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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construct()
를 사용해주세요. in /webstore/pub/reportblog/htdocs/wp-includes/functions.php on line 3620 위안부 할머니들과 일본에서 찢어진 안네의 일기 - 김태훈 기자의 아침에 읽는 시
위안부 할머니들과 일본에서 찢어진 안네의 일기
/AP 뉴시스 찢어짖 안네의 일기

/AP 뉴시스
찢어짖 안네의 일기

지난달 일본 도쿄의 몇몇 도서관 열람실에 비치된 ‘안네의 일기’를 누군가가 찢어버렸다는 소식이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이들을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일본 극우 세력은 위안부 강제 동원뿐 아니라, 난징(南京) 대학살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조작됐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렇게 행동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영화화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한 장면

영화화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한 장면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여성 소설가 오가와 요코(52)의 ‘오가와 대담집’도 함께 봉변을 당했습니다. 대담집이 유대인 박해를 다뤘다니 그냥 놔두기 싫었나 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오가와가 쓴 ‘인질의 낭독회’라는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책을 훼손한 이가 ‘기억과 기록’을 통해 삶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이 작품을 먼저 읽었다면 어땠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역사의 범죄를 기억해내고 양심을 기록한 글을 지우려는 시도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요.

‘인질의 낭독회’는 남미의 외딴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에서 출발합니다. 인질 구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며 잡혀 있던 8명이 모두 폭사합니다. 유력한 정치인도 경제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은 곧 잊혔습니다. 그러나 몇 해 뒤 비극의 현장에 설치됐던 녹음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이들의 죽음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인질들은 억류 중에 낭독회를 열어 각자의 생애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을 적어 서로에게 들려줬습니다. 그들의 사연을 읽는 동안 독자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인질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그 후 어떤 삶의 이야기를 더 들려줬을까” 싶은 거죠.

‘인질의 낭독회’를 읽으며 일제(日帝)에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을 떠올렸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많은 할머니가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거나 가족 없이 홀로 살았습니다. 그때 일제가 저지른 역사적 범죄의 인질이 되지 않았다면 할머니들의 삶이 어땠을까요. 동네 총각과 가슴 설레는 연애를 시작했을 것이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며 삶이 주는 기쁨을 만끽했겠지요.

‘안네의 일기’와 ‘오가와 대담집’을 찢은 범인에게 오가와가 한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흔한 인생에도 반드시, 둘도 없는 이야기의 결정(結晶)과도 같은 것이 숨어 있다.” 이 땅에서도 70여년 전, 비록 이름없는 소녀들의 것이었지만 아름답게 빛났을 삶의 결정들이 부서졌습니다. 이 소설, 우리말로도 번역 소개됐으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4.3.1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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