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棺)뚜껑 밑에, 고히, 잠들어 있는 것일까?

관(棺)뚜껑 밑에, 고히, 잠들어 있는 것일까?

~ 이상봉 / 철학박사

사람이 죽게 되면 RIP(rest in peace) 라고 한다.
즉, ‘죽은 상태’를 그리고 또한 ‘무덤의 표시’로,
“편안히 쉬고 있다!” “고히 잠들어 있다!” 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죽은 사람들은, 정말로, Coffin lid (棺 뚜껑) 밑에서,
“고히 잠들어 있는 것일까?” “편안하게 쉬고 있는 것일까?”

그대!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긴,
더 이상의 문제(問題)만큼은, 일어 날 일이, 전혀, 없으니까…
죽은 사람에게 그 무슨 책임(責任)을 물을 사람이 없으니까…
그들이, 더 이상의 걱정이나 문제는 전혀없이,
어느 정도, 편안하게 있는 것 만큼은…
그러한 시달림이 없는 것 만큼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 되기는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그들이,
정말로 “편안하게 쉬고 있는 것” 인지?
제대로 “잠이나 자고 있는 것” 인지?
아니면 “잠들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인지?
또는 언제까지나 “죽음을 부정하고 있는 것” 이나 아닌지?
그것도 아니라면,
오히려 “부활을 하겠다!고 발버둥질을 치고 있는 것” 이나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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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대도 아마 들어 보았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라는 사람의 이름을!

[Footnote:
Rainer Maria Rilke (1875-1926, Austrian poet and novelist.)
그는 오스트리아 시인으로,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그가 쓴 독일어 작품들(시와 소설)로 인하여…
독일어 문학가 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죽기 前에, 미리,
자기의 비문(碑文)을,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Rose, oh reiner Widerspruch, Lust,
Niemandes Schlaf zu sein unter soviel Lidern.

Rose, o pure contradiction, Desire,
to be no one’s sleep beneath so many lids.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矛盾)이여,
수많은 뚜껑 아래에서 어느 누구도 잠들지 않으려는 욕망(慾望)이여.]

Grave of Rilke in Raron Swizerland -a
(Grave of Rilke in Raron, Swizerland)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냥, 이 글의 서론(序論)에 지나지 않는 것일 뿐이고…

진짜로,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核心) 또는 본론(本論)은, 바로, 다음의 두 문장이다!
그렇다!
두 문장 속에 들어 있는, 그의 통찰력(洞察力)을,
제대로 파악하도록 하시라!

The future stands still, but we move in infinite space.
(미래는 고요하게 멈추어 있건만,
우리는 우주속을 무한하게 움직이고 있네.)

Don’t be confused by surfaces;
In the depths everything becomes law.
(겉모양 때문에 혼동하지 말아라,
깊은 내부에서는 모든 것이 같은 법칙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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蛇足(사족):

한국에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소위 “장미의 시인” 이라고 하면서…
“연인을 위하여 장미꽃을 꺾다가,
장미가시에 찔려서 죽게된 시인”
이라고,
그렇게, 널리, 알려진 사람인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가, 장미에 대한 詩를 여러편 쓴 것도 사실이고…
장미가시에 찔렸던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가 “장미가시에 찔려서 죽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그가 죽은 원인은 Leukemia(백혈병)이다.

그렇다!
그는 백혈병으로 죽게 되었고,
그래서, 자기의 碑文도 미리 써놓게 된 것이다.

그가, 한국 사람들에게,
비교적, 널리 그리고 많이 알려지게 된 이유는…
(한국인들에게서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그가 활동하던 시기가, 바로,
한국의 개화기, 일제시대, 왜정시대 때에 해당되는데…
(그 당시에야, 물론, 일본의 영향을 그대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의 한국의 시인들 中에서-
그야말로 몇 안되는 시인들 中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하고,
또한 그에게서 영향을 받았노라!고, 자처하는
윤동주, 백석, 김춘수 등등의 영향 때문이었다.

~Sang Bong Lee, Ph.D.,
Dr. Lee’s Closing Arguments,
Dr. Lee’s Lessons: Discovering Your Nature,
Dr. Lee’s Iconoclasm.
Dr. Lee’s an effable and ineffable.
All rights reserved and copyrigh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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