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등 (弔燈) 앞에서

이제도시에사는우리들,

아니아마도거의모든사람들에게대문이없어졌군요.

야트막한담이단정하고고운옷이라면

대문은그옷에마지막으로달아놓은단추같다고나할까요,

들어가기도하고나오기도하는세상의문인데말이지요.

대문이없어져서들어오고나갈일이없는기이한세상에

우리가사는지도모르겠습니다.

들어가면서바깥세상의자신을뒤돌아보고

나오면서집에서의자신을뒤돌아보는그런틈이없는

맹랑한시간들말입니다.

아주어렸을때살았던동네에는대나무로만든대문도있었어요.

굵은대나무를통째로엮어만든대문도있었지만

대가가늘어선지대나무잎까지넣어서엮은대문도있었지요.

자그마한대나무잎들이새끼에꽁꽁묶인채로대문이되어있으면

어린내눈에도그이파리들이달리보이곤했었어요.

처음엔초록잎이다가차츰누우렇게바래가곤했지요.

그초록대나무잎들이묶여있는집은사실담이전부대나무였어요.

이제야생각해보니그동네는정말집집마다대나무가없는집이별로없었던것같군요.

옆이나뒤나하다못해변소뒤쪽으로라도대나무들이자라나곤했으니…….

다른이유가혹있을지도모르지만워낙대나무가자생력이강하고벌레도없을뿐더러

겨울에도푸르르니추운겨울에도푸르르고싶은사람들의열망탓이려니생각해봅니다.

(사실겨울이윤기나는알밤처럼엉글어가고있는이무렵이면

정말초록이고파서허기가지는것같기도합니다)

깍아지른듯한아파트나거대한건물곁에

대나무를심는이유는조금다르겠지요.

조경업자들말로는조경이어울려서라고하나

키는크면서도다른나무들과는비교안될정도의엷은부피때문이아닌가싶더군요.

건물이주는날카로운위화감을벽지바르듯얇은대나무가상쇄할수있어서요,

가느다란대나무로엮은대문이있는집은우리집골목끄트머리께있었어요.

어느날갑자기그초록대문에낮이었는데도붉은색등이달려있었어요.

검은글씨두자가쓰여있는,

물론아직어려서그등이죽음을표시한다는것을알리가없었지요.

그런데도등불이,

밝은빛인데도그알수없는음울한빛의정체가내심의심스러웠지요.

낮에도켜있고해저물녘에도켜있는그등의빛깔.

아마어린내가맨처음으로의식한죽음의빛이아니었을까?

캄캄해진뒤에무서워서밖엘나가지못했음에도어두운세상에홀로밝혀있는

그등을생각했던시간들의기억이이렇게선명한것을보니말입니다.

굳이죽음의여의사라고불리웠던엘리자베스퀴블러로스의책을보지않더라도

사람의인생이숨이멈춰짐과동시에소멸의길을걷는다고는생각하지않습니다.

설령물질로혹은흙으로만들어진육체는소멸한다할지라도

그집을마음대로부리며살았던그미묘한존재-

평생한번도눈에보이지도않고손에잡히지도않은-

그러나육체를살아있게했던그매우정신적인존재ㅡ

와의분리가죽음이아닐까,싶은거지요.

그렇다면그이별의식이틀림없이진행될것이며

그순간을산사람들은돌볼필요가있다는겁니다.

경건하고고요하게

그러나분명코쓸쓸하게……

자신이거했던집을벗어난마음,혼,혹은영혼은아마추워할것같습니다.

이별의쓰라림이왜없겠어요.

특히이즈음처럼겨울이라면말이지요.

그래서팔짱을꼭낄지도모르겠어요.

이제는흙으로되돌아갈자신의몸을한참들여다보며나름대로의이별의식을고하겠지요.

그리고방문을닫고나서는겁니다.

마당이있으면좋겠지요.

여기저기가만히기웃거려봅니다.

익숙한부엌이랑텃밭,

그리고어느순간은다람쥐처럼달려가는어린조카아이와부딪힐지도모릅니다.

물론아이는전혀의식을못할거구요.

그렇게대문을나서는겁니다.

자신의죽음을알리는등하나쓸쓸하게밝혀있는대문.

검은색글자로근조라고서있는등앞에서한참서성이다가

뒤돌아서서휘적휘적걸어갈겁니다.

그가걸어가는뒷모습을

그의죽음을알리는조등이길게아주오랜동안비쳐줍니다.


며칠전우연히강화도에서백씨네상가라는표지판을보았고걷다가

다시근조라고적혀있는대문을본적이있지요.

오래된대문에매달려있는겨울빛같은근조등을보며

까마득한어린시절의조등을떠올렸어요.

근데

그러기전조등앞에서서성거리기전.

살아있을때이런사소한것들을하라더군요.

수많은죽음을보면서삶의의미를헤아렸던호스피스운동가이자철학자인

로즈선생께서말이지요.

*******

마지막으로바다를본것이언제였는가?

아침의냄새를맡아본것은언제였는가?

아기의머리를만져본것은?

정말로음식을맛보고즐긴것은?

맨발로풀밭을걸어본것은?

파란하늘을본것은또언제였는가?

많은사람들이바다가까이살지만바다를볼시간이없다.

죽음을앞둔사람들은한번만더별을보고싶다고바다를보고싶다고말한다.

삶의마지막순간에바다와하늘과별을

또는사랑하는사람들을한번만더볼수있게해달라고기도하지말라.

지금그들을보러가라.

마지막순간에간절히원하게될것,그것을지금하라.

********

해야할일들이너무나쉬운것에대해지금

놀래고계신거지요?

5 Comments

  1. 느티나무

    2011년 1월 19일 at 5:18 오전

    로즈선생님께서나열하여주신여러항목들은
    실제로제가일상에서하고싶은일들이고,
    또그렇게할려고노력하는일들이네요.
    사실,아주쉬운일인데도바쁘게앞만보고걸어가려고해서
    놓치고있는부분들이지만요.

    저는자신이거했던집을벗어난마음,혼,영혼은
    조금도추워할것같지않다는생각이드네요.
    그런것을뛰어넘는영역에있을것같아서요….

       

  2. 푸나무

    2011년 1월 19일 at 6:01 오전

    아,저두그렇게생각해요.
    전천국을믿으니깐요.
    추울거라는생각은그냥별리에대한슬픔…….때문에..

    아까느티나무님멋진글읽었는데
    머가이상한지아무리찾아두
    댓글쓸데가없어서추천만하구그냥나왔거든요.
    남이쓴뒷자락에는쓸수있는데…..
       

  3. 느티나무

    2011년 1월 19일 at 3:51 오후

    그러실줄알았어요.
    저도천국을믿고있답니다.
    그리고저는이세상도천국이라생각하고열심히살아갈려고노력하죠.ㅎ

    음…미안합니다.
    제가포스팅을하면서’댓글’난을막아서그러는것입니다.
    이것은예의가아니지요.
    불특정한사람들이제방에찾아와서제글을읽고댓글을달지는않겠지만,
    푸나무처럼이웃이거나혹은특정한분들은
    댓글난에당신들의느낌을적으시곤하는데,
    예의가아니지만당분간댓글난을막을려구요….
    이해하여주셨으면합니다.

    블로깅에익숙하시지않으셔셔아직잘모르시겠지요?
    글을쓰시고등록을하시기전에보시면,
    태그,공개설정,댓글,스크랩설정,엮인글…등등을보실수있으십니다.
    저는댓글난에허용하지않는다고마크를하였어요.
    참,글을올리신다음에고치시고싶으시면
    ‘수정’을클릭하시면됩니다.
    푸나무님은금방익숙하여지실겁니다.

    푸나무님께글을잘쓰신다고하면안될것같아요.
    워낙글쟁이이시니….^^
    암튼님의글읽는느낌과재미가상당하답니다.
    그리고이렇게인연이되어서감사하구요.^^

    지금이곳은아침시간,
    컴에출근클릭을하기전에잠시들어왔어요.
    좋은밤되십시오.

       

  4. 綠園

    2011년 1월 20일 at 1:13 오전

    시드니에서살다보니조등을본지도참오래되었네요.
    아시겠지만한국의결혼식장처럼장례식장이있어서
    그곳에서장례식을하며조등은없답니다.

    로스선생님의말씀중에는바다에대한것이많네요.
    제가사는곳에서도차로1시간내면바다를볼수있습니다.
    주말에는배를타고시드니하버이곳저곳을왔다갔다하고
    바닷가에서걷기도하게됩니다.

    낮의파란하늘,밤의별빛도늘보고살수있습니다.
    시드니로얄보타닉가든의입구에세워진간판에서
    "잔디를밟으며산책을즐기세요"라는말도봅니다.
    그런데맨발로는걸어본적이없네요.

    추운겨울이없는곳이기에늘초록의나무와꽃과삽니다.
    그래서저는늘감사하며살고있답니다.

    오늘도좋은글잘읽었어요,푸나무님.^^*   

  5. 태양상인

    2011년 1월 24일 at 3:56 오후

    우리의영혼은,죽는순간에,초순간에자신의일생을돌아보게되고,유체이탈의순간어리벙벙해서자신의육체를물끄러미바라보다가부웅떠서허공으로쏜살같이날아갑니다.워디로가나워디로?~본성지은대로이끌려서악마는지옥행특급으로~천사는천당으로~원래왔던곳으로돌아가십니다.운다고오옛사람이이오리이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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