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 자유 • 사랑 中에서… (4) 원죄(原罪)와 구세주(救世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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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 자유 • 사랑 中에서…
(4) 원죄(原罪)와 구세주(救世主)

~ 閑超 이상봉 / 철학박사

Christianity (예수교)에서 그토록 중요시 여기고 있는
‘원죄(原罪)’ 라는 단어나 개념은, 동양의 것이 아니다!
동양에는 ‘원죄’라는 개념이 없다.
그것은 동양에 ‘구원’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과 똑같다!

‘누가, 누구를, 구원해 주고 말고’ 라는 생각이,
동양에는 없었듯이…
‘태어나기 전 부터 갖게 된 죄: 원죄’ 라는 개념은,
동양의 것이 아니다!

Bible(기독경) 속에 나오는 원죄(原罪)의 유래와 벌(罰)에 대한
골자는 바로 다음의 것이다.

“먹지 말라는 열매(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하느님이 내려 준 벌이 있었으니…
여자에게는 ‘애낳는 고통과 남편의 손아귀에 들어감’이 있게 되었고,
남자에게는 ‘땀을 흘려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고,
결국에는 흙과 먼지로 돌아가게 되었다!”가 된다!
이것을, 좀 더 줄이면…
“男女, 모두, 고통과 고생 속에서 살다가 죽어라!” 가 된다.
그렇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그런데…
내가 결론부터 이야기를 하겠으니…
잊지 말고 꼭 기억해 두고, 늘 관조(觀照)하여 보도록 하시라!

예수교에서 주장하는 ‘죄’와 ‘구원’의 개념은,
서로 서로, 상호보충의 사상에서 나오게 된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구세주 • 구원의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원죄로 부터 구원해 줄 ‘구세주(救世主)’의 포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원죄’가 필요하게 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佛敎(불교)에서는 어떨까?
불교에서는 “인생이 바로 고해(苦海)” 라고 했다!
“인생이 고해”라는 것은,
‘사는 것이 바로 고통과 고생’ 이라는 것이니…

결국은,
Bible 속에 들어있는 원죄의 개념:
“남 녀, 모두, 고통과 고생 속에서 살다가 죽어라!”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알고 보면, 두가지가 100% 똑같은 소리로,
“우리의 삶이, 고통과 고생 속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 한다!”는 것인데…
뭘 그걸 Bible 속에서는 그토록 거창하게 나열해 놓았을까나?

그리고,
삶이 고생스럽다! 라는 것쯤이야,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아는 현실일진대…

예수교에서는 구세주라는 개념을 살리기 위하여…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다!”
라는, 교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 예수교의 교리가 우리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는가?
구세주가 ‘우리 삶의 고통과 고생과 죽음’에
과연, 그 무슨? 그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일까?
도대체, 그 “구원” 이라는 것이나,
“성령(聖靈)의 은혜를 입었다!” 라는 것이, 과연 무슨 소리일까?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이, 구원(救援)을 받은 것이고…
또한 성령의 은혜를 입은 것이란 말인가?
구원을 받기 前과 구원을 받은 後에,
오는 차이점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예수교의 교리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가장 높은 차원(첫번째의 위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
사람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자기의 그러한 자녀를 그 原罪라는 것으로 묶어서-
태어 나기도 前부터 죄인으로 옭아매어서-
가장 버림받은 존재로 전락시킬 수 있었을까?
그렇게 전락된 상태가, 단지,
‘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그 즉시 환원되어진다고?

그대! 그대는 그 말을 진정으로 믿고,
그 말을 진정으로 받아 들일 수가 있는가?

—————————————–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거져 되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누가 누구를 구원(救援)해 준다!”는 그 말을, 철저히 믿고 있다!고?
“믿습니까?” 라는 질문에,
입으로 “믿습니다!”라고, 대답만 하면…
구세주가, 그대를 구원해 줄 것을, 틀림없이 믿는다고?

그렇게, 쉽게되는 방법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은…
아래의 Joke를 읽어보고,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여 보도록 하시라!
이토록 간단한 농담에서도 그대는 뭔가?를 느낄 수 있어야만 한다!

(현대판 나스루딘의 이야기 中에 나오는 것인데…)
책 판매원이
“이 책은, 당신의 일을 半(반)은 해 줄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하자…
나스루딘이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그책을 두권 사겠소!”

“This book,” said the salesman, “will do half your work.”
“FINE,” said Mulla Nasrudin
“I WILL TAKE TWO OF THEM.”

—————————————

여기서 부터는,
사족(蛇足)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그냥, 덧붙이는 것이지만…
이 기회에, 참고 삼아서, 읽어 보도록 하시라!

예수교式의 Idea와
석가모니 사상(思想)의 차이점은 이렇다!

석가모니는,
“인간이야 말로, 만물 중에서 수억 번의 윤회를 거쳐서 오게된
가장 높은 위치에 도달한 상태이니,
만물 중의 최고의 경지에 놓여있는,
바로, 이 좋은 기회를 놓지지 말고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생사의 윤회 바퀴에서
벗어 나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개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하여,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윤회(輪廻) 바퀴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쳤다.

다시 말하면…
구세주(救世主)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자신이 생사의 輪廻에서 벗어 나야만 하니까,
네 스스로가 구세주가 되어야 된다!는 소리였다.

(혹자는, 혹시나, 내가 불교인이거나…
또는 불교에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 내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상봉은, 불교인도 아니고,
또한 輪廻를 믿거나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대에게는, 어느 사상이 더 가치가 있어 보이지는 모르겠으나…
그대가, 그대 인생의 주인인 것 만큼은 확실하지 않은가?
도대체, 어느 누가 그대의 삶을 그대보다 더 잘 알아서,
그대를 구원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그대가 예수의 사상을 믿는 것까지는 다 좋은데…
우선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라는 것 만큼은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것을,
나는 다음과 같이 표현 하겠다.
(‘영문’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독자는?
영문으로 된 부분을 無視 하시라!
그래도, 글 전체의 내용 파악에는 별로 지장이 없을 테니까…)

You are the savior

Sang Bong Lee

You are the savior.
Nobody else can do that for you.
If somebody else can redeem you,
Somebody else can push you back into the Hell.

You can create Hell for yourself,
You can create Heaven for yourself,
Or you can go beyond both.

No one enters Heaven,
No one enters Hell,
Because Heaven and Hell are not the doors!
They are not the places but only burdens:
They are the burdens that you created for yourself.
Wherever you enter, you enter with your own burdens.
Even in Hell there is no fire at all,
They carry in their own fires with them.

You are the only creator for your own burdens,
You are the only savior for yourself.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an effable and ineffable.
*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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