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語에서의 “사도신경, 예수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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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語에서의 “사도신경, 예수의 능력”

~ 이상봉 / 철학박사

자! 우선, 사도신경(Apostles’ creed)를 읽어보고 나서…
오늘의 이야기를 하기로 할까?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The Apostles’ Creed: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Creator of heaven and earth,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ied and was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re he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life everlasting.
Amen.

예수교 신자들은, 모두 다, 이 기도문을 완벽하게 외고 있을텐데…
한글판과 영어판을 아주 꼼꼼하게 자세하게 비교하여 보면서…
한국어과 영어의 차이점을 찾아보도록 하시라!
(영어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치 더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행스럽게도… 그야말로 다행스럽게도…
두가지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게만 된다면,
그 때에는,
그대의 종교지식과 신앙심이 훨씬 더,
Upgrade, Elevate, Advance to 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지만.)

자! 오늘의 욧점은- 가장 중요한 Point-는,
한국語에는 수동태(受動態) 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로는 분명히 “Jesus was resurrected.” 라고, 되어 있는 것이…
한국어에서는 “예수가 부활했다!”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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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Footnote]

Jesus was born before the death of King Herod (4BCE),
of pious parents Joseph and Mary of Nazareth in Galilee.
[영어로는 was born (태어남을 당했다, 즉 수동태)로 되어 있지만…
한국어에서는 “태어났다(능동태)”로 되어진다.]

만약에 말이다,
한국말에서 처럼, 스스로 태어날 수가 있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부모가 있어야만 된단 말인가?
즉, 스스로 태어나고, 스스로 죽고, 스스로 부활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닌가?

창조주라는 존재만 해도… 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 스스로 있게된 創造主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스스로 없어질 수도 있어야 하고,
또한 스스로 죽을 수도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철학적인 질문에 “神은 자살을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주는 스스로 존재 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죽을 수도 없고, 스스로 없어질 수도 없다!고 하니…
그러한 式의 矛盾이나 Paradox가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은가? 내 말이 틀렸는가?

———————————-

이 두가지에는, 서로 간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즉, 예수는 하느님에 의하여 “부활을 당하게 되어진 것(受動態)”이지…
예수가 “스스로 부활을 한 것(能動態)”이 아니다!

이미 죽은 者(자)가
“스스로 부활했다! (능동태)”는 것과
하느님에 의하여
“부활을 하게 되어졌다. 부활을 당하였다! (수동태)” 라는 것은…
그 차이가 어마 어마할 정도가 아니라…
아에, 그 차원자체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인들이나 서양사람들이 받아 들이는
예수의 능력이나 수준하고…
한국인들이 믿고 있는
예수의 능력이나 수준하고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르게 형성되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대! 한국말을 쓰고 있는 한국사람인 그대에게는
“죽은 예수가, 스스로 벌떡 일어나고,
스스로 부활을 할 만큼의 能力과 實力이 있는 그런 사람”
으로,
각인(刻印)되어 있겠지만서도…

서양인들, 미국인들에게는
“죽은 예수가, 스스로 벌떡 일어나고,
스스로 부활을 할 만큼의 능력과 실력이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에 의해서 ‘부활이 되어진 그런 사람’”
일 뿐이란다.
이렇게나, 서로 서로, 다른 것이란다!

만약에 말이다…
죽임을 당하여, 이미 죽은 예수가
‘스스로 벌떡 일어나고’,
또한 ‘스스로 부활을 할 정도의 能力’을 가지고 있었다면…

로마 병정들에 의하여 처형을 당하기 전에(수동태),
예수 스스로 아무런 고통도 없이 죽으면 그만일텐데(능동태)…
무엇 때문에, 로마 병정들에 의하여 행해진
그러한 십자가 처형을 받으며 죽어가면서…
그 십자가 上(상)에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부르짖어야만 되었을까? (-마태오 27: 46)

그러니까… 내 말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모든 처형과 절차를 밟으면서…
그렇게 처참한 죽임을 당해야만(수동태)
되었더란 말인가?

그렇다! 언어가 바로 정신이다!
그래서, 한국어를 쓰고 있는 한국사람들이,
한국의 예수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예수는,
그리하여, 그의 능력이 그렇게 과장되어 있는 것이다.

자! 이제야 내 말을 어느 정도나마 알아 들었는가?

[필자 註:
오늘의 이야기는, 미국 Texas州의 Mr. Andrew Lee 씨와
“I had my hair cut yesterday.” 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주고 받게된 대화의 일부임을 밝혀야만 되겠다.]

~ Sang Bong Lee, Ph. 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an effable and ineffable.
*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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