移徙)가는날이다.이삿짐센터직원들은폐가구와옮길가구를분류하는테치핑체크를분주히한다.포장이사란살림살이집기들을그대로둔상태에서박스에담아서옮기는것을말하며주인입장에서는오히려손대지않고지켜보는것이그분들을도와주는것이라고한다.

35년간을버텨온손때묻은장롱을버리기로했다.아내의정한이서려있기는하지만,오래된것은버려야새것을얻을수있는평범한진리도배워야할것같아서이다.

그런데이사가기전옆카센터의젊은사장에게충분한양해를구하지못하고이삿날을정한것이화근이었을까?평일이고나자신이차량을수리하는단골손님이라는자만심때문에그사장의자존심에상처를주었던것이,이사당일정체불명의봉고트럭이폰번호도없이주차되어있는점은내가젊은사람에게얄팍한계산적인사람으로비추어졌을것이다.

그는나의진심어린사과도받아주지않았고아내의30분에걸친설득과애원에도미동도보이지않았으며,나는먼발치에서아내의눈물을보아야만했다.

난감해진지게차기사는시간이돈이라면서5층창문을통해서짐을내리자고했다.창문밑에쳐져있는고압전선을지게차에올라서밧줄로밀착시킨후작업에들어갔더니한전직원이달려와서절대로작업을해서는안된다고했다.

그런한전직원에게자초지종을설명하고사정을했더니그가결심을굳힌듯작업차량을출동시켜고압선보호캡을덮은후에짐운반을허용해주어이사작업을할수있었다.

2만5천볼트의고압전류가흐르는전선을겁없이건드린지게차사장도나도오직무지의소치이고,어떻게보면돈키호테같은발상이었다.팀장에게고마운마음을전한다.

목적지인해운대신시가지에이삿짐이도착하자이삿짐센터직원들도“진짜왜이리일하기에마음이편하노.”하면서쾌재를부른다.조금전까지만해도힘들었던여건에서벗어난해방감때문일것이다.

우리인생도,고난과고뇌의세찬파도가밀려와도자신의심신을단련한다면주위를둘러싸고있는환경을긍정적으로전환할수있을것이다.송구영신의길목에서,새보금자리,새로운전기(轉機),새희망,새출발을기대해본다.(2010.4.)

봄의서곡(序曲)

배기형

매섭게휘몰아치던삭풍도,산과들에휘날리던눈보라도서서히우리곁을떠나고있다.사람들은모두새봄을맞이할채비를하고있다.겨우내움츠리고있던몸과마음을추슬러긴기지개를힘껏펼치면서포근하고따뜻한새봄을만끽하자.

지난밤에는봄을재촉하는이슬비가촉촉이내리더니아침에는출근길을재촉하는가랑비가포근히내리고있다.농부들은삽과괭이를메고논밭으로나가서하루의일과를시작한다.넓은들판의농작물들은단비를만나파릇파릇싹이트고,마을앞에늘어선키가큰버드나무도새잎이돋아나온다.

이제산과들은초록색옷으로단장을시작하고,개나리는벌써노란새옷을갈아입었다.봄처녀가긴댕기를매고사뿐사뿐내앞에나타날것같다.공해가심한도심을벗어나한적한변두리오솔길을걸어본다.길양쪽에늘어진수양버들가지에도초록잎이돋아나고있다.

묵혀두었던화분을양지바른곳으로옮겨금잔화와팬지를심어서황량한마음속에일년초가풍기는봄내음을맡아보자.

봄은여성들의계절이다.화사하고고운옷차림과경쾌한발걸음에서봄의메시지를들어보자.버들가지를꺾어피리를만들어불던어린시절이그립고,피리소리가종달새의지저귐처럼귓전에여운을남겨준다.

봄비는거친세정(世情)에파묻힌우리들의마음을녹여주고일깨워준다.비가내리는오늘밤은두고온고향이생각난다.왠지잠못이루며뒤척이는이밤은유난히도나를설레이게한다.경제가우선이라는고정관념과메카니즘의조류에떠밀려,정착할수없는고향이지만그마음의고향을그리워하는향수는누구나간직하면서살아간다.고향을그리워하는마음처럼순수하고거짓없는마음도없을것이다.자신의위치가기울어지면고달프고역겨운삶을원망하지만,누구에게나고향을그리워하는향수는있다.

밤비가소리없이내리고있다.비는만물의근원이며생명수인물을만들어흘러가면서내를만들고강을만들어서바다로흘러들어간다.지구의2/3를차지하고있는바다는수많은사연을담은강물을포용력있게모두받아들인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깊은산속의계곡물도도시주변에서유입되는공장폐수와생활오수도종착역인바다로흘러간다.그래서그오염도는날로심해가고적조현상까지일으켜서바다에서서식하는해조류와바다어장을질식시키기도한다.

물질문명도좋고고차원의문화도좋지만손때묻지않는동심처럼대자연의섭리를파괴하지않는자정작용은되지않는것일까?맑고그윽한심산유곡의자연속에우리의정신세계를살찌워나가야한다.여명이밝아오는새벽인데아직도비는그치지않고거드름을피우는흙에게활력소를불어넣고있다.

우리국토는예로부터금수강산이라고불려왔다.이강산은우리가보호하고끊임없이가꾸어가야더욱빛이날것이다.

그런데내고장은언제부터인가폐기물과쓰레기가쌓이고자연은파괴되어가고있다.우리는스스로가자신의몸을깨끗이하고건강한몸으로관리하듯이자연도건전하게보호해야하는데영원히안주해야할우리의자연을왜짓밟고파괴하는지?

새벽길을걷노라면노란색조끼를입은미화원아저씨들이거리를쓸고있는데,휴지와껌,담배꽁초등이어지럽게바람에흩날리고있다.

행인들이무심코버린오물과어린이들이지각없이버린각종기호물의포장지가낙엽처럼뒹굴고있다.나쁜습관이쌓이면서스스로가자업자득의과보를받는것이아닐까?습관은제2의천성이다.누구의간섭과지시없이도자신을조절하고진취적인자긍심을가져보자.어른들기성세대가나쁘게물들어가면서동심의세계에파문이전이될까두렵다.

인생의평범한삶을어느젊은이는이렇게정의하는것을들은기억이난다.

“내가예수그리스도의자식입니까?석가의자식입니까?나는성인이아닙니다.그래서평범하고세속적인것에탐닉하고몰두하는인간의존재란말입니다.”

그렇다.긍정도아니고부정도아니다.잊혀져가는나를찾아야겠고소박한생활속에서보람을모색하고삶의목적이무엇인가를알아야겠다.세정(世情)에순치되고있는심신을정화시켜야겠다.각박한인심,거칠어져가는도시생활의와중에서이웃을알아야겠고인정의꽃도피울수있는이웃사촌이되어야겠다.프라이버시가보장된다는아파트보다도더밀폐되어있는마음의벽을허물고터놓고정담도나누어보자.

밤9시뉴스에서흘러나오는굵직한사건들의연속과,최근의날씨는‘오백년만에돌아오는소빙하기’라는기상전문가들의견해를경청해본다.요즈음의날씨를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한다.봄은왔지만,봄같지않다,라는말이시사하듯어느지역에선갑자기폭설이내리고,냉해로피해를입고있는농민들의마음을안타깝게하고있다.잦은기상변화와재해가오고있으니,어떻게보면인간이자연에대하여무모한도전을했는지모른다.삶의패턴이바뀌는만큼그질은올라가지만,인간에게되돌아오는것은지진과쓰나미같은해일이다.

순리대로살고순리대로돌아가야한다는현인들의말을잊어서는안되겠다.최고의선에이르도록승화시키는자신의노력과순수한본성을되찾아야겠다는화두를떠올려본다.

봄을시기하는꽃샘추위바람이옷깃을여미게한다.짓눌리고밟히면서도엄동설한을지탱해온칸나가흙속을헤치며,고개를드는끈질긴생명력의집념과불굴의투혼을배워야겠다.

정녕봄의서곡은갖가지의생활형태를부각시키고자연의아름다운자태에서새봄의정취를포옹하는우리들에게장엄한순리의이정표를느끼게해준다.

배병채

<문학과의식>추천완료

부산문인협회회원

부산수필문인협회회원

불교문인협회회원

봄은꾸미지않아도엉덩이가들썩인다.어느지인이따라가자말하지않았더라도어디론가떠날참이었다.울고싶은데때려주는사람이있으면절이라도하고싶은법이다.신년을맞아큰스님들께문안겸세배를드리러가는데따라가지않겠느냐는지인의권유에옳다구나!하고따라나섰다.마침인원이많아타고갈차도필요하였기에이리저리핑계가좋았다.양정동에있는어느선원의주지스님을뵙고다음일정으로잡은곳이양산통도사말사중에하나인축서암이라는사찰이었다.

천지는이미봄물이오르고있어꽃멀미가날지경이었다.형체가없어도느낄수있는봄기운은대단한것이었는데,차가통도사인터체인지로진입하자봄비가속살거리며내리기시작했다.그렇지않아도춘삼월의기운에머리가몽롱할정도였는데봄비를맞으며축서암매화밭을걷는기분은꿈속인듯아늑했다.고향의복숭아꽃이저랬던가.살구꽃이저랬던가.달밝은밤에유백색배꽃이저렇던가.

불처럼화안하게핀매화나무를뒤로하고일행은목조건물안으로들어갔다.스님의거처로보였는데스님께삼배를드리고앉으니벽에한지로그린서화들이아담하게걸려있었다.화실겸거처로사용하는방인듯이보였는데도정갈해서그런지은은한향이나는것같았다.

그림그리기로유명한노스님은지혜로형형한눈빛을가지고있었다.외견으로보기에도단박에혜안을가진스님이라는느낌이드는것을보면스님이라기보다는예인혹은학자같다는어쭙잖은생각이문득들었다.스님을중심으로부챗살처럼쭉둘러서앉았다.노스님은휘이한번눈길을주시고는물이가득든주전자를들고침향이가라앉는모습을보여주셨다.자연의이치와세세한사연들을지혜의말을빌려들려주시며,주섬주섬손때묻은다기를꺼내놓았다.

노스님은서늘한눈빛으로봄빛을단박에흔들듯‘기운좋은이가나가서매화를좀따오지’했다.어린아이의속살같이보드랍고청묘하게여린청매가봄비를맞고들어오자한잎한잎찻잔에떨어뜨렸다.육안차에띄운청매는흐트러진자세를곧추세우듯놀란듯화들짝개오,개화하고발향을했다.나무로지은집의목향,물속에서천년을자란다는진기한침향,천지의기운을먹고자란다향에문향까지그윽했다.

애써방만한봄기운을붙잡으려는듯이처마밑으로봄비는소리죽여내리고있었다.봄이라도찬기운다물리기는어려웠던지세우에젖은몸은찻잔의온기로따스했다.

대웅전앞에서합장을하며기억을되살린다.언제였던가?장손을낳고아들욕심에내리여섯의딸자식을얻은할아버지는아들이난리통에군대로가게되자.하소연하고매달릴곳은영험하다는부처님뿐이었다.시주할쌀을넉넉히준비하고재너머천년고찰로길을나섰다.

산속의밤은칠흑이나마찬가지인데인가에서멀리떨어져인적이라곤없는,호랑이가나온다는외진산속을무서운줄도힘든줄도몰랐다.몇시간을가파른산모퉁이를돌고서야신흥사에도착했다.증조할아버지가쓰셨다는신흥사란현판에힘을얻으려는듯고개를조아려읍을하고곧장법당으로들어갔다.

간간이산짐승들의소리가들리며깊은산중의밤은정적속에서도흘렀다.향로에서연기를만들며타들어가던향나무가타서재가되기를얼마나반복했을까밤을사르듯사위어갔다.얼마나간절하고절절한바람이던가.그저장손살려달라고,아들하나있는것무사히집으로돌아오게해달라고빌고또빌었다.창호지틈으로여명이들자그제야날이밝아왔음을알았다.

몸은기력을다하여비칠거렸고겨우하룻밤사이에무명옷바지의무르팍은헤어져버렸다.얼마나성심을다한간절한바람이었을까.바닥에닿은무릎은피멍이들고온몸의기운은남김없이소진되어법당문을나오자마자쓰러지듯풀썩주저앉고말았다.

일각이여삼추라하나뿐인귀한아들이제주도로갔다는소식을알고는식량을제외한쌀섬을모두내다팔았다.온몸에전대를두르고물어물어제주도로가는작은배를빌려탔다.잘못하면죽을지도모르는망망대해의섬제주도에작은배하나에몸을의지하며찾아가는것이었다.

천신만고끝에제주도에도착하여아들이있는부대를찾아내고,곧장인근사가에거처를잡았다.아들의부대가이동을할때마다따라다니며정성을다했다.추수때가되면경주로돌아와돈을가지고가기를몇해,아버지는육군본부에서전쟁통에도펜대만잡다가오년이던가육년인가의기간을채우고만기제대를했다.

법당문을들어서면제일먼저할아버지가생각난다.냉철하기만했던할아버지도자식을위해서는물불을가리지않은사랑을보이셨다.자식이기는부모없다는말도있듯이호랑이같은할아버지도유일하게이길수없었던단한사람은3대독자아버지였던것이다.

안개가향기를가두어두어서일까.만개한매화가봄비를맞자향은더짙어지고바람결에매화는날리듯떨어지며꽃비를만든다.대웅전옆으로돌아나오는발걸음이더뎌지고무거워진다.손자가둘이라는게얼마나좋았던지삼칠일이겨우지난아이를안고다녔다던할아버지의웃음소리가들리는듯하다.

‘누가손자가몇이냐고물으면둘이라고말할테다’하시던당당하고호기롭던할아버지말이다.

법당문을나서자바람에떨어지는꽃잎들의모처럼의나들이를반기듯흩날린다.

이가을에내가할일

성종화

<시와수필>추천완료

개천예술제시장원

전국학도호국단문예작품현상모집수필장원

시집<잃어버린나>

수필집<늦깎이가주운이삭들>

나는이가을에시5편을쓸생각이다.바로며칠전새벽에거실마루에서홑이불을덮고자다가썰렁하여방안으로들어가면서가을이오는것을느꼈다.그래서영추(迎秋)라는시한편을썼다.

나는이시를쓰면서내가지난봄부터여름동안에한일이없으니이가을에거둘것이없을것이라는생각을하였다.내가평소에매사에당차지도못한데다가알찬삶을살아오지를못했으니당연히가을이와도거둬들일소득이없을것이라는뜻에서그런생각을하였을것이다.

그날일요산행을하면서내발걸음이무척가볍구나하는생각을하였다.그렇다고의기가소침해지거나지나간날의열심히살지못한데대한자괴심에서가아닌내나름대로의자적(自適)하는마음으로내걸음이가벼운것이라는자위를하였다.

나는오늘아침아파트주변산책길을조깅을하면서문득하늘을쳐다보고하늘이어느사이에저만치멀어져있음을알게되었다.며칠전까지만해도지루했던장마와그장마뒤에바싹따랐던늦더위가물러가고어느새하늘이높아진것이다.그래서시제(詩題)를초추(初秋)라하고두번째시를쓸생각을하고있다.그러고보니숲속에서풀벌레소리가전에없이유난스럽게들려온다.그들이가을의전령사로서먼저가을을느끼는것같다.

한결멀어져보이는저푸른하늘이내어릴때고향옥녀봉아래를돌아서흐르는덕천강의맑고깊은강물속에담긴다면얼마나깨끗하고아름다울까하는생각을해본다.그래서나는이가을의정취를만끽하면서그리움이담긴고향을생각하는시를쓸생각을하여본다.

이번주말2박3일일정으로고교동창들과경북의백암온천을다녀올예정이다.거기서아직이슬이덜깬새벽의백암온천의뒷산을산행하면서눈아래넓은평해벌과동해바다도조망하고온천에몸을담궈휴식을취하면서이런생각들을시상으로가다듬을생각이다.

그리고한창가을이익어가는중추(中秋)의아름다움을담은시와만산홍엽의계절을노래하는만추(晩秋)의시를쓸생각이다.그다음에가을을보내면서아쉬움을남기는송추(送秋)의시를마지막으로이가을의나의할일을끝매김할까한다.

나는가을을좋아한다.가을이오면내몸의구석구석의핏줄이생기를찾아마치맑은시냇물이흐르는것같음을느낀다.온몸이생기를되찾고머리도한결가벼워지고눈도맑아지는것같다.밤늦은시간옛사람들이등불을밝히고글을읽었듯이나는새벽에일어나맑은정신으로책을읽을것이다.오늘아침도이양하의수필‘나무’와나도향의‘그믐달’,윤오영의수필을읽었다.

나는이가을에고향을다녀오려고생각한다.내어릴때꿈이담겨있는고향에서이가을에쓸시상을얻어올생각이다.내고향은남강의댐으로호수로변하였다.그호수위에작은배를띄우고내가뛰놀던들길과언덕과,지금은없는옛친구들을생각하면서인생의무상함도느껴볼생각이다.

그리고이가을에는단풍이아름다운지리산을찾을생각도해본다.어느해뱀사골계곡을내려오면서까무러치도록곱게물든단풍과,계곡을가로건너게이어져있는군데군데의목책의교량위에서내려다보았던계곡을흐르는맑은물을담아와내가을시의소재로하고싶다.

굳이뱀사골이아니고피아골의단풍길도좋을것이다.가도가도끝이안보이는피아골깊은골짜기를지천으로물들어있는단풍에취하여보아도좋을것같다.단풍의색깔로옷과온몸이물들어버려도좋을것같다.그렇게하면서가을의시를쓰고싶다.아름다운가을의시를쓰고싶다.

덕유산자락에붉은치마를두른듯하다하여산이름까지적상산(赤裳山)이라한무주의가을단풍도보고싶다.소슬바람이부는늦은가을의어느날이가을을보내면서흩날리는낙엽의애잔한모습을적상산에서보고싶다.

우리인생도저낙엽처럼바람에흩날려언젠가는어딘지모르는곳으로불려가게될것이다.이런생각은나를처연(悽然)한상념에잠기게할것이다.그리고한잎낙엽으로바람에불리어가면서나는마지막으로이가을을보내는송추(送秋)시를쓰려고한다.

밧줄에매달린인생

성종화

오늘아침에조간신문사회면을뒤적이다가‘18미리로프가밥줄’이라는기사를읽었다.그리고바로지난주에내가신불산을산행하면서로프를잡고바위벽을타고올랐던일을연상하게되었다.

고층건물의외벽청소작업을하는인부를로프공이라고한다.로프공들은직경18미리의로프를건물에부착된고리에묶어서아래로늘어뜨리고그로프에부착된달비계의자에5킬로그램짜리세제(洗劑)가든플라스틱통을매달아좌우로4~5미터로움직이면서공중에서청소작업을한다.아래를내려다보면까마득하게보여서현기증으로어지럽기때문에아예내려다보지않고일을해야한다고했다.

로프공들은작업복에보조로프를묶는고리가달린벨트를두르고는있지만사용이번거롭고작업능률이안오르기때문에아예묶지않는다했다.그러다가실수로추락하는날에는바로사망하게되는위험천만의작업이다.로프나로프를묶는연결고리가부실하거나작업중강풍이라도불어오는날이면끔찍스러운사고가그들을기다리고있다고하겠다.

살아가기가힘든세상이다.비록이런작업현장이아니더라도,가족들의생계를위해언제해고가될지모르는직장에매달려있는모든사람들도어쩌면밧줄에매달린인생으로비유할수도있을것이다.이런샐러리맨이오늘을살아가는우리주변에얼마나많은지를생각해보게하는기사였다.

얼마전에앞으로는공무원의철밥통도끝났다는신문기사를읽은일이있다.그철밥통이라는의미가신분을두고하는말인것같다.그동안공무원들은자신이저지른귀책사유가없는한능력의유무에관계없이신분상으로안전한밧줄을잡고있었다고하겠다.그안전한밧줄이이제는공무원의신분을보장해주지않는다는내용이되겠다.

지난어느정권에서는모난돌이정맞는다는말이통하던시대가있었다.그래서무사안일의사고,즉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는안전한밧줄이호신책으로공무원사회를풍미하기도했었다.그러나앞으로의공무원에게는보다적극적인사고와업무자세가그신분을보장받게된다는기사였다.붙들고있는밧줄의정의가시대에따라달라지고있다고하겠다.

오늘을살아가는공무원이나모든직장생활을하는현대인들에게있어서종전의무사안일이보신책이라는사고가이제는지양되어야하는시대가온것이다.능동적이고보다적극적인사고가그들의신분을안전하게붙들어주는밧줄이라는의식의전환이필요한시대가된것이라하겠다.

나는지난주말에신불산의험악하기로이름이있는공룡능선을산행하였는데비가오고난바로다음날이어서바위를타고오르기가여간미끄럽지가않았다.발아래쪽이운무로안보이는낭떠러지를통과하기도하고,40~50미터높이의경사가다소완만하기는해도로프가없으면오를수없는바위벽도타고올라야했다.

우리는직경18미리의로프에한사람씩차례를기다려서타고올라갔다.로프는중간쯤에서한가닥이따로더내려와있었다.잡고온로프를놓고손을바꾸어잡으면다음사람이아래에서놓아주는그로프를타는방법으로로프세가닥으로된바위벽을차례로타고올라갔다.

그런데내가마지막가닥의로프에매달려서바위를타고다올랐을때나는깜짝놀라지않을수없었다.그세가닥의로프가바위틈에뿌리가내려져있는그리크지않은잡목둥치하나에매어져있지를않은가.직경18미리의긴로프가그것도한가닥이아닌세가닥모두가한나무둥치에보조장치가안된상태로매어져있는데다가전날내린비로인하여로프가물을머금어무겁기까지했다.

그런데다가나무뿌리가박힌땅은빗물로물러져있었다.만약에이런상태에서이나무뿌리가잘못되는날에는어떤사고가날것인가.생각하니아찔하였다.

이와같이밧줄이매어져있는고리의안전성여부가자기자신의선택과현실에대한판단만으로될수없는경우를우리는살아가면서왕왕만나게된다.이런경우에문제가있다하겠다.

그점이바로오늘을살아가는우리모두에게주어져있는공통된운명이고,어쩔수없는현실이라고도해야하겠다.

파랑

정은영

<문학과의식>추천완료

부산문인협회<문학도시>편집장(전)

2009<전남도민일보>신춘문예소설당선

저서<어린도적>외1권

여섯살.작고마르고유난히까만피부의아이는고집이세고말수가적었다.복숭아꽃이이운자리에복숭아가맺힐무렵주인집딸이었던친구와솜털이뽀송한아기복숭아따기놀이를시작했다.풋보리처럼여린연두빛열매가맥없이손으로굴러자지러지는연약함이좋아치마폭가득따모은복숭아들을작은대소쿠리에담아법당아래노란휘장을걷고숨겨놓았다.고여린아기복숭아를따서어쩌자는것이었는지…….하지만우리둘의풋내나는열매따기놀이는그리오래가지못하고친구의엄마에게들키는날이오고야말았다.

주인집이었던친구의아버지는대처승이어서집의위채엔부처님을모시는법당이있었다.마당을가운데두고아래채에는우리집과친구네가나란히마주하여살고있었다.

점심을드시러오신아버지곁에서막수저를들려던어머니가주인집여자의손짓에불려나가셨다.잠시후돌아오신엄마의표정은아주드물게였지만우리를혼내시던얼굴표정이어서나는혹시…하는두려움을느껴밥이어디로넘어가는지도모를만큼긴장하고있었다.

아버지가점심을드시고나가시자나의예감은적중했다.엄마가매를드시고왜여린복숭아를땄느냐고몇번이나물었지만나는아무말도하지못해엄마의화를돋우었다.그리고절대먹지는않았고법당에숨겨만두었다고항변했다.먹지않았으니혼나지않아도된다고생각해엄마에게대들어더큰노여움을샀다.어린마음에먹지않았으니혼나지않아도된다고생각했던것이었다.매를맞으며복숭아를딴게잘못이라는걸뒤늦게깨달아놓고도엄마가회초리를더높이들었을때도끝내잘못했다는말은하기싫었다.‘잘못했니,안했니’를여러번되풀이하여물으며엄마는면죄부의구실을주려했지만나는꿀먹은벙어리마냥입을굳게다물어버렸다.

나의고집에지쳐버린엄마는마당에꼼짝말고서있으라는벌을내리셨다.가끔곁을지나시며‘그래도잘못하지않았느냐’고다시항복의기회를주셨지만끝내아무말도하지않았다.

내가그렇게혼나고있던순간친구는방문틈사이로야단맞는내꼴을훔쳐보고있었다.친구와눈이마주치자부끄러움에어찌할줄을몰랐다.먼저복숭아를따자고한것도,법당에숨겨두자고한것도친구였는데왜엄마는나만혼내는건지슬슬골이나기시작했다.마당구석에꼼짝하지않고가만히서있는다는건여간어려운벌이아니었다.잠시친구와눈이마주쳐버린순간어이없게도웃음이났는데그때하필이면엄마가보시고말았다.‘벌서는놈이어디웃고있느냐’며엄마가양동이에물을가득담아오시더니머리위에끼얹으셨다.순간앞이캄캄해지며제자리에서휘청거리던나를향해두번째물바가지를들고오시는엄마를똑바로쏘아보며소리를질렀다.

“난저수지에빠져죽어버릴거야.”

나의반격에어이없어하는엄마를쳐다보지도않고앞만보고달리기시작했다.집에서의림지까지의거리는어른의걸음으로도30분도좋게걸리는거리라는걸안것은몇해전다시제천을찾아서였다.설마저것이정말저수지에빠질까하던엄마는나의뒤통수가저만큼멀어지자혹시…하는생각에뒤를따라오시기시작하였다.엄마는저수지가가까울수록조금씩늦어지는나의걸음에그럼그렇지생각하던다음순간저수지둑에서잠시주춤하던내가물속으로자맥질을하고말았다.나의모습이물속으로사라지자혼비백산한엄마는저수지둑으로달려왔고몇번이나물속과물위를솟구쳐오르내리던내발하나를간신히잡아정신없이물밖으로건져내었다.마침이웃밭에서일하던사람들이몰려오고한바탕소란이일었다.밭둑위에널브러진내배는물을먹어풍선처럼부풀어올랐고,뱃속에서는오글오글물끓는소리만요란했다.다행히도며칠동안고열과헛소리를하며앓다가깨어났다.

저수지사건이후,어른이된후에도나는파란물의빛깔만보면두려워한다.물이종아리만넘어도무서워엉덩이를뒤로하고뒷걸음질을친다.심지어목욕탕타일의파란색때문에푸르게보이는냉탕의물조차도두려워하는나를보고사람들은의아해한다.

저수지의그깊고음습한물의빛깔인초록같은파랑은이후나에게는무서운색으로각인되었다.이후저수지곁에있는밭에가는날이면산그늘이저수지에내려앉고물빛이검은파랑으로보일라치면아버지허리춤을잡고집에가자고떼를쓰며입술이파래지도록우는울보가되어야했다.

지금도물빛이파랗게보이면현기증부터나제대로바라보지도못한다.파랑을이해하려고영화‘블루’를세번이나보았지만달라진건아무것도없다.어찌어찌어른이되었으나영화속의줄리엣비노쉬처럼파랑이주는이러저러한구속에서벗어나려아직도노력하는중이다.

저기멀리수평선은맞닿은하늘과길고긴입맞춤을하고해변에서바다는파란색의물과포옹을한다.날마다좋은것만생각하게하는자유로운파랑,이성적인파랑,파랑은차갑다못해깊은색이다.무엇에도구속되거나흔들리지않는차가운열정으로깊은사랑을이야기하는색이다.

지금혼자보는바다는아무나붙잡고차나한잔하자며수작이라도부려야할것처럼차가운파랑색이다.

식욕

정은영

더위가한발물러선듯선선한날씨가며칠인가이어지고있다.지난여름동안잠잠하던내식욕이서서히제본색을드러내는모양이다.무엇인가입맛을확끌어당기는게없을까궁리하는시간이늘고있다.오늘은가까운어시장에가서횟감을떠다가식구들끼리먹자는생각을하기에이르렀다.

어시장에들러값이호되지않고회맛이수수한것이무얼까연구하다가우럭과노래미라는놈으로낙점을했다.흥정이끝나자눈이빼꼼한젊은여주인은힘이펄펄나서뛰는녀석들을모탕에올려놓고는둔탁한칼로대가리를턱턱쳐서기절시켜버렸다.그런다음,날렵한칼로바꾸어들더니대가리를쓱잘라내고내장을걷어내고는기계에올려비늘과껍질을순식간에벗겨놓았다.맨살을드러낸생선토막을회칼로대충떠서뼈를바른다음에,해적같이잘생긴경상도사내남자주인에게넘겼다.남자는칼도마를뽀송하게닦아내고는날렵하게회를떠서접시에올리고,고추냉이를한덩어리곁에놓고랩으로싸서다시검정비닐봉지에넣어건네고는계산을하자고했다.

“매운탕거리….”

내말이미처끝나기도전에남자는대가리와먹을수있는내장을골라다른봉지에담아주면서매운탕을맛있게끓여드시라고말을한다.곁에선여주인에게셈을하니‘고맙습니다.맛있게드세요.’인사는하는데눈길은이미지나가는사람들에게가있다.말과얼굴이다른방향을향해있는중이었다.이제돈받은손님에게서는관심이떠났다는거다.

돌아오는동안,펄펄뛰던생선이순식간에회칼에난도를당하여몇점회로변하여인간의식욕을달래는일로존재의절멸을보인다는것이,그생선으로내식욕을다스려야한다는것이이무슨운명인가,하는생각을하면서도회는잘먹었다.

준비한매운탕도보글보글잘끓어내식욕에불을붙인다.후~불면서매운탕속냄비에서살이얼마간붙은우럭대가리하나를건져냈다.건진대가리에붙은살점에는간이적절히배어들어큰고기뜯어먹는것과는다른감칠맛이난다.대가리의구석구석을뒤지니발라먹을살이제법박혀있어좀전의일따위는까맣게잊었다가문득어쩌다점심을먹으러나가면이따금서더리탕을먹었던게생각이났다.

그놈의서더리탕을먹을때면서구의어떤음악가인존셔덜랜드가생각났었는데그이가소프라노가수라는것말고는나는아무것도모른다.아무튼그런생각만하는것은무식한나의상상의자유로움인지도모르겠다.

대학에다니는아이에게서더리탕을사전에서찾아보라고했다.회몇점먹는데별별일을다시킨다고투덜거리지않고찾아주는것은참으로효성스런행동이다.

서덜:1.냇가나강가의돌이많이있는곳

2.생선의살을발라내고난나머지의뼈,대가리,껍질을통틀어이르는말

3.서대기를달리이르는말

서덜+이→연철서더리,서더리+탕→서더리탕

사전에는다음과같이설명되어있다고공손하게일러준다.시도때도없이사전을찾아보라고하는요구가,얼마나귀찮았으면,고등어를영어로뭐라고하느냐물었더니한영사전찾기싫어하이피쉬란다.그럼갈치는뭐야?나이프피쉬?

나이프는도냐검이냐?했더니,날이한쪽만달린것인가양쪽으로달린것인가에따라명칭이달라진다나.베는것과찌르는것의차이도있다고한다.

이제궁금증도웬만큼가셨으니다시식욕에충실할차례다.

매운탕속의생선뼈를발라먹으려니제법품이든다.조금이라도서둘다가는가시가목에걸리기십상이다.생선은아이들의음식이되기적절치않다.생선은맛이뛰어난것일수록먹기사나운경향이있다.썩어도준치라는준치의가시는가히공포의대상이다.가시가가지를치고그것도살속에흩어져있다.밴댕이라는놈도그렇다.그런데소금을쳐서구워놓으면기름이잘잘흐르는것이맛이그만이다.

우리는참으로철두철미한민족이라는생각을한다.소를잡아먹는일에서도그렇다.소는뿔에서발톱까지,살코기에서가죽은물론이고내장과선지까지,엉덩이에붙은쇠똥말고는안먹는게없다.

생선도그렇게먹는다.어두일미라는말도기실생선을너무철저하게먹어치우는몰염치를무마하기위한변명은아닐까싶다.하기는살이붙은채로버려서,다시한번썩어야하는것보다는육탈을시켜청결한뼈를대지에되돌려준다는것은생선의저승나들이를정갈하게해주는일인지도모른다.

매운탕냄비에서수저를내려놓은지두어시간지났을까?

내식욕은다시잘끓인서더리탕에소주한잔하고,뜨뜻한아랫목에누워늘어지게한잠자고싶다는주문을한다.

살아서천년죽어서천년

권춘애

<문학예술>추천완료

<아동문예>동화부문등단

한국문인협회,부산문인협회,부산아동문학인협회,부산수필문인협회회원

가을이끝나갈무렵에길을나섰다.그곳엔벌써첫눈이내린흔적이군데군데남아있다.어둠속에안개가자욱하게깔린새벽길을랜턴불빛에의지해서겨우한발한발앞으로나아갔다.처음부터이어지는힘든오르막이숨을헐떡이게한다.곧이어나타난허허벌판에우뚝우뚝서있는어떤물체들.초행길에내가마주한어둠속의저물체는뭘까?혼자끙끙대고있을때이길을자주접했던일행들은성큼성큼앞으로나아가고있다.갑자기온몸에소름이돋는다.난일행을놓치지않기위해무섬증과싸우며앞만보고걸었다.어둠속의그물체가왜저승사자처럼느껴졌을까?아니,마치시체들이벌떡일어나서길게이어져있는것처럼느껴졌다.

삼대가적선을해야만이볼수있다는지리산천왕봉일출을보기위해장터목대피소에서하룻밤을보냈다.다음날어둠을뚫고제석봉을지나가면서내가고사목을처음으로만났던날의느낌이다.무서움에일행들에게아무것도물어보지못하고천왕봉에올랐다.일출의황홀감에젖어고사목은까마득히잊어버리고산에서내려왔다.그리곤한동안잊어버리고지냈다.

얼마지않아눈이발목까지쌓여있던날지리산종주를나섰다.약해지는자신과의싸움에이겨보겠노라고길을나섰지만힘겨운산행이었다.마음과달리목적지를올려다보는눈은나를자꾸만뒷걸음질치게하였다.얼어서감각이없는발을녹이면서‘끝까지할수있다.’라는의지를굳히기까지는참으로어려웠다.석양이질무렵어두울때지나갔던예전의그제석봉을지나가게되었다.평지는온통은빛으로출렁이고있었다.하늘엔노을이색색의물감으로그림을그리기시작했다.앙상한몸의고사목은하얀눈을소복이이고있었다.은빛물결속에고고하게서있는고사목의자태가너무나아름다웠다.어둠속에서느꼈던무서움은그어디에서도찾아볼수가없었다.눈밭에서고사목을끌어안고아름다움에푹빠져추운줄도모르고한참을서있었다.

제석봉은해발1,800미터정도의높이다.50년전제석봉은숲이울창하여한낮에도어두울정도였는데도벌꾼들이도벌하고그흔적을없애려고불을질렀다고안내판에설명돼있다.이높은곳까지나무를구하기위해왔다는게믿기가어렵다.이높은곳까지땔감을구하기위해왔다면인간의탐욕이라고말하기보다는생존을위해서라고말하는게맞는말이아닐까하는생각이든다.또한,땔감을하기위해서는나무를베어가고자꾸심어야할것같은데왜불을질렀을까?숯을마련하기위해서라면몰라도….실제로는빨치산들을토벌하기위해불을질렀다고도한다.후자가더합당한논리인것같기도하다.그러고보면한국근대사의슬픈장면이아닐수없다.

초여름이시작될무렵제석봉의평지엔초록이무성하다.초록속에고사목들은마치누군가가만들어놓은조형물처럼서있다.비바람에도쓰러지지않고늘그모습이다.전망대에서내려다보는제석봉은적막만이감돈다.고사목들은반들반들하게치장을하고지나가는이들의말동무가되고자불쑥불쑥얼굴을내민다.수많은사람이이길을지나갔고오늘도지나가고있다.내일도또그다음날도지나갈것이다.많은이들에게제석봉의고사목들은반세기전의아픈추억을이야기하며잠깐쉬어갈것을강요할것같다.

살아서천년죽어서천년을간다는고사목!

한많은그긴세월동안꿈쩍하지않고자기본래의자리를지키고있는건왜일까?그슬픈이야기를아직도다풀어내지못한탓일까?세찬바람이옷깃을여미게한다.고사목은한점흐트러짐이없다.고사목주위를맴도는바람소리만이요란할뿐이다.그모습그대로살아서천년죽어서천년을버티고있다.

오늘도나는고사목을만나기위해제석봉을오르고있다.

못생긴나무

권춘애

구월초의햇살은아직뜨겁기만하다.

흥덕왕릉앞에도착하니해는머리위를맴돌고있다.입구가왕릉이라고하기에는무언가허술하다는느낌이든다.주위엔이동식화장실과왕릉에대한설명이적힌안내판이겨우하나서있을뿐이다.왕릉으로오르는길목엔굵은소나무들이빽빽하게늘어서서그늘을만들고있다.하늘이보이지않을정도로서있는소나무는하나같이구부러진모습이다.우리가쉽게접할수있는곧게뻗은소나무는한그루도보이지않는다.

소나무숲을벗어나자넓은잔디밭이펼쳐지고정면으로왕릉이보인다.흥덕왕릉입구에는문인석과서역인의모습을한무인석이각한쌍씩서있다.왕릉네모서리에는돌사자가배치되어있다.왕릉의둘레를따라걷는다.왕릉의둘레에는12지신상이조각되어있다.

흥덕왕은정목왕후가죽자‘외짝새도제짝을잃은슬픔을가지거늘,하물며훌륭한배필을잃었는데어떻게차마무정하게도금방다시장가를든다는말인가?’라고말하며죽을때까지새왕후를들이지않았다고한다.흥덕왕의유언에따라왕후의능에합장되었다고알려져있다.그래서인지무덤이하나뿐이다.

누군가다녀갔는지무덤앞에는막걸리한병이올려져있다.우리일행도가져간과일을올려놓고잠깐이나마흥덕왕을기리는묵념을올렸다.

넓게펼쳐져있는왕릉앞잔디밭에자리를잡고앉아가져간과일을나눠먹으며왕의아름다운사랑에대해이야기했다.그런아름다운사랑이있었기에지금까지도사람들이잊지않고찾아오는것일까······.

햇살은심술스럽게머리위에서떠나지않는다.산모기떼들이오랜굶주림끝에먹이를만난듯연방달려든다.하필이면볼에달려들어금방벌겋게부어오르게한다.잔디위에앉아서바라다보는구부러진소나무들은제각각의아름다운폼을잡고있는것같다.

한달여전에경북울진군서면소광리금강소나무숲에간적이있다.그곳의소나무들은하나같이곧은형태였다.아무리둘러보아도구부러진소나무는보이지않았다.

가끔마주치는소나무둥치에흰띠와노란띠가그려져있다.산을찾을때마다나무둥치에그려져있던하얀띠와노란띠가무얼의미하는것인지늘궁금했었다.해설사의말에의하면노란띠를두른소나무는영원히살아남을수있는소나무이고흰띠를두른소나무는그씨를받아종자로사용한다는것이다.그런의미가숨어있는것도모르고늘마음속으로저나무는없어져야하는나무인가보다하고막연하게생각했었다.

소나무는땅속에서2∼3년정도자라고1년마다한마디씩자란다는것도알았다.옆에자라고있는작은소나무의나이를세어보니열살이다.길을따라오르자타임캡슐이보인다.150년이지난후의우리후손들을생각해서타임캡슐에금강소나무종자,책자,관련서류등을넣어보관해두었다고한다.금강소나무와일반소나무의나이테간격은누가보아도확실한차이를알수있게비교해놓았다.금강소나무는옛날부터임금의관을만드는데에쓰였다고한다.그만큼귀한소나무이기에예전부터이곳의소나무는아무나베어갈수없었다고한다.조선숙종6년에금강소나무를보호하기위해서나라법으로나무를함부로베지못하도록바위에새겨둔경계표시인황장봉계표석을보니금강소나무의귀중함을다시한번더느끼게된다.

해설사의설명을따라한참을올라가자‘못생긴나무’라는이름표를단소나무한그루가보인다.모든소나무가하나같이쭉쭉뻗어있건만이숲에서는두갈래로갈라져있는못생긴소나무가이한그루밖에없는탓에귀한이름표를달고있었다.

귀한소나무가많은탓에오히려못난소나무가더인기가있는것인가보다.이숲에서는유일하게이름표를달고많은사람의발길을멈추게하고있었다.

‘이못생긴나무는조선성종(1480)때태어나지금까지살고있다.’고적혀있다.

흥덕왕릉의주변에는금강소나무숲과는달리어떻게하나같이못생긴소나무들뿐인지알수가없다.그런이유로이곳의소나무들은몇백년이지나도잘려나가지않고지금까지살아서숲을이루고있는것같다.못생긴소나무가아니었다면무덤주위가이렇게숲으로울창하지도않았을것이다.금강소나무숲의못생긴나무가달고있던이름표위에적혀있던글귀가생각난다.

‘못생긴나무가숲을지킵니다.’

정말그런것같다.못생긴탓에목재로도쓰이지못하니사람들의냉대를받았을것이다.

요즘사람들은못생긴사람이없을정도이다.마음에들지않으면성형수술을하는세상이다.길을가다가마주치는사람들을볼때면예전같이못생긴사람을찾기란정말어렵다.못생긴소나무들도사람들처럼성형했다면지금까지살아서숲을이루고있지는않았을것이다.어쩌면못생긴소나무처럼사람도조금은어수룩하게보이는사람이더정이가고편하게느껴지는것은아닐까하는생각이든다.

금강소나무생태숲에서는잘생긴나무들틈에서홀로당당히‘못생긴나무’라는이름표를달고있었건만여기에서는모두가못생긴소나무인탓에잘생긴나무를찾아본다.그어디에도잘생긴나무는보이지않는다.

못생긴탓에몇백년을살아남아이렇게울창한숲을이루고있다.숲에서새소리가난다.새들도아마편한곳을찾아왔는가보다.내마음까지도편안해진다.

해가쨍쨍하게내리쬐는오늘같은시간이아닌다른시간대에다시와보고싶다.자욱한안개가못난이소나무에걸려있는날이나저녁햇살이얼굴을붉히고넘어가는시간도좋을것같다.그것도아니면비가오는날이나눈이오는날은또어떨지?

편하게쉬었다갈수있는날다시찾아올것이다.그때는못생긴나무들곁에서흥덕왕릉과이숲을지킬수있었던그들만이아는이야기를듣고갈것이라는생각을하며못생긴소나무숲을빠져나온다.

해는아직도뜨거운입김을뿜어내고있다.모기에게물린내볼은점점부어오른다.

끝을읽다

문경희

<문학도시>추천완료

제12회동양일보신춘문예수필부문당선

일곱살아들을화구(火口)로들여보내고그는눈물이폭우처럼흘러내렸다.고작여섯해를일생으로기억하며불현듯이승을뒤돌아선아들과,내내녀석이선사하던알토란같은행복을회억하며통곡의강은점점수위를높이고있다.이제막맺기시작하는가냘픈몽우리의안타까운낙화이며그것이다름아닌피붙이인바에야체모도그무엇도잊은아비의짐승같은절규를누군들과하다하랴.

새삼,가고다시오지않는다는것이얼마나큰절망인지를생각한다.먼저간자식은가슴에묻는다했으니그가피와살을나누어세상에내놓은이름석자는살아결코멎지않을물꼬가되어무시로그를범람할것이다.마른땅만골라밟아도남몰래축축할일상의페이지들속에서더러는눈물그자체로,더러는웃음뒤에서장강처럼깊숙이흐를물길.슬픔도바이러스처럼전염되는지TV앞을망연히지키고앉은내앞섶도어느새따라젖는다.

사는동안가슴아픈이별이란영영만나지않았으면좋으련만크고작은인연의종착지마다통과의례처럼거쳐가야하는것이두글자,이별이아니던가.이별을하기위해만나고,이별을하기위해사랑하고미워하는우리네거룩한역설.끝내멀기만할것같던이별을눈앞에서맞닥트리는순간한바탕눈물로부르는지순한송사(送辭)를반복하면서세월의더께를앉혀가는것,그것이오늘을전부이듯살아가는우리의실상일게다.

어제저녁,급작스런부고를받았다.벨소리로지정해놓았던그룹캔사스의‘DustInTheWind’가유난스레경망스럽다싶더니아니나다를까덜컥비보를내려놓은것이다.일순,깨진거울처럼전신으로실금을긋고가는싸한한기에나도모르게진저리를쳤다.

결국손수삶을거둘운명이었던가보다.운명이니팔자니하는불가항력의꼬리표를인정하지않는다고내내건방을떨어왔지만본능처럼퍼뜩운명이라는낱말이뇌리를스쳤다.때문일까.깊디깊은슬픔만을유품처럼남겨두고떠난매정함을탓하기보다그저편히가시라는허허로운말만목구멍으로눌러삼켰다.

간만에만난지인과왁자한주점에서이마를맞대고있던참이었다.더러마음같지않은이를안주삼거나,도원결의라도하는양술잔을맞부딪치며격조했던시간을시끌벅적하게갈무리하고있었다.굳이명분을붙인다면낮으로방전된내안의배터리를충전시킨다할까.간간취기어린표정속으로실의를긋고있는이들도보였지만어쨌든그순간,그작은공간에머무는이들은하나같이내일이라는또하나의멍석위에서스스로를아낌없이방사하기위해제각각내부수리중이었음에틀림없다.그렇게요소요소에서,어쩌면낙망이더많은세상의한자락을들추고삶이라는지상최대의명제로의기투합을하는사이그녀는더이상삶,또는죽음으로왈가왈부하지않아도좋을곳으로총총히멀어져간것이었다.

지난십여년동안그녀를기웃거린것이우울증이었다.무심한해안선처럼저만치물러나있다가도한순간비호처럼달려들어멱살을낚아채던보이지않는손의위력이라니.결국,망망대해를떠도는쪽배처럼의지를겉도는물살에이끌려여기까지흘러온셈이다.

가장아닌가장으로막노동판을전전하던시절,정신은다만사치에불과했는지모른다.믿을것이라곤몸뚱이하나뿐인암담한현실속에서작지만단단한그녀의육신은구원의약속과도같았다.그런육신을경배하듯건설현장을떠돌며쉼없이벽돌과모래를날랐다.흙손을들고미장일을했다.오늘이고스란히내일이되던그때는병도아닌병에멱살이잡힐만큼호사스런날이오리라고는꿈에도생각하지못했을터였다.

그간의홀대에대한응징이었을까.성장한세아들을믿고일을접은지얼마되지않아복병처럼앞을가로막고나선것이마음으로오는병이었다.당차게세파에맞서던이력과는달리그녀안의또다른그녀에게는이렇다할저항도못해보고덜컥백기를들고말았다.유일한삶의출구가죽음이라는듯생과사의엄혹한경계를안방처럼넘나들며한주먹알약으로연명하던몇해.반복되는입원과퇴원으로피폐해질대로피폐해진그녀는한동안숨소리조차죽이고사는듯했다.

몇달전의탁한요양원의4층방에서몸을던졌단다.이미몇번인가자신을그었던흔적이섬뜩하게남아있던그녀의손목이오버랩되었다.살아남기위해경주마처럼앞만보고내달렸던것이종내는스스로를제물로바쳐야용서되는엄청난죄명이었을까.정신이비껴간육신이란내일을장담하지못하는것이라서정신이차마어쩌지못한삶을육신은너무나간단하게버리고말았던가보다.3층.2층.1층.삶으로굳건히지키고있는층층을징검돌처럼훌쩍건너는찰나죽음으로눈멀게한세상의모든괴로움이그녀에게서영원히떨어져나갔기만빌고또빌뿐,감히허망하다는수식어는붙이지않기로했다.

쟁.쟁.쟁.물수제비를뜨며허공을건너가는징소리처럼그녀의부재는연신내안을아릿하게울렸다.그녀가나에게,그리고세상에통고한단절의의미를더듬느라눈물같은소주만연거푸들이켰다.형제와자식과,눈에넣어도아프지않을자식의자식을깡그리돌아서서죽음이라는깔딱고개를터벅터벅홀로넘었을그녀.도수높은알코올의위력앞에서머릿속은얄궂게도점점더말갛게개왔다.

생전에이미사후의갈길마저당부를해둔모양이었다.머나먼어디에거한약속이라도있었던지떠나기위해그토록조바심을치던그녀는분골을하여뿌려질거라했다.‘거기는안갈란다.’부부의연은이승으로도족했는지평생비빌언덕은커녕거두어야할식솔노릇만하다가가버린남편곁에묻히기를끝내거부했다는그녀가남은이들의하염없는눈물강을저으며바삐가야할곳은어디였을까.

어떤이에게는억장이무너지는영원한종말이요,마지막선언이되어버렸지만또다른이에게는오직하나뿐인삶의보루였던이율배반의그무엇.같으면서도다른,다르면서도같은두죽음을읽으며우리가삶으로걷는이길의실체를생각해본다.

마침내한줌,아들의유해를끌어안은젊은아비의얼굴로다시뜨거운홍수가진다.이순간,무엇인들그에게위로가될까.슬픔이수초처럼무성할긴우기(雨期)를견디고,세렝게티초원처럼삶의야성으로충만해진그를만날수있기를말없는말로응원할뿐이다.산자는살아야한다는다소냉정한진리를성호처럼그으며.

게상어가있던풍경

문경희

여느때와는확연하게다르다.좋은것도,싫은것도딱히안색으로드러내지않는포커페이스의달인께서한껏달뜬표정을들켜버린것부터가그렇다.사랑과감기의공통점이숨길수없다는것이라면평생을두고달래지못한향수란지극한감기요,사랑의열병이었던게분명하다.

‘그렇게절절했다면한번쯤털어놓으실것이지.’

단한번거들고나설생각도못했으면서속으로나마애먼타박을아버지께하고마는나는영락없이입치사만요란한그렇고그런자식들중하나였음이분명하다.누구나세상이라는황무지에삶의씨앗하나혼신으로일구는것을.비록어촉(語鏃)을당신께겨누었으나실상은저홀로고단한척바쁘다는후렴구를달고다니던스스로에대한질타라는게맞을것이다.

시늉만으로상을물리고금세채비를끝내신다.설거지를하고느긋하게커피물까지올리는나를향한말하자면무언의채근인셈이다.부지런히달려도족히한나절은도로에묶일원행이라는핑계를내걸었으되그게전부랴.본의는결코아니라하나,나는혹여,아버지의속내를더듬어위무한다는미명으로더없이조급해진당신을즐기는악취미를가지고있었던게아닐까.뜨끔해진마음으로서둘러출발을한다.

“열두살때고향을떠났다아이가.아버지에엄마까지돌아가시고나니까묵고살기가원체팍팍해야지.할수없어머슴을살러안갔나.근데도저히못하겠는기라.마침부산형수가댕기러왔길래무작정따라나서는데매형이작업복한벌을주데.조선옷벗어놓고그거걸치고나섰던기엊그제같은데,참….”

십여분이나달렸을까.차창으로두런두런매달리는봄의기척에한눈을파는척이유없이울컥해지는마음을다독이는데말머리를꺼내신다.애초에일도,집도뒷전으로물리고하룻밤동행을자처한맏딸의꿍꿍이속을읽으신건지,먼시간무료나달래줄참이신지꼬깃꼬깃묵혀두었던이야기를펼치신것이다.아버지의열두살,운전대를잡은오빠나뒷좌석에서아버지를모신나나잉태될기미조차없던까마득한시절이다.그로부터지금에이르는파란만장했을역정이드디어제대로상영되겠거니싶다.이따금약주한잔에불콰해진기분으로맛보기처럼찔끔흘리시던살아온날의이야기들이두엄자리처럼띄엄띄엄기억속에앉아있지만빙산의일각이아니랴.어떤베스트셀러소설보다도,흥행성공작의영화보다도내게는절절한감동으로다가올아버지의생애다.생목처럼괴고오를애잔함도,눈시울을적셔야할비통도목젖으로눌러삼키며지도밖당신의세상에만존재하는길로들어설각오를단단히한다.

세상을뜨신큰어머니가애달프긴하지만그나마가신이덕분에건재한자식들을호위병처럼거느리고막연하게그리던옛터를,어쩌면마지막이될지도모른다는비감으로밟는아버지의감회를무엇으로읽어야할까.짧지만길기도할일박이일을앞두고조문(弔問)이라는원론적인슬픔을넘어밟아질땅,아버지의아버지께서살아내셨고,내아버지의앙상한유년이곱다시배어있을그땅에서맞닥트리게될당신의표정이산다는핑계로당당했던그간의무심을자책하듯일견두려움으로다가온다.

이야기는신명처럼이어진다.예나지금이나사람좋은웃음만넉넉할뿐내내과묵하신분이건만빛바랜사연들을쉬지않고펌프질해내신다.저자그마한체구어디에그토록깊은물길이있었던지.

‘이책의출간은내과거의기억들에대한천도재이다.’

어느작가는작품집의서두에이렇게소회를밝혔다.아버지께서도피와살을물려준자식을증인으로세우고난제를풀듯피땀으로살아왔던시간을장사지내고싶으신가보다.혈혈단신이라해도과언이아닌열두살의코흘리개가타향이라는척박한대지에뿌리를내리고거목으로우뚝서기위해겪어내야했던고초.입이있어다말할것이며귀가있어제대로들을수있을것인가.그간연줄처럼가슴으로길어져무시로전신을펄럭이던외로움도,서러움도,슬픔도,절망도이제는말끔히비워내고남은여정으로짊어질짐을처음처럼단출하게꾸릴수있기를소원하시는지도모른다.무심한세월앞에영영손흔들고돌아서는지인들이하나둘늘어가는이즈음,떠밀리듯남은시간을가늠하며두글자‘고향’으로남모르게조바심치시던날은또얼마일까.‘우리늙은이들이야바쁜기뭐있노.’늘자식의일이우선이었고자식의시간표를당신의일상위에덧붙여움직이시던것을잠시물리치고오늘만은내길이곧너희들길이되어도군말마라는듯달리는차보다도저만치앞장서서휘적휘적가신다.

당신께서고향을떠나셨다던열두살,우연히도내나이그즈음아버지의잔상이아주또렷하다.삶이너무혹독했던탓일까.간난의세월을대물림하지않기위해고군분투하셨다.부업으로뒤란축사에서양계를했던탓에이따금제구실을못하는닭이별식으로상에오르곤했는데살코기는퍼석거려서싫다며우리가해작질하고남은뼈의연골부위를‘오드득’참으로맛나게드시곤했다.먹잘것도없는껍질과뼈는단연아버지의몫이었던게다.잔뜩제배불리느라조몰락거리고나서야뼈만꼬질꼬질하게남은다리를인심쓰듯내밀기까지했으니자식이라는이름의철부지가너나없이저지르는오류를나역시전철로되밟았음에랴.

그시절,아버지는게상어를유난히좋아하셨다.여느부모가그러하듯고기한점도당신입으로먼저챙기지않던분이셨으나그것만은자식눈치없이드셨다.지금생각해보면남편을위한어머니의소박한보양식이아니었던가싶다.

봄이제철이라는것을연전에알았으나그때가봄인지가을인지기억에는없다.닷새에한번씩집부근으로장이서면곱게썬무채와구색을맞추어상위에오르곤하던것이바로게상어다.아직도오일장이이어져올만치도회지와는거리가멀뿐더러당시엔먹어입을즐겁게해주자는호사스런발상자체가용납될여유가없었을터이므로싱싱한횟감이란당신들사전에는없었으리라.‘금방죽은놈’이라는생선장수의너스레는어쩌면눈앞에서살아펄펄날뛰는활어라는단어와동의어였던지도모른다.참말같은그거짓말을철썩같이믿었던지어물전에서게상어몇마리를횟감으로떠온날,어머니는한자배기초장을만드는일마저신바람으로해치우셨다.

먹어도,먹어도질리지않는음식이있다던가.한점입에넣어보면뼈가먼저불뚝성을내고말던게상어회를매번달게드셨다.나는아직먹어도질리지않는음식을만나보지못했지만장날저녁마다아버지만의특식은커다란양푼에남은회와무채,초장한숟갈을넣고쓱쓱비비는걸로바닥을드러내곤했다.더러얇실한무채만골라가며당신들의양푼을껄떡거려먹어본비빔밥은돌아갈수없는유년의추억한소절과함께내게도꿀맛으로남아있다.

웰빙이니음식궁합이관심사가되는여유로운세태다.한술더떠푸드코디네이션을들먹이며먹을거리도오감으로즐기자는주의다.그런들나는여태무채를듬뿍넣고벌겋게버무린게상어회무침만큼궁합이좋아보이는음식을보지못했다.줄탁동시(啐啄同時)가따로있던가.달이는이와먹는이의정성이약발을좌우한다면요리하는이와먹는이의뜨신마음이고명으로얹힌음식이야말로웰빙이요,궁합이딱맞아떨어지는음식이고말고다.다만,이제나는억센뼈도족히다스릴구수한나이가되었건만아버지께선의치를한탓에,잊고살아야했던고향처럼그토록좋아하시던게상어와도결별할수밖에없는현실이못내안타까울뿐.

반추하자면바로그게상어가있던풍경에서번번이막혀버리던아버지의길.고작일박이일이라는짧은시간으로갈무리가될까마는당사자께서손발을걷어붙이셨으니분명예전같은허탕은면할게다.타의범접을불허하듯오랜세월가슴으로꽁꽁여며온길너머의길과초면으로도느꺼운조우를고대하며해바라기처럼다시귀를활짝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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